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우판
하얀 로냐프강 2부의 주인공.
1. 소개
벤도루우젤 출신의 젊은 대장장이 겸 역사학도.
다른 주인공인 루우젤 수비대 대장 엘리미언, 기사 지망생 엑세레온과는 죽마고우 사이였다. 조용한 학자 타입으로 여가 시간에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엘리미언과 엑세레온에게 책만 읽는 서생이라는 핀잔도 자주 듣지만, 그래도 하야덴 연습은 게을리 하지 않아 엑세레온과 엘리미언에게는 떨어지지만 이나바뉴의 어지간한 기사는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대장장이 일을 하다가 선술집 제라하트 루우젤에서 한잔 하면서 폴슈케와 농담따먹기를 하거나 동네 사람들에게 루우젤과 이나바뉴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일과로, '벤도루우젤의 젊은 역사학자 선생'으로서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루우젤 왕[1] 이자 재야사학자인 겐키트 11세에게 글과 역사를 배우면서 역덕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의 주된 연구 대상은 640년경 제3차 천신전쟁과 제4차 천신전쟁, 즉 하얀 로냐프강 1부의 세계였다. 그리고 수우판은 제4차 천신전쟁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던 중 모종의 이유로 이나바뉴 기사단에서 완전히 제명된 어느 기사에 흥미를 품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수우판이 얌전히 역사를 공부하고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대장장이, 특히 밀덕이자 화력덕후인 공돌이이며, 역덕이고, 전쟁사에 능통한, 세계관 내 수위를 다투는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지장인... OO.
2. 제1차 루우젤 독립전쟁
루우젤이 독립전쟁, 카아르(산적)의 봉기 등 역사적으로 자주 반항해 완전히 '반역의 지역'으로 찍혔기 때문에 폭정에 시달리면서 루우젤의 반 이나바뉴 감정은 극에 달했지만, 크실과 로젠다로마저 완전히 복속시킨 엘핀랜드 최강의 국가 이나바뉴에 직접 반항할 수는 없어 720년경 당시에는 루우젤의 반 이나바뉴 감정이 들끓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이나바뉴 왕녀의 약혼자 나이트 레본스트는 호기심으로 루우젤을 여행하게 되고, 그 수행원으로서 겐키트 11세와 수우판이 뽑히게 된다. 처음에는 이나바뉴 기사단의 명령으로 수행원으로 따라나서게 되었지만, 나이트 레본스트의 정치관을 듣고 그의 신분제 철폐와 만민 평등 사상에 공감하게 되어 그와 진심으로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다음 세대의 루우젤에 대한 희망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트 레본스트가 자객[2] 에 암살[3] 당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이트 레본스트를 죽인 자객을 찾던 중 이나바뉴 기사들이 다짜고짜 수우판의 스승이자 주군인 겐키트 11세를 베어버리면서[4] , 그 동안 차별 받아온 루우젤 사람들의 감정이 폭발하여 루우젤에 주둔하고 있는 이나바뉴 기사단을 몰아내고 봉기하게 된다. 이후 겐키트 11세의 아들 할파펠 루우젤을 '''겐키트 12세'''로 추대하고, 수우판과 엘리미언이 중심이 되어 루우젤 기사단을 창설하면서 제1차 루우젤 독립전쟁이 시작된다.
엘리미언이 기사단 양성과 전투 등으로 무력을 담당한 반면, 수우판은 스스로의 장점을 살려 책략과 무기 개발 등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640년경 크실의 기사대장 세라프 파스크란이 운용했던 젠타리온(중장기병) 특수부대 카게론 나이트에 주목하였다. 마침 루우젤 지역은 순도 높은 자햐이드[5] 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젠타리온을 더욱 수월하게 양성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수우판은 자신의 모든 전술 지식과 대장장이 기술을 합쳐 1천 기의 중장기병대 네프슈네 나이트를 창설한다. 이 네프슈네 나이트는 작중 내내 엘리미언의 지휘 아래 압도적인 기동력과 파괴력을 선보이며 이나바뉴 기사단을 차례차례 괴멸시킨다.
