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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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경력
1.1. 개인 리그
- 2003년 PGR21 3rd (vs. 안석열 1:2)
- 2004년 7차 iTV 랭킹전 예선 탈락
-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 우승 (vs. 안석열 2:0)
- 2004년 Gillette 스타리그 2004 16강
- 2005년 WCG 2005 예선 탈락 (vs. 이병민 0:2)
- 2005년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위 (vs. 전상욱 2:3)
-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4위 (vs. 박지호 0:3)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우승 (vs. 조용호 3:1) (우승 상금 : 4,000만원)
- 2006년 WCG 2006 한국 최종 선발전 4강 (vs. 전상욱 0:2)[1]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4위 (vs. 변형태 0:3)
- 2006년 신한은행 마스터즈 4강 (vs. 1:3)
- 2007년 Daum 스타리그 2007 16강
-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64강 (vs. 임성진 0:2)
-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
- 2008년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64강 (vs. 주현준 0:2)
- 2009년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3 64강 (vs. 김대엽 0:2)
-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 (vs. 한상봉 0:2)
1.2. 팀 단위 리그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 공동 3위 (KOR)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우승 (KOR)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3위 (KOR)
- 2007년 제2회 제2회 KeSPA Cup 준우승 (온게임넷 스파키즈)
2. 전적
3.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KOR#s-2 시절 차재욱과 함께 욱욱 브라더스로 통했으며, 2004년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 진출[2] 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스타리그에 진출한 마지막 케이스로, 지역 예선 → PC방 예선 → 듀얼 토너먼트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은 대기록이다[3] . 프로리그에서도 맹활약하여 KOR#s-2의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우승에 기여하였다.
변길섭의 고등학교 후배며 중학교 때부터 PC방에서 사사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희귀한 '''천재형 프로게이머'''라고 한다.[4] 팬들 사이에서는 젊고 스피드가 더해진 임요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냐하면 컨트롤과 테테전 운영, 그리고 토막#s-4 기질[5] (…) 때문이었다. 이와 반대인 타입의 게이머였던 선수가 진XX.[6]
플레이 스타일은 하나의 단어로 대변된다. '''스피드'''. 정말 미칠듯한 속도를 주무기로 하여 상대를 쉴새없이 공격하며 때려잡는 스타일. 스2의 스피드를 브루드 워에서 구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빠르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7] 변형태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공격형 테란이었다. 대 저그전에서 바이오닉 운영 능력이 최고였다면, 대 테란전에서도 당시의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할 정도로 드랍쉽을 이용한 난전 및 교전 능력의 탁월함으로 높은 승률을 보였다.[8]
