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페르난데스

 


'''루이스 페르난데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PSG'''}}}
{{{-2 21대, 26대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미셸 플라티니
(1979~1987)

'''루이스 페르난데스
(1987~1988)'''


마누엘 아모로스
(1988~1992)

'''루이스 페르난데스의 수상 이력'''


'''파리 생제르맹 FC'''
'''Paris Saint-Germain Football Club'''
''' 이름 '''
'''루이스 페르난데스'''
'''Luis Fernández'''
''' 본명 '''
루이스 미겔 페르난데스 톨레도(Luis Miguel Fernández Toledo)[1]
''' 출생 '''
1959년 10월 2일 (65세) /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 카디스주 캄포히브랄타 타리파
''' 국적 '''
프랑스
''' 신체 '''
181cm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파리 생제르맹 FC (1978~1986)'''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1986~1989)
AS 칸 (1989~1993)
''' 감독 '''
AS 칸 (1992~1994)
파리 생제르맹 (1994~1996)
아틀레틱 클루브 (1996~2000)
파리 생제르맹 FC (2000~2003)
RCD 에스파뇰 (2003~2004)
알라이얀 SC (2005)
베이타르 예루살렘 FC (2005~2006)
레알 베티스 (2006~2007)
스타드 드 랭스 (2008~2009)
이스라엘 대표팀 (2010~2011)
기니 대표팀 (2015~2016)
''' 스태프 '''
파리 생제르맹 (2017~ / 유스 아카데미 기술 이사)
''' 국가대표 '''
60경기 6골(프랑스 / 1982~1992)
1. 개요
2. 선수 시절
2.1. 클럽
2.2. 국가대표
3. 감독 시절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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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이자 전 감독. 현재는 파리 생제르망의 유스 아카데미 기술 이사 직책을 맡아 축구 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감독, 행정가로 파리 생제르망 FC에 공헌한 PSG 클럽 역사상 최초의 레전드.
프랑스에서는 '루이 페르낭데'라고 불리기도 하여 선수, 감독, 행정가로 파리 생제르망 FC에 공헌한 PSG 클럽 역사상 최초의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이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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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클럽


스페인에서 태어난 루이 페르난데스는 이후 9살때 프랑스로 이민을 간후 19세의 나이에 파리 생제르맹에 입단한다. 루이 페르난데스는 AS 낭시와의 데뷔전에서 PK를 유도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며 좋은 시작을 알렸다. 이후 주전으로 승격한 루이는 1981년 프랑스로 귀화하였고, PSG에서 뛰면서 주장까지 달며 사페트 수시치,도미니크 로슈토, 조엘 바츠와 함께 팀의 첫번째 전성기를 이끌어 갔다.
1986년 파리 생제르맹은 구단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페르난데스는 팀을 떠나 라싱 클뤼브 드 파리로 이적하였지만,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1989년 AS 칸으로 이적하였으며, 이때 동기이자 신인인 지네딘 지단과 함께 뛰기도 하였다. 페르난데스는 칸에서 나머지 선수생활 보냈으며 말년에는 선수겸 감독직을 맡았다.

2.2. 국가대표


스페인에서 스페인인 부모한테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낸 그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길 원했고, 마침내 23살의 나이에 A매치 데뷔를 치루며 프랑스의 주전으로 올라선다. 그는 팀의 레전드 미셸 플라티니를 묵묵히 보조하며 그와 함께 알랭 지레스, 장 티가나와 함께 매직 스퀘어라 불리며 UEFA 유로 1984 우승과,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3위라는 기록을 달성하여 조국의 성공을 이끌었다.
다만 그 이후부터 프랑스 대표팀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UEFA 유로 1988 예선탈락과 월드컵 2연속 예선 탈락을 겪기 시작했으며, 페르난데스는 UEFA 유로 1992에서도 프랑스의 부진으로 일찌감치 탈락하자, 곧바로 은퇴하고 만다.

3.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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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제르맹의 전성기를 이끈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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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제르맹를 이끈 2기 시절, 이때 그레미우로 부터 호나우지뉴를 영입하며, 그에게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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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G의 회장 나세르 알 켈라이피와 함께
'''PSG의 유럽 돌풍을 이끌다.'''
1994년, 파리 생제르맹에 감독으로서 다시 돌아온 그는 구단 역사상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진출과 함께 2연속 UEFA 컵 위너스컵 결승 진출을 이루며 전 유럽에 파리 생제르맹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다만 리그에서의 부진이 발목을 잡혀 결국 2년만에 팀을 떠나고 만다.
이후 4년간 아틀레틱 클루브의 지휘봉을 잡게 되는데, 이때 주제 무리뉴와 일화가 있었다. 1996/97 시즌 홈에서 2:1로 바르샤한테 승리하였는데, 당시 바르셀로나의 통역관이였던 무리뉴가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빌바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파리에서 다시 그를 호출하게 되었고, 루이 페르난데스는 파리 생제르맹에 세번째로 복귀하며 2001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루게 된다. 이 당시에 그는 브라질의 특급 유망주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고 제이제이 오코차, 니콜라 아넬카등으로 파리의 우승 발판을 만들려 했으나, 호나우지뉴가 여자, 클럽 이적 문제로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다 팀을 떠났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페르난데스는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음에도 결국 구단한테서 해임 통보를 받는다. 그후 여러 구단을 전전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기니 축구 국가대표팀을 끝으로 축구계에서 은퇴하나 싶었으나...
2017년, 카타르의 자본으로 다시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파리 생제르맹에 유소년 총괄 이사로 돌아오게 된다. 선수와 감독으로 파리 생제르맹을 위해서 일했던 그가 이번에는 행정가로서 다시 돌아오게 된 셈이다.

4. 여담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라운드 곳곳에 소금을 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소금이 자신의 팀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페르난데스보다 더한 인물도 있었다. 피사의 회장인 로메로 안코네타니는 1980년대에 가리발디 경기장에 무려 25kg의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반면에 페르난데스는 비밀스럽게 소금을 뿌리곤 했다.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페널티 지역과 코너 플래그, 골라인에 소금을 뿌렸다. 경기장에 막 들어설 때나 훈련 때 아무도 보지 않게 작업을 진행했다. 주머니에 소금을 약간 가지고 가서 조금씩 뿌렸다. 미신은 이상한 것이다. 자기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알게 되면 부정 탄다!"고 회상했다.
경기마다 막대 사탕을 입에 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1] 이 사람은 스페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에 프랑스어 표기를 적용시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