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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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자 MC.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7] 1990년대 초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8]
1990년대 중반~후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단기 임팩트로는 '''유재석의 최전성기보다 인기가 많았으며'''[9] 역대 모든 희극인들중에서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었다. 그러다가 동기인 김용만과 콤비를 이루어 승승장구하다 사업 실패, 골프 프로 테스트 탈락과 배우 이윤성과의 이혼 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2007년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남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나이는 1965년생인 김국진이 1972년생인 유재석보다 많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과 동기다. 유재석은 당시 대학에 입학한 만 19세에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최연소 공채 데뷔 기록에 올랐고,[10] 김국진은 군 복무를 마치고[11]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상태에서 합격했기 때문에 나이 차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2. 활동
2.1. 감자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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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의 최전성기와 인기 하락이 강렬해서인지, 그 전의 인기와 위기의 과정은 대중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당시 SBS의 코미디언 영입전략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김국진이 김용만, 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이른바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통해 완전히 메워버렸다.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문제는 감자골의 인기로 인한 혹사. 이들은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방송사에 조정을 요구했으나 KBS는 전속 계약을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김용만이 무리한 스케줄에 탈이 나서 드러눕고 만다. 그러자 화가 난 김국진이 1993년 1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박수홍, 김수용이 동참, 나머지 둘도 결국 하차를 하게 된다. 사실 이 때 화가 나서 가장 먼저 도피성 유학을 제안하고 계획을 짠 사람은 박수홍이었다는 모양.
평소 신인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이들을 아니꼽게 보던 코미디계 선배들은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 둔 것은 프로에게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며 성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KBS 희극인실의 최고참인 임하룡[12] 이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 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면서 이경규와 함께 그들을 옹호해 주었다고 한다.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프로그램을 10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었다!"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거의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13]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 가는 것이다."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
그런데 미국행 직전에 박수홍은 입대 영장이 나왔고, 김수용은 미국 비자가 나오질 않아서[14] 결국 감자골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김국진은 김용만과 함께 미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이것저것 한 모양. 이현도의 증언에 따르면 나이트 클럽까지 인수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규모는 아니고 쌀국수집 옆 지하의 작은 규모였다고.
2.2. 전성기
1994년 미국에서 1년 만에 귀국해 MBC에 자리잡은[15] 김국진을 기다리고 있었던건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최고의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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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에는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주로 출연하며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 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코미디, MC, CF, 연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다.
그 당시 김국진의 영향력은 숨 쉬는 것도 김국진이 쉬면 유행어가 될 정도라고 회자될 정도로 컸으며 전지현, 송혜교 등 지금 잘 나가는 스타들도 당시엔 김국진의 CF에 덤으로 나올 정도였다. 이때 당시 김국진의 인기는 단연 원탑이어서 이병헌과 H.O.T.를 기다리게 할 정도였고, 단독 주연의 미니시리즈(MBC '반달곰 내사랑')를 찍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개그 감각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평가 받지만, 도시 서민적인 외모와 왜소한 체격, 약간 어눌하면서도 친근한 말투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 히트의 비결로 추측된다. 거기다 그 당시 김국진은 좀 어색하긴 해도 테마 게임을 통해 정극 연기가 되는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드라마 등에도 자주 얼굴을 비출 수 있었던 것이 플러스 요인.
