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1. 개요
2. 배경
3. 진행
4. 결과


1. 개요


정부가 1988년부터 추진한 석탄 산업 구조조정 정책으로 1990년대에 국내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되었으며, 애초에 입지조건 자체가 한계가 있었다는점을 감안하지 않고 속전속결식의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강원도의 탄광도시들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경제적인 타격을 입고 쇠퇴하였다. 이 정책은 2020년을 기준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며 대한민국은 석탄조차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폐광 지역은 30년 가까운 불황이 이어지며 보조금 및 합법적인 도박장에 경제를 의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 배경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이래로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주탄종유(主炭從油)'''라는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연탄을 비롯한 석탄을 주 에너지원으로 하고 석유를 보조 에너지원으로 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석유는 비싼 외화를 주고 수입해야 했지만 석탄은 비록 무연탄 중심이지만 탄광도 적지 않았고 매장량도 자급자족을 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대에는 산림황폐화가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연탄으로 대체하면 나무를 베는 양이 줄어들어 녹화사업에 도움이 될수 있었다. 정부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춰 국민의 에너지인 석탄 채굴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1988년이 되면 1963년의 세 배 가까운 채굴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단순히 채굴만을 독려하는 것이 아닌 수송에도 신경을 썼는데, 일명 산업선으로 불리는 중앙선, 영동선, 태백선, 문경선, 가은선등의 신설과 개량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늘 겨울만 되면 연탄 대란이 나곤 할 정도였으니 정부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석탄을 채굴하는 광부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매일 해야 했으며 생활 인프라도 결코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급여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북이나 고한, 태백 지역에서는 속된 말로 지나가던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해당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그에 따라서 에너지의 수요 역시 주탄종유에서 그 반대인 '''주유종탄(主油從炭)'''으로 바뀌게 되었다. 석탄에 비해 석유는 취급도 쉽고 열량도 높았으며 환경 오염도 적으며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도 한결 낮았다. 유일한 약점은 비싼 가격과 수입을 해야 한다는 점인데 1980년대 후반이 되면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경쟁과 북해 유전의 본격적인 개발에 따른 석유 가격의 하향 안정으로 석유가 석탄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 에너지원이 되었다. 실제로 1988년부터 석탄의 수요는 급감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석탄 수요는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계속 늘어났고, 땅속 깊은 곳까지 막장을 파야 채굴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탄광 구조상 생산 원가는 급등하여 경쟁력까지 잃어버릴 판국이었다.[1]
또한 연탄을 겨울철 연료로 썼던 특성상 겨울철만 되면 스모그로 몸살을 앓았는데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로 환경 개선에 관심을 두던 정부 입장에서도 주유종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가 채산성이 없는 탄광 대부분을 폐광하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었고, 첫 번째로 석탄산업법을 1988년에 개정하여 본격적인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다.

3. 진행


1988년 기준 347개에 달하던 대한민국의 탄광은 이후 정부의 압박 속에 속속 폐광되어 5개만 남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동쪽에는 삼척시 끝에서 서쪽으로는 보령시에 이르던 탄광은 대부분 폐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도 그냥 폐광만 시키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에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수행하던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단을 확대 개편하여 한국광해관리공단을 세워 폐광의 광해 문제 등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고 채굴한 석탄의 품질 유지 및 보조금 지급 등의 사업을 펼쳤다. 물론 강제로 쫓아낸 것은 아니며 폐광 비용의 일부 지원 및 광해방지 책임을 정부가 떠안는 식으로 폐광을 유도하였다.
그야말로 경제가 박살날 처지에 놓인 폐광 지역의 경제 유지를 위해 먼저 1980년대 초부터 하던 광산지역 종합개발 사업을 2차에 걸쳐 마무리하여 해당 지역에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였다. 이와 함께 석탄산업법을 1991년에 또 개정하면서 폐광 지역의 진흥사업을 시작하였다. 먼저 탄광지역 진흥사업을 시작하여 관광과 공업 유치에 나섰다. 하지만 이 정책은 해당 지역의 도로와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매우 불편한데다 대규모 산업 유치를 위한 부지와 인력 모두 공급이 어려워 사실상 실패하였다.
급격한 지역 경제 추락을 막지 못한 정부는 1995년에 발생한 사북 3.3사태 등 실직 광부와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대규모 리조트 개발을 위해 각종 인허가 과정을 생략하고 정부가 지원을 할 수 있게 한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허용하지 않았던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설립도 포함되어 있는데, 해당 지역으로 고한, 사북 지역이 선정되었으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강원랜드다. 강원랜드는 해당 지역(정선군)에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며, 오픈 다음해인 2001년부터 수익의 일부를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내 해당 기금으로 폐광지역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특별법은 결국 특정 지역에 대한 언 발의 오줌누기에 불과하였기에 1999년 12월에는 태백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고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탄광지역개발사업을 시작하여 인프라와 관광, 산업단지 개발 지원을 시작하였다. 그 이외에도 석탄 가격 관련 지원금도 감소분만큼을 정부가 추가 보조하기로 하였다.

