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슈미트
1. 소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만 18시즌을 뛴 '''필리스의 팀 역사상 최고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3루수. '''야구 역사상 최고의 3루수'''로 꼽힌다.
당대 아메리칸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위대한 3루수로 군림한 조지 브렛과 함께 양대리그의 3루수 지존을 겨루는 라이벌 관계였고, 두 사람은 월드시리즈에서 대결하기까지 했다. 좌타자였던 브렛이 정교함을 앞세운 왼손 교타자였다면, 슈미트는 그와 반대로 오른손 슬러거라 할 수 있다. 각 포지션 별로 통산 최고를 논할 때, 3루수 부문은 어떠한 경쟁자조차 없이 슈미트가 1위로 꼽히며,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못한다. 이 정도 이상으로 확고하게 특정 선수가 통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포지션은 우익수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통산 성적은 타율 .267, 548홈런, 2234안타, 출루율 .380, 장타율 .527, OPS .908, 순장타율 .260, BB/K 0.8, wRC+ 147, 1595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왕 8회, 타점왕 4회를 기록한 1970-80년대의 지배자였으며, 이 시기가 라이브볼 시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기임을 감안하면, 만약 그가 타고투저 시대를 보냈으면 600홈런을 넘겼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상 내역으로는 정규시즌 MVP 3회, 골드 글러브10회, 실버 슬러거 6회에 올스타에 12번 선정되었고 한번의 1980년 월드 시리즈 MVP가 있다.
2. 선수 경력
대학교엔 건축학과를 전공했는데 성적이 훌륭했던지 야구 대신 건축가의 길로 입문할 것을 권유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가 더 좋았던 슈미트는 유격수로서 71년 6월 드래프트에서 전체 30순위[1] 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지명받았다. 하지만 수비부담을 줄이기 위해 3루수로 전업한 후 72년 처음 데뷔하였지만 73년엔 .198 .324 . 373이라는 눈야구 공갈포의 기질을 보였다.[2]
비록 삼진을 많이 당해 타율이 낮지만 18홈런과 많은 볼넷을 기록하며 발전의 실마리는 남아있었던 슈미트는 겨우내 푸에르토 리코에서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정교함을 길러서 주전은 물론 내셔널리그 최고 수준의 3루수로 발돋움한다. 74년 162경기를 출전하여 686타석에서 73년(443타석)과 비슷한 수준의 삼진을 기록(그러나 이 때부터 3년 연속으로 NL 최다 삼진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하면서도 100개 내외의 볼넷을 기록하고 전년에 비해 1할 가까이 오른 타율로 36홈런을 친 것.
이후로도 투고타저의 시대 속에서 꿋꿋이 30홈런 시즌을 만들어내며 통산 8회의 홈런왕에 올랐고, 볼넷 1위 시즌을 4차례나 하는 등 정교함이 떨어지는 단점을 귀신 같은 선구안으로 커버했다. 2000~2010년대 현역으로 치면 아담 던 같은 극단적인 OPS형 히터의 모습이었다.[3] 특히 플레이트 바깥으로 쭉 빠져서 뒤통수를 보이면서 몸쪽 공을 기다리는 그의 타격스탠스는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는데 이 타격폼으로 인해 투수들이 몸쪽 공략을 두려워하거나 커맨드에 불안을 겪어서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비결이 되었다고도.
또한 수비에도 뛰어나서 3루수로서 10회 골드글러브를 땄고[4] 강견을 갖춘지라 1974년의 3루수 404어시스트는 지금도 내셔널 리그 단일 시즌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이버메트릭스 수비 지표의 하나인 커리어 Total Zone Runs에서 129점을 기록, 2011년 시즌 종료 현재 역대 8위를 기록 중이다.[5]
다만 전성기 시절 중에도 1978년은 유독 흑역사로 기록되어 OPS 8할에도 미달하는 부진을 겪었는데, 당시엔 주장으로 선임되어서 많은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6] 다행히 MLB 최다안타에 빛나는 피트 로즈[7] 가 합류하면서 팀의 리더로 자리잡자 본인도 부담을 덜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또한 그 시기에는 당겨치기만 고집하던 이전과 달리 밀어치기를 터득하자 지금의 라이언 하워드처럼 수비 시프트에 시달리던 시절보다 타율이 확연히 오른 것은 물론 79년 45홈런을 치며 장타력도 매우 올라간 모습을 보였고, 80년 생애 첫 MVP 등극의 원동력이 된 48홈런은 2006년 라이언 하워드가 58홈런으로 MVP를 따기 전까지 필리스 프랜차이즈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으로 남았고, 2004년 FA로이드를 복용한 벨태현의 48홈런과 함께 3루수로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홈런 내셔널리그 기록으로 남아있었으나 2019년 신시내티의 에우제니오 수아레즈가 3루수로써 49개의 홈런을 치면서 2위 기록으로 내려갔다.[8] 100경기 남짓 되는 경기로 마감한 81년의 파업시즌에도 30홈런을 넘어서며 2년 연속으로 홈런-타점왕을 제패하며 MVP에 올랐다. 이렇게 마이크 슈미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1981년에는 두 시즌 연속으로 올스타,골드 글러브,실버 슬러거,MVP를 휩쓸었다.
