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회

 



'''허문회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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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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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4'''



'''LG 트윈스 등번호 45번'''
김종철(1990~1993)

'''허문회(1994~1996)'''

김기진
'''LG 트윈스 등번호 8번'''
최훈재(1990~1996)

'''허문회(1997~2001)'''

최만호(200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번'''
김현민(1998~1999)

'''허문회(2001~2003)'''

박연수(2003~2004)
'''LG 트윈스 등번호 30번'''
박연수(1998~2002)

'''허문회(2003)'''

민경수(2004~2007)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공번

'''허문회(2008~2011)'''

김무관(2012~2014)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2번'''
이광근(2009~2011)

'''허문회(2013~2019)'''

김창현(202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2번'''
윤재국(2019)

'''허문회(2020~)'''

현역



'''★''']]
'''허문회(許文會 / Mun-Hui Heo)'''
'''생년월일'''
1972년 2월 12일 (52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동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부산중앙초 - 초량중 - [image] 부산공고 - 경성대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LG)
'''소속팀'''
[image] LG 트윈스 (1994~2001)
[image] 롯데 자이언츠 (2001~2003)
[image] LG 트윈스 (2003)
'''지도자'''
[image] 세광고등학교 코치 (2004)
[image] 춘천고등학교 코치 (2005~2006)
[image]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07~2011)
[image] 상무 피닉스 타격코치 (2012)
[image]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13~2014)
[image] 화성 히어로즈 타격 코디네이터 (2015~2018)
[image] 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8~2019)
[image]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20~)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3.1. 아마추어
3.2. LG 트윈스
3.3. 넥센-키움 히어로즈
4. 연도별 성적
5. 기타

[clearfix]

1. 개요


'''"8월에 치고 올라간다."[1]

'''

대한민국야구선수, 코치, 감독.
선수 커리어의 대부분을 LG에서 좌타 대타 요원으로 보낸 무명의 선수였다. 이후 여러 팀에서 코치 생활을 한 뒤 2020시즌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 선수 시절


[image]
(출처 : 포토로)

'''대타인생 허문회 ‘대(代)타자’'''

올시즌 단 3타석 출장에 안타없이 삼진 1개. 프로 데뷔 이후 한번도 100경기 이상 출전해본 적이 없는 대타 인생. LG의 잊혀진 1루수 허문회

부산공고와 경성대를 졸업하고 94년 해태에 지명된 허문회는 해태유니폼도 입지못하고 곧바로 LG로 이적, LG의 김상훈을 잇는 좌타 1루수로 촉망받았다. 그러나 선수지명에서 막차고 입단한 서용빈이 동계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 1루수 자리를 서용빈에게 내주고 허문회는 대타인생으로 접어들었다. 서용빈과 김선진의 뒤에서 간간이 경기에 나서던 허문회는 올시즌 양준혁·찰스 스미스의 잇단 영입으로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됐다.

경향신문 2000년 10월 10일

"'''현역 시절 10년간 나는 대타만 하다가 끝났다. 유망주 시절 타격만 되고 수비가 약한 반쪽짜리 선수였다.'''"[2]

지성준 제외한 허 감독 "반쪽 선수는 안돼", 허문회 감독 “지성준 엔트리 제외? 반쪽 선수 되지 말라고”

