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1. 개요
로마네스크(Romanesque)는 건축 양식을 말하는 단어다. 대략 유럽의 10 ~ 12세기경에 널리 쓰였던, 중세의 건축양식. 이 단어는 Roman(로마) + Esque(式)가 합해진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로마는 로마 제국을 가리키며 로마의 건축과 유사한 느낌을 지닌 건축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성당으로 널리 쓰이던 건물의 양식이 바실리카인데, 로마 제국 멸망 후 게르만족 등의 이민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바실리카 건축물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 로마네스크이다.
성당에 주로 쓰인 양식임에도 돌로 만든 성채를 연상시킬 정도로 건물이 육중한 돌로 쌓아진 것이 특징이다. 창이 작으며, 건축물의 높이가 낮고 둥근 아치와 천장, 탑과 같은 요소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 양식은 대략 12세기 이후 고딕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고딕은 로마네스크 건축물보다 더 얇은 기둥과 큰 창을 가지고 있으며, 둥근 아치가 아니라 끝이 뾰족한 첨두아치를 주로 썼고, 더 높은 건물의 높이와 더 높고 뾰족한 첨탑을 가지고 있다.
2. 상세
바실리카 양식의 건축물은 북이탈리아 랑고바르드족의 지역과 프랑스 지역에서 다른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 들어서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라틴어를 보존하려는 노력등이 잇달으면서 바실리카 양식은 이후 ‘로마답다’라는 뜻을 가진 로마네스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1] 로마네스크 양식은 종래의 바실리카 양식과 달리 중세 성당의 전형적인 십자가 형태의 구조와 지하 무덤이 등장했고, 십자가 형태의 구조로 동향구조와 서향구조가 나타났다. 특히 서향구조는 성당이 커지면서 경당, 부속 제대, 지성소, 통로, 탑, 종루 등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고, 5세기 이후 미사를 동쪽으로 향하여[2][3] 드려왔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로 1층에는 천정이 낮은 현관, 2층에는 남북 또는 서남북쪽에 트리뷴이 달린 측랑을 두르고 신랑을 향해 개방된 넓은 간을 설치함. 넓은 간은 원칙상 제단을 한개 배치한다, 넓은 간 위에는 탑(채광탑 또는 종탑)을 세우나, 그 앞면 양쪽에 계단탑을 설치하여 세개의 탑을 나란히 세우는 수도 있다.
그외에도 목조로 이루어진 박공(ㅅ형의 간단한 지붕)형 지붕을 로마식의 석조천장이었던 볼트(둥근 아치형 천장)로 바꾸게 되며,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외벽에 덧댄 기둥(버트레스)를 설치하고 외관에 더 많은 종교적 장식물을 설치하게 된다.
또한 채광을 위해 아일을 높이고 교차되는 볼트를 도입하여 쏠리는 힘을 중앙으로 모으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덕분에 로마네스크는 성과 같은 위엄 있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으나 지붕의 무리한 무게로 인하여 좁은 창과 두터운 벽을 가지게 되어 채광과 교회 면적의 확장에 무리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조와 얇은 석재로 이루어진 리브볼트라는 가벼운 천장이 개발되고 이를 통해서 고딕양식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된다.
고딕 성당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벽과 창문, 그리고 천장을 보는 것이다. 고딕은 로마네스크에서 더욱 진보되어 큰 면적을 가진 스테인드 글라스와 더 얇은 벽, 그리고 X자의 리브(뼈대)를 가진 천장을 볼 수 있다. 반면 로마네스크는 효율적인 구조를 가지지 못해서 벽이 두껍고, 창이 작으며, 천장도 둥근 볼트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후에도 로마네스크는 서유럽 교회 건축의 표준 양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다. 네이브의 경우 노르망디에서 3단으로 되었고 리브볼트를 지지하는 늑골 또한 2쌍의 리브를 겹친 4분인 크로스 리브볼트가 등장했고, 나아가 1쌍의 리브가 더 추가되어 6분 리브가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초기 로마네스트의 형태는 바실리카와 비슷한 구조였다. 허나 점차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처럼 아트리움을 배제했고 대리석을 이용한 장식주의가 팽배했고 특히 피렌체의 경우 채색 장식주의의 성당이 세워졌다.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한국에도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성당, 천주교 원주교구 횡성 성당 같은 훌륭한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서양과 동양식이 절충된 작은 건물인 덕수궁의 정관헌도 부분적으로는, 특히 기둥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들어갔다.
다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경우 아일의 아치 등 전체적으로는 로마네스크의 모습이나, 네이브의 천장이 목조로 되어 있는 등 바실리카 양식의 요소나 외벽의 한국적인 건축 양식이 들어가 있어서 좀 독특한 편이다.[4] 전주시의 전동성당의 경우처럼 천장이 볼트로 이루어진 모습이 좀 더 일반적인 로마네스크 형태이다.
3. 참고자료
문학비평용어사전 - 로마네스크
[1] 물론 카롤링거 왕조 당시 프랑크 왕국의 수도에 세워진 아헨 대성당은 비잔틴 건축 양식이었다.[2] Ad Orientem, 라틴어로 '동쪽을 향해'라는 뜻이다.[3] 이는 동방교회에서 유래된 풍습으로, 동쪽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서라고.[4]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의 토양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국 건축 양식을 접목시킨 성공회 교회들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외에도 강화군 강화읍(강화읍교회)과 온수리(온수리교회), 진천군(진천성당), 청주시(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