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토스

 

[image]
'''강민, 박정석, 박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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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토스의 양대 개인리그 경력'''
'''이름'''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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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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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본선 횟수
강민
'''1'''
1
0
4회
'''1'''
1
4
12회
박정석
'''1'''
1
2
13회
0
2
0
6회
박용욱
'''1'''
0
1
7회
0
1
1
6회
2002~2003년 토스 우승자들이자, 토스의 희망이라고 불린 세 게이머들의 통칭.
몽상가 강민, 영웅 박정석, 악마 박용욱이 그 일원이다. '광등녹'이라고도 불린다.[8]
전부 우승자 출신이며 개인 리그 2회 이상 결승 진출[9], 양대 개인리그 결승 진출, 프로리그 및 팀 리그 결승 진출 경험[10][11]이 있는 토스 상위 1퍼센트의 게이머들이다. 당시 임이최와 같은 시대의 지배자들과 치열하게 다투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4강에 프로토스만 3명이 진출했는데 그 세 명이 바로 이 삼대토스였다. 박용욱이 1위, 강민이 2위(이때 옐로로더가 되었다), 박정석이 4위를 차지하는 등 호성적을 냈다(참고로 3위는 박경락).
박정석은 정파 프로토스의 대표주자로서 물량, 컨트롤로 유명했으며 강민은 특유의 전략을 중점으로 삼은 몽상가스런 플레이로 유명했다. 박용욱은 이 둘을 반쯤 섞은 듯한 플레이와 특유의 악마같은 프로브 컨트롤로 이름을 날렸다. [12] 다만 이미지만큼 실제 플레이 성향이 차이가 나진 않는데 삼대토스가 격돌한 마이큐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보면 강민은 물량과 정석적 운영을 통해서 박정석과 강민을 상대했고 박정석과 박용욱은 다크템플러와 다크아콘 마인드컨트롤을 활용하는 등 전략적 플레이를 많이 보여줬다. 이미지와 달리 셋 모두 물량과 전략에 능했다는 말.[13] 물론 가장 임팩트 있는 경기는 저 이미지들이 맞다.
박정석은 양대 개인리그 중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강세를 보였고 반대로 강민은 MSL에서 강세를 보였다는 점도 흥밋거리이다.[14][15][16] 박용욱은 굳이 따지면 본인이 우승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쪽이 성적이 조금 더 좋긴 하지만 경력으로 살펴보면 어느 한쪽으로 크게 쏠리는 정도는 아니다.[17]
또한 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18][19]로도 유명했는데 이는 프링글스 MSL 시즌1에서 역전되었다.[20]
서로간의 전적은
강 민 12 : 12 박용욱(비공식전 포함 16 :16)
박용욱 2 : 4 박정석(비공식전 포함 2 : 5)
박정석 3 : 5 강 민(비공식전 포함 7 : 10)[21]
사실 전성기 때는 전태규까지 껴서 사대 토스라고 불렸지만 그는 심각한 토막이었고 끝내 우승을 하지 못하며 빠지고 삼대 토스로 정착되었다.
그 이후 오영종 - 박지호 - 송병구 등의 신 삼대 토스에게 바통을 잇는다. 물론 강민은 과의 성전을 펼치는 등 활약을 이어가긴 하지만...
강민, 박정석, 박용욱 이전에 임성춘, 김동수, 송병석이 먼저 삼대토스[22]로 유명했다. 강민, 박정석, 박용욱은 따지자면 2대째 삼대토스인 것.
호사가들 사이에서 구 3대 토스와 신 3대 토스 사이에 안기효 - 김성제 - 전태규 or 박정길 등을 넣어서 낀 3대 토스라고 칭하기도 하였다.[23] [24]
2007년 올드들의 동반 부진 및 강민과 박용욱의 해설자 전향으로 사실상 수명을 잃었으며 이후 육룡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브루드 워 공식 리그 종료 이후, ASL-KSL 체제의 아프리카 스타판에서 프로토스 강자로 꼽히는 정윤종, 변현제, 장윤철을 묶어 신 3대토스란 말이 다시금 쓰이고 있다.
