로데릭 하니발

 

'''로데릭 하니발의 수상 및 영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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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0'''





[image]
'''이름'''
로데릭 한니발 (Roderick Hannibal)
'''생년월일'''
1972년 3월 7일 (52세)
'''국적'''
미국
'''출신학교'''
롱 비치 주립대학교 (1991~1994)
'''포지션'''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신체사이즈'''
193cm
'''KBL소속팀'''
'''청주/서울 SK 나이츠 (1999~2002.1)'''
서울 삼성 썬더스 (2003~2004)
'''수상 내역'''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 (99-00)
KBL 수비 5걸 2회 (99-00, 00-01)
1. 소개
2. KBL 입성 전
3. KBL에서의 활약
3.1. 청주/서울 SK 나이츠 시절 (1999~2002)
3.2.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2003~04)
4. 관련 문서


1. 소개


KBL 초창기에 활약한 장신 스윙맨으로, 기존의 단신 외국인선수들과 달리 숨막힐듯한 수비력이 장점이었다. KBL에서 총 4시즌 동안 활약했다.
한국에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 소울푸드라는 단어를 알린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덩크 코리안드림] "SK흑기사 하니발 나가신다"

2. KBL 입성 전


롱 비치 주립대학교 시절 1년 선배들인 루시어스 해리스[1], 브라이언 러셀[2] 등과 함께 팀의 주전 멤버로 뛰었으며, 3학년때인 1993-94 시즌엔 NCAA 토너먼트에 진출지만 1회전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후 유럽 및 대만 리그 등에서 뛰다 1999년 KBL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지원, 2라운드 전체 19순위[3]로 창단 3년차 팀인 청주 SK 나이츠의 유니폼을 입는다.

3. KBL에서의 활약



3.1. 청주/서울 SK 나이츠 시절 (1999~2002)


트라이아웃에서 선발된 단신 외국인 선수들 중 많은 이들이 포지션과 무관하게 팀에서 빅맨 역할을 강요받았던 것과 달리,[4]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매직히포 현주엽이 함께 있던 청주 SK에서 하니발은 원래 포지션인 가드로 뛸 수 있었고, 덕분에 특유의 퍼리미터 수비력은 물론 크리스마스 전까지 17경기 평균 17.5득점-5.8리바-4.2어시를 올리며[5] 만능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하니발은 통상 한팀의 에이스롤을 맡아야하는 외국인선수 치곤 득점력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고, 특히 우승후보 대전 현대와의 대결에서 2연패를 당하는 바람에 팀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최인선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는 대신에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빅딜'''을 단행, 현주엽여수 골드뱅크로 보내고 조상현을 전격 영입해 팀의 스피드를 끌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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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의 영입 후 득점 부담을 덜게된 하니발은 이전보다 더 수비에 집중하는 한편, 루키 포인트가드 황성인을 도와 보조리딩 역할까지 수행하는 등, 아직 어린 멤버들 사이에서 베테랑다운 리더십을 발휘했고, 정규리그에서 전 시즌 우승팀인 대전 현대와 단 한게임 차이로 2위에 오른다. 플레이오프에서 청주 SK버넬 싱글턴이 이끄는 전대회 4강팀 수원 삼성을 3승 무패로 가볍게 요리하는데, 정규리그 평균 16득점에 머물렀던 하니발은 플레이오프 들어 승부사 기질을 맘껏 뽐내며 3경기 평균 25.3점을 올리며 팀내 최다득점자가 된다.[6]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게된 전시즌 우승팀 대전 현대를 상대로, 청주 SK 최인선 감독은 특별한 비책을 가지고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수비장군" 하니발을 대전 현대의 컨트롤타워인 이상민에게 매치업 시키는 것이었다. 10cm의 신장차에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하니발이 이상민을 맡고 포인트가드 황성인은 상대팀 단신 슈터 조성원을 맡는 전략이었는데, 이 작전은 제대로 적중하여 이상민은 챔프전 시리즈 내내 하니발을 떨쳐내느라 고전, 체력부담까지 얻으며 정규리그 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패스길이 차단된 대전 현대는 맥도웰-로렌조 홀의 골밑까지 위력이 감소하면서 결국 2승 4패로 청주 SK에 챔프전 우승을 내주고 만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 MVP는 팀의 기둥 서장훈이 받았으나, 하니발의 수비력이 시리즈의 향방을 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창단 첫 우승을 달성한 청주 SK 나이츠는 , 하니발 두 외국인 선수들과 모두 재계약을 맺고 00-01 시즌 우승을 노리기로 한다. 팀의 기둥 서장훈이 정규리그 내내 부상으로 신음한 탓에 하니발은 공격비중을 늘여 평균 20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팀은 정규리그에선 3위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가 시작되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서장훈이 건강하게 돌아온 서울 SK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정규리그 2위 창원 LG와 맞붙은 4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 SK는 상대의 거친수비에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서 팀 전체가 제 기량을 보이지 못했고, 심지어 2차전에선 팀의 기둥 하니발이 경기 중반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심판을 밀치고 퇴장당하기도 했다. 이 퇴장으로 1경기 출장정지를 먹은 하니발이 잠실에서 열린 3차전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팀은 3차전을 내주었고, 이후 복귀한 하니발이 31점을 퍼부으며 4차전을 다시 가져갔지만 최종 5차전에선 의 퇴장까지 나오면서 결국 2승 3패로 패배, 챔프전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챔피언 결정전 진출 실패에도 불구, 최인선 감독은 수비장군 로데릭 하니발과 3년 연속 재계약을 맺는다.[7]
01-02 시즌 초반엔 새로 뽑은 외국인 테렌스 무어(195cm,PF)의 부진과 맞물려 1라운드에만 4패를 당하는등 부진에 시달렸지만, 이후 블루워커 이 합류하면서 팀이 본 궤도에 오르고, 김승현이 가세한 "돌풍의 팀" 대구 동양과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인다. 평균 17.8득점-6.8리바-4.8어시를 기록하며 여전한 활약을 보여주던 하니발은 그러나, 2002년 1월 안양 SBS 전에서 손등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고 이게 전치 10주 진단을 받는 바람에 제이미 부커(192.6cm, SG)와 교체되면서 미국으로 떠난다. 제이미 부커는 이후 기량미달로 찰스 존스(195.7cm, SF)로 교체되는데, 찰스 존스는 기량이 더욱 떨어지는 선수라서 플레이오프부터 아예 벤치에 머물렀고 윤제한과 신인 김종학이 번갈하가며 출전하게 된다. 서울 SK는 서장훈의 괴물같은 활약 속에 01-02 시즌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 대구 동양과 7차전 접전 끝에 패하는데, 당시 모든 SK 팬들은 "하니발만 있었더라면..."을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01-02 시즌을 마치고 FA가 된 서장훈서울 삼성 썬더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졸지에 토종 빅맨을 잃은 서울 SK는 장신가드 하니발과의 재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2.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2003~04)


