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의 역임 직책'''
'''네덜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역대 주장'''
에드빈 판데르사르
(2005~2008)

'''더글라스 판브롱크호르스트
(2008~2010)
'''

마르크 판보멀
(2011~2012)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의 기타 정보'''


'''광저우 푸리'''
'''广州富力足球俱乐部'''
''' 이름 '''
'''조반니 판브롱크호르스트'''
'''Giovanni van Bronckhorst'''[1][2]
''' 출생 '''
1975년 2월 5일 (49세) /
네덜란드 자위트홀란트주 로테르담
''' 국적 '''
네덜란드
''' 신체 '''
178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수[3]-미드필더[4]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1982~1993 / 유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1993~1998)
RKC 발베이크(1993~1994 / 임대)
레인저스 FC(1998~2001)
아스날 FC(2001~2004)
FC 바르셀로나(2003~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7~2010)
''' 감독 '''
네덜란드 U-21 대표팀(2010~2011 / 수석코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11~2015 / 수석코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15~2019)
광저우 푸리(2020~ )
''' 국가대표 '''
106경기 6골(네덜란드 / 1996~2010)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감독 경력
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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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0년부터 광저우 푸리 감독을 맡고 있다.
바르셀로나 드림팀 2기와 2000년대 오렌지 군단의 좌측수비를 책임졌던 풀백. 국가대표 팀에서도 붙박이 주전이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주장으로서 네덜란드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레프트백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다.

2. 클럽 경력


1993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발베이크로 임대되며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뤘으며, 1995년 까지는 유망주로 머물러 있다가 1995-96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획득한다. 페예노르트에서 뛰는 동안 그는 거스 히딩크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뤘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예노르트는 리그 우승에는 무언가 부족한 모습이었고 헨릭 라르손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이적하자, 본인 역시 새로운 도전을 물색했다.
이미 국가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성장한 그의 행선지는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 FC였는데,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 그를 지도했던 딕 아드보카트가 신임 감독으로 내정된 팀이었다. 그는 리그, 클럽 대항전을 가리지 않고 활약을 지속했고, 빅 클럽들이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클럽은 에마뉘엘 프티의 대체자이자 파트리크 비에라의 중원 파트너를 물색하던 잉글랜드의 아스날 FC이었다. 그러나 초반에 그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날려먹었으며 레이 팔러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2002년 질베르투 실바까지 영입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결국 2003-04 시즌을 앞두고 그는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로 임대된다. 그는 레프트백이라는 새로운 포지션에 정착했고, 2004-05 시즌 바르셀로나로 완전 이적한다. 2006-07 시즌까지 그는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동하며 드림팀 2기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특히 2005-06 시즌에는 팀이 친정팀인 아스널을 상대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승리하여 빅 이어까지 들어올려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바르셀로나와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지만 그는 계약을 해지한 뒤 로이 마카이와 함께 친정팀인 페예노르트로 복귀했다. 그는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복귀 첫 시즌 KNVB 컵을 따내는데 일조했다. 3시즌 간 활약한 뒤, 2009-10 시즌을 끝으로 함께 입단한 마카이와 같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6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2010년까지 총 106경기에 나서 6골을 기록했다. 첫 메이저 대회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는데, 에드가 다비즈, 필립 코쿠, 프랑크 더부르, 로날트 더부르와 같은 쟁쟁한 선수진에 밀려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이어지는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4 대회에서는 주전 자리를 획득했다.[5]
[image]
2006년 독일 월드컵 역시 참가했는데, 뉘른베르크의 전투라 불린 월드컵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난투극이었던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퇴장당해 당시 바르셀로나 동료였던 데쿠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UEFA 유로 2008 대회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연이어 참가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008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에드빈 판데르사르를 이어 주장직을 수행했는데, 4강전 우루과이를 상대로 기록한 엄청난 중거리포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2009-10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이 월드컵은 그의 마지막 대회였고, 결승전인 스페인전에도 출전했지만 연장 후반 에드손 브라프히트와 교체되며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감했다. 그러나 남은 15분 동안 팀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패퇴. 공교롭게도 커리어 마지막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이미 소속팀에서 은퇴했고 준우승팀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지난 대회의 준우승팀 주장과 유사하다.

4. 감독 경력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1년후인 2016-2017 시즌 18년만에 페예노르트를 리그우승으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5. 이야깃거리


  •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다.
  • 루이스 수아레스의 자서전에 따르면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와 우루과이의 준결승전 전에 8강전에서의 핸드볼 반칙으로 4강전에 나오지 못하게 된 수아레즈가 판브롱크호르스트는 이미 노쇠화해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입을 털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그 노쇠한 선수에게 중거리 원더골까지 먹히고 결과는...망했어요.
  • 2019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겨울 휴식기 및 이적시장이 끝나고 후반기 리그 시작하자마자 선배 야프 스탐이 이끄는 PEC 즈볼러와 경기를 하였는데 하필 그의 데뷔전. 결과는 3-1로 패배하였다. 선배의 노련함이 잘 보여진 경기 중 하나.
[1] d͡ʒijoːˈvɑni vɑn ˈbrɔŋkɦɔrst[2] Giovanni는 네덜란드어식 이름이 아니며 네덜란드어에서는 로마자 표기 외래 고유명사에 대해 유래 언어의 발음을 존중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도 '조반니'로 발음한다.[3] 레프트백[4] 중앙 미드필더[5] 2002 한일 월드컵은 네덜란드가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 출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