4. 결과


그야말로 해당 지역의 경제는 망했어요. 특히 탄광의 대다수가 밀집해 있던 영월군,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 가운데서도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제는 그야말로 망했어요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심각했고, 특히 인구수로 본다면 인구 10만명대로 그리 무시는 못할 지역에서 소규모 군으로 전락해버리고 만셈이었다. 1995년 사북 시위와 1999년 태백 시위가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태백은 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번 승격한 시를 지자체 분할 등의 사유가 아닌 이상 통째로 군으로 변경한 과거 사례가 없고 이렇게 했을 때 뻔하게 예상될 주민들의 반발 때문일 뿐 이미 인구는 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인 5만명 이하로 떨어졌다.[2][3][4] 그 이외에도 대형 탄광을 갖고 있던 문경시 등도 적지 않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지역 경제가 순식간에 괴멸되는 모습을 본 정부는 다양한 경제 살리기 대책을 내놓았으나 대부분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주요 탄광이 밀집한 지역들 치고 교통이 편리하고 우수한 인력 확보가 쉬운 지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이 산악 지대에 가까운 곳에 대규모 시장이 될만한 도시도 없다. 탄광촌이 밀집한 지역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강릉시원주시는 인구는 30만명 안팍의 수준인지라 특정시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이고 나머지 지역의 경우에는수도권 위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촌향도 현상이 수십년간 휩쓸고 다녔기 때문에 인력수급이 이미 난항을 겪었다. 이미 이 시절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와서 썼을 정도였다. 당연히 공장을 유치하려고 해도 입지니 인력수급이니 어려움이 있을수밖에 없고 관광 진흥을 하려고 해도 역시 주요 수요처인 대도시에서 너무나 거리가 멀어 사람들이 많이 찾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를 지금까지 안고 있으며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정선이나 태백을 가려면 승용차, 시외버스, 무궁화호 정도가 선택지인데 이 가운데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역설적이게도 무궁화호다. 이렇게 주요 시장(수요처)에서 거리가 멀고 접근성도 좋지 않으니 관광도, 공장도 쉽게 유치하기 어렵다. 정부의 정상적인 생산업, 관광산업 유치 노력은 대부분 실패하였으며 정선군은 카지노의 고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그 수입 + 약간의 지역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대천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으로 인해 관광도시로 변모한 보령시[5]광주광역시의 위성도시라는 점을 내세워 인구감소를 어느정도 상쇄한 화순군은 그나마 그러한 충격이 덜했다. 물론 두 곳 다 남포선의 폐선과 화순선의 운행중단은 피하지 못했다. 화순군은 너릿재터널이 생긴 이후 광주의 거주기능을 분산했고, 문경시는 성남에 있던 국군체육부대위례신도시 개발로, 대구에 있던 화원운전면허시험장이 각각 문경시로 이전하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한 이후 그나마 탄광촌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2시간대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관광수입과 농산물 판매수익으로 지역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은 철도 동호인 입장에서도 씁쓸한 결과를 남겼다. 가은선의 폐선과 문경선의 동결이 이 정책의 영향이기 때문. 두 철도 모두 일제강점기가 아닌 산업선으로서 정부 수립 이후 건설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철도 노선이었는데, 어디까지나 채굴된 석탄의 수송을 위한 철도였으며 그것을 빼면 그야말로 오지 노선에 불과했으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폐광된 이후에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화력발전소 역시 연료를 무연탄에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유연탄 또는 LPG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면서 무연탄 운송용 노선들도 폐선되었는데, 서천화력선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석탄의 수요와 공급면에서도 이 정책은 문제를 드러냈다. 정부는 이 정책을 수립할 당시에만 해도 연탄이 급격히 다른 연료로 대체될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어느 정도 이 판단은 옳았다. 