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경(농구)
1. 고교-대학시절
1993년 쌍용기 예선에서 당시 고교최강팀 현주엽의 휘문고를 격파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던 부산중앙고 멤버들 중 하나로, 이홍수(179cm, G, 한양대), 김수환(191cm, F, 연세대 중퇴) 등과 함께 부산중앙고를 쌍용기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휘문고에 18점차로 대패, 준우승에 그쳤었다.[1] 당시 박도경은 센터로서의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미완의 대기였지만, 일단 94학번 최장신이자 당시 국내 농구계를 통틀어도 네 번째로 컸던 박도경의 키(202cm)[2] 는 쉽게 지나칠수 없는 떡밥이었고, 과거 "센터사관학교"로 명성을 떨쳤던 중앙대가 그 떡밥을 물었다.
중앙대 유니폼을 입고 첫 선을 보인 박도경은 90년대만 해도 드물던 2m대 센터인데다 체중 100kg를 훌쩍 넘는 거구에, 제대로 먹어주는 인상(;;) 덕분에 단숨에 주목을 끌게 되지만... 선수로서 한참 부족한 기본기와 전무하다시피한 공격능력, 그리고 지나치게 느린 몸놀림 탓에 출전하는 경기마다 실망스런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나마 좋은 체격조건을 바탕으로 수비형 센터로 써보려고 했지만, 키에 비해 팔이 짧은데다 발이 너무 느려 타 대학팀들의 단신센터들조차 막지 못했고 짧은 출장시간에도 금세 파울트러블에 걸리곤 했다.[3] 덕분에 중대 동기 이은호가 4년간 혼자 골밑을 지켜야만 했고, 고교시절보다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키만 큰 센터" 박도경은 1998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마지막순번(20순위)로 겨우 청주 SK 나이츠에 지명받게 된다.
2. 프로 시절
데뷔 첫시즌인 98-99 시즌에는 팀내에 서장훈, 현주엽의 국대 빅맨 2명에 외인센터 숀 재미슨(202cm)까지 있어 박도경은 출장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99-00 시즌 중반 현주엽이 광주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되었지만 재키 존스(202cm)-서장훈 콤비의 맹활약 속에 박도경은 그저 "청주 SK 벤치의 인상험악한 빡빡이"로만 남게 되....는가 싶었는데...
99-00 시즌 청주 SK는 황성인-로데릭 하니발-조상현-재키 존스-서장훈의 베스트 5 위주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지만, 청주 홈에서 열린 대전 현대와의 결승 3차전에서 팀의 기둥 서장훈이 체력고갈에다 상대 외인 듀오 조니 맥도웰-로렌조 홀의 거친 수비에 흥분하며 달랑 3점 4리바운드만 기록, 설상가상으로 발목부상까지 당하며 물러나면서 시리즈를 1승 2패로 밀리게 된다. 이에 최인선 감독은 4차전 선발센터로 정규리그 내내 14경기 출장(평균 출전시간 3분;;)에 그쳤던 박도경을 출전시켰고, 박도경은 3쿼터 중반 5반칙으로 퇴장당할 때까지 17분 가량 뛰며 '''슛 시도 한 개도 없이''' 오직 상대팀 센터 로렌조 홀(203cm)만 전담마크했다. 공격옵션이 오직 힘으로 밀어붙이는 포스트업밖에 없던 로렌조 홀은 105kg의 박도경을 맞아 꽤 힘겨워했고, 특히 자유투가 안 좋은 홀의 약점을 공략하여 뚫리는 즉시 바로 파울로 끊어주면서 챔프전 내내 40%의 자유투를 넣던 홀을 당황시켰다. 덕분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3차전 패배의 부담감을 벗어던진 서장훈은, 박도경의 몸빵 덕분에 체력이 고갈된 상대 외인들을 유린하며 맹활약, 시리즈 2승 2패로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 이후 5, 6차전에서도 박도경은 5분남짓의 출장시간이지만 상대 외인들에게 밀리지 않는 파워와 오히려 압도적이었던 '''인상'''을 무기로 제몫을 다해주었고, 청주 SK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한다.
챔피언결정전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00-01 시즌 들어 박도경은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게 되었고 경기당 11분 가량 뛰며 재키 존스-서장훈 콤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당시 백업 빅맨을 구하던 정규리그 2위였던 창원 LG 김태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시즌 중 트레이드[4] 로 창원 LG 유니폼을 입게 되고, 창원 LG가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르면서 박도경은 팀을 바꿔가며 '''두 시즌 연속 챔프전에 출전한''' KBL 최초의 선수가 된다.
이후 한 시즌을 더뛴 박도경은 2002년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이후 매니저와 프런트를 거쳐 지금까지 '''장정 15년간'''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전력분석관을 맡고 있다.
3. 여담
대학 시절부터 머리숱이 살짝 적긴 했는데, 프로 데뷔 후 완전 빡빡 밀어버리면서 KBL 역사상 가장 험악한 인상을 가진 선수가 되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면서 박장법사라는 별명도 붙은 듯. 먹보라고 불리우는 현주엽 감독과 더불어 대식가이다.
99-00 챔피언결정전에서 상대팀 대전 현대의 센터 로렌조 홀이 주홍색 마우스피스를 끼고 나오면서 경기장이 공포스러웠는데, 여기에 매치업되는 박도경의 인상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피부가 꽤 하얀 편인데 대머리 수준으로 밀고 나온 외모는 당시 KBL 무대 최고의 신스틸러였고, 전력분석관으로 모습을 비추는 요즘에도 팬들의 주목을 받곤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창원 LG가 발굴한 외국인 선수 중에 아이반 존슨 (200cm,F), 애런 헤인즈 (199cm,F), , 제임스 메이스(201cm,C), 캐디 라렌(208cm,C) 등 대어가 많은 걸 볼 때 의외로 능력있는 스카우터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골수 LG 팬들에게는 불만이 있는 편으로 호불호가 있다. 현재까지 홍보책임차장으로 구단 홍보와 외국인 영입을 잘하면서 13-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에 한 몫을 했다. 무서운 모습 뒤에 팬들에게 잘해주는 편이다.
실제로 13-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시절 코칭스테프와 선수단 그리고 그 이전 강을준 감독과 창단 첫 LG의 KBL 챔피언인 13-14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인 김진 감독과도 격이 없는 모습과 함께 성적지원을 잘해준 편이다. 하지만, 바뀐 단장이 현주엽을 후임으로 선장한 뒤 성적부진으로 인해 묻치면서 조성원의 시련사로 이어지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날렵했던 "한국의 바클리" 현주엽은 당시 결승전에서 김수환-박도경의 마크를 뚫고 무려 40점을 몰아넣었다.[2] 1994년 기준 최장신은 연세대 2학년 서장훈(207cm)이었고, 그 다음이 기아 한기범(205cm)-현대전자 정경호(203cm) 순이었다. 아예 출장조차 하지 못하던 만년벤치(고려대 이익수, 기아 박강제 등)들 제외.[3] 1994-95 농구대잔치 현대전자와의 경기에선 상대팀 장신센터 정경호와 매치업하기 위해 나서 관중들을 기대케 했으나, 박도경의 무존재감 플레이 탓에 상대인 정경호가 샤킬 오닐로 보이게 할 정도였다.[4] 허남영(197cm,C)과 1:1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