당시 김국진의 인기 비결 중 가장 큰 것은 그 특유의 캐릭터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그맨은 심형래, 이경규 같이 세거나 대놓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다수였고, 김국진처럼 친근감 있고 귀여우면서 뭔가 옆집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어리숙한 동네 형스러운 캐릭터는 별로 없었다. 김국진은 올망졸망한 생김새, 작은 체구, 특이한 말투,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는 행동으로 호감이 가는 캐릭터였고, 이 부담없는 캐릭터가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그 예로, "여보세요?"란 유행어만 해도 딱히 웃긴 말도, 웃긴 꽁트에서 나온 말도, 의식해서 억지로 민 것도 아니지만 웬지 김국진이 하니 사람들이 단체로 빵 터져서 유행어가 된 것. 김국진 그 자체가 유행어이자 브랜드였다고 보면 된다. 라디오스타에서 "내가 예전에 뭔 말만 하면 유행어가 됐다"는 말이 과장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김국진이란 캐릭터 자체에 거의 전국민이 빠져있던 시절.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 위기였던 삼립식품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 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 수업 시간에도 언급될 정도.[16]
사측에서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김국진이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그가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 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 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양도 요즘 800원~1000원 하는 빵보다 비슷하거나 많은 편이었다.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 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17] 당시 김국진은 '''코미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미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국민 배우 최불암'''.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최불암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이전 세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김국진 이후 세대에선 폭발적인 전성기는 이들보다 덜 했지만 전무후무하게 십 수년 이상의 한국 코미디/예능계 1위를 유지해오며 전 국민적인 호감도와 셀럽으로서의 엄청난 위상을 긴 세월 동안 누적시킨 유재석 정도가 유일하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18]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 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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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부문''' 1위와 2위의 득표율 차이를 참고하자.[19]
19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태지와(물론 서태지는 조사 당시 은퇴한 상태인 것을 감안해야한다)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쓸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s-1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반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20] 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시절 김국진은 딱히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평가에도 시트콤 뿐만 아니라 정극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는데, 이는 김국진을 좋아하는 시청자폭이 너무나 넓었기에 대박 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될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정극 드라마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3. 몰락
1990년대 후반부터 김국진은 MBC의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에서 주인공인 체육교사 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21] 코미디 활동보다는 연기자로 활동했다. 실제로 김국진은 정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테마게임에 출연했을 때도 당시 출연하던 개그맨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출연했던 콩트의 대다수도 극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 상당히 많았다. 또한 김국진은 자신의 '혀짧은 국진이' 캐릭터에 별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반달곰 내사랑>에서 김국진이 맡은 배역에는 당초 유오성, 차승원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이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하자 김국진이 대신 들어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첫 회(2001년 9월 26일)부터 2001년 10월 11일까지 <신화>와 경쟁했다. <반달곰 내사랑>은 삼각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주변 이야기가 없었던 데 이어 극이 너무 잔잔하게 진행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22] 결국, 김국진은 <반달곰 내사랑>의 실패 후 2006년 MBC 진짜진짜 좋아해로 연속극 출연을 간신히 할 수 있었다.[23]
사족으로, 그는 <반달곰 내 사랑>에 앞서 2000년 초 방영될 뻔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신화를 통해 연속극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 당시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역에는 김승우, 여주인공은 이승연이 낙점되었으나 이승연은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2TV 주말극 사랑하세요?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하였고, 제작진은 영화 거짓말로 스타덤에 오른 모델 출신 김태연을 대타로 올리는 한편 2000년 하반기로 첫 방송일을 미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작진이 김국진과 갈등을 빚어 편성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김국진 자리에는 KBS 슈퍼 탤런트 출신 김태우, 김승우 자리에는 박정철, 김태연 자리에는 김지수가 대신 캐스팅되었고 방영일도 2001년 하반기로 변경되었다.
최고 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골프 때문에 그만 두었다고 알려졌었으나 김국진 본인이 tvN의 스타 특강쇼에 나와 밝힌 바에 의하면 최고로 인정받으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던 상황이였지만 그 대가로 건강을 포기해야했다고 한다.[24] 본인 왈, '''사람들은 골프 때문에 그만둔 줄 알지만 사실은 나 죽을까봐 그만둔 것.''' 이라고.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 골퍼에 도전했지만[25]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26] 사실 턱걸이로 계속 프로 골퍼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이었으면 될 성적인데 올해는 합격이 어려운 성적이었다든지...[27] 마지막 홀에서 3퍼트를 하고 1타 차이로 떨어졌다던지...
이후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했다.[28] 1999년 1년여간 방송 활동을 중단하며 폭발적이었던 인기는 조금씩 하락세를 탔지만,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하던 2002년까지만 해도 90년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인기를 끌었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건제했다. 그러나 이윤성과 김국진은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에 이혼했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29]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실패. 사람이 좋아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돈을 내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한다.[30]
시트콤 연인들 종영 이후 2007년 라디오스타로 재기에 성공하기 까지 4~5년여간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는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혼 이후도 아니고, 결혼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시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자살 시도로 알려졌고, 실제로 병원에 실려가서 위세척을 했다. 김국진은 아스피린을 좀 많이 먹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은 이 경험에 대해 "난 빵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유행어가 될 조짐이 있었으나 너무 처절해서 개그로 인식되지 않은 탓인지 금방 잊혀졌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낙오할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도, 어느 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 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31]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 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명랑히어로 비장의 카드로서 그가 등장한 촬영분에서 자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요즘은 뭐든지 다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듯.
