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구/한국

 



  • 금강거사 윤언이[1]

春復秋兮 花開葉落 춘부추혜 화개엽락

봄 지나 가을 되니 피는 꽃 지는 잎이고

東復西兮 善養眞君 동부서혜 선양진군

동북동에서 다시 서로 바꾸니 내 본성을 잘 양생하리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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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途中 反觀此身 금일도중 반관차신

오늘 길 가는 도중 내 몸을 돌이키니

長空萬里 一片閑雲 장공만리 일편한운

머나먼 하늘의 한 조각 뜬 구름이로다.

比因左目患 久矣不作詩 비인좌목환 구의부작시

요즈음 오른쪽 눈이 아파서 오랫동안 시를 짓지 못했네

猶有右目存 云何迺如斯 유유우목존 운하내여사

그래도 왼쪽 눈이 남아 있는데 어째서 시를 짓지 못한단 말인가

君看一指傷 滿身苦難支 군간일지상 만신고난지

손가락 하나가 아파도 온 몸이 괴로워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安有目官慟 同類恬不隨 안유목관통 동류념부수

같은 종류의 눈이 아픈데 어찌 같이 따라 아파하지 않겠는가

興復從何出 而事作詩爲 흥부종하출 이사작시위

흥취가 다시 어디에서 나와서 시를 짓겠는가

이규보의 마지막 작품으로 전해진다.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이규보는 이 시를 1241년 8월 29일에 지었고, 그 해 9월 초 2일에 세상을 떠났다.

桃花香裏幾千家 도화향리기천가

복사꽃 향기는 수천 집을 감쌌는데

錦幄氤氳十里斜 금악인온십리사

비단 휘장 향취는 십 리에 빗겼구나

無賴狂風吹好事 무뢰광풍흠호사

난데없는 미친 바람 좋은 자리에 불어와

亂驅紅雨過長河 난구홍우과장하

붉은 꽃잎 마구 몰아 긴 강을 지나가네

최씨 무신정권의 3대 집정인 최항이 죽기 직전에 남긴 시다. 아비인 최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꽤나 감성적으로 멋들어진 시를 남겼다

操存省察兩加功 조존성찰양가공

조존과 성찰[3]

두 일에 공력을 다 기울여

不負聖賢黃卷中 부부성현황권중

서책 속 성현 말씀을 저버리지 않았네

三十年來勤苦業 삼십년래근고업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공업

松亭一醉竟成空 송정일취경성공

송정 한 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구나.

다만 이 시는 정도전의 사세구가 아닐 가능성도 크다. 자세한 것은 정도전 항목 참고.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북치는 소리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西風日欲斜 서풍일욕사

서풍에 해는 뉘엿뉘엿 지누나.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던데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고 갈꼬.

愛君如愛父 애군여애부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했고

憂國如憂家 우국여우가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했네.

白日臨下土 백일임하토

하얀 해가 아랫세상을 굽어보니

昭昭照丹衷 소소조단충

붉은 충정을 밝게 비추리.

只知有國 지지유국

나라가 있는 줄은 알았으나

不知有身 부지유신

내 한 몸 있는 줄은 알지 못했네.

山無語杜宇啼啼 산무어두우제제

산은 말이 없는데 두견새는 울고 울며

杜宇啼啼山不答 두우제제산부답

두견새 울고 우는데 산은 대답이 없네

山雖無語意已足 산수무어의기족

산이 비록 말이 없으나 마음은 이미 족히 안듯 한데

淡月飛上梅杪白 담월비상매초백

어스름 달은 매화 끝 가지에 하얗게도 걸려 있구나

정확히는 사망 6일 전에 남긴 류성룡의 마지막 시이다.

千計萬思量 천계만사량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은

紅爐一點雪 홍로일점설

불 벌건 화로에 한 송이 흰 눈일세

泥牛水上行 이우수상행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大地虛空裂 대지허공렬

대지와 허공이 산산이 부서지더라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전거시아

팔십 년 전에는 저것이 나였는데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후아시거

팔십 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구나


四大假合 사대가합

훍과 물, 불과 바람이 모여서 된 이 몸

今將返眞 금장반진

이제 참된 나로 돌아가노라.

何用屑屑往來 하용설설왕래

무슨 까닭에 부질 없이 왔다 가면서

勞此幻軀 노차환구

이 허깨비 같은 몸을 수고롭게 하리오

吾將入滅 오장입멸

나 이제 멸도에 드노라.

