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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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제46대 부통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질적 권력자로 불렸으며 풀네임은 리처드 브루스 체니(Richard Bruce Cheney)인데 통상적으로 애칭인 딕 체니로 많이 불린다.[1] 참고로 영어권에서는 Cheney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 '체이니'에 가까운 발음으로 부르며 본인 스스로는 '치니'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렀으나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용례집에는 리처드 체니로 표기가 규정되어 있다.
2. 일생
2.1. 정치인이 되기 전
대학생 시절 예일대학교에서 학업부진 및 품행불량으로 퇴학당하고 술고래에다가 공사장 노가다나 뛰는 신세였다. 그러나 딕 체니의 부인인 린 체니(1962년에 이미 사실혼 관계였고 1965년 정식으로 결혼했다)가 '''강력하게 교정'''하여 딕 체니를 갱생시켰다. 참고로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인한 징병제 시행 중이었음에도 생계사유로 징집을 보류받았다. 아내 린은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딕 체니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결정적으로 가정의 생계를 딕 체니 혼자서 책임지고 있었다.
린 체니가 적극적으로 행동한 덕분에 딕 체니는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예일대에서 쫓겨난 처지였기 때문에 지역의 대학 와이오밍 대학교에 새로 입학해 다니던 중, 1964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뽑는 보좌관 시험에 합격했다. 딕 체니가 누구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느냐 하면 바로 당시 초선 하원의원이던 도널드 럼즈펠드.
2.2. 정치인
그렇게 딕 체니의 정치 경력이 시작되었고, 럼즈펠드가 딕 체니를 열심히 키웠다. 그리고 체니는 먼 훗날인 2004년,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침공 뒷수습 실패로 인한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를 경질할 때 럼즈펠드를 전혀 지켜주지 않음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럼즈펠드는 영화 바이스에도 묘사되듯 국방장관 경질 이후 "내가 호랑이를 키웠다"며 딕 체니를 비난했다. 럼즈펠드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자업자득이다.
1978년 중간선거에서 딕 체니는 처음으로 와이오밍 주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딕 체니 본인은 정말 선거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여서 와이오밍 주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뻔 하는 상황까지 불러올 뻔 했다. 와이오밍 주에 출마했던 이유는 부인인 린 체니가 와이오밍 출신이기 때문이었기 때문. 사실 선거 운동도 무능한 딕 대신 유능한 린이 다 했다.
딕 체니는 1978년 중간선거에서 무능한 모습만 보이다가 심근경색으로 입원 하였고, 마지막 선거 한 달은 린 체니가 선거 운동을 홀로 해서 겨우겨우 당선됐다. 이후로 딕 체니는 1988년까지 무려 6선에 성공하지만, 결국 본인은 선거 운동을 전혀 안 하고, 린 체니가 선거 운동을 진행 했다.
부인인 린 체니는 1982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보건사회복지부 차관을 했고, 1988년 조지 H. W. 부시 행정부에서 문화재청장까지 오른다. 남편과는 달리 린 체니는 매우 유능했기 때문에 딕 체니의 정치 자금도 린이 대신 다 모아줬다. 1990년에는 린 체니가 백악관 환경위원장으로 임용되어서 '''부부 동반으로 장관급 각료'''라는, 미국 정치권에서 유례없는 출세 테크트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당선되자 딕과 린은 동반 사표를 제출하고, 둘 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딕은 석유시추기업 및 군납기업 '핼리버튼'에 취업해 CEO로서 일했고, 린은 정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다.
2.3. 미국 부통령
1999년 조지 W. 부시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자 부시가 체니한테 러닝메이트를 제의했다. 딕은 처음부터 부통령 후보 자리를 거절했다. 아내 린 체니도 "부통령은 그냥 얼굴마담 뒷방 늙은이나 하는 것"이라며 결사 반대했고, 결정적으로 딕 체니는 이미 '''1998년부터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자주 오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무려 '''14번'''이나 접촉한 끝에 "외교와 국방 분야에 관한 권한을 부통령한테 위임한다고 약속한다"는 조건 하에 러닝메이트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2000년 대선에서 논란 끝에 조지 W. 부시가 당선됨에 따라 체니도 부통령이 됐다.
