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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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永鍾
1917년 2월 19일 ~ 몰년 미상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7년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전남지부에서 활동하다가 대한청년단 전남도단 부단장을 지내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호남신문 편집국장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조선민족청년단 정균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홍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문용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제3대 국회에서 달변가로 유명하였다. 한편 전라북도 익산군 선거구의 강세형 국회의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에 의해 낙선된 김문용의 자형이 강세형이었기 때문이다. 1956년 초 모종의 사유로 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1957년 다시 민주당에서 제명되고 김준연과 통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국쾌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朴永鍾
1917년 2월 19일 ~ 몰년 미상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7년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전남지부에서 활동하다가 대한청년단 전남도단 부단장을 지내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호남신문 편집국장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조선민족청년단 정균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홍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문용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제3대 국회에서 달변가로 유명하였다. 한편 전라북도 익산군 선거구의 강세형 국회의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에 의해 낙선된 김문용의 자형이 강세형이었기 때문이다. 1956년 초 모종의 사유로 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1957년 다시 민주당에서 제명되고 김준연과 통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국쾌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