초등학교때부터 쭉 부산에서 야구를 해왔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부산-경남에서 최약체팀인 부산공고 야구부에 들어갔고[3]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고 경성대에 진학했다.경성대 시절 장타력을 나름 인정받아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지만 졸업반 때인 1994년 드래프트에서 연고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진 못하고[4] 2차 1라운드 9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입단 전에 LG와 해태간의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 김봉재 ↔ 김상훈, 이병훈 4:2 트레이드가 이루어짐에 따라 원래 지명받은 해태가 아닌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LG 주전 1루수이자 미스터 LG로 불린 팀의 간판선수 김상훈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상황이라 허문회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애초에 LG가 김상훈을 넘겨주면서 허문회를 추가로 요구해 성사된 트레이드이기도 했고.[5]
그런데 데뷔 시즌인 1994 시즌을 앞두고 일본 전지훈련에서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LG 선수들의 타격폼을 봐주던 일본야구의 전설적인 타자인 장훈은 허문회에 대해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하루 천 번 이상은 스윙을 돌려야 한다"'''라며 이 이대로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신랄하게 혹평했다. 반면 2차 지명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간신히 프로에 들어온 교타자 1루수인 서용빈의 타격폼을 "너 정말 폼 좋다. 손 볼것이 없으니 그대로만 계속해라."는 말로 높게 평가했다. 정말 장훈의 평가처럼 개막 후 서용빈은 개막 후 데뷔 후 겨우 6경기만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사고를 쳤고 이후 유지현, 김재현과 함께 'LG 신인 3총사'로 불리며 LG의 간판 스타로 성장한 반면, 허문회는 서용빈에게 밀려 1군과 2군을 오가는 백업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6]
데뷔 후 은퇴할 때까지 커리어를 '''대타 요원'''으로 보내게 된다. 1루수로서 1군에서 대타로 쓰기에 다소 애매한 실력이었지만 장타력이 있고 '''왼손잡이'''였던 덕분에 좌우놀이시 좌타 대타로 쓰기에 최적화된 툴로 자주 출장할 수 있었고, 수비시에서도 왼손잡이 1루수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롯데 감독이 된 후 지성준을 2군으로 보내면서 언급했듯이 '''수비도 안되는 1루수'''였다. 말그대로 좌타 1툴 선수였던 것.
LG 시절 백업 선수로서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데뷔 첫해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다만 이것이 커리어하이였고 이후에는 대략 2할대 중반 정도의 타율을 유지해 주었으니 감독으로서도 어느정도 계산은 섰던 선수. 물론 그 정도의 실력으로 KBO 리그에서 1루수로 주전을 차지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서용빈이 교통사고와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2년 이상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허문회는 그 공백을 채우지 못했고 여전히 백업 선수 신세였다.
허문회 본인은 훗날 스스로를 '유망주 시절 타격은 되지만 수비가 안되는 반쪽 선수였다'고 회고했는데, 사실 그의 커리어 전체를 보면 타격도 안되는, 냉정히 말하자면 반쪽도 못되는 선수였다.[7] 타격이라도 되었으면 지명타자라도 되었을 것이다. 특히 90년대 후반 LG는 김영직이 은퇴한 이후 지명타자가 너무 허약해서 팀의 구멍인 상황이었다. 특히 96~97시즌에 지명타자를 맡았던 최훈재, 박준태는 모두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당시 LG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지며 준우승에 그쳤던 원흉으로 꼽혔다. 하지만 허문회는 이렇게 막장 상황인 지명타자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데뷔 첫 홈런 경기가 1996년 9월 22일 해태와의 광주 최종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혼자 5타수 5안타 3홈런을 기록해 LG전에서 자신의 시즌 방어율을 낮춰 방어율왕을 가져가려던 조계현에게 패전을 안겼다.[8] 이 때 한 기자가 날린 드립이 압권인데 '허문회는 시즌 끝난게 너무 허무해'이다. #