2.4. 재기
이렇게 우울하게 살고 있던 김국진을 안쓰러워 했던 친구와 지인들이 다시 방송 복귀를 권유해서 드디어 방송계에 복귀한다. 여담으로 복귀 당시에 대형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여행 프로그램 등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전의 김국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마르고 아파보여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원래 마르기는 했으나, 정말 고생했다는게 느껴질 만큼 마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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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토요일 오후 6~7시대 버라이어티의 늪에서 고전하고 있던 MBC에서 회심의 카드로 제작된 토요일이라는 버라이어티[32] 로 복귀를 선언하고, 당시 김용만, 박경림 등과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여행하는 "커이 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만에 주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특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획이 된 프로인 데다가, 유학 후 복귀하려 했던 박경림과 함께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참신한 기획보다는 유명 MC의 복귀라는 화제성에만 치우친 분위기였고,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코너가 없어졌고 프로그램명도 토요일에서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방송 활동이 스톱된다.
그러나 쌓아놓은 인망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가에서 동기들과 후배들의 지지를 받아왔다.[33] 이후 무릎팍도사 출연을 시작으로 라디오 스타를 맡게 되는데,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 시기에도 매우 센 방송이었기에,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질 못하면서 오는 무리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구라의 멱살을 잡거나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했던 것도 이 시기 쯤.[34]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 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35] 등에도 출연했다.
또한 SBS에서도 절친노트에 호스트로 출연해 '친해지고 싶은 유명 연예인들을 지명해달라'는 제작진의 요청대로 지명한 후에[36] 이완을 포함한 그 연예인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가감없이 나오고, 이전처럼 다른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파일럿 방송 후 이제 갓 정식 방송을 시작한 절친노트의 흥행을 이끈 공신이 된다.[37]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지상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3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200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김용만과 같이 시상을 하러 나와서 아직 둘의 콤비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2008년 중반기에는 라디오 스타에서 나이를 잊은 골반춤(일명 '예~' 춤)에 큰 스퍼트를 받았으며, 모두들 그를 보면서 귀엽다는 평가를 했다.[38] 이후에도 가끔씩 선보이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특히 다른 쪽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카라의 2집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Pretty Girl'의 안무를 보면 '예~' 춤을 응용한 비슷한 동작이 있는데, 카라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김국진 선배님의 춤을 응용한 거'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2.5. 2010년대 ~
2013년에는 연예계 정보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의 11대 남성 MC로 발탁되었고, 같은 방송사인 만큼 라디오스타에서 언급을 자주했다. 주요 패턴은 '다작'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김구라가 김국진은 MBC에서 스튜디오 예능 2개로 꿀 빨고 있다고 공격하고, 윤종신과 규현이 옆에서 깐족대는 것.
라디오 스타 추신수, 이대호 편에서는 스윙으로 촛불 끄기에 도전했다가 초를 날려버리는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 이후 불타는 청춘에서 다시 한 번 도전했는데, 여기서는 시원하게 성공했다. #
2015년 설특집 파일럿 방송이였던 불타는 청춘에 출연. 정규 편성 후에도 고정 출연하며 사실상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율하는 MC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역시 같은 고정 출연자인 강수지와는 '치와와 커플'이라는 별칭까지 얻을 만큼, 실제인지 설정인지 헷갈리게 하는 케미스트리[39] 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강수지와의 케미 덕분에 2015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본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강수지의 매우 적극적인 수상 소감에 당황하며 얼버무리는 모습이 백미. 앞선 발언도 한참 쩔쩔매다가 말한 거다.[40] 물론 강수지와의 케미스트리가 전부가 아니라, 불타는 청춘 초창기와 현재의 김국진 모습을 비교해보면 여러 모로 사람이 많이 밝아지고 적극적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2016년 3월 22일 tvN에서 첫 방송을 한 집밥 백선생 시즌 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 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41] 팔순인 김국진의 어머니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한 게 출연 계기라고 한다.[42] 방송에선 백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7년 9월 7일부터 방영하는 TV조선의 예능 방송인 시골빵집에서는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일을 맡게 되었다. 카스텔라를 전담하는 김갑수, 오빠들 챙기며 나머지 빵들을 만드는 이수경과 함께 추억의 찐빵을 만드려는 중인데, 백선생에게 배우던 열정이 식지 않았는지 초보자임에도 나름 열심히 기술을 익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에는 부인 강수지와 나레이션을 맡은 자연스럽게에 2020년까지 출연했으며, 동년에 tvN에서는 10부작 골프 예능을 런칭했다. 연말에는 TV조선에서 킹스맨에도 출연하며, 모두 종영하긴 했지만 종편과 케이블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다만, 역시 동년 9월에 시작된 '한번 더 체크타임'은 방송사 치고 시청률이 잘 나오며 순항하는 중.
