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피레스
[clearfix]
1. 소개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주 포지션이 윙어였던,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프랑스 시절
[image]
피레스는 1992/1993 시즌에 FC 메스에서 데뷔한 뒤 1995/1996 시즌부터 주전을 차지하여 팀의 공격을 이끌며 팀의 쿠프 드 라 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1997/1998 시즌에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명문클럽들에 관심을 받았다.[3][4]
그리고 1998년 피레스는 마르세유로 이적한다. 마르세유에서 활약은 그럭저럭이었으나 뛰어난 기술에 비해 부족한 정신력과 피지컬이 약점으로 꼽혔고 그로 인해 높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2.2. 아스날 FC 시절
[image]
UEFA 유로 2000 결승전에서 다비드 트레제게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눈여겨 본 아르센 벵거감독이 바르셀로나로 떠난 마크 오베르마스의 대체자로 영입하며 피레스는 고국 프랑스를 떠나 아스날로 합류한다.[5]
입단 초반 피레스는 매우 피지컬한 경기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르센 벵거감독의 지도에 의해 상체단련에 힘써 피지컬을 키우고 팀에 녹아들었고 프레디 융베리와 양날개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 시작하였으며 FA컵 4강에서 라이벌 토트넘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팀을 결승전으로 이끌고 결승전에서 맞붙은 리버풀을 상대로 골을 넣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6]
하지만 결론적으로 피레스가 입단한 첫시즌은 무관에 그친 실망스러운 시즌이였고 피레스는 리그가 끝나고 조용히 칼을 갈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1/2002 그의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시즌 '''이 시작되었고 피레스는 아스날의 핵심으로 활약한다. 피레스는 매경기마다 뛰어난 활약으로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 시즌 리그우승과 FA컵 우승 더블을 달성하고 어시스트왕을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팀 동료이자 득점왕을 차지한 티에리 앙리를 제치고 FWA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7] 이 뛰어난 활약은 다가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피레스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언론들 역시 대부분 피레스가 월드컵을 빛낼 스타중 하나가 될거라고 꼽고 있었다.
그러나 뉴캐슬과의 리그경기에서 무려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여 8개월간 필드를 이탈하게 되었고 그의 월드컵은 무산되고 만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다르게 아스날은 앙리와 윌토르가 공백을 잘 메워주었고 큰 전력누수 없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복귀 후 부상으로 인한 우려가 있었으나 피레스는 기량하락 따위는 없다는 듯 맹활약을 펼쳤고 FA컵 결승전에서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에게 우승컵을 안겨준다. [8] 그리고 2003/2004 시즌 피레스는 팀의 핵심으로써 맹활약을 하였고 팀의 전설로 남은 무패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당시 티에리 앙리 & 피레스는 모든 대회에서 57골을 만들어내는 괴물과 같은 콤비네이션을 보여주었다. 당시 무패우승을 한 이후에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피레스를 향한 선수들의 경배가 얼마나 그가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2004/2005 시즌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첼시가 주제 무리뉴감독을 데려오면서 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 보여주었고 결국 리그우승을 첼시에게 내주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팀에서 여전히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팀의 FA컵 우승을 다시 한 번 이끈다. 그리고 2005/2006 시즌 팀의 주장인 비에라가 이탈하고 서서히 주전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피레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티유 플라미니 등 어린 선수들과 솔 캠벨, 데니스 베르캄프의 베테랑들과 함께 피레스는 강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와 만난다. 0:0으로 팽팽한 상황에서 옌스 레만이 무리한 반칙으로 퇴장당하면서 그는 알무니아와 교체되고 만다. 이후 오히려 솔 캠벨이 선제골을 넣으며 아스날이 앞서나갔지만 결국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역전우승으로 끝났고 피레스는 자신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중요 경기에서 교체하기로 결정했던 점에 대해 벵거에게 실망하고 새로운 도전을 바라보게 된다. [9]
