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농구)

 



'''박정은의 수상 및 영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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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영구결번'''
No.11
'''1998 농구대잔치 MVP'''
유영주(선경증권)

'''박정은(삼성생명)'''

WKBL 출범[2]


은퇴식 때 남편인 배우 한상진과 함께
<colbgcolor=#3fb7e4> '''이름'''
박정은(朴正恩)
'''출생'''
1977년 1월 14일 (47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0cm, 70kg
'''가족'''
고모 박신자, 배우자 한상진
'''학력'''
동주여자고등학교
'''소속'''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1994~2013)'''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코치 (2013.11~2016.3)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운영부장 (2018)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 (2020)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실업 입단'''
1994년 삼성생명 농구단 입단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코치 시절
4. 행정가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이자 前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수석코치, 現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운영 본부장이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의 전설적인 포워드. 박신자의 조카다. 부산 동주여상 시절부터 유명했는데, 박신자의 조카라서 유명했다기보다 본인의 실력이 더 빼어나서 유명했다. 고교 시절에는 가드도 곧잘 봤지만, 성인 무대에 들어서면서 스몰 포워드로 전향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파워 포워드까지 소화 가능한, 그야말로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맡아서 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1994년 삼성생명에 입단한 이래, 단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19년''' 간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말 그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다. 박정은과 함께 삼성생명은 농구대잔치 우승과 WKBL의 정상을 지키는 명문 구단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개인으로도 3점슛 부분의 수상을 도맡았고, 2005년에는 블록 슛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맹활약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대표로 활약해 지금까지 대한민국 여자 농구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같이 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의 주역이기도 했고, 반대로 2004 아테네 올림픽 전패의 수모도 역시 대표로서 맛봤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역시 참가, 총 4차례 올림픽에 나갔다. 그 외에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전 포워드로 활약했다. 2010 세계선수권대회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 나이로 34세이고, 올림픽도 4차례 나간만큼 할 만큼 한 셈이다. 또, 김정은이라는 후계자도 나온 상황이라.
[image]
남편은 하얀 거탑, 이산에서 이름을 알린 배우 한상진이다. 남편이 무명이던 시절에는 박정은 남편이 한상진이었지만, 지금은 한상진의 부인이 박정은이 될 정도로 남편인 한상진이 많이 떴다. 참고로 박정은이 한살 많은 연상연하.[1] 라디오 스타에서 윤종신한상진에게 "운동선수 아내랑 사니까 좋냐"고 묻자 한상진은 정색하며 "윤종신 씨는 좋냐(윤종신의 아내는 테니스 선수 출신 전미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 날 게스트들이 김국진에게 운동선수 부인이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지만 한상진은 운동선수 아내랑 결혼하면 죽을 수도 있다"며 "어느 날 아내에게 멱살을 잡혔는데 그 멱살을 내가 못 풀었다"고 진지하게 얘기를 해 웃음을 주기도...영상]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는데, 프로화 이후에 여자농구 선수의 활동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실제로 결혼 8년차 부부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 하면서 부부간 2세를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었고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것도 부부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1년 선수생활 연장을 허락하면서 2012-2013 시즌에도 뛰었다.
2012-2013 시즌 종료일에 통산 3점슛 1,000개를 기록하면서 WKBL 최초 기록을 달성했다. 2012-2013 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소속 팀을 파이널까지 올렸으나 아쉽게 아산 우리은행 위비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2012-2013 시즌 시상식에서 사실상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3년 4월 23일 삼성생명 구단이 박정은의 코치 선임과 함께 등번호 11번의 영구 결번을 발표하면서 박정은의 은퇴가 확정되었다. 은퇴식은 2013-14 시즌 개막과 함께 거행되었다.
은퇴 후에는 삼성생명코치로 선임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다방면에서 뛰어난 '''명품 포워드'''
팀플레이에 가장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 팀 내에 변연하 같은 에이스가 있을 때는 상대 에이스 수비와 제2득점원으로 활약하였고, 변연하가 청주 KB 스타즈로 이적한 후에는 평균득점을 17점대로 끌어올리면서 스코어러 역할을 담당하였다. 개인기가 변연하처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슈팅능력이 정확했고, 팀내에서 3점슛 찬스를 만드는 패턴에 의해 외곽슛을 쏘거나 돌파하면서 이동 중에 미들슛을 날리는게 주무기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1번부터 4번까지, 최악의 상황에서는 5번까지도 볼 수 있다는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팀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였다. 특히 주전 가드인 이미선이 부상으로 팀을 이탈했던 2006년시즌에는 포인트 가드 역활까지 하며 삼성생명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으며 지금까지 그 우승이 삼성생명의 마지막 챔프전 우승이 되었다 은퇴 직전시즌에는 본인의 공격보다는 수비와 리딩에 치중하면서 팀에 기여했고, 대인방어가 워낙 뛰어난 선수라 외국인선수와의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어시스트 등에도 뛰어나서, 사실상 팀의 살림꾼 역할이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박정은이 은퇴한 2013-14 시즌 이후 삼성생명은 리그 출범 후 최초로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사실상 삼성생명 여자농구는 박정은 은퇴 후 현재까지 우승을 하지 못했다
국가대표로서는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였으며, 선수생활 거의 막바지였던 2010년까지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국가대표로 뽑히며 모범을 보였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맡아서 하는 선수였고, 그런 존재감만큼은 엄청났다. 상기했듯 국가대표에서 박정은의 자리를 김정은이 대체해줬지만, 박정은처럼 위기시 빈자리를 요모조모 채워줄 수 있는 선수가 당분간은 나오기가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박정은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여담으로 정선민이 본인이 본 한국 여자농구 스몰 포워드중 박정은이 가장 뛰어나다 이야기 한 바 있다.

3. 코치 시절


2010년 플레잉 코치로 시작 2014년 수석 코치로 승격 되었으며 2015-2016 시즌 후 삼성생명과 계약이 만료 후 22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4. 행정가


2018년부터 행정가로 나서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운영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1] 박정은은 빠른 1977년생이고 한상진은 프로필에는 음력 생일로 표기하여 1977년생지만 양력으로는 빠른 1978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