대 저그전 강자 순위에는 항상 들 정도의 강력함을 자랑했지만 타이밍 자체는 매우 굳어있었다. 그러나 '''컨트롤이 환상적'''. 사이언스 베슬로 EMP로 디파일러 마나를 바닥내고 컨슘하기 전에 달려들어서 저그 병력을 몰살시키는 모습은 가히 경악 수준이었다. 트로이에서 장육을 만나 핵으로 성큰라인을 뚫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토스전은 안습을 넘어 막장 그 자체. 신상문이 개인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습 때도 토막이었다고 한다. 연습생 처음 들어갔을 때 본인보다 토스전을 못 했다고 한다. 변형태는 당시 한동욱과 친해서 본인이 프로토스를 잡고 한동욱의 테프전 연습을 도와줬다고 한다. 그리고 전부 한동욱을 이겼다고 한다. 허나, 메카닉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니다. 테란전도 기본적으로 메카닉 운용이 이뤄진다는 걸 상기해 본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 다만,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의 테란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프로토스는 테란에 상성상 앞서는 종족이기에 테란은 프로토스가 가장 약한 타이밍(ex:캐리어, 아비터로 넘어가는 때)을 찔러 공격한다. 그런데 한동욱은 '타이밍이고 뭐고 없심'하며 토스전에서조차 자신의 공격적인 성향을 주체하질 못하는 모습이었다. 테테전에서는 자리만 잘 잡으면 소수 유닛으로도 이득을 볼 수 있지만 토스전은 '''가벼우면 안 된다'''. 토스의 유닛들은 기본 능력치만으론 메카닉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난전으로는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려하게 컨트롤하고 무빙샷하는 것보다 자리를 잘 잡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9] 물론 그래도 프로게이머답게 클래스는 어느 정도 있어서 예선전에서는 박재영, 김태균, 손석희, 정윤종을 상대로 3전제에서 이기기도 했다. 다만 그가 유일하게 거졌던 대 프로토스 5전제인 박지호와의 경기에서는 0:3으로 완패했다는것. 비슷하게 맹공격을 퍼붓는 절친 변형태의 경우 공격성과 동시에 묵직함을 담보하고 있어 토스전이 강력했던 것과 대조적. 대신 변형태는 바이오닉 컨트롤이 안 받혀줘서 저막이었다.[10] 한동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스타 2에서라도 복귀했으면 임재덕 같은 레전드 대접은 받진 않았을까 하고 많이 아쉬워한다.[11]
4. 활동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은 그 전의 2개 대회에서의 극심한 저그의 부진[12] 이 무색할 정도로 저그가 강세를 보인 대회였다. 24강은 그저 내려갈 선수는 내려가고 올라갈 선수는 올라가는 평범한 구도였는데, 16강에서 저그 유저들이 이병민(vs 홍진호), 임요환(vs ), 송병구(vs 조용호), 강민(vs 변은종), 염보성(vs )을 모두 떨어뜨리는 괴력을 발휘했고, 8강에서도 변형태가 조용호에게 패하며 탈락. 4강에 남은 선수는 한동욱뿐이었다. 이 한동욱도 24강 조별 재경기 → 24강 3위 선수들끼리의 와일드카드전 → 와일드카드전 패자끼리의 최종 16강 진출전까지 하며 간신히 진출한 상황, 쉬운 말로 막차를 탔던지라 그다지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16강에서 차재욱과의 집안싸움 끝에 8강에 진출. 은가이#s-2 박성준을 상대로 강력한 저그전을 보여주며 세트 스코어 2:0으로 승리하고[13] , 4강에서도 홍진호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3:2로 승리하여 결승에서 조용호와 격돌한다. 조용호는 당시 최고의 기세를 보였기 때문에[14] 많은 사람들이 조용호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세트 스코어 3:1로 한동욱의 우승. 자신의 우승과 더불어 소속팀의 개인리그 우승을 안겨준다. 하지만 테란이라는 종족이 스타크래프트1 리그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특성상 좋지못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리그에서 보여줬던 바이오닉 컨트롤은 그야말로 절륜이다. 바이오닉 하나로 리그를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주요 경기는 홍진호와의 4강전 러시아워3 경기와 조용호와의 결승전 3세트 백두대간, 4세트 815 III. 하지만 강력한 바이오닉 컨트롤과 대비되는 토스전 실력은 우승이 천운이라고 까이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 한동욱의 전성기였던 신한은행 시즌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 토스 유저의 수는 24명 중에 5명뿐이었고, 8강에서 프로토스가 전멸하고 테란은 두 명밖에 없을 정도로 저그가 강세였으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도 본선에 진출한 토스 유저의 수는 4명 밖에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는 단 2명이었을 정도로 프로토스의 암흑기이기도 했다.