3. 결혼
위에도 나와 있듯이, 불타는 청춘에서 강수지와 좋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이고 있었고,
'''결국 2016년 8월 3일 강수지와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정정보도에 의하면 결혼은 아직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연애''' 중이라고 한다. 김국진의 인생사를 아는 사람들과 그동안 라디오 스타에서 반품남 기믹으로 본인도 은근히 씁쓸해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던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이며,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는 중. 이후 라디오 스타에서 연애 발표까지 했다. 이후에도 대놓고 닭살 커플 티를 내고 있는데, 자기들이 더 난리치며 좋아라 하는 조규현, 윤종신과 달리 김국진이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못마땅해하는 김구라가 포인트. 이후 강수지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는데,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강수지와 연애를 시작한 후 평소엔 과묵하던 김국진이 말도 많아지고 연애 조언도 척척 할 정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2018년, 드디어 정식으로 결혼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이는 기사가 나왔다. 2월 6일에는 불타는 청춘 방송에서 기사화 된 내용을 인정하며, '''강수지와 5월에 결혼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로써 불청 최초의 커플이 결혼에 골인하는 경사를 맞게 되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으며 가족들끼리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년 5월 8일 드디어 결혼 발표 기사가 떴다. #
4. 출연 목록
4.1. 현재 출연
4.2. 과거 출연
4.2.1. 드라마/영화
5. 수상
6. 여담
- 경기대학교 영문과 출신인데, 김국진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던 전성기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김국진의 출신 학교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김국진이 '경~대요.'라고 일부러 발음을 얼버무려 사회자가 '아 경희대요?'라고 묻자 긍정해버려 경기대 학생들에게 크게 외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함의 결과지만 김국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 그래도 입학식이나 축제의 MC로 박슬기와 함께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다.
- 김구라처럼 영문과 출신이지만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43]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 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 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44]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김국진, 박수홍 등과 함께 감자골 4인방이면서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 만큼 그와 가장 친한 연예인들이던 김용만은 김국진과 젊었을 때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김국진의 사주가 "평생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나갈지 모를 사주"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국진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본인이 돈을 빌렸던 것도 잘 잊었다는 점. 더 웃긴 일화는 감자골의 또 다른 멤버였던 김수용이 신인 시절 이를 알고 역이용해 김국진에게 "아 형, 저번에 빌려준 거 왜 안 갚아?"라고 하면서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3번이나 받아봤다는 것이다. 김국진은 깜빡 속은 나머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 잊어버렸구나. 미안."이라고 하면서 김수용이 말할 때마다 계속 그 돈을 줬다고 한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으니까 쉽게 속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정말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김국진급의 억대 수입/지출을 내는 사람이면 개인 대한민국 공인회계사가 필요하다. 다만 이런 성향이 어차피 번 돈이 많아서 돈 쓰는데 무신경한 게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김용만이 김국진의 모친께 들은 바에 따르면 '등록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선뜻 돈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었다'라는 일화가 있는 걸로 봐선 부의 유무와 상관 없는 원래의 성격인 듯하다.
- 전성기 때의 인기에 비해서 연예대상(당시 코미디대상) 수상은 2번 밖에 없다. 김용만, 이경규, 김국진 이렇게 돌아가면서 받았다는 게 김국진의 기억이다.[45] 대신 MBC 다큐멘터리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에 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에도 올라있을 정도로 영향력은 컸다.
- 과거에 김용만과 라디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아침 시간대였는데, 문제는 둘 다 아침잠이 많아서 툭하면 둘 중에 하나가 늦잠 자서 지각하는 경우가 많았단 거다. 언제는 지각해서 본인의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고 가고 있는데, 둘 다 안 와서 라디오를 PD가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걸로 보인다. 김국진이 인창고등학교 시절에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공부를 했고, 2005년 경에 김용만과 같이 중국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점, 공백기 기간에도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점에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f(x)가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 빅토리아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거나 간간히 중국어를 하는 점, 효연이 라디오 스타에 나와 중국어로 음식 주문을 할 때도 이해하던 모습, 차오루와 라디오 스타에서 대화할 때도 중국어가 말 끝마다 나온 점을 보면 중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실력인 것으로 보인다. 불타는 청춘에서도 멤버들과 홍콩에 갔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중국어 실력을 보여 주었다.
-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고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인 듯 하다. 남격 절대권력 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상 181cm에 75kg, 김국진은 171cm에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허리 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46] 과거 구준엽과 철봉 매달리기 대결에서는 구준엽은 얼굴이 시뻘개져 떨어지고 난 후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철봉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라디오 스타 추신수 편에서는 마른 체격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MC들 중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링크(저작권 관련 차단됨).
