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존스

 

'''재키 존스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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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199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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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재키 존스 (Jackie Jones)
'''생년월일'''
1967년 8월 29일
'''국적'''
미국
'''학력'''
바튼 커뮤니티 칼리지 (1987~1989)
오클라호마 대학교 (1989~1990)
'''포지션'''
센터(KBL), 파워 포워드
'''신체'''
202cm
'''KBL 소속팀'''
대전 현대 다이냇 (1998~1999)
청주 SK 나이츠 (1999~2001)
전주 KCC 이지스 (2001~2002)
'''수상'''
KBL 베스트 5 1회 (2001)
KBL 수비5걸 1회 (2001)
KBL 리바운드왕 1회 (2001)
KBL 블록슛왕 3회 (1999, 2000, 2001)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2회 (1999, 2000)
1. 소개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2.2. KBL 시절
2.2.1. 대전 현대 다이냇 시절 (1998~1999)
2.2.2. 청주 SK 나이츠 시절 (1999~2001)
2.2.3. 전주 KCC 이지스 시절 (2001~2002)
3. 사건 사고
3.1. 2000~2001 시즌 플레이오프 4강 5차전 퇴장
3.2. 2002년 KBL 외국인 해시시 흡입 사건
4. 여담


1. 소개


조니 맥도웰과 함께 초창기 KBL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혔던 선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뽕쟁이'''가 되어 KBL에서 영구 퇴출되었다.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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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JCAA의 바튼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다 1989년 명문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편입하여 곧바로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 자리를 차지, 89-90 시즌에 평균 15득점-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NCAA에서는 비록 한시즌만 뛰었지만, 전시즌 팀의 주축이었던 스테이시 킹(211cm, C)과 무키 블레이락(183cm,G)이 나란히 NBA에 진출하며 전력 공백이 있었음에도, 재키 존스가 골밑 공백을 어느정도 메워주었던 덕분에 오클라호마 대학교는 NCAA 토너먼트 8년 연속 진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89-90시즌 NCAA 토너먼트 32강까지 올랐다.
졸업 후 NBA에 입성하지 못한 존스는 스페인 리그 및 미국 하부리그인 CBA, 터키와 이스라엘 리그 등을 돌아다녔고, 만 31세의 나이로 1998년 KBL 드래프트의 문을 두드린다.

2.2. KBL 시절



2.2.1. 대전 현대 다이냇 시절 (1998~1999)


만 31세로 노장축에 속하던 존스는 1998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2라운드 11순위로[1] 전시즌 우승팀인 대전 현대 다이냇 유니폼을 입는다. 97-98 시즌 이미 맥도웰-제이 웹(201cm) 트윈타워의 활약으로 우승을 거둔 대전 현대였지만, 센터 제이 웹의 느린 스피드와 짧은 슛거리에 아쉬움을 느꼈던 신선우 감독은 트랜지션 농구에 강점을 지닌 선수를 찾아 나섰고, 다년간 해외리그 경험을 가진 재키 존스를 무려 2라운드에서 건지는 횡재를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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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9 시즌 초반, 전시즌 센터였던 제이 웹에 비해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자꾸만 외곽에 나와 3점[3]을 쏘는 재키 존스가 미덥지 않아 보였지만, 시즌 중반 이후 팀에 완벽히 적응하면서 이상민, 맥도웰과 함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특히 리바운드 후 바로 앞선의 이상민, 조성원에게 뿌려주는 아울렛 패스는 존스의 전매특허였으며, 이후 대전 현대의 팀컬러가 되었다. -- 트리오와 트윈타워 맥도웰-존스 콤비가 어우러진 막강화력 덕분에 대전 현대는 어렵지않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2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철저한 골밑수비와 3점슛으로 상대팀 부산 기아를 농락하며 맹활약한 덕분에 존스는 시즌종료 후 맥도웰과 함께 재계약에 성공한다.