선술하였듯이 바이오닉 컨트롤은 매우 뛰어났지만, 토막#s-3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프로토스전에 상당히 약했다. 특히 공군 ACE 입대 후 프로토스전 승률이 0%. 임요환과 비슷한 점(저그전에는 강하지만 프로토스전에는 약하다는 점)으로 인해 데뷔 때만 해도 '''포스트 임요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같은 메카닉을 사용하는 테란전은 어느 정도 선전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뒤 우승자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15]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다시 4강에 오르며 부활을 알렸다. 비록 이윤열에게 패하여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4강 3세트에서 보여준 믿기 힘든 역전승은 한동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속도전의 진수였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한동욱 사건은 본인은 물론 하이트 스파키즈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당시 한동욱은 프로리그에서 부진에 빠져 엔트리에조차 이름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 이명근 감독과 한동욱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 팬들은 이명근과 하이트 스파키즈에게는 비난을, 한동욱에게는 안타까움을 표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한동욱이 우승 이후 인간성이 변했고, 연습도 안 하면서 매일 여자친구만 만나러 다녔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러나 선수와 팀을 다독여야 하는 감독이 선수와 직접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이명근이 그토록 까였던 것. 그리고 한동욱은 경기에 나가지도 않았는데도 스파키즈 패배의 원인이 자신에게 쏠렸고, 극소수를 제외한 팀원들조차도 자신을 따돌리고 험담을 했다고 파이터포럼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기에 이명근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다음은 숙소 이탈 시절, 한동욱의 파이터포럼 인터뷰.
이 인터뷰를 보면 장진남, 장진수와 정수영이 싸웠을 때와는 달리 이명근 감독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다. 차라리 연봉을 덜 받더라도 스파키즈에서 나가고 싶다 할 정도면 말 다한 셈.
유독 다른 올드게이머들보다 어린 나이에 공군을 지원하려 했을 정도로 힘들었던 생활이 고달팠던 모양으로 숙소에서 방출당하고 집에서 다른 선수들이 게임하는 것을 보던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던 문구를 보면 굉장히 상처도 많이 받고 공군 입대가 불가피될 시 은퇴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자신의 몸담던 게이머 생활이 한 순간에 끝장날 수도 있었다.
추 후에 잠시동안 개인방송을 할 때에도 아예 풀고 싶은 썰은 다 풀면서 대놓고 까던 차재욱과는 달리 한동욱은 최대한 감독과의 관계나 썰을 물어봤을 때 최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 때의 트라우마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모양이며 아예 언급하기도 싫고 가치도 없었던 모양. 또한 본인이 그 썰에 대해서 언급 자제를 부탁했었다고 한다. [17]
물론 KOR 시절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주면서 차재욱 다음가는 프로리그 우승의 주역으로써 후에 불화가 있을지 언정, 이런 식으로 매장을 시켰으면 안 됐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18]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었던 한동욱이 공군 ACE 소속으로 입대하려던 찰나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하이트 스파키즈는 100만 년 까일 소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해줬고, 반면에 위메이드 폭스는 완전 호감 구단이 되었다. 그리고 위메이드의 김양중 감독도 한동욱을 예의가 바르고 겸손하다고 칭찬을 했다.[19] 어쨌든 한동욱과 그의 팬, e스포츠 관계자들은 마음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한 후에도 그 동안에 있었던 불화 사건으로 인해 연습량이 급격하게 하락하여 예전만큼의 경기력은 복구하지는 못했으며 그 와중에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는 몇 번 진출하거나 계속해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내내 1승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2008년 7월 중순, 공군에 지원한다.
2014년 10월 20일 경, 전 한빛 소속 프로게이머 신정민이 자신의 개인방송에서 자신이 온게임넷 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풀었는데, 그 내용에서 한동욱 선수의 의리를 볼 수 있다.
내용인 즉슨, KOR 팀이 온게임넷에 인수되면서 KOR 소속이던 신정민 자신은 자연스럽게 온게임넷 팀에 들어갈 줄 알았으나 이명근 감독은 신정민 선수와의 계약을 반대했다. 계속되는 협상에서 이명근 감독이 제시한 내용은 팀에서 받아주긴 하겠으나 연봉은 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를 알게 된 한동욱 선수는 신정민 선수와 같이 가겠다며 자신의 연봉의 반을 신정민 선수에게 지급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팀의 간판인 한동욱 선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정민 선수는 온게임넷에 들어갈 수 없었고, 여차저차해서 이재균 감독과 연이 닿아 한빛 스타즈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연봉을 반으로 깎는 한이 있어도 같이 이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아 정말로 상당히 의리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20]
5. 공군 ACE 입대와 활동
공군 지원 이후 합격하였고, 2008년 9월 22일에 박정석, 오영종과 함께 공군 ACE에 입대하였다.
