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페냐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내야수로, 주 포지션은 1루수였으며, 절륜한 장타력과 그에 비례하는 삼진 갯수 때문에 애덤 던, 마크 레이놀즈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공갈포'''인 선수다.
2. 커리어
2.1. 텍사스 레인저스
당초 1998년 1라운더답게 최희섭, 알버트 푸홀스 등과 함께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 1루 유망주들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다만 교타와 장타를 겸비한데다 '''유망주 어쩌구 취급받기도 전에 초광속으로 승격해서 초광속으로 포텐 터진 푸홀스'''와 달리 삼진이 좀 많은 것이 아니라서(...) 실질적으로는 최희섭과 함께 마이너 최고의 1루수 유망주 자리를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베테랑 라파엘 팔메이로가 1루수로 버티고 있었으며, 2001년 1라운드 전체 5순위로 뽑은 '''마크 테세이라'''가 1루수 자리를 이미 예약했기 때문에 페냐에 크게 미련이 없었던 텍사스 레인저스는 2002년 또다른 유망주들을 대가로 빌리 빈과 폴 디포데스타가 '''머니볼'''을 외치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넘겼다.[1]
2.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하지만 2002년 오클랜드에서 그는 우려했던 대로 공갈포 기질을 떨치지 못하고 금방 마이너로 쫓겨났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머니볼>에서는 잘하고 있다가 스캇 해티버그를 쓰기 위해 그냥 넘겨버린 것으로만 나오는데 영화의 내용이 실제와 아주 다르진 않다. 다만 페냐가 어슬레틱스에서 보여준 성적은 .218/.305/.419 의 비율로 주전급 수준은 절대 아니었던 점도 감안해야한다.[2]
2.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불행 중 다행인지 디트로이트에서 홈런 갯수가 늘어나며 OPS도 8할을 기록하며 다시 괜찮은 생산력을 회복하는듯 했지만 타율이 너무나도 저조했고, 삼진도 많은 덕분에 공갈포임이 드러나며 디트로이트에서도 다시금 방출을 당하고 말았다.
2.4. 보스턴 레드삭스
이후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지만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세이부 라이온즈 등 일본프로야구 진출설까지 불거졌던 그였지만, 다행히 2006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빅리그 무대를 밟는데 성공한 뒤,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등 쏠쏠하게 활약했다.
2.5. 탬파베이 레이스
보스턴에서 다시 방출된 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그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살아남아 80만불의 연봉으로 다시금 풀타임 빅리거가 되었다. 그리고 커리어 내내 페냐와 비교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탬파베이에서 경쟁을 했던 최희섭은 결국 빅리그 생활을 접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다.
4월엔 비록 백업을 전전했으나 5월부터 타율이 3할을 넘나들면서 생산력이 회복된 모습을 보였고, 148경기 .282 .411 .627 '''46홈런 121타점'''을 기록하며 탬파베이의 타선을 이끈 덕분에 실버 슬러거와 재기선수상의 영예도 얻었으며, 또한 2008년에는 수비에서도 좋은 기량을 발휘하며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율은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마크 레이놀즈와 함께 90여년만에 처음으로 양대리그에서 규정타석 1할을 찍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50~60M 이상의 무리한 투자를 가져가며 성공을 거둔 탬파베이는 칼 크로포드와 페냐를 포기했으며, 시카고 컵스가 1년 $10M의 계약으로 페냐를 데려갔다.
2.6. 시카고 컵스
2011년 페냐는 전년도보단 나은 성적인 .225의 타율을 기록하며 .819의 준수한 OPS를 마크했다.[3] 그러나 컵스 팬들은 '''알버트 푸홀스'''를 원하고 있었고, 또한 밀워키 브루어스의 프린스 필더 등 더 생산력 좋은 1루수들이 많이 풀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컵스 팬들에게도 잊혀지고 말았다.(...) 거기에 새 팀을 구하려면 1~2월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인데다 보라스 고객들이 전부 '''최악'''의 오프시즌을 보내는 중인지라
2.7. 탬파베이 레이스 2기
2012년 1월 20일 탬파베이 레이스로 복귀가 결정되었다. 1년 $7.25M의 계약인데, 돈 없어서 늘 우울한 소식만 접해야 했던 탬파베이 팬들은 이장석이 이택근을 다시 영입한 것과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이는 먹튀의 전형으로, 2할이 안되는 타율에 타율 대비 출루율 외에는 장타와 수비 뭐 되는게 없으니 시즌 최종 성적 160경기 .197 .330 .354 19홈런 61타점으로 '''규정타석 1할대'''의 신화를 다시 한번 썼다.(...) 탬파베이 팬들은 이러자고 다시 데려왔냐며 부진한 팀 성적과 맞물려 절규했다.
2.8. 휴스턴 애스트로스
2013 시즌부터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뛰게 되었는데, 리빌딩 중인 휴스턴 입장에서는 유망주들의 성장을 위해 기다릴 시간을 벌어줄 카드로 영입이었지만 끝없는 부진으로 인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9. 캔자스시티 로열스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지만 단 4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나온 모든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며 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2.10. 텍사스 레인저스 2기
이후 무직으로 지내다가 주전 1루수인 프린스 필더와 백업 1루수인 미치 모어랜드가 수술로 나올수 없게 되면서 다급해진 텍사스가 페냐를 6월 18일 마이너 계약으로 영입했다. 영입하긴 했지만 텍사스 측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성적도 18경기 .136 .190 .237 1홈런 2타점을 기록하며 특유의 장타력조차도 전혀 나오지 못해 더이상의 메이저 생활도 어려워보였다.
3. 은퇴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 산하 스포츠 방송채널인 MLB Network의 스튜디오 애널리스트로 합류하며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탬파베이의 실버슬러거 출신이자 MLB 네트워크의 분석가 카를로스 페냐의 하루는 어떨까요?
2020년 명예의 전당에 첫해 후보로 나와 한표도 얻지 못하고 탈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사실이 아니다. 당시 테세이라는 특급 유망주이긴 했으나, 주 포지션은 3루수였고 마이너에 데뷔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테세이라만은 무조건 믿고 페냐를 내줄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테세이라가 1루로 포지션을 전환한 것도 행크 블레이락이라는 괜찮은 3루수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당시 레인저스 1루수는 거포로서 잘 나가고 있던 라파엘 팔메이로였다. 박찬호를 영입하면서 투수진 보강에 사활을 걸고 있던 레인저스가 당시 애슬레틱스 마이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투수 유망주 마리오 라모스 등을 데려오기 위해 팔메이로라는 기존 선수가 있어 가치가 높았던 유망주 페냐를 이용한 것이 더 맞다고 봐야 한다. [2] 사실 페냐보다는 같이 디트로이트로 넘어갔던 제레미 본더맨을 빌리 빈 단장이 진짜 싫어했던 점이 삼각 트레이드 성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카우터들이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본더맨을 1라운드에서 지명하자 의자를 던저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본더맨은 디트로이트 이적 후 만년 유망주로만 남으며 규정이닝 3점대 ERA를 단 한차례도 기록해보지 못한 채 통산 69승만 남기고 은퇴했지만 2006년 디트로이트 약진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2006 ALCS 4차전에서 호투를 보이며 자신을 버린 빌리 빈에게 화끈하게 엿을 먹이기도 했다. [3] 팀내 유이한 OPS 8할 타자로, 다른 한명은 아라미스 라미레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