루우젤의 독립 선언 후, 이나바뉴 기사단은 전통적으로 특기였던 물량 작전으로 루우젤을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수우판은 주요 거점을 완전 장악하고 게릴라 전 위주로 몰고 간 끝에 네프슈네 나이트를 돌격시켜 마무리 짓는 식의 전술로 초반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새로운 루우젤 원정군의 책사 젤라하 라벨은 수우판의 게릴라 전법의 허점을 찔렀고, 수우판으로 하여금 이나바뉴의 병력을 오판하게 만든다. 결국 수우판은 라벨의 양동작전에 빠져 벤도루우젤을 이나바뉴의 예비 병력에 빈집털이당하고 겐키트 12세를 인질로 잡히면서 무조건 항복의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인질이 된 겐키트 12세가 '''"이 자리에서 나 겐키트 12세는 루우젤 기사단장 나이트 수우판에게 왕위를 양도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수우판이 만들어준 하야덴[6] 네라엘페론으로 자결한다. 수우판은 일이 글렀음을 깨닫고 루우젤 기사단 전원의 해체를 명령하였다.
이후 루우젤은 이나바뉴에 무조건 항복하였고, 수우판과 엘리미언은 역적의 수괴로 이나바뉴 기사단에 쫓기게 된다.
3. 제2차 루우젤 독립전쟁
수우판과 엘리미언은 이나바뉴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오지인 안도칸 땅으로 들어간다. 이 곳에서 아들의 반란으로 왕위를 잃고 쫓겨난 안도칸 왕 헤르헤서와 만나 왕위를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수우판은 약소국 루우젤로서는 이나바뉴에게 단 한 번의 패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칸에서 제2차 독립전쟁을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장난감 활을 살펴보던 중 영감을 얻어 석궁을 개발하고, 안도칸의 공성병기 화차를 응용하여 트레뷰셋과 흡사한 투석기를 고안해낸다. 또한 안도칸의 보병장 란란, 기병장 라케이를 얻어 자신의 전술에 안도칸의 전술을 더하여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전시킨다.
이런 노력으로 엘핀랜드에 전례없는 병종인 강궁병대와 공성병대를 창설해냈다. 강궁병대에는 선대 국왕 겐키트 12세의 이름을 딴 할파펠 나이트, 공성병대에는 딤켈마로켄[7][8] 나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1차 루우젤 독립전쟁 후 2년이 지나, 모든 준비를 끝낸 수우판은 벤도루우젤로 가서 엘리미언으로 하여금 네프슈네 나이트를 부활시키고 이나바뉴의 루우젤 주둔군을 전멸시키면서 제2차 루우젤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수우판이 벤도루우젤에서 할파펠 나이트로 우주방어를 펼치는 사이, 네프슈네 나이트와 딤켈마로켄 나이트는 이나바뉴 동쪽으로 보내 동방 원정대, 하라데스 파견대, 햐드 파견대 등 이나바뉴의 주력 부대를 개발살내버리고 주요 거점을 점령하면서 이나바뉴 수도 퓨론사즈로 진군한다. 이나바뉴 군이 양동작전에 당황하는 틈을 타서 수우판 역시 이나바뉴의 루우젤 원정군을 관광보내고 남쪽으로 진군하여 엘리미언의 군대와 합류, 퓨론사즈로 향한다.
그러나 책사 나이트 라벨과 이나바뉴 동방원정대장 나이트 엑시렌이 된 엑세레온은 이전의 이나바뉴 군과는 달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며, 머릿수에서 불리한 루우젤 군에게 지속적인 출혈을 강요했다. 이에 초조해진 루우젤 군은 샤안의 계곡에서 이나바뉴 군과 정면으로 맞붙게 되는데, 이 역시 나이트 라벨의 책략이었다. 나이트 라벨은 좁은 계곡에서 네프슈네 나이트의 돌격력을 역이용하는 책략을 써서 엘리미언과 네프슈네 나이트 대부분을 함정에 빠뜨려 포위공격한다.