2009년 상반기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 진출한 적이 있는데, 저그전의 달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상봉에게 2대0으로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바이오닉의 강자지만, 당시 맵들은 고전적인 바이오닉으로는 저그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맵들이었다. 결국 어설픈 발리오닉을 시도하다가 탈락해 버렸다.
또한, 입대 초반에는 프로리그에 자주 쓰이면서 한 자리 잡나 싶었으나 점점 패가 늘어나더니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에는 그냥 패만 쌓아갔다. 그래도 아예 제대로 출전을 못 하는 차재욱이나 서지훈 등보다는 나은 듯 했다.[21]
그리고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에서 한상봉을 상대로 2배럭 더블 후 10마린 2메딕 타이밍에 뛰쳐나와 성큰 콜로니를 파괴하고 다수의 드론을 잡는 특유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후 김승현의 흑마술에 걸려 그의 숨겨진 토막#s-3 본능이 뛰쳐나온 탓에 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한상봉전이 안타깝게도 한동욱의 2010년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전 승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 4월 19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4라운드 화승 OZ전에서 프로리그 19연패 중이던 화승토스와 스덕들이 꿈에만 그리던 드림매치가 이루어졌고, 토스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막장이란 걸 보란듯이 증명하며 화승토스의 프로리그 연패를 끊어줘 버렸다.[22]
그래도 MSL이나 OSL 예선전에서는 자신의 최대 약점이라는 토스전을 극복하고 손석희와 정윤종 등을 3전제에서 탈락시키는 등 기본 실력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둘 다 예선도 뚫지 못하고 탈락하긴 했지만...
6. 은퇴
2010년 10월 29일에 전역을 했지만, 각자 원 소속팀들로 돌아간 동기들인 오영종과 박정석과는 다르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의 병간호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개인사정으로 원래 소속팀인 위메이드 폭스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은퇴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동욱의 우승을 천운이라고 까던 사람들조차도 그의 절륜했던 바이오닉 컨트롤을 그리워하며 아쉬워했다.
한 때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당시 위메이드 폭스 소속 전상욱이 추 후에 개인방송에서 말하기를 전역한 후 팀에서 코치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까지 했었다고 하나 이마저 거절하고 은퇴하면서 길고 험난했던 게이머 생활을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근황 자체가 알려지지 않다가, 2015년에 사업 시작을 하기 전에 잠깐동안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하였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방송은 접은 것으로 보이는데, 2017년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킨 적이 없었으나 2019년 5월 방송을 잠깐동안 켰던 이력이 남아 있었고, 2019년 8월 경,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라디오 방식으로 방송하거나 취미로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7. 까임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데다 인기 선수들과 엮인 라이벌리가 많은 선수라 깔 거리가 무진장 많다.
1. 스타계 1위의 전무후무한 토막#s-3이라서 테란빠에게 까인다.(공식전 25.5% 비공식합 40.9%)
2. 그런데 영웅 박정석에게 2승 0패(비공식 포함하면 4승 0패)로 앞서서 등짝팬에게 까인다.
3. 박정석을 이긴 경기 중 SKY 2004 프로리그 3Round 결승전 3경기에서 이긴 경기가 있어서 KT 팬에게 까인다. [23]
4. 바이오닉 컨트롤이 맵빨 덕분이었다고 까인다.