2.3. 비야레알 CF 시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된 것에 대한 실망감과 아스날이 그에게 재계약을 제시할 때 조건이 1년 정도 인 것에 불만을 품었던 [10] 피레스는 4강전에서 만났던 비야레알로 이적한다. 그러나 첫 시즌 피레스는 부상으로 인해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언론에서도 '피레스가 내리막을 걷는다'는 등 피레스를 흔들기 시작하였으나 페예그리니 감독의 신임 아래 리켈메의 역할을 완벽히 대체하고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준우승에 핵심역할을 한다.[11]
2008/2009 시즌 피레스는 산티 카솔라[12] , 마르코스 세나와 팀을 이끌며 팀의 리그 2위 경쟁을 할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시즌말까지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5위로 마감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2.4. 그 후
2010년을 마지막으로 비야레알과 계약기간이 끝난 피레스는 아스날 훈련장에서 아스날 선수들과 훈련을 함께하며 몸을 만들수 있도록 벵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후 아스톤빌라와 계약을 맺게된다. 하지만 피레스는 노쇠한 탓에 기량이 예전만 못하였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3년 뒤 피레스는 인도의 FC 고아라는 팀에 입단하여 뛰었고, FA신분으로 있던 중 2016년 2월 25일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
피레스는 포르투갈 국적의 아버지와 스페인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국가인 프랑스와 아버지의 조국 포르투갈, 그리고 어머니의 조국 스페인을 두고 고민하였으나 피레스는 프랑스를 선택하였다. 사족이지만 '피레스'라는 이름도 순전히 불어식으로만 읽는다면 -s 발음을 생략한 '피레'라고 읽는게 맞지만 엄연히 스페인계에서 온 이름인지라 속지주의를 적용하고 있는 프랑스이기 때문에 '피레스'라고 불리우는 뒷배경이 있다. 본인도 이름 발음에 대해 여러차례 인터뷰 함으로써 천명하기도 했고.
'''지네딘 지단'''이라는 희대의 천재이자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와 포지션이 겹치는 불운에도 불구하고 '''슈퍼조커'''로서 프랑스 국가대표에 나름 족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다.'''"저는 제 가족을 사랑하고 포르투갈을 사랑해요. 스페인도 사랑하고요.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자랐으며, 프랑스 문화가 제 안에 깊이 배었기 때문에 저는 프랑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프로 선수로 되는 것을 도운 것 역시 프랑스 기관이었습니다. 제가 기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렝스와 메츠의 스포츠 연구소와 유스 훈련 센터를 뜻합니다. 프랑스가 저에게 준 것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사랑해요. 저는 절대 제 뿌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 사람은 선택을 해야만 하죠."'''
3.1.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피레스는 월드컵 내내 교체멤버로 활동하였으나 16강전 파라과이를 상대로 티에리 앙리의 교체멤버로 투입되어 연장전까지 이어지는 혈투속에서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 볼을 전달하였고 이 볼이 로랑 블랑에게 전달되어 골로 연결되면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골든 골을 만들어내는데 공헌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고 팀은 결승에서 브라질을 꺾고 프랑스 축구 역사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3.2. UEFA 유로 2000
간간히 조커로 나와 그냥저냥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결승까지 가는 것을 대부분 벤치에서 보았다. 그러나 유로 결승전 이탈리아에게 1골을 실점한 후 이탈리아의 단단한 수비진을 뚫지 못하고 고전하던 중 후반 86분 비셴테 리사라수와 교체 투입되어 왼쪽 측면을 홀로 도맡으며 공수로 좋은 활약을 하게 된다. 후반 종료 직전 실뱅 윌토르의 동점골이 터지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한 번의 실수가 경기의 승패를 가를수도 았는 상황에서 피레스는 왼쪽 측면에서 알베르티니와 칸나바로를 제끼고 네스타를 상대로 크로스를 올렸고 이는 정확히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어시스트되어 골로 연결되었고 경기는 프랑스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된다.[13]
'''"86분에 로저 르메르가 저를 불렀습니다. 아니 사실 그는 우리쪽 방향으로 소리 질렀고, 저는 "니코 , 너 부른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러자 그들이 "아니야, 니코 말고 로베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면서 "대체 86분에 왜 나를 투입하는 거지"라고 의아했어요. 그는 저에게 "너는 왼쪽 측면 전체를 따라서 플레이해야 한다"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왼쪽 측면 전체요? 누가 나오는건가요?"라고 물었고 그건 바로 리사라수였죠! 저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죠 "이건 잘못된 교체야!" 그것은 제가 코치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에요!"'''