- 축구도 굉장히 잘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47] 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대놓고 반말을 막 사용하는 데에 반해 유독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배짱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 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각각 연예계와 체육계에서 핫한 두 사람의 만남[48] 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 김국진보다 5살 형인 이경규가 사석에서 유독 어려워하는 후배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경규가 회식을 한다고 모두 가자고 할 때 후배 중에 유일하게 거절하고 집에 가도 이경규가 한 마디도 못했다고 한다. 다만 김국진이 공과 사를 구분하고 따질 건 따지는 성격이라 서로 존중하는 관계이다.[49] 사실 둘의 사이는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과거 감자골 이적 사태에서 여론이 안 좋게 형성되어 방송사 내부에서 받아주지 말라는 의견이 팽배했는데, 이경규가 나서서 감자골 멤버들의 이적을 지지했다고... 물론 이경규 본인만의 주장이다. 후일 밝혀졌지만 박명수가 말하길 자신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배후 조종을 해서 처음엔 감자골 멤버들의 이적을 막았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한 걸 보면 심하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명랑히어로 김국진 편에서 이경규가 했던 말에 따르면, 그가 일본 유학을 가 있을 당시 다른 연예인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김국진이 일본에 온다는 연락을 듣고는 일부러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었을 정도. 그런데 정작 공항에서 마주친 김국진은 '어? 형이 일본에 있었어?'라고 반응하여 이경규를 삐지게 만들었다. 물론 이건 일부러 한 장난이라는 것이 김국진의 설명.
- 커피를 엄청 좋아해서 하루에 인스턴트 커피를 30~40잔씩 마신 적이 있다고 한다. 매니저가 건강이 걱정되어 하루에 3잔만 먹으라고 제한을 뒀는데, 참을 수 없었는지 당시 같이 시트콤을 찍던 문세윤에게 매니저 몰래 커피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해서 3잔 넘게 마셨다고 한다. 맛있는 녀석들이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언급되었는데,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안 시키는 김국진이 최초로 심부름을 시켰다며 놀림거리가 되었다.
- 라디오 스타 '괜히 바꿨어 특집'에 출연한 나나가 봉춤을 선보이자 직접 해 보기도 했다. 다리 힘만 가지고 봉에 매달리기를 시전할 정도.# 이후 2016년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김동현에게 기습을 해서 김동현의 항복을 받아낸다.
- 2010년 남자의 자격에서 만난 유기견 덕구를 반려견으로 키우고 있다. 유기견이라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으나 국진의 정성에 마음을 열고 김국진 껌딱지가 되었다. 2017년 불타는 청춘에 재등장했는데 여전히 김국진을 껌딱지처럼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제명된 모 프로게이머가 그와 닮았다. 그래서 이런 짤방이 있을 정도.
- 2010년 12월 27일 날 방영된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실제상황 알아야 산다 지진 편에서는 김국진이 보라매 안전 체험관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김국진은 아! 지진이구나 라며 차분하게 있었고 보라매 안전 체험관에서 규모7을 그대로 재연해 낼 수가 있냐고 감탄을 했다. 참고로 김국진은 1994년 LA에 있다가 규모 7.6의 강진을 느꼈다고 했고 불타는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LA에서 7.6의 지진으로 접시가 막 떨어졌다는 얘기가 있었다.
- 유시민하고 닮았다는 얘기가 있다.
6.1. 미담
미담이 많은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
- 장애인과 저소득층 가정에게 의류 2억 2천만원 어치를 기부했으며, 2007년에는 서울대학교병원에 1억 3천만원 상당의 의류를 기부하는 등 상당한 대인배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 십일조를 했었는데, 김국진의 최전성기 시절 1달 수익에 정확하게 10%를 성당에 기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김국진의 최전성기에 김국진이 말한 바에 따르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억을 벌 수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 김국진은 어려운 시기에 결혼했던 김수용에게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갈 거냐?"고 묻자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하자 김국진은 신혼여행 경비를 다 대준다며 선뜻 큰 돈을 입금해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하이난으로 신혼여행 갔다 왔는데도 돈이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수용은 김국진에게 갚아야 할 0순위라고 말했다. 또한 평소에 옷을 사는데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하루는 겨울에 김수용과 만나서 얘기하다가 "아, 추워. 야 옷 사러 가자."라고 하더니 겨울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옷을 전혀 입어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특정 옷을 가리키더니 "저거 미디움 사이즈로 주세요."하더니 그냥 받아서 입고 계산해버렸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서 옆에 있던 김수용에게도 "야, 너도 하나 입을래?"라고 하면서 또 아무렇지 않게 옷을 사줬다고 한다.