5. 덕분에 맵빨로 우승했다고 까인다.[24]
6. 토스전을 못한다는 점 때문에 우승한 리그에서 저그, 테란만 만나서 우승했다고 까인다. 실제로 리그에서 프로토스와 만난 건 강민과 김성제와의 경기들뿐이다.[25][26] 이것만큼은 팬들도 실드는 못 치는 듯. [27]
7. 그나마 만난 테란, 저그 게이머들도 당시 테란전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게이머들이 많았기 때문에 까인다.
8. 이제동에게 4승 1패(비공식 포함하면 5승 1패)로 앞서서 이제동 팬들에게 까인다. 한 번 진 경기도 한동욱이 공군 ACE 소속이었을 때 진 경기다.
9.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서 이제동을 벙커링으로 이겼지만 다음 경기에 지고 이제동과 함께 스타리그를 탈락해서 '왜 우리 제동이 이기고 나서 떨어지냐'는 식으로 이제동 팬들에게 또 까인다.
10. 온게임넷에서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악질까에게 좋은 까임의 대상이 된다.
11. 홍진호의 마지막 우승 기회를 막아버려 콩빠들에게도 또 까인다.[28]
12.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에서 우승할때 4강에서 홍진호, 결승에서 조용호 두 명의 저그를 때려잡고 우승하여 저그빠들에게 까인다....[29]
그저 지못미일 뿐….
8. 주요선수와의 상대전적
8.1. 저그전
VS심소명 2:0
VS홍진호 4:3[30]
VS조용호 4:2[31]
VS박경락 2:5
VS박태민 1:0
VS변은종 1:5
VS박성준(1986) 5:3
VS박성준(1984) 3:2
VS안석열 5:3
VS조형근 0:2
VS이재항 2:1
VS신노열 1:3
VS성준모 2:1
VS 2:4[32]
VS박명수 0:2
VS이제동 5:1
VS한상봉 2:2
VS김준영 1:4
VS박재혁 2:2
VS서경종 4:3
VS박준오 2:0
VS김현우 2:0
총전적 113승 70패 61.7%
8.2. 프로토스전
VS이재훈 1:2
VS박정석 4:0
VS박용욱 1:3
VS강민 0:2
VS김환중 3:1
VS김성제 1:0
VS전태규 1:3
VS안기효 4:1
VS박지호 0:5
VS오영종 3:3
VS송병구 0:5
VS박영민 2:3
VS박종수 1:2
VS박정길 0:3
VS도재욱 0:1
VS윤용태 1:4
VS손찬웅 0:2
총전적 45승 66패 40.5% [33]
8.3. 테란전
VS이윤열 3:5
VS임요환 1:1
VS최연성 4:4
VS서지훈 3:3
VS이병민 5:2
VS변길섭 1:0
VS차재욱 2:0
VS나도현 1:4
VS전상욱 2:7
VS진영수 3:0
VS변형태 6:7
VS염보성 2:4
VS이성은 2:4
VS이재호 1:0
VS이영호 0:4
총전적 58승 71패 45%
승률은 낮지만 자신의 전성기라 할 만한 2006년에는 변형태, 전상욱 등과 함께 스피드 있는 스타일로 테테전을 휩쓸었다. 한동욱의 최전성기인 2006년의 테테전 승률은 20승 10패이며, 승률은 66%에 달한다.
상당히 낮은 승률의 토스전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속도감 있는 테테전으로 상대를 앞서나갔고 임이최와는 물론 테테전 짐승으로 이름난 서지훈과도 호각세를 이루면서 테테전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
대표적인 천적으로는 전상욱이 있었으나[34] 반대로 이병민에겐 강했다. 또 이병민은 한참 잘 나가던 전성기 시절에 한동욱에게 약하고 전상욱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35] 이병민과 전상욱의 상대전적은 서로 호각세를 유지했으나 한 때 유독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전상욱이 이병민에게 많이 당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 선수들처럼 한 동안 이병민<전상욱<한동욱<이병민... 으로 먹이사슬이 형성되기도 했었다고.
