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알무니아

 

'''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
'''이름'''
'''마누엘 알무니아
Manuel Almunia'''
'''본명'''
마누엘 알무니아 리베로
Manuel Almunia Rivero
'''출생'''
1977년 5월 19일 (47세)
스페인 바스크 지방 팜플로나
'''국적'''
스페인 [image]
'''신체'''
190cm, 80kg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 소속 '''
''' 선수 '''
CA 오사수나 (1997~2000)
FC 카르헤티나 (1999~2000 / 임대)
CE 사바델 FC (2000~2001)
RC 셀타 데 비고 (2001~2004)
SD 에이바르 (2001~2002 / 임대)
레크레아티보 우엘바 (2002~2003 / 임대)
알바세테 발롬피에 (2003~2004 / 임대)
'''아스날 FC (2004~2012)'''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 / 임대)
왓포드 FC (2012~2014)
1. 소개
2. 클럽
2.1. 아스날 FC 이전
2.3. 아스날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소개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바스크계이다.
아스날 골키퍼의 암흑기 주역 중 하나였다.[1]

2. 클럽



2.1. 아스날 FC 이전


CA 오사수나와 사바델에서 뛰다가 RC 셀타 데 비고로 이적했다. 그러나 셀타 비고에서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에이바르와 레크레아티보, 알바세테 발롬피에 등으로 임대를 다녔다.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게 된 시기는 알바세테 발롬피에 시절로 2003-04 시즌 25경기를 출전해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알바세테의 극적 잔류를 이끌었다.

2.2. 아스날 FC


옌스 레만의 백업 선수로 영입된 그는 2007-08 시즌 전까지 칼링컵과 FA컵에 주로 출전하였다. 2004-05 시즌 레만이 잠시 부진했을때 프리미어리그에서 10경기 선발 출장하였으나 안정감 부족으로 다시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2005-06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옌스 레만이 전반 20분 만에 퇴장당하자 로베르 피레스와 교체되어 출장하였고, 경기 종료를 앞두고 2골을 실점하기 전까지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6-07 시즌에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4경기에 출장하였고, 그 중 어린 선수들 위주로 나왔던 칼링컵에서 결승전까지 오르는데 좋은 역할을 펼쳤다. 2007-08 시즌 초반 주전 골키퍼였던 레만이 EPL 개막전 풀럼전과 2번째 경기 블랙번전에서 실책을 저지르고 부상당하자 레만을 대신하여 출장하기 시작했고, 알무니아가 예상보다 훨씬 잘 해주자 급기야 레만이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도 주전 자리를 지켰다. 이때 레만은 주전 자리를 내준 것에 불만을 품고 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알무니아를 폄하하는 안티-알무니아 캠페인을 이어가는 기행을 선보이며 알무니아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심지어 말도 안 섞을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무니아는 토트넘과의 북런던 더비에서 로비 킨의 페널티킥을 막아 내었고 2:1로 승리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06-07 시즌까지는 리그 출장이 단 11경기에 불과했으나 07-08 시즌에서는 레만이 시즌 초반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며 부진한 퍼포먼스를 보이자 레만 대신 선발출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상술된 바와 같이 토트넘전에서 페널티킥을 선방해 MOM에 선정되는 등 준수한 활약상을 보여 단일 시즌에서만 총 29경기에 나서며 주전 골키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2007-08 시즌 후 레만이 VfB 슈투트가르트로 떠나며 1번 등번호를 달게 되었다.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였으나 이따금씩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는 아스날을 리그 우승에서 멀어지게 했고,[2] 차츰차츰 개그맨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2010-11 시즌에는 우카시 파비안스키에게 주전을 밀렸다.