3.3.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지네딘 지단과 티에리 앙리같은 주전이 상당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달성하게된다. 이 대회에서 피레스의 활약이 매우 뛰어났는데 브라질과 4강전에서 멋진 골을 터트리며 브라질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는데 큰 공헌을 하게된다. 대회가 끝나고 피레스는 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왕과 골든볼을 차지하였고 ''''지단이 없어도 가능한 프랑스''''를 실현시키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1년뒤 있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 받게된다.
사실상 피레스의 국가대표 시절 마지막 최고의 전성기였다.
3.4. 그 후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피레스는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에 불참하게 되었고 프랑스 대표팀 역시 지네딘 지단이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와중에 세네갈 쇼크를 당하면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 때 프랑스의 언론들은 '''"피레스만 있었어도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게된다. 이후 피레스는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장하여 팀의 우승을 이끄는데 공헌하게 된다.
실제로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프랑스 대표팀의 탈락 원인 분석이 계속 이루어졌고 전문가들과 축구팬 대부분이 피레스의 공백이 엄청 컸다고 평가했다. 지단을 대체할 유일한 플레이 메이커였다.
유로 2004때도 피레스는 팀에 일원으로 활약하지만 아쉽게도 프랑스는 8강에서 그리스에게 탈락하고 만다. 이후에도 피레스는 클럽에서 좋은활약을 펼치며 국가대표에 승선하기에 무리없는 활약을 펼치지만 레몽 도메네크가 피레스의 별자리인 전갈자리가 팀에 불화를 끼칠거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국가대표로 뽑지 않고 이후 피레스는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게 된다.[14]
그리고 도메네크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하여 계속 프랑스를 이끌다가 UEFA 유로 2008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잘렸다.
4. 플레이 스타일
'''사이드 플메의 정석이자, 이후 태어나는 인버티드 윙어의 서막을 알린 선수.'''
'''벵거볼의 대명사.'''[15]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었던 윙어이자 플레이메이커였으며 매우 지능적이었던 EPL '''원조 미들라이커'''[16] 이자 당대 최고의 '''인사이드 드리블러'''중 1명이었다.
흔히 말하는 측면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와 같은 선수이다. 따로 공미를 두지 않는 플렛형 442 포메이션에서는 좌우 윙어의 경기 조율 능력이 중요한데, 피레스는 이부분에 있어서 탑클래스의 선수. 훗날 알렉산드르 흘렙이나 사미르 나스리, 토마시 로시츠키 등이 피레스를 잇게 되었지만 아무도 피레스의 레벨이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17][18]
전성기를 보낸 아스날에서는 주로 왼쪽 측면에서 뛰었으나, 사이드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필드 좌우 그리고 중앙으로 활발하게 스위칭하며 플레이메이킹을 하였다. 윙어로서의 드리블도 상당히 준수해서, 상대 선수를 드리블 및 발재간으로 가볍게 제친 후 동료 선수에게 기습적으로 밀어넣는 양질의 쓰루패스는 일품 중의 일품. 무엇보다 피레스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왼쪽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오른발 인사이드킥으로 상대방 골망 오른쪽을 뒤흔드는 감아차기 슈팅이다. 이 슈팅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재미를 많이 봤으며 미들라이커라는 별칭을 받는데 하여금 부족함이 없었다.
십자인대 부상 전에는 좌우 가리지 않고 뛰었으나 부상 이후 주로 왼쪽에서 뛰었다. 애슐리 콜과의 호흡도 좋았다. 레예스 영입 이후에는 레예스가 왼쪽에서 뛰는 바람에 오른쪽으로 갔는데 우측풀백인 로렌과의 호흡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왼쪽에서의 모습보다는 별로였다.
