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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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미(Park yeon-mi)
1993년 10월 4일~
1. 개요
2. 책
3. 증언 왜곡 논란
3.1. 반론


1. 개요


북한이탈주민이자 인권운동가로, 2014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3년 량강도 혜산시에서 아버지 박진식과 어머니 변금숙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2008년탈북하여 어머니와 함께 중국몽골을 거쳐서 2009년 가을 16살[1]한국에 정착했다. 정착 후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박예주'''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북한 인권을 알리기 위해서는 영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한국에서 살 때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하루에 약 9시간씩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해서 통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으며, 편입을 통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2016년 12월 뉴욕에서 투자 컨설팅업계에 종사하는 백인계 미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2018년 3월 달에 아들을 출산했다고 한다. 현재는 귀화하여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2]
2014년 10월 동아일랜드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One Young World Summit)'에서 연설해 화제를 모았다. 이 연설로 북한 내 인권 유린의 심각성이 제고되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800만회[3]를 넘겼으며,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됐다.

김정은을 웃기거나 친근한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영상 1분 10초)

현재 미국 내에서 여러 공식석상에 연설 초청을 받아 다니며, 탈북자 인권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을 주도한 지배인이었던 허강일[4]과 함께 미국에서 북한을 바꾸다라는 채널을 운영 중이다.미국 유튜브 채널

2. 책


2015년, 북한 내에서 자행되는 심각한 인권 유린의 실태를 고발한 책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을 발간한다. 영문판 제목은 <In Order to Live>으로 존 디디온의 책 제목 <We Tell Ourselves Stories in Order to Live>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탈북 과정을 굉장히 심층적으로 서술했으며, 일관적인 묘사와 대담한 문체로 몰입감을 한층 더했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끈 책으로, 대만에서만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서양에서도 여러 호평을 얻었다.

3. 증언 왜곡 논란


북한 인권 운동가 신동혁[5]과 마찬가지로 증언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해외의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박연미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증언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여러 모순점들이 있다며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가 이에 대해 의문점을 먼저 제기했다. 영어 전문. 그녀의 증언들에 대한 의문점들
또 자신의 친구 어머니가 할리우드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을 당했고, 그 장면을 자신이 목격했다는 진술도 여러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권위적인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는 "서양 영화를 보는 것이 사형 집행으로 이어질 지 의심스럽다. 그러한 행동으로 체포될 가능성은 있지만 공개 처형 집행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드레이 란코프는 이어 북한에서 정말로 공개 처형을 초래하는 범죄의 종류는 "살인, 대규모적인 도둑질(특히 정부 재산을 도둑질 하는 것), 인신매매를 포함한 대규모적인 밀수 행위" 등이라고 밝혔다.
이에 박연미는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그랬다", "이후 자신이 쓴 책에 모든 것을 밝히겠다"라고 해명하였다.
한때 이제 만나러 갑니다 58회 방송분에서 '박예주'라는 예명으로 어머니와 함께 출현하여 여기선 상류층 컨셉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3.1. 반론


상류층 컨셉에 대해서는 직접 집필한 책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에서 담당 PD가 부탁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힘들게 살아온 탈북인들의 모습만 다뤘으니, 그와 반대로 나름대로 유복하게 살아온 탈북인의 모습도 다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따랐다는 것. 또, 집안 형편이 나았을 때는 북한 상류층만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먹거나 평양에 놀러 가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를 그저 컨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1] 세는 나이로는 18살.[2]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려면 아무래도 미국 국적을 보유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3] 조회수 8백만을 넘긴 해당 영상은 현재 삭제되어, 똑같은 내용의 다른 영상 주소를 링크함.[4] 2019년 3월에 신변 위협을 느낀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망명했다.[5] 해당 문서에 "거짓 증언 논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