체니는 도널드 럼즈펠드처럼 아버지 부시 시절에도 일했으며 걸프 전쟁 당시 국방장관이었다. 그 경력 덕분인지 43대 아들 부시 대에서는 부통령까지 지내게 됐다. 이 사람은 1941년 1월 30일생, 아들 부시는 1946년생으로 나이 차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2]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선 '''네오콘 최종보스'''로 군림했다. 아들 부시나 럼즈펠드는 이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부시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며, 그가 내놓은 이야기들은 전부 부시가 정책화시켰기 때문에 사실상 체니의 말이 곧 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얼굴마담이고 진짜 대통령이 딕 체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례가 없는 권력을 가진 부통령이었다. 이런 풍자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가 이렇게 강한 발언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역시 군 관련 경력[3] 이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부시 일가와 친했고 아들 부시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튼 이렇게 권력을 쥐자 미국 행정부에 자기와 코드가 맞는 네오콘들을 주요 공직에 앉혔다. 그 때문에 아버지 부시와 그들의 보좌진들은 체니를 싫어하게 되었다고.[4]
그리고 아들 부시 시절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압박적인 정책을 취하게 되고 다른 아랍권에 대한 강경 정책이 펼쳐지게 된 것도 이 양반의 공로. 다만 럼즈펠드와 부시의 대활약으로 인해 그 위험성이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이 양반도 이라크전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벌려놓고 '''정작 전쟁 진행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몰랐다.''' 게다가 군납기업인 핼리버튼 사장 출신이라는 점[5]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전쟁들이 다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게 만들었다. 이 당시 체니와 커넥션이 있다는 기업들은 이득을 좀 많이 봤다. 본인은 이 일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드립을 쳐댔고 거짓임이 탄로나고도 본인은 꾸준히 부인하고 있다. 출처 덕분에 이라크전을 벌이고 있던 부시 행정부의 이미지는 더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이라크 침공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던 도중 일화로는 부시 대통령과 고위 참모진들 및 군 수뇌부들이 모여서 작전 계획 및 상황 등을 보고 받던 상황이었는데 럼즈펠드는 '''못 알아듣고는 계속 보고자에게 큰 소리로 말하라고 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페퍼민트맛 사탕을 짭짭대며, 웃긴 건 옆에 있던 참모진들에게도 그거 먹을 거냐고 물어본 뒤 가져갔으며''' 딕 체니는 '''졸았다.''' 참으로 잘 돌아갔던 부시 행정부의 일상의 단면이다(...)
리크 게이트에 그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이지 다른 네오콘들이 권력을 잃거나 사임할 때도 이 양반은 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행정부 내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의 전황 막장화와 재임 초부터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경하게 막 나가는 행보 등으로 그나마 아직까지는 최소한의 정신줄을 잡고 있던 부시(...)[6] 도 도저히 체니의 삽질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게 되자 체니의 네오콘 친구들을 고위직에서 대거 몰아내고 상식적이었던 인물들을 앉히면서 체니의 장밋빛 시절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덕분에 부시 행정부 2기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부시 임기 말기 민주당 하원의원이 탄핵안까지 내놓는 등 엄청나게 비난받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욕 먹은 부통령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고 찬성 162 : 반대 251로 부결되었는데, 공화당은 1시간이나 반대 토론을 제안하면서(물론 민주당을 까려는 의도가 있었다지만) 체니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키는 촌극을 벌였다.
이 덕분에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공화당 기피대상 1호였다. 흑인 최초 합참의장이자 부시 1기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이 체니와 네오콘들에게 하도 시달려서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 정도였다.
남오세티아 전쟁 당시에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는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일으킨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아주 전쟁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던 시절이니, '''미국 전체가 그에게 욕했다.'''관련기사 당연히 다른 사람은 물론 조지 W. 부시까지도 말렸다. 핵심 동맹국도 아니고, 게다가 미국에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2.4. 부통령 퇴임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조 바이든에게 부통령 직위를 물려주고 백악관을 나갈 때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온갖 힘들고 아픈 척은 다 하길래 이제 딕 체니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었던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퇴임하기 무섭게 '''멀쩡한 얼굴로''' 온갖 방송에 나와서 오바마 행정부가 너무 적들에게 유약하다며 현 정권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퇴임 후 뉴스 등지에서 종종 체니가 심장에 무리가 오면서 입원을 했다는 뉴스들이 몇주나 몇 달에 한 번 나오는 걸 보면 몸 자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인 듯 하다.
그런데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밋 롬니가 체니를 두고 '지혜롭고 양식있는 사람'이라고 찬양하며, 그와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러닝메이트'로 삼을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었다.# 능력과 별개로 정치 판세 파악은 대단한 인물이긴한듯. 애초에 정치 감각과 파워게임을 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다. 다만 자리에 앉고나서 무능해지는게 문제지...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CIA의 용의자 고문 사건에 본인은 고문이 결코 잘못된 짓이 아니며 다시 할 생각이 있다는 의견을 내 구설에 올랐다. 2014년 12월 CNN 인터뷰 중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문당하다 얼어 죽은 무고한 시민에 관해 질문하자 그건 고문이 아니고 무고한 사람 몇 명 죽는 게 테러리스트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 낫다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기도 했다.