- 코미디 업계에서 많이 있는 선후배간의 강압적인 악습[50] 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또 한 일화로는 커피 심부름하러 온 김숙이 뒤에 김국진이 있던 것을 모르고 스무잔이나 되는 커피를 뽑기 위해 자판기를 혼자 사용하자, 그저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자기 순서를 계속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뒤늦게 자기 뒤에 대선배 김국진이 있자 당황한 김숙이 미리 뽑은 커피를 건네자 "음~ 나는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안 시켜" 하며 먼저 뽑아야 할 만큼 뽑으라며 계속 기다리다 자기 커피를 직접 뽑아서 갔다고 한다.
- 김숙이 신인 시절 동기들과 함께 김국진과 같은 지방 행사를 갔던 시절 김국진은 김숙에게 "돈 받고 행사 오느냐"고 물었고, 김숙이 자기들은 신인이라서 무대 경험을 쌓으라 해서 온 거라며 행사비를 못 받았다고 말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라며 "개그맨의 자긍심을 가져라. 똑같이 나눠 써"라며 자신의 행사비 전부를 후배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 김국진의 데뷔 초기, 당시 KBS는 쇼 비디오 자키나 한바탕 웃음으로 같은 콩트형 프로가 아직 인기였던 시점이었다. 코너별로 주도하는 선배 개그맨들이 있고, 이들이 함께할 후배들을 모아서 함께 코너를 만들면서 전체 프로그램을 이루는 체제였다. 막 데뷔한 신인들은 1초라도 더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선배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기회가 찾아오면 반드시 잡으려 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국진은 이 와중에도 자신에게 온 출연 기회를 다른 후배나 동료에게 '이번엔 너한테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넘겨주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박수홍이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에피소드로,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20대 초반 연예계에 데뷔한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이런 김국진의 모습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생면부지 학교 후배가 찾아와서 '갚을테니 등록금 좀 내 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200만원을 준 적도 있으며[51] , 김용만이 방송 잘 안 되던 시절 방송을 접으려고 할 때 김국진은 자기가 받은 계약금 3천만원을 그냥 준 적도 있다고 한다.#
- 배우 송은영은 15년 만에 방송에 복귀한 불타는 청춘에서 "19세일 때 방송 활동 처음 하면서 친한 사람이 없던 시절 김국진이 잘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소회를 밝히며 김국진과 통화했다.#
[1] 과거에는 1966년생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남자의 자격에서 생년월일 앞자리가 650206로 공개되었다. 라디오스타에서 65년생인 이승환과 동갑이라고 밝힌 적도 있었으나, 빠른 66년생인 이원종과 친구라고 하기도 하였고, 64년생인 견미리와 동갑이라고 하는것으로 보아 빠른 65년생으로 보인다. 단, 이승환과 동갑이라 하는걸 보면 비슷한 연령대면 크게 나이를 따지지않는 것으로 보이며, 빠른 66년생인 이원종과 친구라는걸보면 빠른을 적용했지만 본인이 학교를 1년 유급 되거나 늦게 간걸수도 있다.[2] 공교롭게도 동명이인인 성우 김국진도 강원도 인제군 출신이라고 한다.[3] 윤종신과 비슷하며, 김국진이 미세하게 작다. 윤종신이 168~169cm 전후 포털 프로필상 171cm이다.[4] 강수지와 강수지의 前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5] 법적으로 김국진 딸이 된 만큼 김비비아나로 개성했을 가능성도 있다[6] 재혼 이후 개종하였다.[7]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과 같은 기수며 거기에 그 동명이인의 성우도 동향 출신이다.[8] 이 항목 2번 문단에 자세하게 설명되있지만 결국엔 코미디계 선배들과 윗분들의 괘씸죄라는 건 세상 천지가 다 아는 사항이기 때문에, 근래에는 그런 거 없이 코미디계 후배들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잘 해준다. 당시 동참하진 않았지만 감자골을 제외한 유재석, 남희석을 비롯한 동기들이 평소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살벌한 그 코미디계에서도 똥군기 없이 성격 좋기로 유명한 감자골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9] 유재석의 시대에는 강호동이라는 쌍두마차가 있었으며 신동엽처럼 나름의 인기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김국진의 전성기에는 그냥 김국진 단 한 명만이 독보적인 인기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들 대부분이 김국진의 유행어들을 일상에서 따라하던 수준이였으니...[10] 다만 유재석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11] 11사단에서 보병으로 복무했다.[12] 대선배지만 후배를 아끼고 이해하기로 유명.