雨後晴光萬綠新 우후청광만연신

비 개인 뒤 맑은 빛에 온갖 초목이 새로운데

一堂長少是君臣 일당장소시군신

한 자리의 늙은이와 젊은이는 임금과 신하로다

花臺柳榭渾如畫 화대류사혼여화

꽃 속의 대(臺)와 버들에 싸인 정자는 마치 그림 같은데

時有鶯聲喚主人 시유앵성환주인

때때로 들리는 꾀꼬리 소리는 주인을 부르는구나.

효종이 승하하기 1개월 전 잔치에서 읊은 시. 효종의 부마 정재륜의 <한거만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를 읊고 효종은 주변 신하들에게 "9월 가을에 단풍이 오면 다시 부르겠다"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뒷날 만날 것을 어찌 기약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시를 읊은지 1개월 후인 5월에 세상을 떴다. 죽기 직전에 남긴 시는 아니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전후 이야기로 보면 사세구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時來天地皆同力 시래천지개동력

때 오매 천지와 함께 힘썼지만

運去英雄下自謨 운거영웅하자모

운이 다한 영웅은 꾀할 바 없도다.

愛民正義我無失 애민정의아무실

백성을 향한 정의에 내 잘못은 없으나

愛國丹心誰有知 애국단심수유여지

나라 위한 충정을 그 누가 알아 주랴.

  • 매천 황현[4]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나는 새와 들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우리 세상 이미 잠기고 빠져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잔아래 책 덮고 흘러간 긴 역사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의 글 아는 자 되기 정말로 어렵도다.

  • 벽산 김도현[5]

我生五百末 赤血滿腔腸 아생오백말 적혈만강장

조선왕조 마지막에 세상에 나왔더니 붉은 피 끓어 올라 가슴에 차는구나.

中間十九歲 鬚髮老秋霜 중간십구세 수염노추상

19년 동안을 헤매다 보니 머리털 희어져 서릿발이 되었네.

國亡淚末己 親沒痛更張 국망누말기 친몰통갱장

나라 잃고 흘린 눈물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마저 가시니 슬픈 마음 더더욱 섧다.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독립고산벽 백계무일방

홀로 고향 산에 우뚝 서서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가히 없다.

欲觀萬里海 七日當復陽 욕관만리해 칠일당부양

저 멀리 바닷길 보고파 했더니 7일 만에 햇살이 돋아오네.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백백천장수 족오일신장

천길 만길 저 물속에 뛰어들면 내 한 몸 파묻기 꼭 알맞겠네.

五十年來判死心 臨難豈有苟求心 오십년래판사심 임난기유구구심

오십 평생 죽기를 다짐했던 이 마음, 국난을 당하여 어찌 살 마음을 먹으리

盟師再出終難復 地下猶餘冒劍心 명사재출종난부 지하유여모검심

다시 군사를 일으켰지만 끝내 나라를 찾지 못하니, 지하에도 남아 있을 칼날 같은 이 마음.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상 유재춘풍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부는구나

有身無國 壹無感想 유신무국 일무감상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 박상진[6]

難復生此世上 幸得爲男子身 난부생차세상 행득위남자신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 다행히 장부의 몸을 얻었건만

無一事成功去 靑山嘲綠水嚬 무일사성공거 청산조록수빈

이룬 것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하니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비웃는구나.

母葬未成 君讐未復 모장미성 군수미복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하고, 임금의 원수도 갚지 못했네.

國土未復 死何面目 국토미복 사하면목

나라의 땅도 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 가나.

  • 덕홍 심남일

文明日月此江山 忽入腥塵暗曖間 문명일월차강산 홀입성진암애간

해같이 밝고 달같이 밝던 이 강산, 홀연히 성진에 덮여 앞이 캄캄한데

未覩一晴歸地下 千秋化碧血痕班 미도일청귀지하 천추화벽혈흔반

미처 맑은 날 맞아 못한 채 지하로 돌아가니 멍든 피 푸르러 천 년은 가리.

[1] 고려문신. 여진 정벌로 유명한 윤관의 아들이자 김부식의 정적. 이 시를 남기고 앉은 채로 죽었다고 한다.[2] '조물주를 잘 봉양하리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3] 조존성찰(操存省察)은 성리학에서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4] 구한말의 유명한 기록물 중의 하나인 매천야록의 그 황현 선생. 한일 강제병합이 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원래 절명시는 총 4수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 3수를 싣는다.[5] 순국하기 1년 전에 쓴 것이지만 절명시로 취급된다.[6] 두 시 중에 아래에 있는 시는 사형당하기 하루 전에 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