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용
1. 소개
前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이자 기아 타이거즈 코치, 現 롯데 자이언츠 코치.
좌투좌타의 외야수. 등번호는 8번(해태) - 27번(쌍방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초의 청각 장애 프로야구 선수.[2]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사실 프로 선수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몸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의 입술을 보고서 느릿느릿 억양없이 말을 할 정도로 중증의 난청 환자였고,[3] 발도 느려서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였다.[4] 그러나 귀가 들리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뛰어나 단국대 시절 팀의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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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타자 품귀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는 박철우의 후계자로 그를 낙점하고 2차 1순위에 지명했다.
1997년 6월 29일 LG와의 잠실 경기에서 이상훈을 상대로, 9회초에 4:6로 지고 있는 상황에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을 치는 장면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5] 또한 1996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대 2로 맞선 2회 말 현대 투수 위재영을 상대로 역전 솔로홈런을 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6차전에서 결승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 드 차례 우승 반지를 끼고(1996년, 1997년), 두 차례 지명타자 부분 KBO 골든글러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지명타자 입후보 기준이 300타석 이상에 2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였기 때문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첫 지명타자 부분 수상자였던 그를 두고서 PC통신 상에서는 우승팀 보정이라고 까였다.
골든글러브 수상은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1996년에 타율 0.246, 4홈런, 37타점으로 수상했는데, 지금이면 말도 안 되는 성적이지만, 그 당시 경쟁 후보였던 윤덕규의 성적이 타율 0.267, 5홈런, 23타점이니까 우승팀 버프 + 타점을 감안하면 못 받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97년도 마찬가지인데, 박재용은 이 해 타율 0.245, 7홈런, 33타점을 기록했고, 역시 지금이라면 지명타자의 성적이 아니지만, 경쟁자인 허문회가 타율 0.272, 3홈런, 14타점이었고, 이정훈이 타율 0.237, 2홈런, 33타점, 윤덕규가 타율 0.239, 5홈런, 17타점으로 한 마디로 개중에 제일 나았다.
결국 노쇠화와 수비 불가라는 단점 때문에 장성호의 성장과 양준혁의 영입 이후 기회를 잃어 99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0년 시즌 종료 후 SK 구단에서 쌍방울 출신 선수들을 대거 방출할 때 김성래, 심성보, 박정현, 강병규 등과 같이 방출되며 은퇴하였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얼마만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선수였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중앙고, 신일고, 진흥고, 한민학교 등 아마야구계에서 코치로 활동하다 2013년 동봉철의 후임으로 경찰 야구단의 타격코치를 맡았다. 경찰팀은 퓨처스리그에 참가했기 때문에, 이것이 그에게는 사실상의 첫 프로야구팀 코치 경력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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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 코치 시절.
2014 시즌을 앞둔 2013년 10월 17일,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3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2016 시즌에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이동하였고 2년간 2군에서 타격코치를 맡았다. 특별히 유망주가 많지 않았던 팜 특성상 2~3군에서 도드라지게 누굴 키워내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누구를 망쳐 놨다거나 하는 단점도 두드러지지 않는 장점도 단점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코치였다는 평.
2018시즌 이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잔류군 타격코치로 임명되며 동의대 감독으로 빠진 정보명의 공백을 채웠다.
5월 말 갑작스레 훌리오 프랑코 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2군으로 갔다.
4. 연도별 성적
[1] 1988학번[2] 정확히 말하면 장애인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5월 20일 라디오볼에서 이재국 기자가 언급하기로는 한쪽 귀가 불편한 건 사실인데 그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며 오히려 언론에서 장애를 가진 선수라는 부분이 부각되어 실제로 청각 장애인 협회에서 연락을 받아 박재용이 당황해 했다고.[3] 닛폰햄의 투수 이시이 유야도 난청인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으며 등판시 스위치를 끈다.[4] 당시 해태는 수비 실책이나 주루 미스를 범했을 때 5만 원씩의 벌금을 냈는데, 그는 매년 200만 원 씩을 코끼리 감독에게 기부했다고 한다.[5] 그러나 9회말 김동수의 끝내기 안타로 재역전에 성공한 LG의 9:8 승리로 끝나면서, 박재용의 홈런은 빛이 바랬다. 이 경기는 LG의 팀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명승부들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