3. 선거 이력
4. 기타
- 사냥을 나갔다가 억만장자 변호사 친구를 오발로 죽일 뻔했다. 산탄의 구경이 2.5mm가 안 돼서 천만다행으로 중상을 면했지만, 의사들이 산탄을 몇 개 못 꺼내서 산탄이 심혈관을 막는 등 후유증은 상당한 편이라고 한다. 더 웃긴 코미디는 총 맞은 변호사 친구가 총 쏜 체니에게 이 일로 스캔들이 생겨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정작 체니한테 공개사과까지 했다는 것.[7]
- 슬하에 딸 둘(리즈, 메리)이 있다. 딸들은 위스콘신 주에서 출생했다.
남편은 1964년생 변호사 필립 페리이며 국토안보부 법률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슬하에 자녀 5명이 있다.
- 둘째 딸인 메리 체니(Mary Cheney)는 1969년생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돕기도 했다. 본인은 보수적인 정치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레즈비언이며, 본인 및 주변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동성애자들의 인권 신장에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두명 입양했으며 2012년 동성결혼을 했다.
- 리즈와 메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리가 레즈비언이고 동성애자 인권 수호 활동을 벌이는 것과 달리 리즈는 동성결혼을 굉장히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8]
-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의외로 동성결혼은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과 대통령이 수정헌법조항으로 동성결혼 금지를 추진할 때 이를 반대하면서 '누구에게든 자유의 평등은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방제 내에서 결혼은 각 주 소관이니 각 주에서 알아서 하는 게 맞다'고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동성결혼에 대한 막강한 반감을 가진 공화당과 보수층에 대한 배려 때문에 좀 돌려 말한 것이지만 이는 자신은 동성결혼을 찬성한다는 것. 퇴임 후에는 더 확실히 동성결혼을 찬성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둘째 딸인 메리 체니가 레즈비언이고 파트너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딸이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많이 응원해주고 아꼈다고 한다.[9]
이에 오히려 진보적인 성향의 CNN이 딴지를 걸었다. 방송에 출연한 체니 부통령에게 방송 진행자는 "부, 모의 결합이 아닌 아이의 탄생이 우려스럽다"는 동성애 반대 단체의 말에 대한 논평을 요구한 것. 하지만 체니 부통령은 "질문이 선을 넘어섰다"며 답변을 회피했고, 그다지 정치적으로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역시 보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첫째 딸 리즈도 메리에 대해 "태어날 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일 뿐 정치적 논쟁 거리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퇴임 8년 후 호모포비아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초강경 기독교 원리주의자 마이크 펜스가 부통령에 오르며 최소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체니에 대한 평가는 올라가고 있다.[10]
-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두 번이나 낙제할 정도로 예일대에 적응하기 어려워하여, 예일대를 그만두고 와이오밍 대학교로 편입학하여 그곳에서 학사, 석사까지 마쳤다. 훗날 조지 워커 부시는 예일대 졸업식 축사에서 예일대에 똑같이 입학했으나 학위를 딴 졸업생인 자신은 대통령, 그러지 못한 딕 체니는 부통령이라며 드립을 치기도 했다.
- 아버지 부시한테도 럼즈펠드와 같이 까였다(...) 뭐, 원래 아버지 부시가 두 사람을 싫어하긴 했지만.
5. 미디어 매체에서의 딕 체니
- 언급하였다시피 심장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라 인공심장박동기를 사용중이다. 그래서 래퍼 에미넴은 2002년 발매된 자신의 정규 4집 'The Eminem Show'의 수록곡 'Without Me'에서 '당신한테 직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체니 여사. 하지만 당신 바깥양반 심장 문제가 심각하다고요!'[11] 라고 까버렸다.[12]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대세일 때 나온 앨범인데 이곳저곳 깔 거 다 까주는 에미넴이 저 3인방을 그냥 놔둘리는 만무했다. 저 앨범은 첫 곡부터가 부시 행정부를 까는 노래니까.
- 인기 미드 홈랜드에는 심장박동기 쓰는 CIA 국장 출신 차기 대권주자 부통령이 나오는데, 극중에서는 '킬러가 심장박동기를 해킹으로 정지시키며 서서히 죽인다.'이를 두고 방영 당시 일각에서는 '딕 체니를 저렇게 응징해야 했다'는 개드립이 돌기도 했다.