3대 토스에 드는 게이머들은 모두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 여기서 떨어진 사람들이 가장 처음으로 떨어진 것. 16강 중 등수로 따지면 13~16위. 4강권 아래의 이런 등수들이 뭐가 중요한가 싶겠지만 패자조 어디에서 탈락했느냐가 다음 시즌 본선 진출을 위한 마이너리그에서 1라운드에 배치될지, 그 1라운드의 승자와 붙을 2라운드에 배치될지와 직결된다.[2] 여기서 떨어진 사람들은 9~12위.[3] 여기서 떨어진 사람들은 7~8위.[4] 여기서 떨어진 사람들은 5~6위.[5] 여기서 떨어진 사람이 4위.[6] 여기서 떨어진 사람이 3위.[7] 더블 엘리미네이션 시절의 '4강'은 토너먼트와 달리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승자조는 8강-4강-결승의 3단계으로 직관적이지만, 패자조는 8강 1차[1]-(승자조 8강에서 떨어진 사람들과의) 8강 2차[2]-4강 1차[3]-(승자조 4강에서 떨어진 사람들과의)4강 2차[4]-준결승[5]-(승자조 결승에서 떨어진 사람과의)결승[6]으로 승자조의 3단계의 2배인 6단계다. 이 중 제5단계인 준결승까지 오면 거기서 져도 4위라서 그것을 토너먼트에서의 4강권으로 간주한다.[8] 강민의 별명 광민, 박정석의 별명 등짝, 박용욱의 별명 녹차에서 기원. 그러나 이 별명들은 멋져 보이는 것이나 본인들의 게임 방식에 중점을 둔 방송용 별명이 아니라 개그 소재가 된 게임 외적 부분들에서 나온 별명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광등녹이라고 불리는 일은 없다.[9] 강민 : 4회, 박정석 : 4회, 박용욱 : 2회[10] 다만 프로리그 우승 경력은 개인리그 성적이 가장 떨어지는 박용욱이 제일 화려하다. 강민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1회, 팀리그 우승 2회를 기록하였고, 박정석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4회,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1회, 팀리그 준우승 2회, 위너스 리그 준우승 1회를 기록했고 심지어 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위너스 리그 준우승 1회는 박정석이 전력 외 판정을 받았던 10-11 시즌과 11-12 시즌에 받은 것들이다. 그리고 박용욱은 프로리그 우승 4회와 준우승 1회, 그랜드 파이널 우승 1회와 준우승 1회, 팀리그 우승 2회를 기록하였다. 조진락에서 개인리그 성적이 가장 떨어지는 박경락과 같은 사례.[11] 그러나 단체전 개인 수상은 강민, 박정석 두 선수가 박용욱에게 전혀 밀리는 편이 아니었다. 강민은 프로리그 정규시즌 MVP 2회, 개인전 다승왕 2회, 결승전 MVP 1회를 수상하였고, 박정석은 개인전 다승왕 1회, 팀플 다승왕 1회, 팀플 역대 통산 다승 순위 2위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박용욱도 그랜드 파이널 결승전 MVP를 1회를 수상한 경험이 있다.[12] 돌아온 뒷담화에서 해설진들끼리 세명을 말하길 박정석은 정파, 강민은 사파라고 하며 박용욱은 마교라고 분류했다...[13] 후속세대인 박지호나 송병구도 물량을 많이 뽑고 정석적 플레이에 능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전략적 플레이도 상당히 많이 한다.[14] 박정석은 스타리그 본선 진출 횟수가 총 13회로 송병구에 이은 프로토스 2위이다. 그리고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2회를 기록하였다. 강민 역시 MSL 본선 진출 횟수가 총 12회로 김택용에 이은 프로토스 2위이다. 그리고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 4회를 기록하였다.[15] 다만 이 둘은 약세 쪽 리그 본선 진출 횟수가 적은 편에 비해 생각보다 경력상으로는 훌륭했다. 박정석은 MSL 본선 6회 진출 중 준우승 2회 기록, 강민은 스타리그 본선 4회 진출 중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16] 이 둘은 방송사의 단순 성적도 성적이지만 드라마틱한 부분 또한 존재했다. 박정석은 IOPS 스타리그 04~05의 유일한 프로토스였고 반대로 강민은 하나포스 센게임 MSL의 유일한 프로토스였다. 그야말로 각 방송사의 프로토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으며 이후 스타리그의 송병구와 MSL의 김택용이 이를 뒤따랐다.[17]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7회, MSL 본선 6회 진출로 양대 개인리그 본선 진출 기록도 비슷하고 MSL 준우승 1회, 4강 1회 등 MBC게임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18] 강민>박정석>박용욱>강민.[19] 다만 상대전적은 세명 모두 천적 느낌에 비해 생각보다 많이 차이 나지는 않는다. 큰 경기에 강렬하게 진 것이 팬들의 각 선수들 뇌리에 각인된 영향이 있기도 했다. 박용욱과 박정석은 전적 자체가 적고, 강민과 박용욱은 막바지에 강민이 많이 따라잡으면서 동률이 됐고, 박정석과 강민은 강민이 좀 더 우세한 정도.[20] '악마가 영웅의 심장을 빼았아 버리네요'라는 이승원 해설의 어록으로 유명한 박정석 vs 박용욱 815 lll 경기가 여기에서 나왔고 이는 박용욱이 프로게이머 데뷔 최초로 박정석에게 공식전 첫 승을 기록한 경기였다. 이후 4강에서는 강민과 박용욱이 만나게 되었고 여기서는 강민이 3:0으로 승리했는데 이는 강민이 박용욱에게 5전 3선승제 경기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경기였다.(이전까지 총 세 번의 5전 3선승제 대결이 있었는데 세 번 모두 박용욱이 강민에게 승리했었다.)[21] 비공식전 중 강민이 이긴 1경기는 두 선수가 다른 종족으로 맞붙었다.[22] 이당시는 프로토스를 토스로 줄이지 않고 삼대프로토스라고 주로 불렀지만[23] 사실 이쯤 되면 거의 의미가 없어지는 게 3대토스, 신3대토스에 낀3대토스를 포함하면 당시 프로토스 게이머 전체나 다름없어진다. 테란으로 따지면 임이최 외에도 변길섭, 김정민, 최인규, 서지훈, 이병민, 전상욱, 한동욱, 나도현, 변형태를 세명씩 묶어서 평가하는 셈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24] 그리고 이 당시는 프로토스가 그렇게 부각된 시기가 아니었다. 최연성을 필두로 한 테란과 박성준이 수장으로 있던 저그에게 기가 밀리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