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

 

1. 개요
2. 역사
2.1. 인류학에서 정치적 참여의 변화
2.2. 빈민층 참정권의 역사
2.3. 흑인 참정권의 역사
2.4. 여성 참정권의 역사
2.5. 장애인 참정권의 역사
2.6. 청소년 참정권의 역사
3. 대한민국 헌법에서의 참정권
4.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②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참정권'''()은 국민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공민권(公民權; civil rights) 또는 민권[1]이라고도 한다.
흔히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등을 참정권이라 아울러 부른다. 참정권의 확대는 그 사회의 인권의식의 진보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운동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현재에는 선진국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고, 다른 권리들에 대한 요구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독재국가와 신정일체 국가 등에서는 여전히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2. 역사


원시 공산사회에서는 누구나 참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농업혁명 이후에는 잉여 생산물이 축적되고 사회계급이 발달함에 따라 피지배층은 참정권을 상실하였다. 교통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상인계급이 대두하며 정치적 지배층의 참정권 독점은 깨졌다. 유럽의 경우 천천히, 계층별로 참정권의 범위가 확장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독립국들에서는 독재를 거친 후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모든 권리와 같이, 인류사에서 참정권이 공짜로 주어진 적은 없다.[2]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다. 한국에 그런 일이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아침과 심야에 투표할 수 없어 권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들도 있다. 투표 시간 연장과 투표 시간 보장이 필요하다. 사실 이미 근로기준법을 통해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투표 시간 보장이 의무화되어 있다.[3]

2.1. 인류학에서 정치적 참여의 변화


인류학에서 사회의 변동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정치적 참여 방법의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는 바를 조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흔히 무리사회(band)라고 불리던 유랑 시절에는 정치라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했다. 수렵채집을 통해 하나 또는 소수의 확대가족이 그날그날 풀칠하는 정도였으므로, 구성원들 중 좀 더 사냥감의 집단적 움직임을 잘 이해하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의 대규모 자생지를 잘 찾는 등의 '''노하우가 뛰어난 사람'''이 부각되었으며, 좀 더 완력이 좋고, 사냥을 잘 하고, 과단성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등의 '''지도자적 특질이 있는 사람들'''도 주목받았다. 즉 본인이 잘 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암묵적인 의미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도 '''당연히'''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수백 명으로 인구가 증가, 부족사회(tribe)가 되고부터는 빅맨(대인)이라는 지도자 계층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단순히 그 부족의 유력자일 뿐이며 어디까지나 개인적 인망과 영향력만으로 선출된 것이므로 그 입지는 불안정했으며, 여전히 '''누구나''' 본인 하기에 따라서 빅맨이 될 자격이 있었다. 또한 '''직접민주주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중요한 안건은 부족원 전체를 모아놓고 부족회의를 열고 결정했으며, 여기서 발언권 역시 '''공평하게''' 주어졌다. 빅맨은 단순히 의견을 최종 수렴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 인구가 더욱 증가하여 사회분쟁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는 추장사회(chiefdom)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는 '''신분제도'''가 생겨나고 추장의 권위가 '''신성불가침'''의 것이 되며, 추장직은 대대로 '''세습'''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선출할 권리를 상실한다.''' 추장은 깃털이나 문신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으로 생활했으며, 평민들은 추장을 보면 자리에 엎드리는 등의 복종을 해야 했다. 의사결정권을 추장이 독점하므로 '''민주적 회의를 열 필요가 없었으며,''' 평민들은 그저 시키는 일이나 잘 하면 되었다. 대신 추장은 그 사회의 지속성과 안정성에 책임을 져야 했고, 자연재해 등으로 시절이 하 수상할 때에는 '''축출당하기도 했다.'''
이후 인구가 수만에 달하면 국가사회(state)로 진입하는데, 정치적 참여의 측면에서 볼 때 초기 국가사회에 대해 특기할 만한 건 별로 없다. 과거시험처럼 제도화된 방법을 통해 '''전문화된 가신이 되어 국왕의 국정을 보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도? 그러다가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 즉 후기 국가사회에 들어서면서 많은 선진국들이 국민의 참정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투표, 집회와 시위, 국민의 감시 외에도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등을 대리인으로 세우는 '''간접적인 정치참여 방법'''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의 꼴을 갖추고도 참정권 따위 씹어먹는 경우도 있거나 부정선거를 통해서 참정권을 제약시키는 경우 또한 많다.