9. 기타
우승자 출신이지만 공식전 5판 3선승 다전제에서 1세트 승률이 0%... '''한번도 못 이겼다'''. 그나마 비공식전이었던 신한은행에서 후원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모아 진행한 이벤트전인 신한은행 마스터즈컵에서 을 만나서 1세트를 먼저 땄지만 그조차도 나머지 2, 3, 4세트를 연거푸 내주면서 패배했다. 사실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1R[36] 1위 결정전에서 전상욱을 만나 1세트를 선취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상욱과의 다전제도 2:3으로 패배해버렸기에 무의미.
아이디를 정말 많이 바꿨는데, 데뷔 초엔 Casy를 썼다가 2005년에는 ioi, 2006년 이후엔 Really로 바꿨다.
엠막의 대표주자로, 김준영과 함께 개인리그 우승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MSL 본선 진출 경력이 전무하다.[37]
양대 개인리그 우승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위에 서술되어 있는 까임 요소나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기량 저하까지 겪었으며, 은퇴 후 한동안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역대 개인리그 우승자 중 은퇴 후 처지가 가장 비참했던 편이었다(승부조작에 가담한 , 는 일단 제외). 언젠가부터 고향가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근황이 밝혀졌는데, 2015년 초부터 아프리카TV의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방송국은 여기. 방송 시간대는 주로 새벽. 그리고 해당 개인방송에서 밝힌 근황으로는 치킨집을 인수해서 오픈을 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로서는 보기드문 외동아들이다. 외동아들이라 부모님께서 크게 반대할 만도 하겠지만 본인이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최종 상금 순위는 30위.
이탈리아 축구선수 안드레아 바르잘리와 닮았다.
9.1. 별명
- 황태자: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후계자라며 불리었던 별명. 수준급의 테저전 바이오닉 컨트롤 이 흡사 전성기 시절의 임요환을 떠오르게 한다며 붙은 별명이다. 임요환의 '좁아' 짤과 엮은 짤방도 자주 생산됐었다.
- 아트테란: 한동욱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 뛰어난 마이크로 컨트롤이 예술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온게임넷에서 한창 한동욱이 떠오르던 시절 주력으로 밀던 별칭이다.
- 소닉테란: 아트테란과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별명이나, 아트테란보단 상대적으로 묻힌 별명인지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 한동궈: 한동욱의 이름 장난.
- 핵동욱: 장육과의 스타 챌린지에서 핵관광으로 완전히 보내버렸다고 해서 붙은 별명.
- 프로토스의 희망: 상술된 부족 한 프로토스전 때문에 붙은 별명. 특히 슈퍼파이트 종족 대항전을 진행하던 때에 더욱 흥한 별명이었는데, 당시 종족별 대표선수를 팬투표로 뽑았었기 때문에 수 많은 프로토스 팬들이 한동욱에게 투표를 하면서 '한동욱이야말로 프로토스의 희망'이라며 널리 퍼졌다.
