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민주의

 


'''중화민국 헌법 제1조''': 중화민국은 삼민주의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1. 개요
2. 삼민주의의 각 내용
2.1. 민족주의(民族主義)
2.2. 민권주의(民權主義)
2.3. 민생주의(民生主義)


1. 개요


삼민주의는 쑨원이 발표한 초기 중화민국 시대에 발표되었던 정치 강령이다. 동양유교 관료제와 민본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서양의 근대 정치사상을 도입한 것이다. 민족주의(民族主義)[1],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민족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특히 중화민국 정부의 경우는 삼민주의를 국가강령으로 제시한 헌법을 개정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절대적이다.
쑨원은 혁명 동지인 쑹자수(훗날 쑨원의 비서이자 아내가 되는 쑹칭링의 아버지, 즉 장인이 된다)로부터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말했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을 처음 접했고, 이를 통해 삼민주의의 힌트를 얻었다. 민유 민치 민향은 '''그대로 가져온 말'''이다. 순서도 government of the people, government by the people, government for the people 그대로다.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론'에서 삼민주의를 쑨원이 남긴 위대한 공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서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근래에도 후진타오 정부는 '권력은 인민을 위해 사용하고, 감정은 인민과 연결되고, 이익은 인민을 위해 추구한다'는 신삼민주의를 제창하며 삼민주의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인다.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념인 삼균주의는 삼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삼민주의의 각 내용



2.1. 민족주의(民族主義)


초기에는 근대적 주권국가의 이상을 천명한 것으로, 당초에는 청나라의 지배로부터 한족의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멸만흥한'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청나라가 타도된 이후부터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을 선언하며 투쟁하자 심화발전하여[2] 밖으로는 외세에 대한 '''반제국주의'''를 명확히 하고, 안으로는 국내 여러 민족의 융합 특히 '''오족공화'''[3]를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쑨원이 과거 만한병용제, 만한일가 등 청나라의 융화정책을 비판했다는 점에서[4]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2.2. 민권주의(民權主義)


중화민국 헌법의 근원 사항으로, 사실 삼민주의라는 말은 이 민권주의를 위해 생겼다고 봐도 된다. 쑨원이 해외 유학을 통해 세계 열강과 식민지 각국을 시찰하면서 정립한 사상. 사전적으로는 참정권을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부여하자는 사상으로, '''민주주의'''이다. 이전까진 인민(국민)의 동의 없이 군벌이나 청조가 외국에 영토를 넘기거나 주권을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이러한 주권을 인민에게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군권에 대한 민권'의 투쟁 성격이 강하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해 오권분립을 실시해 중화민국 헌법에서는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삼권분립 외에도 감찰권과 고시권까지 '''오권분립'''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쑨원이 만든 중화민국도 장제스의 북벌 이후 불완전한 행정력을 발휘할 정부가 세워지자 언론과 재야인사를 탄압하는 등 민권주의를 무시했고, 이 행태는 1980년대 중반 무렵까지도 지속되었다. 그 중화민국을 대만 섬으로 몰아내고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도 말로는 삼민주의를 계승한다고 말하면서 민권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1990년대 중화민국(대만)에서는 국민대회입법원 선거가 증원선거, 보궐선거에서 총선거로 변경되고 총통 직선제가 1996년도에 도입되면서 민권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었지만 민주화와 개혁작업을 거치면서 국민대회가 사실상 폐지되고 사실상의 단원제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당초 쑨원의 구상이었던 오권분립과는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2.3. 민생주의(民生主義)


인민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골자로 좁게는 토지개혁을 통한 인민의 토지소유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넓게는 인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해당된다. 하지만 쑨원이 해당 부분에 대한 강연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고, 결국 쑨원 사후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의 해석이 완전히 엇갈려서 국공내전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 내셔널리즘을 말한다. 국가라는 거대한 단위를 중요시한다.[2] 신삼민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3]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위구르족 포함), 티베트족이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는 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쑨원의 구상.[4] 요시자와 세이치로의『내셔널리즘 으로 본 근대 중국 애국주의의 형성』에 따르면, 쑨원은 이후 1920년대에 오족공화를 부정하고 한족 중심으로 동화하고자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