- 심슨 가족 시즌 22 6화에선 번즈가 실종된 후 스미더스가 모시는 새 주인으로 나온다. 집 대문에 레이저를 달아놓고 접근하는 동물조차도 없애버리며 스미더스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래리 킹은 "딕 체니가 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지지도를 이끈 일이 바로 변호사를 날려버릴 뻔한 일이죠."라고 깠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미국에서는 변호사를 두고 욕 많이 먹는 직업으로 꼽기에 욕 많이 먹는 변호사를 쏴 죽일 뻔해서 체니가 사상 처음으로 지지를 많이 받을 뻔했다, 이 얘기다. 더 쉽게 말해 '체니 네놈이 그동안 얼마나 욕을 처먹었길래 오죽하면 이게 지지받을 일이겠냐?'라고 깐 것이다.
-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시즌 4 8화에서 총기규제법안 거부 때문에 딕 체니를 원망하라는 대사("Sorry to get all Dick Cheney on you")가 나온다.
- 마이클 무어가 쓴 책인 《멍청한 백인들》에서는 실세 대통령 체니라고 풍자당했다.
-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에서는 위에서 말한 오발사건이 언급된다고 한다.
[1] Richard 라는 이름의 닉네임이 Dick 이다. William 이라는 이름의 닉네임이 Bill 인 것과 같다.[2] 참고로 아버지 부시는 1924년생.[3] 하지만 아버지 부시 정권에서 국방장관이 되기 전까지는 군 관련 경력은 아예 없다. 월남전 당시 미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했었고 당시 체니는 징병 연령이었다. 그는 대학 재학과 결혼을 이유로 징병을 연기하다가 징병제가 폐지되어서 군 입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병역 기피 의혹을 받았고 이런 상태에서 강경 정책을 펼친 것이 있어서 치킨 호크 중 하나라는 소리도 나왔다.[4] 솔직히 체니와 네오콘들은 아버지 부시나 그를 보좌한 인물들에 비하면 '''상당히 무능하다.''' 당장 아버지 부시도 CIA 국장 시절 CIA의 위상을 지금처럼 무섭게 만들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5] 민간군사기업중 군납기업으로, 문제의 만행은 항목 참조.[6] 믿기 힘들겠지만, 부시는 상식적인 인물이었으며 행정부 내에서 자신이 최고 권력자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막나가는 강경책은 '''네오콘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밀어붙인 것을 부시가 그나마 순화시켜서 정책을 편 것이다.'''[A] A B 대통령 후보는 조지 W. 부시[7] 여담으로 아메리칸 대드라는 미 애니에서 주연 외계인 중 하나가 다른 외계인을 저격하려 할 때 조준하면서 "자, 나는 딕 체니고 저 놈은 내 변호사 친구야"라고 말한다.[8] 영화 바이스에서는 리즈가 동성혼에 부정적인 보수 표밭인 자기 지역구(와이오밍 주)의 표심을 감안하여 공화당 하원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입장을 전향한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 일로 리즈와 메리는 서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9] 영화 바이스에선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묘사된다. 경선과정에서 무자비한 네거티브 공세로 메리가 입방아에 올라 큰 상처를 입을 것이기에. 아들 부시의 부통령 제의를 받아들일 때에도 자신은 동성애 반대의견만은 절대 동참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10] 사실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를 매우 반대하지만 그 못지 않게 가정적인 이미지도 중시한다. 딸의 (꼴보수들이 보기엔) 잘못을 알고도 보호해주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되어 타격을 크게 입지 않은 것. 그러나 언니 리즈 체니는 이런 이미지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공개적으로 동성애 반대 선언을 하며 선을 그었고, 사실상 의절하게 된다. 메리가 언니를 공개적으로 비난한지 2년 뒤인 2015년에 기자가 "언니와 화해했냐"고 했을때 "그런 질문엔 답할 필요없다"고 잘라 얘기했으며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없다.[11] I know that you got a job, Ms. Cheney But your husband's heart problem's complicating![12] 뮤비 영상을 보면 에미넴이 저 말을 하면서 주먹으로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듯 가슴을 쿵쿵 친다. 거기다 저 장면 직후 가슴에 전극들이 연결된 채로 체니가 부동자세로 서 있고 에미넴은 '그러니 방송관리위(FCC)가 날 가만히 냅두지 않고 내가 내가 되지 못하게 하는지 한 번 볼까'라며 전극에 전기를 흘려버린다. 당연히 체니는 전기지짐이가 되버리고 쓰러져 뮤비 끝까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