그렇게 시대를 지배한 좌완 에이스 스티브 칼튼과 함께 팀 통산 패전이 1만에 달했던 전통의 약체 필리스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팀의 전성기를 이끌던 슈미트였지만, 정규시즌의 위엄과는 달리 가을만 되면 유독 작아지는 면모를 보였고 필라델피아의 극성맞은 팬들은 신나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80년 드디어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3루수 조지 브렛과 정면대결을 펼치며 양대리그 3루수의 자존심으로 명승부를 펼쳤는데, 웬일로 슈미트는 월드시리즈에서도 그간 가을에도 변함없이 맹타를 휘두르던 브렛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화려한 타격을 선보였고, 창단 98년만에 드디어 우승을 거두며 100년간 우승 못하는 기록을 멈추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가을에 부진하든 어쨌든, 정규시즌의 슈미트는 변함없이 위력적이었다.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단골로 수상하고 1986년에는 또 다시 MVP를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통산 500홈런까지 넘어섰던 슈미트는 1988년 갑자기 어깨 회전근(Rotator Cuff)[9] 을 다치며 강견을 잃었다. 그리고 무릎과 허리[10] 까지 다치면서 장타력을 잃었고, 나이 37세였던 87년만 해도 35홈런을 때려냈던 그는 89년 초반 때 이른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부상만 없었다면 노쇠화 따위 없이 역대 최다홈런과 2000타점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수비에서도 팀 사정 때문에 1루로 한 시즌을 뛰었다가 3루로 돌아온 다음 해에 골드글러브를 따내며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오랫동안 필리스의 희망이자 상징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은퇴였다.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는 그는 89년 마지막 시즌에 선수로서 은퇴한 상황에도 은퇴를 안타까워한 수많은 팬들에 의해 투표에서 내셔널리그 올스타 3루수로 선정되었고 비록 경기에 출전은 못했지만 올스타전이 열린 애너하임에서 전 MLB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은퇴한 선수가 MLB 올스타에 뽑힌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3. 명예의 전당
그렇게 안타까운 은퇴를 한 뒤 이어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 투표, 전 해에 첫 투표로 입성하여 필리스의 영구결번이 된 스티브 칼튼에 이어 첫 투표에서 HoF 입성은 기정사실이고 오히려 득표율이 얼마나 될지가 관심이었다. 결과는 96.52%. 이로서 필리스는 2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고, 2004년 새로 개장한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동상을 세웠다. 자기를 뽑지 않은 기자들에게 왜 자기를 뽑지 않았냐고 따졌는데, 한 기자가 병석에서 팀 메이트에게 무례하고, 아이들 사인 요청을 무시했다고 편지로 답변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Third Base (1st)
5. 은퇴 후
오늘날에는 종종 필리스의 홈 경기에 방문할 때마다 현역 시절 잠깐 못한다고 무지하게 들었던 욕설 대신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고, 가끔 필리스 방송의 객원해설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골프를 워낙 좋아해서 은퇴 후 PGA에 입문하려고도 했다. 존 스몰츠와 달리 결국 아마추어로 남았지만.
또한 지도자로서도 활동하여 필리스의 싱글A 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선수 시절 암페타민을 복용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순수성을 중시하는 팬들에겐 꺼림칙하게 여겨지겠지만 그 시절엔 암페타민이 금지약물이 아니었다,즉 암페타민은 비타민제와 같은 취급을 받는 한 보조제에 불과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비타민제나 커피를 먹으며 경기한다는 이유로 약쟁이라고 깔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또한 암페타민류의 각성제는 현재도 금지약물로 다뤄지긴 하나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과 똑같이 여겨지진 않는다. 실제 MLB의 약물 규정에서도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11] 또한 지금도 비교적 간단한 절차만 밟으면 허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12]
6. 관련 문서
[1] 전체 29순위였던 브렛의 바로 다음 순번이었다. 브렛의 경우는 고졸 유격수였다.[2] 다행히 규정타석을 채우진 않아서 규정타석 1할이라는 굴욕의 기록은 이후 2010년 카를로스 페냐와 마크 레이놀즈에게 넘어가게 된다.[3] 물론 타격만으로도 던과 비교되기 힘든 상위호환이고, 수비력은 넘사벽이었다.[4] 2011년 종료 시점에서 역대 3루수 수상 횟수 순위 : 브룩스 로빈슨 16회 , 마이크 슈미트 10회, 스캇 롤렌 8회.[5] 역대 100점을 넘은 인물들 : 브룩스 로빈슨, 버디 벨, 클리트 보이어, 로빈 벤추라, 스캇 롤렌, 그레이그 네틀, 게리 개티, 마이크 슈미트, 아드리안 벨트레.[6] 본인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라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7] 슈미트의 강인한 몸과 운동능력을 부러워하며 "쟤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나랑 내 마누라 몸이랑 바꾸고 '''돈도 줄거임ㅋ'''"(To have his body, I'd trade him mine and my wife's, and I'd throw in some cash.)이라 했다. 슈미트는 지금도 로즈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로즈가 일궈낸 선수로서의 업적을 강조하며 영구제명을 철회하라 주장한다.[8] 아메리칸리그는 2007년 54홈런(3루수 52홈런 + 지명타자 2홈런)을 날린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의해 경신.[9] 투수들에게서도 자주 발생하는 부상인데, 다른 부위의 인대를 집어넣어 복구가 가능한 팔꿈치와 달리 이 부분은 아직까지도 재기가 굉장히 힘든 부위로 분류된다. 물론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라는 길이 최근 알려지긴 했지만 활성화되려면 아직...[10] 슈미트의 타격폼은 허리를 이용하는 특징이 강했기 때문에 이 부상은 더욱 치명적이었다.[11] 경기력 향상 약물(PED) 카테고리엔 스테로이드 계통만 포함되고, 암페타민 등의 약물은 각성제(Stimulants)로 따로 분류된다.[12] 실생활에서도 의외로 가까이 있는 약물이다. 일부 수험생들이 아는 의사에게 야매로 받아 복용하는 집중력 좋아지는 약도 암페타민 계통의 약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