2.2. 빈민층 참정권의 역사


빈민층은 남자여도 여성들과 똑같이 참정권을 얻지 못했다. 고대 부분적 민주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그리스아테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정권은 보통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느냐가 기준인데,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기와 갑옷을 마련할 돈이 필요했으며 이런 돈이 없는 빈민이 참정권을 얻기 매우 힘들었다. 다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해전이 많이 벌어지게 되고 빈민들도 노잡이로 참전이 가능해지면서 참정권을 얻을 기회가 생겼었다.
미국에서도 빈민은 참정권을 얻지 못했다. 이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 그 대표 예시이며 1880년대 남성 보통선거권 획득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2.3. 흑인 참정권의 역사


흑인의 참정권은 흑인민권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

2.4. 여성 참정권의 역사


옛날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부분적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아테네에서도 여성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실 아테네 등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당시 참정권이 주어졌던 '시민'은 외국인이 아닌 성인 남성뿐이었다. 이마저도 아테네에서나 부분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만하고 다른 대표적인 도시인 스파르타에서는 그렇지도 않았다. 아테네에서 고대에 부분적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도시국가라는 규모가 작은 집단인 동시에, 지중해의 요충지에 위치한 풍족한 환경과 더불어, 성인 남성 개개인이 (특히 전쟁에서)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당시 기준에서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작용하지 않았던 집단(여성, 빈민층 등)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참정권도 부여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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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정권 운동 중 하나인 서프러제트(Suffragette)에 대한 풍자 만평. 당시에 가부장제의 많은 반대와 마주했다. (출처)
영화로도 나온 바 있는 서프러제트 운동은 비인간적인 강압에 맞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한 유명한 사례이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단식투쟁을 벌이는 여성들의 목에 억지로 호스를 꽂고 강제로 음식을 주입시키는 등의 가혹한 압제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4]
비독립국이거나 각국의 지방에서는 제한적으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기도 했다. 핏케언 제도의 여성 후손들은 1838년 이후에 참정권을 줬으며, 미국 뉴저지주는 재산을 가진 미혼 여성에 대해 1776년부터 1807년까지 투표권을 인정했다.
유럽은 시민 운동 등을 통해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어왔다. 유럽 지역의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는 대체로 19세기 말엽부터 본격화되었으나, 보통 20세기로 넘어가서도 완전히 정립되진 않았다. 이를테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일부 주에서 인정한다든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참정권에 차별이 있다든지 하던 식이다.
현재 존재하는 독립국 중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된 국가는 뉴질랜드다. 1894년에 여성들도 참정권(선거권 한정)을 쟁취했다. 이어 호주 의회가 1902년 여성을 포함한 모든 호주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키며 호주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피선거권은 핀란드(당시 러시아 제국 치하 핀란드 대공국)가 1906년 선거법을 제정함으로써 처음 확립되었고 1907년에 19인의 여성 의원이 선출되었다.
영국은 1907년, 핀란드보다는 조금 늦게 지방 의회에서의 여성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의 참정권을 허용하였다. 완전한 보통선거는 1928년의 선거법 개정 결과 21세 이상 모든 남녀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며 이뤄졌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여성 참정권 보장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남성들이 대부분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여성들이 후방에서 군수 생산이나 보급, 기타 행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결과로 보기도 한다.
미국1919년에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이 통과되어 1920년에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각 주마다 자치권이 인정이 되어 연방법뿐만 아니라 주법도 개정 되어야 했다. 그나마 연방 선거에서는 연방법으로 참정권의 온전한 보장이 가능했지만, 연방 기관들이 개입하기 힘든 주 선거와 관련된 참정권에 대해서는 각 주의 결정이 필요했고, 이 과정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1984년'''에서야 미시시피 주가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을 인정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민주주의에 관하여 꽤나 진보적인 프랑스는 의외로 여성 참정권에 대해서는 박한 편이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 시기 때부터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아직 이를 받아들일 분위기가 아니었고 되레 여성의 집회, 정치참여 등이 금지되거나 하였다. 이후 미국, 영국 등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내에서도 19세기 말엽부터 다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프랑스 법에 남녀가 평등한 참정권을 갖는다고 명시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도 아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인 1946년이었다.
유럽에서는 국가 단위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이 1984년에 마지막으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고, 스위스의 아펜첼이너호덴 주가 1990년에 여성참정권을 마지막으로 인정하였다.
이슬람권에서는 구 소련 지역에서 1917년부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으며, 1920년 알바니아, 1930년 터키가 인정하였다.
대한민국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무렵인 1919년 초창기부터 임시헌장에 남녀평등을 표방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으며[5],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여성 참정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했다.[6][7]
일본일본 제국 시절에는 여성들한테 참정권이 없었으며,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인 1946년부터 GHQ에 의해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주어졌다.
식민지배를 당하던 많은 나라가 독립할 무렵에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법률상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여성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2.5. 장애인 참정권의 역사


