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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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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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
'''기본 정보'''
위치
이탈리아 로마
종교
가톨릭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지위
대성전(Major Basilica)
수석사제
스다니스와프 리우코 추기경
'''건축 정보'''
양식
바로크
'''건축 내역'''
전체 길이
92m
전체 너비
80m
신랑 너비
30m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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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글
[1]
영어
[2]
프랑스어
[3]
국가·위치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0년
등재기준
(i)[4], (ii)[5], (iii)[6], (iv)[7], (vi) [8]
지정번호
91
1. 소개
2. 역사
2.1. 창건에 얽힌 전설
2.2. 확장
3. 건축
4. 기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Virtual Tour
라틴어
Basilica Sanctae Mariae Maioris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영어
Papal Basilica of Saint Mary Major

1. 소개


로마 4대 대성당 중 하나. 로마 시내 한복판에 있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서방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성당이다. 1980년,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8월 5일을 성모 대성전 봉헌 축일(In Dedicatione Basilicae S. Mariae)로 기념하며, 로마 보편 전례력상 해당 축일은 선택적으로 기념할 수 있다.

2. 역사



2.1. 창건에 얽힌 전설


전설에 따르면 325년, 아들이 없어서 걱정하는 로마 귀족 조반니 부부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내일 아침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으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부부가 일어나 교황 리베리오(Liberius)에게 가서 꿈 이야기를 하자, 교황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하며 눈 내린 곳을 찾았는데, 한여름 8월 5일 아침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었다는 것. 성모의 말에 따라 '눈의 기적'이 일어난 에스퀼리노 언덕에 성당을 지었다. 이 전설 때문에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도 부른다. 창건 당시에는 교황의 이름을 따서 리베리오 대성당(Liberian Basilica)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매년 8월 5일 이곳에서 집전하는 미사 때는 전설 속의 하얀 눈을 상징하는 흰 꽃잎을 뿌린다.

2.2. 확장


431년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소집한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고, 성모 마리아를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 즉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황 성 식스토 3세는 기존에 로마 시내에 있었던 리베리오 대성당을 거대하게 확장하여 성모공경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9세기까지 여러 번 증개축이 있었다.

3. 건축


여러 번 개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실리카의 원형을 어느 정도 보존했지만 궁전과 같은 면도 있고, 로마네스크, 바로크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431년 세워진 이후로 바실리카로서의 외형이 유지되었다가 10세기부터 18세기까지 증·개축을 시작해 137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75 m 높이의 종루가 추가로 세워졌다. 1743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지시로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이 되었으며 이때 설계자로 발탁된 페르디난도 푸가가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를 설계했고, 로지아[9]를 설계하면서 정면 윗부분 아치형으로 된 곳의 내부에는 13세기 때 제작된 내부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푸가가 설계할 당시 그때까지 남아 있던 내부 모자이크가 전혀 손상 없이 오히려 새로운 설계의 정면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옛것과 새것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도록 한 설계 정신 덕분에 푸가는 후대의 건축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내부의 경우 내부 길이가 85 m로, 상술한 바와 같이 바실리카의 평평한 천장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나 1489년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을 도금한 격자형으로 디자인했다. 여기에 사용된 황금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유럽인들이 수확하여 맨 처음 들여와 교황청에 헌납한 것이며, 그외에도 모자이크화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다. 예수가 태어날 때 사용된 구유로 알려진 성유물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세례당은 1862년 발라디에가 설계했으며,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조각한 성모 승천 부조를 장식했다.
성당 정면에 놓인 원기둥은 로마에 창궐하던 역병이 번지는 것을 막아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기 때문에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 청동상이 놓여져 있다. 이 기둥은 포로 로마노에 위치한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을 1614년에 옮겨왔다. 성당 뒤쪽에 있는 오벨리스크아우구스투스 영묘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로마 제국 시절 로마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형문자가 새겨지지 않았다.

4. 기타


로마에 있는 4대 대성당과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을 포함한 5개의 성당들은 고대 그리스도교 세계의 5대 총대주교 관구(Pentarchy)들과 각각 연계되어 로마가 다섯 개의 총대주교 관구들 가운데서도 그 정점에 있음을 나타냈는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안티오키아와 연계되었다.
성당 앞뒤로 광장이 있는데, 오벨리스크가 서있고 둥근 제대 뒤가 보이는 곳은 입구가 아니다. 반대쪽에 제대로 된 입구가 있다. 성당 안에 설치된 우체통은 이탈리아 것이 아니고 교황청 우체통이다.
17세기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신심 깊 은 가톨릭 신자라면 바티칸이랑 라테란은 틀림없이 다녀올 것이고, 성 바오로 대성당은 못 가봐도 여기는 다녀올 것이다. 왜냐면 '''너무 찾기 쉬운 곳에 있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걸어서 5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니 못 찾는 게 더 이상할 지경. 정말 대충 걷다보면 지루하게 보는게 저 뾰족탑이다.
1506년 1월 14일, 이곳 부근 포도밭에서 라오콘이 발견되어 교황 율리오 2세가 이를 구매했고, 그로부터 바티칸 미술관의 500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1]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2]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3] Centre historique de Rome, les biens du Saint-Siège situés dans cette ville bénéficiant des droits d'extra-territorialité et Saint-Paul-hors-les-Murs[4]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5]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6]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7]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9] 한쪽에 벽이 없는 복도 모양의 방으로, 복도가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건축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