사실 허문회는 좌타자인 덕분에 대타라도 자주 나올 수 있었다.[9] 허문회의 통산 타율이 2할 6푼이 넘기 때문에 타격이 그렇게 막장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성적이 주로 '''불펜 우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대타로 표적 기용되어 얻어낸 부풀려진 성적'''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선발로 레귤러하게 기용되었다면 타율은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참고로 통상적으로 좌타자는 우타자에 비해 좌우 투수에 따른 성적 차이가 더 심하다.[10] 그래서 타율이 2할 2푼대 머물던 96~97년 LG의 지명타자 자리도 꿰차지 못한 것이다.
서용빈 공백기에 주전을 차지하기는 커녕 기량 하락을 보였다. 1999년 데뷔 시즌 이후 다시 한 번 3할타율로 회춘하여 잠시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이듬해인 2000시즌에는 1루수 대타가 타율 2할을 찍으며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갔다는 인식이 많았다. 2001시즌에는 타율이 1할대로 떨어지며 더욱 부진했고[11] 결국 시즌 도중인 7월 한규식과 맞트레이드로 롯데 자이언츠로 가게 되었다. 워낙 쩌리들의 트레이드라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LG 팬덤은 한규식은 보여준게 없는 2할짜리 2군용 선수였지만 허문회는 이제 백업 선수로도 쓸 수 없다는 인식이 많았기에 차라리 미래에 성장할 가능성이라도 있는 한규식을 데려온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항상 젊은 선수를 보내고 노장을 영입하던 것으로 유명한 김성근 LG 감독이 반대로 노장인 허문회를 내보내고 젊은 유망주 한규식을 영입한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image]
(출처 : 포토로)
당시 한규식과 트레이드된 허문회에 대해서 롯데에서는 비슷한 2할의 성적이지만 신인선수를 주고 노장을 영입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허문회는 롯데로 트레이드된 이후 잠시 회춘하여 남은 시즌동안 3할 타율을 기록해서 잠시 롯데 팬들이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듬해인 2002 시즌 비록 롯데는 97패로 역대 최다패 타이기록을 찍으며 형편없는 꼴찌를 했지만, 허문회는 프로 데뷔 후 최다 경기인 92경기를 출전해 .263의 타율과 6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노쇠화를 드러내었다.
프리시즌에 예전 같지 않게 심각한 노쇠화 조짐을 보였는지 전년도에 허문회를 요긴하게 써먹었던 백인천 감독은 2003시즌 개막 후 한경기도 그를 출장시키지 않은채 사실상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시즌 초반인 4월 25일 박연수와 트레이드되어 다시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당시 이광환 LG 감독은 서용빈이 군입대한데다가 김재현마저 부상을 당하자 팀내 좌타가 없다면서 허문회의 재트레이드를 추진했다. 당시 LG 팬덤 분위기는 팬들도 모르던 선수인 박연수를 가지고 싸게 허문회를 재영입했다고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광환 감독 또한 '''좌타자''' 요원으로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허문회는 타율이 1할에도 못미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트레이드된지 약 한달만에 2군으로 강등되어 거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2003년말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3.1. 아마추어