2.2.2. 청주 SK 나이츠 시절 (1999~2001)


하지만 비시즌 중 신선우 감독은 시즌 3연패를 위해 좀더 강한 센터를 찾아야겠다고 판단했고, 트라이아웃에서 본 파워센터 로렌조 홀(200cm)을 점찍어 청주 SK와의 픽앤트레이드를 감행, 우승공신이었던 재키 존스를 청주 SK로 트레이드 시켜버린다. 우승팀에서 하루아침에 방출된 재키 존스는 이에 분노, 99-00 시즌 내내 유독 대전 현대에 더욱 열정적으로 뛰었다고 한다. 정규리그에선 팀이 대전 현대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대전 현대와의 대결에서 재키 존스와 서장훈 트윈타워가 맥도웰-홀 콤비에 오히려 우세한 활약을 펼친 덕분에, 청주 SK 팀 창단 사상 첫 우승과 동시에 재키 존스 개인으로선 2시즌 연속 우승의 영광을 달성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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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두 외국인선수와 모두 재계약한 청주 SK 나이츠상무에 입대한 황성인 대신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뽑은 루키 임재현을 새 돌격대장으로 맞은 거 말고는 로데릭 하니발-조상현-서장훈-존스로 이어진 베스트 5가 건재하여, 00-01 시즌에도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지만, 시즌 내내 서장훈을 비롯한 주축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며 정규리그에선 3위에 머물렀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막강한 공격농구를 선보이던 창원 LG에 2승 3패로 패하면서 아쉽게 탈락하고 만다. 존스는 시즌 중 부상으로 자리를 자주 비운 서장훈의 공백을 홀로 메우며 고군분투했고, 덕분에 00-01 시즌 '''베스트 5'''와 '''수비 5걸''' 센터부문에 동시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의 돌발행동(하기 사건사고 참조) 탓에 팀과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5]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고 만다.

2.2.3. 전주 KCC 이지스 시절 (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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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시즌, 34세의 나이로 다시 KBL 드래프트에 도전한 존스는 전체 5순위로 친정팀 전주 KCC 이지스[6]로 컴백하지만, 시즌초반 무릎부상을 크게 당하며 장기간 이탈하게 되고 이 기간동안 대체선수 크리스 화이트(204cm)로 땜빵하던 전주 KCC는 11월동안 7연패를 당하며 리그 최하위권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이후 크리스마스에 재키 존스가 복귀하고, 르나드 존스, 켄드릭 브룩스[7][8], 클라이드 엘리스를 모두 퇴출시키고 2시즌전 원주 삼보에서 뛰었던 제런 콥[9][10]이 파워포워드 포지션에 보강되면서, 신선우 감독이 그렇게 주창하던 '''토털 바스켓볼'''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고, 이상민-추승균-양희승-제런 콥-재키 존스에 포워드 정재근, 이현준으로 구성된 라인업은 2월초부터 리그에서 무려 10연승을 달리며 플레이오프도 간당간당하던 팀을 리그 3위까지 올려놓는다. 많은 나이탓에 골밑 장악능력은 좀더 떨어졌지만, 리바운드 후 마치 쿼터백처럼 던져주는 존스의 아울렛 패스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고, 주전라인업을 쉴새없이 바꿔가며 모두가 달려대는 속공농구는 전주로 연고이전한 첫해부터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비록 친정팀 서울 SK와의 플레이오프 4강에서, 재키 존스가 전 팀메이트 서장훈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데다,[11] 마지막 5차전에서 석주일의 뜬금 3점슛까지 얻어맞는 바람에 아쉽게 물러나긴 했지만, 완벽한 전력으로 거듭난 신선우표 토털 바스켓볼은 다음시즌을 더더욱 기대케 했고, 속공의 시발점 역할이었던 재키 존스의 재계약도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3. 사건 사고



3.1. 2000~2001 시즌 플레이오프 4강 5차전 퇴장


2000~01 플레이오프 4강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과 기자들은 전시즌 우승팀이자 리그 3위 청주 SK가 공격농구 돌풍을 일으켰던 정규리그 2위팀 창원 LG를 압도하며 결승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청주 SK의 트윈타워 재키 존스-서장훈 콤비는 상대팀의 심한 견제속에 높이의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고, 슈터 조상현과 가드 로데릭 하니발이 차례로 부상으로 쓰러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특히 시리즈 내내 청주 SK는 판정에서도 불리함을 겪으며 평정심을 자주 잃었고, 2차전에선 로데릭 하니발이 심판을 밀치는 행동으로 퇴장당하기도 했다.
2승 2패로 맞선채 열린 5차전, 경기 초반부터 창원 LG의 양궁부대 조우현-조성원-에릭 이버츠 트리오의 3점슛은 불을 뿜었고, 수비형 센터 데릴 프루(200cm)는 재키 존스를 잘 막아내며 경기내내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다. 이때 경기가 풀리지 않아 짜증 만땅이던 재키 존스는 결국 흥분하면서 리바운드 경합 중 갑자기 프루에게 '''인디언밥을 연상케 하는 행동을 했고'''[12] 즉시 퇴장당했다. 트윈타워 중 한축을 잃은 우승후보 청주 SK는 결국 시리즈에서 패했고, 시즌 종료 후 다혈질인 재키 존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3.2. 2002년 KBL 외국인 해시시 흡입 사건