서장훈을 FA로 영입한 두 번째 시즌, 서울 삼성은 트라이아웃에서 선발한 외국인 선수 2명이 모두 퇴출되는 바람에[8] 김동광 감독은 긴급히 새 외인을 섭외해야만 했고, 결국 전에 원주 삼보에서 뛰었던 장신 센터 데릭 존슨(204.4cm)과 서장훈의 전 동료 하니발을 데려온다. 하니발은 팀의 주전 스몰포워드로서 시즌 54경기 전부를 소화했지만, 서울 SK 시절과는 달리 주희정-강혁의 가드라인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며 다소 삐걱대는 모습을 보였고,[9] 이후 빅맨 외국인이 스피드가 좀더 나은 안드레 페리로 바뀐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규리그 5위로 오른 플레이오프에서도 4위 인천 전자랜드에 1승 2패로 무너진 바람에 김동광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사임하였고, 시즌 내내 기대에 못 미친 모습을 보인 하니발은 결국 다시 KBL에 돌아오지 못했다.

4. 관련 문서


[1] 1993년 NBA 드래프트 2R 전체 28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에 선발되었고,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제이슨 키드, 리처드 제퍼슨과 함께 뉴저지 네츠에서 뛰며 키 식스맨으로 활약했었다.[2] 1993년 NBA 드래프트 2R 전체 45순위로 유타 재즈에 뽑힌 스몰 포워드. 현역시절 훌륭한 수비수였지만, 우리에겐 1998년 NBA 파이널에서 마이클 조던의 "더 샷" 장면에서의 씬 스틸러로 더 유명하다;;[3] 꼴찌에서 2번째;;[4] 99-00 시즌 선발된 193cm 이하 단신 외국인선수 10명 중 하니발과 버나드 블런트(창원 LG), G.J. 헌터(수원 삼성) 정도만 외곽에서 뛸수 있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빅맨롤을 소화해야했다. 특히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의 단신 키이스 그레이(183cm)마저 현주엽의 트레이드 합류 전까지는 에릭 이버츠와 함께 골밑을 지키며 사실상 파워포워드로 뛰고 있었다;;[5] 1라운드 안양 SBS 경기에서 18득점-11리바운드-9어시스트를 올리며 아깝게 트리플더블을 놓쳤다.[6] 특히 수원 원정으로 열린 3차전에서 하니발은 30득점-14리바운드를 올리며 수원 삼성을 맹폭했다.[7] 둘다 플레이오프에서 퇴장당했는데, 는 나이도 많은 탓에(34세) 재계약에 실패한다.[8] 1라운드에서 뽑은 쉘리 클라크는 현장에서 뒷돈을 요구하다 쫓겨났고, 2라운드 선수 및 대체선수 모두 기량 미달이었다.[9] 주희정, 강혁 모두 득점력 보다는 패스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이라, 당시 서울 삼성에는 혼자서 공격을 해결할 수 있는 에이스형 외국인 선수가 필요했는데, 당연하게도 하니발은 득점원과는 거리가 멀었다.(오히려 프로 초창기 강혁과 스타일이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