[1] C조 결승에서 변형태에게 2:1로 승리하여 최종전에 출전.[2] 당시 박태민, 조용호를 잡았다. [3] 진에어 스타리그 2011의 마이 스타리그의 방식도 이와 비슷했다.[4] 실제 온게임넷 해설자들이 언급한 적이 있다.[5] 하지만 임요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임요환이 스타리그 토스전 승수는 4배가 많고 스타리그 토스전 승률도 20%나 더 높다. 한동욱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6] 실제로 진조작이 데뷔 2년차에 들어서야 빛을 본 반면 한동욱은 데뷔 직후부터 팀의 주전력으로 기용된 케이스다.[7] 같은 팀 후배였던 신상문의 말에 따르면 빠르기로는 프로 선수 중 따라올만한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잔손질도 거의 없었다고.[8] 한동욱 테란전의 백미는 이윤열과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4강 3세트 경기. 0:2 상황에서 거의 다 진 경기를 한동욱 특유의 스피드로 역전해낸다. 시간이 있다면 찾아보길 추천함. 역대 최고 중 하나의 테테전 경기이자 테테전 5전제로 꼽힌다.[9]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이성은이 있다. 그나마 이성은은 Clubday Online MSL 2008 32강에서 토스를 연파할 때는 그럭저럭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공군에 입대하여 오히려 토스전 기량이 상승하여 전체 프로토스전 10경기 성적 6승4패의 성적을 내기도 했으며 윤용태를 잡고 프로리그 100승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장기였던 테란전,저그전에 비해 토스전이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아서 토스전에 약한 테란 선수로 기억된다.[10] 이것 때문에 변형태는 지금도 다음 스타리그 결승 마지막 5경기를 통한의 한으로 아쉬워한다. 뭐, 최종저막으로 유명했던 변형태가 당대 최고의 저그 중 하나였던 김준영을 상대로 2:0으로 앞서나갔던 것 자체가 당대에는 이변으로 여겨졌지만...[11] 스타 2의 테란은 브루드 워와 달리 상대를 정신없게 하는 엄청난 속도전으로 끌고 나가 주도권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와 마찬가지로 임재덕도 스타 2의 저그에게 가장 필요한 뛰어난 추리 능력으로 스타 2 자유의 날개 저그의 레전드가 되었는데, 만약 한동욱이 자날 베타 시절부터 했다면 어쩌면 자유의 날개 테란 정파의 거물로 대접 받았을지도 모른다.[12] So1 스타리그 2005에서 16강에 진출한 7명의 저그 중 8강에 진출한 저그는 박성준 하나 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다음 대회에서 최악의 저그압살맵으로 손꼽히는 개척시대까지 등장했다. So1 스타리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2개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한 저그는 박성준 하나뿐.[13] 여담이지만, 16강 최종진출전에서 마지막으로 상대한 선수도 박성준이었다. 그 전에 상대해 승리한 '''김성제'''전을 포함해서 2승으로 진출.[14] 투신 박성준의 기량 하락 이후 과 함께 저그 최강자라고 분류되던, 조용호 게이머 인생에서 2003년 못지않은 제2의 최전성기 시절이였다. 이 때의 활약덕에 KeSPA 랭킹 1위까지 차지했을 정도였다.[15] 라고는 하지만 우승한 다음 시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의 24강 조별리그에서 붙었던 상대들이 자신의 천적 '''전상욱, 투신 박성준, 오영종'''이다. 전상욱은 당시 테란 중에 기량으로써는 최정상의 게이머였으며, 박성준은 전성기 때보다는 테저전 실력이 많이 저하되기는 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였고, 마지막으로 오영종은 이 당시에는 그다지 기대를 못 받았지만 이후 계속되는 가시받길을 뚫고 지나가며 이 리그에서 준우승까지 했던 선수다.[16] 이때 이명근의 이미지가 덕장이었던 것이 원인. 아마 이학평 차장은 그 사람 좋기로 유명한 이명근 감독이 설마? 했을 것이다. 근데 그 설마가 사실로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명근은 못지 않은 흑역사가 되었다.[17] 차재욱과 전태규는 그 동안에 있었던 이명근에 대한 썰들을 대차게 풀어대며 실상을 언급했다.