함정에 빠진 엘리미언이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수우판은 책략 싸움에서 라벨의 심리 트릭을 부수고 나이트 엑시렌이 이끄는 이나바뉴의 주력 기사단을 완전히 포위 섬멸시킨다. 하지만 승리하기는 했어도 루우젤 기사단이 이 전쟁에서 잃은 병력은 막대한데다 기사대장 엘리미언까지 죽었기 때문에 퓨론사즈를 공략하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루우젤 기사단은 퓨론사즈 코앞에서 군대를 돌려 루우젤로 돌아갔다.
1년 후, 루우젤 제32대 국왕 겐키트 13세로 정식 즉위한 수우판은 여전히 루우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이나바뉴를 향해 다시 진군을 개시한다. 이나바뉴의 물량은 여전히 압도적이었고 이나바뉴 기사단이 수우판의 전술을 모방하여 젠타리온 부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책사 라벨도 동방원정대장 엑시렌도 없는 이나바뉴 기사단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수우판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나이트 아스테 휘하에서 조련된 1천 5백의 이나바뉴 젠타리온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루우젤 군에게 몰살당한다.
결국 루우젤 기사단은 이나바뉴 수도 퓨론사즈를 포위하고 강화요청을 받아내 독립 루우젤을 완성한다. 그리고 딤켈마로켄 나이트가 기사대장 엘리미언을 기리는 뜻으로 퓨론사즈 성벽에 일제히 투석기를 발사하면서 작품이 완결된다.
외전 '''이나바뉴 최후의 날'''을 보면 그 후에도 루우젤을 침공하여 다시 병합하려는 이나바뉴의 행태는 10년 후까지 이어진 듯 보이며 10년 후 다시 퓨론사즈까지 진군한 루우젤 군은 기사대장 벨로멜의 지휘하에 공성전을 벌이는데 수우판의 양자로 입양된 메이가 나이트 아스테 이하 옐리어스 나이트를 몰살시키며 무조건 항복 문서를 받아내게 된다.
4. 명대사
- "이게 끝은 아닐 거야, 엑세레온. 우리가 다시 만나면, 우리가 세상의 끝에서 다시 만나면, 그 때 우리의 남은 반쪽의 예를 갖도록 하자. 넌 루우젤에게 이별을 말했지만, 루우젤은 아직 네게 이별을 말하지 않았어. 이제 이별이다, 엑세레온."[9]
- "역사가 우리를 부르는가,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가."
- "시련은 극복할 수 있는 자에게 내려진다."
- "그대가 기적을 원한다면, 그대가 그 기적을 행하라[10] . 그 기적을 행해주십시오, 나이트 엘리미언."
- "카샤린[11] , 이제 울어도 좋다." - 이나바뉴의 무조건 항복이 결정된 직후
- "보고 있느냐, 엘리미언. 보고 있느냐." - 퓨론사즈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본 수우판의 독백[12]
5. 여담
하얀 로냐프 강 2부의 진정한 먼치킨. 하나같이 사기캐인 루우젤 3인방 중에서도 돋보이는 사기성을 선보인다.
작중에서 눈에 띄게 젤라하 라벨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둘의 능력을 비교하자면, 일단 수우판은 본인이 하야덴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기 때문에 무력 비교는 논할 가치도 없이 라벨의 승리이고, 그보다도 전술적인 능력이 특히 부각되는 캐릭터 역시 수우판보다는 라벨 쪽이다. 수우판은 선역측 주인공이니 당연히 활약이 많지만, 라벨이 등장할 때마다 그 먼치킨 수우판조차도 골탕먹거나 최소한 긴장을 타게 되는 점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실제 능력을 비교하기는 힘든데, 작중에서 두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어떻게든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작중에서 전술적으로 수우판을 약간 압도한 쪽은 라벨이지만, 라벨은 이나바뉴 내의 정치적 입지와는 별개로 야전에서는 권한이 컸고 가용 자원이 항상 넘쳐났던 만큼 작전 수립도 자유로웠다. 레페리온 500기 정도의 병력은 이나바뉴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었지만 루우젤군은 소수 병력이라도 전멸을 각오하고 미끼로 던져주고 허를 치는 따위의 작전은 설령 하고 싶었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중에서 라벨과 수우판 모두가 이 상황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으며 라벨은 이 점을 특히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반면 수우판은 아는데 답이 없어서(...) 곶통받는 편에 가깝다.