2004년에는 세광고 코치를,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춘천고의 코치를 역임했다. 춘천고 코치 시절 당시 한양대에서 뛰던 이병규를 직접 보게 됐다고 한다. 당시 소문대로 이병규는 엄청난 타격 실력을 보여줬고, 이후 이병규는 2006년에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하고, 허문회는 당시 LG 2군 김영직 감독의 부름으로 2007년부터 LG에 합류하며 이병규와 다시 만나게 됐다.

3.2. LG 트윈스


2007년에 LG 트윈스 2군 타격 코치가 되었다. 전반적인 평가는 나쁘지는 않은 편. 하지만 1군 지도가 아니라서 타격 코치로서 수준급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3.3. 넥센-키움 히어로즈


2012 시즌을 앞두고 LG가 김무관을 1군 타격코치로 영입하면서 기존 1군 타격코치 서용빈이 2군으로 이동하고, 허문회는 자연스레 밀려났다. 이후 상무의 타격코치를 거쳐 2013 시즌을 앞두고 박흥식 코치의 갑작스런 롯데 자이언츠 이적으로 자리가 빈 넥센 히어로즈의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염경엽 감독의 LG 코치시절 인연으로 자리를 옮긴 듯하다.[12]
2013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타자들의 타율이 2012년에 비해 꽤나 향상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박병호'''가 퓨처스리그 상무 피닉스와 LG 트윈스에서 본즈놀이 홈런왕을 하던 시절에 항상 하던 말이 '''"도움을 많이 주신 코치님께 항상 고맙습니다."'''였는데, 그 코치가 바로 허문회였다는 후문. 넥센 이적 후 타격코치인 박흥식도 박병호의 각성에 영향을 주었지만, '''처음으로 박병호의 능력을 깨워준 사람은 허문회'''였다는 평가가 있는 이유다.
한참 지고 있는데 벤치에 한숨을 쉬고 있는 강정호에게 몇 번 조언을 해주었더니 역전 홈런을 날리는 괴기함도 보여주었다. 이후 강정호는 '''"코치님이 "너는 할 수 있다. 힘내자, 우린 이긴다.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1군 코치직을 맡게 된 것은 넥센이 처음이다. 몇몇 선수들이 특타를 받고 좋아졌다는 후문이 들리며, 특히 득점권 타율이 2012년에 비해 많이 상승했다. '''넥센의 향상된 타선 집중력에 큰 도움을 준 코치'''로 꼽힌다.
다만 '''서건창'''은 시즌 내내 타격폼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2012년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었으나 2014년, 마침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타격폼을 찾아내어 '''KBO 역사상 최초의 200안타 고지'''에 오르면서 '''허문회 코치를 최대의 은인으로 꼽았다.'''
프로에서 뛰는 타자라면 이미 기술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이니 코치의 역할은 신체의 벨런스와 멘탈을 다듬어 주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타격코치로, 타격은 기술보다도 '파워 X 스피드'라고 말한다. 전임 박흥식 타격코치가 선수단의 기술적인 부분을 상당부문 다듬어 놓았기 때문에 타격폼을 교정하는 것보다 웨이트트레이닝과 멘탈을 중요시 여기는 허문회 코치의 부임이 선수단에 긍정적인 연쇄작용을 일으켰다는 평가다.
2014년 시즌 후 친정팀 LG 트윈스로 복귀한다는 말이 있어서 히어로즈 팬들이 불안해했다. 그간 성과가 컸기에 팬들의 신뢰가 두터웠던 것. 일단 2014년 말 발표된 넥센의 코칭스태프 보직 최종 발표에 이름이 포함되었으나, 2015년 재계약 조건에서 구단과 이견을 보여 스프링캠프 출발 사흘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재계약이 결렬되었다고 보도되었다가, 2군 타격 총괄로 잔류하기로 했다. 기사 이 보직이동에 관해서 염경엽 감독은 "박병호가 잘했다고 해서 모두 박병호처럼 훈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수의 수준에 맞는 지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좋은 선수들을 많이 키워 온 허문회 코치의 능력도 인정하지만 1.5군급 선수들이 목적 의식을 갖고 훈련하는데는 심재학 코치의 서포트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가 기사가 또 수정되었다.
2015년 8월 18일 LG 트윈스 전담인 윤세호 기자의 트위터에 올라온 바에 따르면, 2014시즌 끝나고 LG에서 영입 움직임이 있었다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image]
2017년 장정석 감독이 취임하고 심재학 타격코치가 수석코치에 오르면서 1군 타격코치로 오게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강병식이 타격코치가 되었고,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LG 서용빈 타격코치가 타자들을 완전 작살을 내 놓으면서 '''엘지팬들이 정말로 그리워하는 인물'''이 되었다.
2017 시즌이 끝나면서 LG에서 감독, 단장 등등을 모두 교체하고 있는 중인데 유독 타격코치만 소식이 없어 엘지팬들은 거의 하늘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허문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국 또 다시 넥센 2군 타격 총괄로 잔류했다...가 2018년 5월 9일 심재학의 반대급부로 1군 수석코치로 이동했다. 코치 복귀 후 팀 공격면에서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별다른 악평은 없다.
시간이 흘러 장정석의 지도력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심재학 전 코치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가 밝혀지면서[13]조용히 팀에 맞춰 보좌를 해온 허문회 코치에 대한 평이 저절로 올라갔다.[14]