장애인에 대한 참정권은 나치 독일이나 북한[8]같은 극단적인 사례나 후술하는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딱히 제한을 둔 경우는 없었다.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지적장애 1급처럼 참정권 행사가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참정권 자체는 보유한다.[9] 그러나 장애인의 참정권 행사 확대는 현대 사회운동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장애인이 참정권을, 즉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회 참여를 증대하고 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결과, 장애인은 특히 자신들의 복리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강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장애인이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는 장벽들이 다수 존재한다.
  • 개발도상국의 선거 관련법은 정신장애인 등의 장애인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사례가 많다. 또한 개발도상국은 시각장애 등 감각장애를 가진 선거권자 및 후보에게 의사소통 및 선거 정보 접근에 필요한 합리적 편의의 제공을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후보는 선거운동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어렵고, 해당 선거권자는 선거벽보나 후보자 연설 방송에 등에서 선거 및 입후보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 잘못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할 수도 있다.
  • 개발도상국은 투표소 및 기표대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지체장애가 있는 투표자는 투표소에 접근할 수 없거나 기표대를 이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 개발도상국은 감각장애나 지체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이 기표할 수 있도록 특수한 투표용지와 기표보조용구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조항이 없거나, 있어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으로 기표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래서 그들의 비밀투표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사례가 많다.[10]
이 중 몇 가지는 대한민국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2.6. 청소년 참정권의 역사


청소년 참정권은 기존에 성인으로 제한되었던 참정권을 청소년에게도 부여하는 것으로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투표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국가에서 만 16세에서부터 17세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도 하는데 오스트리아(16), 브라질(16)[11] 스코틀랜드(16:지방선거에 한정), 에콰도르(16), 니카라과(16), 쿠바(16:사실상 지방선거에 한정), 남수단(17), 수단 공화국(17)등이 있다. 한국에서 국정선거 투표권과는 별개로 교육감 선거에 한해 16세부터 투표권을 주자는 논의가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OECD 국가 중 대부분의 국가들이 18세가 된 사람에게 참정권을 준다. 그러나 사실 이들 국가에서는 18세가 성인이라 엄밀히 말하면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준 것은 아니다. 즉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 받는 경우이다. 18세가 성인이 아닌 곳은 스코틀랜드(16), 미국캐나다의 몇몇 주, 호주, 인도네시아(19) , 일본(20) 등 소수이다. 출처
동학계의 아동권 보장 논의도 세계적 수준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바로 동학 후신 천도교 소속이었다.
2019년 12월까지 대한민국은 19세 미만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런 동영상도 나왔었다. 참정권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국회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선거권을 달라는 고3학생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
결국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그리고 대안신당이 선거권 연령 인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비당권파[12]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인하하는 본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쌍방 간 정치적 갈등이 일어났다. 이후 2019년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파동2019년 국회 난입 사태, 2019년 국회 필리버스터 등의 각종 정치적 공방 속에서 2019년 12월 27일, 본회의 표결을 통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대한민국도 만 18세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의외로 몇몇 독재국가들은 선거 가능 연령이 낮아 청소년 참정권을 형식적으로 보장해주기도 한다. 쿠바, 이란, 북한 등이 그 예시. 이 경우 독재의 명분을 위한 투표율 조작 목적이 있다.