2.3. 아스날 이후


결국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으로 임대를 떠났다가 챔피언쉽 리그의 왓포드 FC로 이적한다. 왓포드 이적 이후 81경기에 출전하는 등 무난히 주전으로 활약하다가 칼리아리 칼초 이적 시도 도중 심장질환이 발견되어 결국 은퇴하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우월한 반사신경을 주무기로 아크로바틱한 세이브를 곧잘 보여주는 타입의 골키퍼. 반사신경 하나는 리그 정상급이라 못 막을 듯 한 공을 슈퍼세이브로 걷어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스페셜 영상만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 핸들링도 준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슈퍼세이브형 선수들의 최대 단점인 '''부족한 안정감'''이 알무니아의 발목을 잡았다. 그 원인은 너무나도 떨어지는 위치선정 능력에 있는데, 까놓고 말해서 위치선정 능력은 아스날에 있어도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때문에 위치선정 미스로 크로스 처리를 잘못 한다던가, 중거리 슛을 어이없게 먹힌다던가, 유난히 니어포스트로 실점을 잘 내준다던가 하는 단점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뛰어난 안정감에 비해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많이 부족한 정성룡의 반대급부이며, 현재 아스날에서 뛰는 베른트 레노의 하위호환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위치선정 약점 때문에 선술했듯 유난히 니어포스트 실점이나 중거리 슛 허용이 잦았던 선수로, 비교적 초년생이었던 2006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퇴장 당한 레만의 교체 선수로 나와서도 니어포스트에서 공을 몰고 오는 벨레티가 때린 슛팅이 니어포스트를 향했으나,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은 공을 막지 못하고 실점했고 팀은 패했다. 이러한 이유로 원더골 제조기로도 유명(...)해서 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장거리 무회전 프리킥 실점이 대표적[3]. 알무니아의 실책이라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09-10시즌 북런던 더비에서 터진 대니 로즈의 환상적인 독수리 슛 데뷔골때도 알무니아가 피해자였다.

4. 여담


예능인으로 유명하지만 한창 때는 꽤나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덕분에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알무니아를 귀화시키려고 하기도 했었다. 알무니아의 모국인 스페인에는 워낙 쟁쟁한 키퍼들이 즐비한 탓에 알무니아가 스페인 청소년 국가대표조차도 된적이 없었는데,[4] 그에 비해 잉글랜드는 데이비드 시먼 은퇴 이후 괜찮은 골키퍼가 없어서 골머리를 썩이던 상황이었다. 때마침 오랜 잉글랜드 생활로 이중국적 취득 조건도 갖췄었다. 하지만 그 이후 예능감을 뽐내면서 귀화는 없던 일이 되었고, 폴 로빈슨, 데이비드 제임스, 로버트 그린 누구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잉글랜드의 골문은 조 하트가 와서야 그나마 안정화되었다. 허나 하트도 유난히 큰 대회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본인의 폼도 점차 하락하면서 이후 조던 픽포드에게 주전 골리 자리를 넘긴 상태.

역대급 극장골의 숨겨진 주역이기도 하다. 12-13 시즌 레스터 시티 FC와의 잉글리시 챔피언쉽 플레이오프 경기였는데, 1차전 레스터 원정에서 0-1로 패한 이후 2차전 홈에서 2-1로 앞서고는 있었으나 이대로라면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하여 레스터가 승리하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추가시간이 끝나기 직전, 레스터에게 PK가 주어졌다. 하지만 알무니아가 앙토니 크노카르트의 '''PK를 막아내고''', 거기다 '''튕겨나온 세컨볼로 달려든 크노카르트의 슈팅까지 재차 막아내면서''' 실점을 막아냈다. 그리고 흐른 볼을 왓포드가 잡아 빠른 역습을 전개했고 여기서 트로이 디니의 극장골이 나오며 엄청난 드라마를 써냈다. 골을 넣은 트로이 디니가 좀 더 많이 알려져있지만, 알무니아도 이 극장골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옌스 레만과는 사이가 정말로 좋지 않았다. 비토 마노네의 말에 의하면 알무니아와 레만은 항상 죽일듯이 싸워댔으며 훈련 중에도 일체 협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레만의 자서전에 나오는 일화도 있는데 니클라스 벤트너가 자신에게 파울을 범해 골이 취소되자 알무니아는 파울이 아니고 골이라고 소리를 질러댔으며 훈련이 끝나고 알무니아에게 항의하자 대놓고 개쌍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1] 마누엘 알무니아, 우카시 파비안스키, 비토 마노네,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이 암흑기는 다비드 오스피나가 아스날로 오면서 깨졌다.[2] 맨유와의 홈경기 어설픈 위치선정으로 인한 선제실점, 버밍엄 시티 원정에서의 어이없는 볼처리로 인한 동점골 허용, 북런던 더비 대니 로즈의 골장면에서 위치선정 등[3] 다만 호날두의 킥력이 워낙 강력했고 코스도 니어포스트긴 해도 구석으로 잘 꽂힌지라 알무니아가 아닌 누가 왔더라도 막기 쉬운 공은 아니었다.[4] 알무니아가 젊은 시절에는 안도니 수비사레타,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이케르 카시야스가 있었고, 아스날의 No.1을 일시적으로 차지했을 때에는 역시 카시야스, 페페 레이나, 빅토르 발데스, 디에고 로페스 등이 있었다. No. 3은 커녕 대표팀 승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