3.4.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9년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 롯데 자이언츠 차기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소문이 돌았고[15] 2019년 10월 26일, 한국시리즈가 끝난 직 후 롯데의 제19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16] 본인은 아직 세부적인 사안은 정해지지 않아서 추후 협의해야 하며 우승팀 두산과 친정팀 키움에게 실례라며 인터뷰는 가지지 않았다. 이후 키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모두 모여 박수쳐주며 축복 속에 작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반면 키움 팬들은 아쉽게 우승을 놓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팀에서 수석코치를 데려가냐면서 재작년과 작년의 두산 팬들이 겪었던 걸[17] 본인들도 겪게 된 것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다음날 3년 총액 10억 5000만원,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억 5000만원이란 조건으로 공식적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수장이 되었다. 취임식은 11월 1일 열렸다. 취임식 스케치
사실 언론에 이미 외국인 감독 면접 후보 3명을 공개 한 터라, 롯데 팬 입장에서는 외국인 감독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의 성과가 뚜렷해지지 않자 국내인으로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다. 물론 국내 지도자라고 성적을 못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제리 로이스터트레이 힐만 같은 효과를 기대를 했기에 아쉬움도 생길법하다. 참고로 외국인 후보 3명 중 스캇 쿨바와는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있어서 틀어졌다고 하며[18] 래리 서튼은 롯데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제리 로이스터는 현장 감각이 떨어져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상황이 어쩔 수 없이 1군은 국내감독으로 물색할 수밖에는 상황에서, 그래도 코치진들의 능력이 가장 우수한 키움 히어로즈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던 허문회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이라고 환영하는 편.
반면 롯데의 단골 레퍼토리인 초보 감독을 또 영입했다는 비난도 있다.아니 사실은 전년도 꼴찌의 여파로 롯데 팬 다수가 야구에 관심을 끄거나 기대감이 없었기에 반응조차도 미미했다(...) 어쨌거나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으니 최소한 2019년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푸념섞인 반응이 다수. 양승호처럼 당초 예상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있는 반면, 2010년대 롯데에서 양승호를 제외하면 이종운, 조원우 등 다른 초보 감독들은 다 실패했는데 무슨 근거로 낙관하냐는 반문도 있었다. 코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해도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롯데는 2020 시즌을 앞두고 코칭스태프가 거의 대부분 물갈이 되었다.

3.4.1. 2020년




3.4.2. 2021년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4
LG
51
115
.304
35
4
1
0
13
10
0
3
.357
.333
1995
19
20
.100
2
0
0
0
1
0
0
0
.100
.182
1996
53
81
.272
22
6
0
3
9
6
0
6
.457
.330
1997
81
158
.272
43
2
0
3
14
8
4
12
.342
.326
1998
69
138
.246
34
5
0
2
16
12
0
7
.326
.288
1999
78
190
.311
59
6
1
6
39
22
2
17
.447
.370
2000
6
10
.200
2
1
0
0
3
1
0
0
.300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1
LG/롯데
51
75
.267
20
2
0
0
11
10
0
11
.293
.356
2002
롯데
92
209
.263
55
11
0
6
21
18
3
18
.402
.33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3
롯데/LG
23
22
.091
2
0
0
0
2
0
0
2
.091
.167
<rowcolor=#373a3c> '''KBO 통산'''
(10시즌)
523
1018
.269
274
37
2
20
129
87
9
76
.368
.327