3. 대한민국 헌법에서의 참정권


'''헌법 제24조 선거권, 25조 공무담임권'''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헌법 제26조 청원권'''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67조(대통령의 선출)'''

①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헌법 제72조(대통령의 중요정책의 국민투표 부의)'''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민주공화국'''이므로 당연히 모든 국민[13]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며, 이는 위와 같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문서 참고.

4. 관련 문서



[1] 참정권보다는 범위가 약간 넓다. 즉 '선거권∈참정권∈공민권'이라 볼 수 있겠다. 참고로 근로기준법에서는 참정권 행사 부분에서 '공민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민권과 참정권', 'civil and political right'로 두 용어를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일본어 위키백과는 '민권과 참정권'을 '공민권'으로, '선거권'을 '참정권'으로 하였다.[2] 부탄이라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옆에서 네팔과 시킴이 막장화되는 것을 목도하였고, 왕이 미국 물을 많이 먹은 예외적인 사례다.[3] 근로기준법 제10조(공민권 행사의 보장)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그 밖의 공민권(公民權) 행사 또는 공(公)의 직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 다만, 그 권리 행사나 공(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장이 없으면 청구한 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4] 서프러제트 운동에 대해 이것이 정치 지형도를 바꾸는 데에는 공헌했을지언정 여성 참정권 운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스럽다는 평가도 있다. (상단 만평과 동일 출처)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단체 서프러제트는 오래된 평화적 참정권 및 여권 신장 운동에도 불구하고도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인식 및 법적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기에 폭력시위를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단체를 다룬 영화가 서프러제트다.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 당시 시대상 여성 참정권의 상황이 암울했던 것만은 분명하다.[5] 대한민국 임시 헌장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다.'[6]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의무 -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후략)'[7] 일부 한국 트페미들은 한국을 여성혐오 국가라고 선동하기 위해 1948년에 여성 참정권이 늦게 이루어져 미투 운동이 2017년에 뒤늦게 터졌다고 왜곡하여 서술하고 있다. 예시[8] 여기는 헌법으로 정신질환자의 참정권을 부정한다. (북한 헌법 제66조 (중략) 재판소의 판결에 의하여 선거할 권리를 빼앗긴자, '''정신병자는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9] 종전에는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금치산 선고를 받았다면 선거권이 없었다. 하지만 2013년 민법에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될 때 그 부칙에 `법 시행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는 종전의 그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는 단서가 달리면서 피성년후견인 투표권의 단초가 생겼다. 서울시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2018년 7월 1일부터 금치산자(피성년후견인 포함)의 선거권은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에 의해 제한되지 아니한다'고 하는데, 문의를 한 공익법센터의 관계자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선거권이 박탈되지 않듯이 피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을 자동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10] KOICA, 장애포괄적 개발협력 추진방안 연구, 101-102쪽[11] 18세에서 70세 사이는 의무투표[12] 이후 새로운보수당을 만듦.[13] '18세 이상'인데, 이는 '법률(공직선거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제한된 것이지 헌법 자체에서 일부 국민만을 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참정권은 선거권/피선거권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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