페널티 킥 성공률이 높은 선수다. 아스날에서는 티에리 앙리와 로렌에 이어 3순위 키커였다.
FC 메스 시절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으로 주로 뛰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라인 브레이킹, 적재적소에 상대팀 박스(Box)로 쇄도하는 침투능력 및 골 찬스를 놓치지않는 위치 선정도 상당히 빼어났다. 티에리 앙리나 데니스 베르캄프같은 동료들을 통한 연계 플레이로 본인이 침투하여 직접 득점하거나, 그들의 슈팅이 수비벽이나 골키퍼의 손에 막혀 튕겨져 나오면 세컨볼을 놓치지 않고 왼발 오른발 머리 가릴 것 없이 우겨 넣으며 쏠쏠하게 득점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피레스의 아스날 시절 골영상 모음을 보다보면 이른바 '주워먹기'. 골장면이 상당 지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것.
종종 외질과 비견되는데.. 전체적인 커리어는 외질이 앞설지 몰라도 아스날에 한정해서는 비교가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피레스 역시 강팀 상대로 사라진 적이 없잖아 있다지만, 아스날에서 대표적으로 강팀을 상대로 다수의 골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피레스이다. 특히, 토트넘을 상대로 피레스는 아스날 역대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 게다가, 스탯면에서도 외질보다더 나은 선수가 피레스 였고 특히 골에 관해서는 미들라이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선수였다. 그러면서도, 경기력은 실바와 같이 대단했던 선수가 바로 피레스. 공미나 다른 포지션에서 클래스 차가 보이는 외질과 달리, 어느 포지션이건 탑 클래스의 폼을 보여준 피레스인지라 올드 구너들은 외질에 대한 평이 박할 수 밖에 없다.
5. 피레스에 대한 말말말
[image]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로베르 피레스는 대표팀의 새로운 기둥이다. 특히 피레스는 최근 들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의 진정한 스타로 꼽을만하다.'''
'''피레스는 그라운드에서뿐만이 아니라 락커룸에서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젊은 선수들은 그의 플레이와 함께 팀에 헌신하는 태도, 그리고 인성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어떠한 감독이라도 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올림피크 마르세유에서 아스널로 팀을 옮긴 것과 마찬가지로 로베르 피레스 또한 마르세유에서 아스널로 팀을 옮겨 위대한 활약을 펼쳤었다. 사람들이 나를 피레스의 계승자라고 하는 것에는 조금 부담이 따르기는 하지만 클럽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다.'''
6. 여담
유독 해축 뉴비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선수이다. 에덴 아자르가 벌써 피레스를 넘었다고 하는 등, 뭔가 만만하게 보이는 듯한 레전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허나, 피레스는 2001/2002 시즌에 FWA[20] 에서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당시에 티에리 앙리나 데뷔시즌에만 리그에서 23골이나 넣은 반 니스텔루이 등 지금보다 더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받은 상이어서 의미가 크다.[21] 거기다 피레스는 아자르는 가지지 못한 월드컵 우승과 유로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다만, 16/17 시즌 활약을 고려할 시, 리그에서만큼은 피레스와 동률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지 모른다. 더 위라고 표현 하기에는,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는 앙리 & 반 니스텔루이라는 압도적인 레벨의 선수가 존재하지 않는지라... 루이스 수아레스나 가레스 베일이 떠난 이후에 프리미어 리그는 뭔가 아쉽다...
챔스 결승에서 벵거에게 교체당했지만, 대표적인 벵빠중의 한 명이 바로 피레스이다. 키언이나 앙리도 16/17 시즌 아스날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벵거를 커버 치기 힘들어 했는데, 그럼에도 벵거를 커버친 사람이 바로 피레스이다. 아마, 나이가 들다 보니 당시 벵거의 고충을 이제야 느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그 어떤 레전드들보다 선수단과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선수이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