5. 기타


  • 성민규 단장이 워낙 활발하게 움직이다보니 꼴갤에서는 이 분이 롯데 감독이다, 얼굴 까먹겠다 등의 드립이 자주 나온다.[19] 사실 프런트 야구가 대세가 된 이상 스토브리그에선 단장 인터뷰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 2020년 5월 6일 KT전 선발투수에게 한마디를 해줄 때 격려 해 준 이강철과 달리 한마디도 안 한 것 때문에 이기든 지든 아무 말 안하는 것과 빨간색을 좋아 한다는 걸 엮어 레드형 감독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 2020년 5월 중순 이후 연패에 빠지며 팀은 1위에서 단숨에 6위까지 추락했는데, 성적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허문회 감독도 말이 많아졌다. 특히 작년 꼴지팀 운운하며 '-7만 유지해도 된다'는 면피성 발언을 하면서 감독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20] 다음날에는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발언이었다 라고 다시 해명하긴 했지만.
  • 2020년 5월 30일 연장전 44 상황에서 손가락 4개를 들어 고의사구를 지시했는데 4분만에 끝내기 안타를 맞고 4대 5로 패하면서 4문회, 허문회4, 양상문회[21] 등의 별명이 추가 되었다.
  • 2020년 8월에 치고 올라간다는 일명 8치올 인터뷰 후 8월 초 팀이 진짜로 연승을 달리자 무뇌에서 진화한 유뇌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이해 롯데가 8월 팀 승률 3위(0.636)를 기록하며 진짜로 8치올 발언은 성공으로 끝났다. 그러나 9월부터 승률을 다 까먹어 5할 승률도 달성하지도 못했다.
  • 반면 음력8치올은 그닥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오지 못하는 중. 원래 꼴갤에서 장난식으로 음력8월도 있다고 드립쳤는데 그걸 실제로 시전해버리면서(...) 꼴갤 하는 거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곤두박칠 치고 말았다.
  • 박상원의 투구 루틴인 기합을 가장 먼저 문제시하고 항의한 감독이다. 다만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에도 투구 중에 기합을 내지르는 선수는 구승민을 비롯하여 여럿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모르고 항의를 한 것은 아니고, 이의제기의 핵심은 박상원이 투구를 한 이후 한 템포 늦게 타자가 휘두르는 인플레이 상황에서 기합을 내질러 타격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의를 했던 것이다.
[1] 사실 8치올 발언 자체는 성공적인 편이다. 2020년 8월 승률 자체는 나쁘지 않게 기록했기 때문. 워낙 9월 이후부터 구설수에 오른 발언이 많아서 그 이전에 한 발언도 저평가되는 것이다.[2] 그나마 본인의 말대로 유망주 시절에는 타격이 돼서 데뷔 첫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나 이듬해부터 타격도 망하기 시작했다.[3] 부산에서는 부산고, 경남고가 양강이었다. 그리고 부산상고, 경남상고가 중위권을 형성했다. 그 외에 마산에 용마고가 있었다. 그리고 야구부가 해체되었다가 재창단된 동래고가 하위권을 형성했고, 가장 마지막에 야구부가 창단되었던 부산공고가 최하위팀이었다.[4] 롯데가 이미 1차지명으로 같은 포지션의 강상수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당시 강상수는 아마야구 최고의 내야수로 평가받으며 고려대 시절 1번타자 1루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정작 프로 지명 후엔 당시 롯데가 주전선수들의 상당수가 방위목무를 하는 바람에 팀 전력이 크게 약해져 투수진의 공백을 메우고자 투수로 전업하였다.[5] 당시 LG 이광환 감독은 김상훈의 트레이드를 끝까지 반대했다가 LG가 트레이드로 허문회를 추가로 요구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 이 트레이드가 쫑날것을 확신하고 김상훈을 따로 불러 격려까지 했으나, 결국 해태가 LG의 요구를 받아들여 트레이드가 성사되어버렸다.(...)[6] 이를 두고 일부 LG 팬들은 장훈을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놈' 이라고 무지하게 깐다. 장훈의 말 때문에 허문회가 위축되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결과가 보여주듯이 선수볼 줄 아는 눈이 뛰어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반응도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지명 당시 지명 순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마 시절의 허문회는 서용빈과 레벨이 다른 선수였다. 그리고 허문회의 커리어하이가 바로 데뷔 시즌이었을 만큼 초기에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서용빈을 못미더워 하는 팬층이 무척 많았기에 당시 LG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실제로 장훈이 정말 허문회를 서용빈보다 낮게 보고 혹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장훈이 허문회를 혹평했던 것은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던 반면 어렵사리 프로에 들어온 서용빈에게는 자신감을 주려는 의도였다는 것. 