[18] KOR 시절에 우승한 프로리그 준결승전에서 한동욱이 당시 2대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한 경기만 지면 끝나는 매치포인트#s-1에서 GO 팀의 대표 에이스 서지훈을 꺾으면서 역스윕의 발판을 마련해주었으며 특유의 토막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결승전에서 KTF의 박정석을 잡아내면서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한동욱이 마련한 기회를 발판 삼아 모두 다 마무리는 차재욱이 담당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19] 한동욱은 사실 평소에 팬들에게 실력으로 까였으면 까였지, 이미지나 행실 등으로 까인 적은 없었다. 인터뷰 때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고, 스파키즈에서 촬영을 했을 때도 촬영 감독이 온갖 까다로운 사항들을 요구해도 그걸 아무런 불만없이 다 들어줬을 정도였다.[20] 신정민 본인도 이 사건 때문에 이명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고 했다. 정작 이명근 감독 본인은 신정민과 사이가 좋은 줄 알고 있다는 후문. 나중에 연봉 0원과 방출통보는 프런트가 제시했기 때문에 감독 자신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한 마디로 KOR은 이명근 감독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프런트부터가 문제덩어리였을 정도로 아주 팀 자체가 문제투성이였던던 셈.[21] 그나마 그 중에 서지훈은 말년에는 한동욱의 말년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지훈의 경우에는 자주 못 나왔던 사유가 부진 때문이 아니라 손목 부상 때문이었다.[22] 그런데 이 경기가 있던 날의 작년에 있던 MSL 예선전에서는 한동욱이 그 화승토스 선수 김태균을 예선 탈락시켜버렸다(...).[23] 그리고 박정석은 차기 2005년 광안리 결승에서 한동욱의 절친인 전상욱에게 또 다시 초반 러쉬에 당해 패배하면서 프로리그 결승의 저주를 이어갔다. 두 경기 다 맵이 같았던 점이 아이러니.[24] 헌데 우승했던 당시 8강까지 저그 6명, 테란 2명(프로토스는 16강에서 전원 탈락했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맵빨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더욱이 상대했던 저그들이 한창 황혼을 불사르던 홍진호와 조용호였다는 점을 생각하면...[25] 강민과의 경기에선 전진 게이트+캐논 러시에 농락당하며 패하고 김성제와의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그 맵이 토스가 테란 상대로 피눈물을 흘렸던 러시 아워 3다.[26] 여담으로 이 시기가 프로토스가 가장 약했던 시기다. 삼대토스는 전성기 막바지였고 송병구는 잔뜩 와우하고 있을때에다 김택용은 포텐이 터지기 전이였다. 시기에 맞는 운이 좋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듯 하다.[27] 프로토스의 숫자가 5명밖에 안 될 정도로 적었고 저그가 워낙 강세였던 때라 프로토스를 리그에서 보기가 힘들었다.[28] 근데 여기서 홍진호가 진출했으면 결승전이 '''저저전'''이었을 것이다. 물론 대진이 홍진호 vs 조용호라는 인기 저그 플레이어들끼리의 대진이기는 하지만...[29] 이때까진 저그가 결승에서 테란을 이긴적이 박태민, 박성준 단 2회에 불과했고 저그가 테란에게 탄압받은 긴 역사가 있었는데 또 다시 테란이 저그를 잡고 우승하는 바람에 저그빠들은 분할수밖에 없었다.[30]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준결승전에서 3:2 승리[31]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 3:1 승리[32] 신한은행 마스터즈 준결승전에서 1:3 패배[33] 공식전이 15승 44패, 25.4%로 역대 최저급이다...[34] 전적과는 별개로 사석에선 전상욱과 친한 사이였다.[35] IOPS 스타리그 04~05 8강과 EVER 스타리그 2005 8강전에서 이병민이 전상욱을 다전제에서 두 차례나 꺾었다. 다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3/4위전에서는 전상욱이 이겼다. 다만 이때의 이병민은 바로 앞 경기인 4강에서 이윤열한테 0:3 셧아웃 패를 당하는등 테막화가 심각한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이 시절 스타리그는 24강 체제여서 4강 진출자는 무조건 시드를 받았기 때문에 저 다전제는 상금 차등(200만원)과 1번 높은 시드의 의미밖에는 없었다.[36] 과거의 챌린지 리그와 같은 위치라 보면 된다.[37] 이와 반대되는 케이스로는 온막 중에서 개인리그 결승 진출자 출신임에도 스타리그 본선 진출 경력이 전무한 심소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