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노리에가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등장 매체
5.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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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리즈 시절.
미국에 의해 마약사범으로 체포된 노리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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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지 한참 뒤에 겨우 고국을 밟은 노리에가.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모레노(Manuel Antonio Noriega Moreno, 1934년 2월 11일 ~ 2017년 5월 29일)
1983년에서 1989년까지 집권한 파나마독재자이자 범죄자.

2. 생애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으며, 1969년 오마르 토리호스의 군사 쿠데타 후 군 정보사령관에 취임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훗날 미국에 축출되는 노리에가는 냉전 때인 1966년부터 CIA를 위해 일했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CIA 국장이던 시절부터 그 앞잡이로서 쿠바피델 카스트로 정권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 등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좌파정권 교란에도 협력했다. 또한 미국의 마약 단속에도 협력하여 이러한 업적으로 1978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의 마약단속국(DEA)으로부터 매년 감사장을 받을 정도였다.
1981년 파나마의 독재자[1]오마르 토리호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실권을 장악하고 1983년 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1984년 16년 만에 직선제에 의하여 당선된 대통령 바를레타와 1985년 그를 계승한 대통령 델바에 위에 군림하면서 파나마를 좌지우지 했다.
이 권력을 바탕으로 콜롬비아 마약 밀매 조직이 파나마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것을 용인하기도 했으며 대외적으로는 민족적 반제국주의적 외교 정책을, 안으로는 군부 독재 체재를 추구, 집권 이래 줄곧 미국 정부와 끈질긴 신경전을 벌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에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파나마 최대의 정보기관인 G2 사령관 출신인 점을 이용, 1만5천명 규모의 파나마 국방군을 야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동원해 국민들의 불만을 샀으나 독재 체재는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1988년 미국 법무부가 그를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하자, 대통령 델바에는 노리에가를 해임했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의회는 오히려 대통령 델바에를 축출하고 노리에가를 국가 수반으로 추대함으로써 그의 찬반세력 간에 대결이 심화되었다. 결국 1989년 12월 미국은 전면적인 파나마 침공을 단행, 그를 수반으로 하는 파나마 군부 정권을 전복시키고 기예르모 엔데라 정부를 승인하였다.
미국이 노리에가의 제거에 나섰던 것은 CIA의 하수인이었던 그의 마약 거래 자금이 미국의 니카라과 우익 반군 지원사업(소위 이란-콘트라 사건)과 연관되어, 이를 빌미로 노리에가가 미국의 약점을 잡아서 조지 H. W. 부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주장도 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 갔다. 게다가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도 사전에 알았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1989년 미국파나마군의 미군 사살을 구실로 파나마를 침공하여 파나마군을 격파하고 파나마를 점령하면서 체포, 미국으로 압송되었다. 이 때 노리에가는 미군에게 잡히기 전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었다. 그러자 미군은 그를 항복시키기 위해서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장갑차를 가져다 놓고 공회전을 시키고, 대사관 옆 공터를 밀어서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만들고, 24시간 내내 헤비메탈, 록 음악을 대형 스피커로 틀어대는 것이었다. 주로 틀어 준 노래는 매우 적절하게도 더 클래시의 'I Fought The Law'와 건즈 앤 로지스 'Welcome to the Jungle'이었다고. 이 소음에 견디지 못했는지 노리에가는 바티칸의 중재로 미군에 투항한다.
그의 집무실에서는 사용한 흔적이 있는 마약과 포르노 잡지가 널려 있었고 미군은 그것을 세계 언론에 공개하였다. 다만 이것은 노리에가의 이미지를 떨어트리기 위해 미군 측이 의도적으로 꾸민 일이었다는 주장도 있다.[2]
문제는 미군이 파나마 시티와 콜론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폭탄을 퍼붓고 대포, 로켓포, 탱크, 기관총 등이 동원되어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파나마군은 한 달간 저항했으나 압도적인 미군을 이길 수 없었고 이듬해인 1월 31일에 항복했다.
마이애미 연방법원에서 미국 내 코카인 밀거래와 공갈, 돈세탁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19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전쟁 포로로 특별대우를 받았으며, 텔레비전과 편의시설을 갖춘 주택에서 형기를 마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7년 9월 특별한 징역이 끝난 뒤 2010년 4월 프랑스로 송환돼 프랑스 은행을 통해 마약 자금을 세탁한 혐의 등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파리에서 복역했다.(관련 기사)
2011년 12월 11일 조건부 석방되어 고국으로 송환되었지만, 파나마에서 따로 정적 살해죄 세 건으로 최소 20년, 최대 6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건강 악화로 수감 생활은 1년 남짓만 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액티비전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 자신의 캐릭터가 등장하자, 2014년에 이를 두고 본인의 허락 없이 이름을 사용하였다며 액티비전을 고소했다. 그리고 패소했다(...).
2017년 5월 29일, 가택 연금 상태에서 뇌출혈 등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3. 기타


파나마 운하는 역사상 딱 2번 멈췄는데, 그 중 한 번이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으러 미군이 침공했을 때다. 그 운행 정지마저도 6시간을 넘지 않았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판결 직후 "미국은 파나마 국민을 야만적 전제정치로부터 해방시켰다"고 발표했는데 12년 뒤 그의 아들은 이라크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잡고 똑같은 논평을 했다. 그리고 파나마 침공을 지휘했던 국방장관은 아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이 되었다.

4. 등장 매체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서는 알렉스 메이슨이 주인공인 1986년 스토리라인에서 등장한다. 블랙 옵스 시리즈에 등장한 다른 실존 인물들이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과 다르게 과거 파트의 줄거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CIA와 메넨데즈 모두에게 협력자와 적을 오가는 아주 특이한 입장으로 결과적으로 본인은 상술한 파나마 침공으로 잡히는 신세가 되어(...) 라울 메넨데즈에게 이용만 당한 호구가 되어버렸다. 나와 함께 고통받아라 캠패인 이후로 등장은 없고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역사대로 잡혀버린 듯하다. 본작에서는 알렉스 메이슨이 노리에가의 방 침대에 도색 잡지와 마약 등을 뿌리는 묘사가 있다. 상술한 것처럼 마누엘 노리에가 본인이 이 부분에 대해 고소했다가 패소했다.
심슨 가족에서도 노리에가 체포를 패러디했는데, 저작권법 위반 때문에 스웨덴 영사관으로 도피한 심슨 가족을 잡기 위해 영사관 앞에 주다스 프리스트를 불러서 공연을 해버렸다. 이때 부른 노래가 '''Respecting the Law(법 지켜라)'''... 원곡은 Breaking The Law. 그러나 이런 작전에도 약속된 메탈의 땅 북유럽에서 온 외교관인지라 오히려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5. 관련 문서



[1]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은 거부했다.[2]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서도 이 설을 차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