어디까지나 연탄은 서민이나 극빈층의 연료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그렇지만 연탄의 수요가 다른 연료로 완전히 대체되지는 못하였고 오히려 유가의 급격한 변동은 기름이나 가스를 때던 사람들이 연탄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극빈층용 연료로서 연탄의 포지션은 여전하며, 유가의 인상으로 농업용이나 숙박업소용으로 화목 보일러와 함께 연탄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연탄 가격을 현실화하여(즉 가격 인상을 통하여) 수요를 억제하고자 하였으나 연탄이 극빈층이나 차상위층 등 서민의 대표연료라는 점은 변동이 없었기에 생각만큼 가격을 현실화하지는 못하였고 여기에 발전용 무연탄 수요까지 겹쳐 공급이 수요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문제가 벌어졌다. 정부 비축 석탄을 풀어도 그것은 한계가 있어 결국 무연탄을 수입하여 수요를 맞춰야 했다. 2000년대 하반기부터는 서서히 무연탄 발전소를 유연탄 또는 LPG 발전소로 전환하고 있어 국내 무연탄 수요의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는 발전용 무연탄 수요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경우 현재 국내의 무연탄 생산 능력도 수요를 초과할 수 있어 얼마 남지 않은 탄광도 폐광하겠다고 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폐기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탄광에 지원금을 더 주고 싶지도 않으며 연탄의 수요를 늘려 지원금을 더 주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또한 국내의 탄광 대다수가 이미 수입 무연탄이나 다른 연료에 비해 채산성이 맞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인 이상 석유의 고갈 또는 대대적인 석유의 무기화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석탄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1] 대한민국의 탄광은 매우 깊게 파고 들어야 채굴이 가능하며, 대규모 기계 채굴에 제한을 받아 생산 비용이 높다.[2] 단, '한번 승격한 시를 군으로 떨어트릴 법적 근거가 없어서 태백시가 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이라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기는 하나, 이는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행정구역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위는 법률을 통해 결정되므로 국회에서 "태백시를 <폐지> 하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태백군을 <설치> 한다" 는 법을 입법하면 된다. 이는 모든 종류의 행정구역 개편과 같은 절차이고, 특별히 <시를 군으로 '''전환'''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군 → 시> 전환을 <승격> 이라고 부르고 <시 → 군> 전환은 <격하> 라고 여기는 대중의 인식이 있기는 하나, 일단 법적으로 보면 시군구는 서로 동격의 행정단위(지방자치단체)이지 어느 한쪽이 더 상위의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고, 행정단위의 승격이나 격하라는 법적 개념도 없다.[3] 단지 기존의 행정단위를 <폐지> 하고 새로운 행정단위를 <설치> 함으로써 실질적인 행정구역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 뿐이다. 따라서 이 "속설"을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일단 '시'는 번화한 도회, '군'은 시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군 → 시 전환을 좋은 것(=승격)으로, 시 → 군 전환을 안 좋은 것(=격하)라고 여기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군 → 시 전환에는 인구수나 인구중 도심지역 거주자 비율과 같은 일종의 '기준'이나 '지침'이 있어 그것을 충족하면 자연스럽게 '시의 조건을 갖춘 XX군을 시로 전환하자' 는 의견이 나오는 데 비해 사람들이 별로 바라지도 않고, 그런 사례도 거의 발생한 적이 없는 시 → 군 전환에는 이런 기준이나 지침이 없기에 의견이 제기되기도 어렵고, 설령 의견이 제기되더라도 관행적인 기준이 없기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도 어려운 것이다.[4] 당장 국회에서 시 → 군 전환이 논의된다고 하면, 타 지역구 국회의원이 남의 지역 행정구역 문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 태백시 지역(21대 총선 기준이라면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 선거구)의 국회의원이 "태백시는 이제 시에 어울리지 않으니 군으로 전환합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울텐데... 시 → 군 전환을 격하로 보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이런 법안을 주장하면 지역 주민들이 그 국회의원을 다시 뽑아주고 싶겠는가?[5] 관광 이외에 보령시의 경제를 지탱하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자동차 산업이다. 보령미션을 만드는 한국GM 보령공장이 여기 있기 때문. 지방 도시에서 여러 협력사와 묶이는 대기업의 지방 공장 하나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당장 같은 회사의 자동차 생산 공장 하나가 폐쇄되면서 경제가 박살난 군산시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 이외에는 국내 최대의 화력발전소인 보령화력발전소가 나름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