장훈의 한 마디가 선수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나중에 선수 커리어를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것은 당시 유행하던 공포의 외인구단과 같은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일이지, 현실과 만화는 다르다. 당시 지도자들은 대부분 항상 과장된 훈계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대로 성장할 선수가 없다. 지도자의 그정도 엄격한 발언 한마디에 멘탈이 망가져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상태라면 프로 1군에서 제대로 선수 생활을 하기는 힘들다. 수 만명의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하며, 성적이 부진에 대해 가혹한 질책을 하는 팬들을 견디는게 프로스포츠 선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용빈은 데뷔 후 겨우 6경기만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일찌감치 주전을 굳혀버렸고, 그해 타율 0.318와 역대 신인 최다안타인 158안타를 기록하며 LG 신인 3총사의 일원이 되었다. 반면 허문회는 끝까지 팀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허문회 본인은 그 때 당시에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지만 그 때 일이 지도자 생활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도자가 된 뒤 항상 말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했고, 더 말조심하려고 했다고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그 덕분이라는 말을 남겼다.#참고 기사[7] 1루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면 타격은 낙제점이다.[8] 조계현은 부친상 이후 이틀만에 출전한 상태였다. 해태는 전날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은 상태.[9] 경기 중반 이후에 좌타자를 대타로 기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감독들이 좌우놀이를 특히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좌타 대타자는 각 팀 엔트리에 거의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 야구도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10] 그 원인은 우투수보다 좌투수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허문회처럼 대타로만 기용되는 좌타자는 훈련이나 실전이 모두 우투수에 대해서 이루어지게 되고, 때문에 실전에서 좌투수를 만나게 되면 적응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11] 트레이드 시점 기준으로 타율이 0,192였다.[12] 한때 허문회가 LG 팀내의 파벌 싸움에서 염경엽에 밀려서 LG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허 코치가 넥센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는 완전히 낭설이 되었다.[13] 감독에 대한 항명 루머가 있다.[14] 팀 역대 수석코치 중 별다른 얘기가 없는 두 명의 코치이다. 한 명은 김성갑 전 수석코치. 우리 히어로즈 당시 이순철은 감독 이광환과 알력이 있었다는 풍문이, 이강철은 13,14시즌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를 병행하면서 본인의 전공인 사이드암 투수는 잘 조련했지만 다른 투수들의 코칭은 그저 그랬고 덕아웃에 군기잡는 모습이 한두번 있었다. 심재학은 장정석 감독과 야구관의 문제로 항명했다는 소문이 돌아다녔고 결국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간 뒤 MBC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떠났다. [15] 이 때 일부 기자들이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바로 발표된다고 썰을 풀면서, 포시 팀의 박경완, 손혁, 조성환과 함께 감독썰이 돌았다. 이후 SK 와이번스플레이오프에서 광탈했음에도 발표가 안되어서 박경완, 손혁은 제외되었고, 사실상 팬들은 허문회로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조성환이 감독을 하기에는 코치 경력이 적었기 때문. 여담이지만 롯데 감독 썰이 같이 돌았던 손혁은 허문회 감독의 전 소속팀 감독으로 영전했다.[16] 참고로 경기는 18시 52분에 종료되었는데, 최초 기사는 18시 54분에 떴다. 한마디로 한국시리즈가 종료된 지 '''단 2분만'''에 감독 선임 기사가 났다.[17] 2017년과 2018년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두산 베어스의 수석 코치였던 한용덕이강철이 각각 한화 이글스 감독과 kt wiz 감독으로 차례대로 영입됐었다. 즉, 3년 연속으로 준우승팀의 수석코치가 타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18] 일부에서는 소속팀 LA 다저스에서 쿨바에게 중요 보직을 맡긴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19] 댓글로는 주로 중식 잘하게 생겼다., 구단 요리사다 등의 내용이 달린다.[20] 심지어 허구연 해설의원도 중계 도중 "-7까지 가면 안되지요."라면서 일침을 놓았다.[21] 유래는 당연히 4점 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