2001-02 플레이오프 4강에서 전주 KCC가 아쉽게 탈락하면서 존스는 다른 외국인선수들처럼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존스가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다른 외국인 선수와 마약인 해시시를 흡입한게 적발되어, 검찰로부터 출국금지조치를 당한 것. 같이 해시시를 흡입한 선수는 4강 플옵의 매치업 상대였던 에릭 마틴(198cm)이어서 더더욱 충격을 주었다.
플레이오프 종료 후 약 4개월간 출국이 금지된 채 한국에 머물며 조사를 받은 존스는 2002년 7월, 유죄판결을 받았고 (징역 8개월-집행유예 1년) 이후 에릭 마틴과 함께 KBL로부터 영구 퇴출 조치를 받게된다. 당시 판결 기사 이후 추가 조사로 밝혀진바에 따르면, 01-02 시즌 재키 존스의 팀메이트였던 제런 콥도 해시시를 흡입한 게 밝혀졌으나, 이미 출국한 후였다.
맥도웰과 더불어 KBL에서 외인 성공신화를 써가던 중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범죄 탓에, 은퇴 후 한국에서 코치생활을 하겠다던 꿈도 물거품이 되었고, 몇년 후 같은 혐의로 걸린 테렌스 섀넌, 디안젤로 콜린스, 캘빈 워너 등과 함께 영구퇴출된 선수 명단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4. 여담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KCC에 돌아왔지만 당시에 유니폼 등록명을 '''존스'''가 아닌 '''J.존스'''로 등록되었는데, 그 이유가 또 다른 용병인 르나드 존스가 합류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등록명을 J.존스로 등록했다.[13][14]
[1] 이 때만 해도 재계약 선수는 1라운드 후순위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팀과 재계약을 맺은 조니 맥도웰은 1라운드 10순위에 해당했다. 현재 재계약선수는 1라운드 1순위부터 채워진다.[2] 97-98 시즌 종료 후 재계약 선수는 총 4명(제이슨 윌리포드, 버나드 블런트, 클리프 리드, 조니 맥도웰. 각각 1R 7~10순위)이었기에, 재키 존스의 실질적 순위는 전체 7순위에 해당한다. 1998 외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돌아온 스카이워커 제럴드 워커(안양 SBS)였고, 이후 워렌 로즈그린(광주 나산), 토니 러틀랜드(청주 SK) 순이었는데, 외국인 1~3순위를 뽑은 팀이 모두 플레이오프에 못갔다;;[3] 당시 NBA 조차센터가 3점을 던지는 것은 결코 환영받는 공격이 아니었다. 그만큼 농구 트랜드가 변화했다.[4] 부상 중에도 맹활약한 서장훈이나 수비왕 존스의 활약도 좋았지만, 하드웨어의 우위를 바탕으로 이상민을 밀착마크해 지워버린 수비장군 로데릭 하니발의 맹활약도 매우 컸다.[5] 로데릭 하니발은 3년 연속 재계약에 성공한다.[6] 01-02 시즌을 앞두고 모기업과 연고지가 변경되었다.[7] 2000-2001 시즌 인천 신세기 빅스에서 활약한 포워드로 득점 4위를 기록하여 전년도 최하위 팀을 5위로 이끌었던 용병 선수.[8] 2001년 12월 20일 대구 동양과의 원정 경기에서 4쿼터 중반에 코칭스텝의 지시사항을 거부하여 퇴출당한다.[9] 01-02 시즌 플레이오프 중 해시시를 흡입한게 발각되어 KBL에서 영구퇴출 되었다. 하기 사건사고 참조.[10] 원래는 부산 기아, 원주 삼보에서 활약 하던 존 와센버그(191cm)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으로 선회하였다.[11] 01-02 시즌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장훈은 평균 22.4득점-8.4리바운드를 올리며 국보센터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12] 프루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했다.[13] 르나드 존스는 L.존스로 등록되었다.[14] 르나드 존스가 퇴출된 이후에도 J.존스를 그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