[13] 이때 김국진을 탤런트실에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밝혔다.[14] 2016년 10월 26일 라디오 스타에서 박수홍이 밝힌 바로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비자 발급 인터뷰 문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에 ''예''를 체크하는 바람에 실제로 미국에 몇 년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처음엔 김수용이 미국에 오기 싫어 거짓말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 김수용은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을 할 생각으로 밴쿠버로 건너갔다고 한다. 골프장을 가로질러서 국경을 건널 생각이었으나 절벽이라 못 넘었고, 멕시코 마약 밀매단에 섞여서 건너오는 방법과 국경 근처에서 헤엄쳐서 건너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만 하고 돌아왔다 한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 본인이 출연해서 직접 언급. 참고로 이런 밀입국은 절대 하면 안되는게, 미국은 밀입국자가 하도 많다보니 출입국 심사 자체가 엄격하고 밀입국자로 인한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다보니 이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국의 시선을 피해도 정상적인 직업을 찾는 건 불가능하고 갑질에 시달리는 건 물론, 잘못하면 영영 미국 방문할 길이 막힐 수도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이걸 감수하고 오는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생활이 고국보단 그나마 낫기 때문. 치안도 나쁘지 않은 한국에서 멀쩡히 살던 김수용이 진짜 이 길을 택했으면 정말 바보짓이다. 의리와 젊은 혈기 때문에 갔었던 듯.[15] 귀국 후 처음에는 KBS에서 '오키도키쇼', '토요일 7시가 좋다' 등의 프로그램을 김용만과 진행하다가 1995년 중반 MBC의 '도전 추리특급'과 '테마게임'을 진행하면서 활동 영역을 MBC로 옮기게 된다. 청춘행진곡 폐지와 함께 개그계에서 은퇴한 박세민 이원승, '청춘행진곡'이 폐지되어 SBS로 이적했던 김창준, 김은태, 이웅호 등의 대안으로 김국진과 김용만을 영입한 것으로 추측된다.[16] 물론 이전에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 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증이 될 듯.[17]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 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 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 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18] 실제로 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19] 다른 항목의 1위와 그 아래 차순위자와의 % 차이가 비교적 격차가 많이 안 나는 상황에서 김국진은 혼자 2~10위를 합해도 이길 수 없는 독보적인 1위를 한 것만 보더라도 대단하다.[20] 대원씨아이에서 펴내던 V점프의 한국어판. 말이 한국어판이지 사실상 로컬라이징이다.[21] 당시 전성기였던 송윤아가 상대역이자 여주인공인 한정은 역을 맡았다.[22] 참고로 <반달곰 내사랑> 출연진이었던 이세은, 박정수 등은 차승원이 출연한 드라마인 KBS 2TV 보디가드에서 조연이었는데, 이 드라마 출연진 중의 한 명인 이원종은 김국진의 대학 1년 후배다.[23] 이영자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정극 드라마 출연을 했다. 그 전에는 시트콤이나 특집극 위주로 출연했다.[24] 90년대에 '''일주일에 1억'''을 벌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건강 때문에 스케줄을 절제한 결과라고 한다.[25] 1990년대에도 골프를 취미로 했었다는 말을 박수홍이 라디오 스타에서 언급하긴 했었다.[26] 그나마 골퍼로서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집중력 향상 드링크제 광고를 찍기는 했다.[27] 근데 이 합격 기준 타수라는 건 매해 해당 코스의 난이도에 따라 설정되는 건 감안해야 된다.[28]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29] 김국진의 성격을 감안해본다면 빠른 이혼을 위해서 위자료를 줬을 확률이 높다. 왜냐면 짧은 결혼 생활 속의 위자료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당시 김국진의 재산 등을 감안하면 이게 맞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윤성과의 결혼 생활이 어쨌든 그녀와의 결혼 이후 김국진이 망가진 걸 감안한다면,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김국진 인생에서 최악이었을 테니 하루빨리 이혼을 위해 위자료를 준 거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외도설 또한 상당히 탄력받을 수밖에 없는 게 이윤성이 현 남편을 만난 시기가 김국진과 결혼 생활 중이었을 때니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30] 아래에 김수용에게 빌리지도 않은 돈을 세 번이나 갚은 일화만 봐도 돈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보니 채무자에게 딱히 독촉도 할 리 없고, 돈을 악착같이 받아낼 리도 없다보니 많이 당한 것으로 보인다.[31]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고 대답을 했다.[32] 이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33] 감자골 멤버들이 모두 인성이 좋았던 것으로 유명했었으며 침체기 이후 동기들과 후배들이 나서서 도와줬다는 점에서 복귀 과정이 김수용과 비슷하였다.[34] 다만 비난과 별개로 당시 라디오스타의 근본없고 막나가는 컨셉과 딱 맞았기 때문에 이 시절을 라디오스타의 전성기로 회고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면 김국진이 차분하게 진행을 하려는데 김구라가 아픈 곳을 찌르며 돌직구를 던지면 윤종신이 이를 받아 깐족거리고, 옆에서 신정환은 한 술 더 떠는 형식. 이 과정에서 수습해보려던 김국진이 결국 폭발해 버럭하면서 "야야야!"하면서 대본을 집어던지고 김구라의 멱살을 잡으며 절정에 달하는 방식.[35]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36] 당시 김국진은 본의 아닌 강제 휴식기 후 중증 대인기피증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작진들과의 만남에서도 긴장과 두려움을 심하게 느끼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나왔다.[37] 더 나아가 나중에는 김구라, 문희준과 함께 절친노트의 MC로 발탁되면서 재기에 성공했음을 대중에게 각인시킨다.[38] 사실 전성기 때도 김국진의 포인트 중 하나는 귀여움이었다. 그 시절은 남자에게 절대로 귀엽다는 말을 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귀엽다는 말을 실제로 들은 적은 없지만, 사실 빵 터지는 개그맨까진 아니던 김국진이 절대적인 인기를 누린 건 캐릭터 자체가 극히 호감형이었다는 것. 특유의 혀짧은 말투만 해도 김국진이 대놓고 민 건 하나도 없으나, 특유의 말투나 엉성한 행동이 너무 재밌고 호감가서 다들 따라한 것. 물론 김국진이 캐릭터 하나만으로 인기를 끈 건 아니고 연기력이나 개그감도 훌륭한 편이었다.[39] 물론 두 사람은 프로그램 출연 전부터 25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이. 2016년 첫 촬영 시기부터(2월 16일 방송분으로 추정) 수상 소감의 영향인지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의 김국진을 볼 수 있다. (??? : 딱 좋아요!)[40] 시청자들은 역대급 수상 소감이라고 얼른 결혼하라고 난리.[41] 남자의 자격에서 라면에 '''포도주를 넣는''' 용자짓을 저질렀다. 결과는 기껏 넣은 포도주가 라면스프 맛에 묻힌 '와인 실종 라면'(...).[42] 집밥 백선생 시즌 2 첫 방송에서 김국진이 말하기를 김국진의 어머니가 얼마 전 큰 수술을 하셔서 언제나 차려주시던 밥이 없었고,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43] 명랑히어로 회고전에 출연할 당시, 게스트로 출연한 김용만이 미국에서 함께 살았을 때 이야기들만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 담배를 사러 갔는데 점원이 2벅스(=달러)라고 말하는 걸 '박스(=갑)'으로 잘못 알아듣고 싸운 일이라든가, 개 사료(...)를 갈아만든 고기 패티인데 사료라고 써 있는지도 모르고 밥에 얹어서 먹은 일화 등. 군대에서는 번역병이었다고 한다. 번역병 선발 당시, 장교가 하는 질문에 영어로 대답해야 했는데 영어 할 줄 모른다고 끝까지 버텼으나, 정작 '영어 할 줄 알면서 일부러 뺀다'면서 차출되었다.(...) 그래도 남자의 자격 강연 당시, 일상영어는 거의 못하지만 미국 가서 무기 사오라고 하면 사올 수 있다(...)고 말한 걸 보면 그런대로 열심히 수행한 듯. 사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원어민 교사란 개념도 거의 없고 책으로만 배우는데다가 쓸 일도 거의 없다 보니 직무와 영어가 관련있지 않는 이상 고학력자나 전공자들도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44] 그래도 남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45] 부연하자면 김국진은 전성기가 1996년~1999년 초 정도로 길지 않았고, 그 중간인 1997년에는 양심냉장고로 초대박을 터뜨린 이경규가 받았기 때문.[46] 선후배 순, 김국진 > 윤형빈 > 타카야. 예능 방송 특징상 설정일 수도 있다.[47]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48] 요즘으로 치면 유재석과 박지성의 만남급이라 볼 수 있다. [49] 라디오 스타에서 남자의 자격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김국진이 실수로 출연진들의 짐을 숙소에 두고 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공황장애 증상이 심했던 이경규는 그 전에 윤형빈이 사막에서 차가 빠진 에피소드 및 여러 상황이 누적되면서 화를 제어하지 못하자 '형 정말 이런 말하기 죽도록 싫은데... 미안해'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때 이경규는 김국진이 자신한테 좀처럼 보기 힘든 사과를 하자 엄청 좋아했다.[50] 대한민국의 코미디 업계는 선후배 관계가 군대 이상으로 엄격하다. 불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 집합과 체벌이 만연했으며, 2005년에는 개그계의 또 하나의 흑역사가 발생하기도 했다.[51] 해당 에피소드를 마냥 미담으로 보기는 뭐한게 당연히 돌려받지 못했다. 즉 사기당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