이와 반대로 수우판 쪽이 부각되는 능력은 전략적인 면인데, 수우판은 거의 맨땅인 루우젤을 키워서 이나바뉴를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수준까지 키워냈으며 기병 전술을 혁신하고 신병기를 개발하는 등, 자원의 열세를 아예 전쟁의 패러다임을 갈아엎어 버림으로써 해결하고 결국 강대국 이나바뉴를 역관광하는 데 성공한다. 이 점에서는 수우판과 라벨의 상황이 반대인데, 초반부에는 할파펠 왕의 절대적인 신뢰 덕에, 이후에는 자기 자신이 왕이라서 정치적인 걸림돌이 전혀 없었던 수우판과 달리 사방이 정적 투성이인 라벨에게는 전쟁터보다도 퓨론사즈 왕성이 더욱 피말리는 곳이었다. 물론 라벨이 공돌이가 아니니 투석기를 개발하진 않았겠지만, 설령 본인에게 뭔가 대국적인 계획이 있었더라 하더라도 그것을 밀어붙일 힘이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도 단순히 어느 쪽이 우위라고는 하기 어렵다.
수우판의 원만한 인간관계나 라벨의 정치적 처신이 미숙한 면 등도 능력으로 보고 비교한다면, 샤안의 협곡 전투의 최종적인 승리 요인은 벨로멜 할아범에게 수정펀치 한 대 맞고 바로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선 수우판의 강철멘탈일지도 모른다. 라벨은 네프슈네 나이트를 포위섬멸한 시점에서 (기사대장이 된다는) 본인의 목적을 사실상 모두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이나바뉴가 패배하고 엑세레온이 전사하는 시나리오는 고려하지 않았고 그 시점에서 아예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좀 다른 의미로 정신줄을 놓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
캐릭터로서는 각종 무기제작에 통달한 공돌이 및 밀덕 속성이 명백하게 부여된 대장장이이며, 기본적으로 역덕이면서 그 중에서도 아펠르 세계관 내 전쟁사에 능통한 점, 더불어 전략전술에서 세계관 내 수위를 다투는 국왕이라는 점까지 더하면, 가히 문종대왕과 유사한 인물.
흔히 선대 국왕 겐키트 12세를 이어 '''겐키트 13세'''로 불리는 경우가 있으나, 정확한 왕호가 나온 적은 없다. 다만, 등장한 선대 국왕 겐키트 11세와 할파펠이 모두 국명인 '''루우젤'''을 성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국왕이 된 이후의 풀네임은 '''수우판 루우젤'''일 것으로 추측된다.[13]
[1] 루우젤은 이미 이나바뉴의 식민지로서 복속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명목상 왕일 뿐 사실상 루우젤의 정신적 지주 정도의 위치에 있었고, 생계도 아들인 할파펠이 꽃집을 운영하면서 꾸려나가고 있었다.[2] 레본스트를 수행했던 기사들은 상대가 루우젤식 검술을 쓰는 자라고 했는데, 그 실력으로 미루어 볼 때 나이트 엑시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3] 이 모든 것은 분쟁상황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나바뉴 고위 정치가(귀족)의 책략이었다.[4] 수도의 전 시민을 광장에 모아놓고 범인은 자수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나(범인이 그중에 없었으니…), 겐키트 11세에게 칼을 들이대고 너희들의 왕을 살리고 싶으면 빨리 자수하라고 했다. 이에 루우젤 시민들이 너도나도 내가 진범이라며 나섰지만, 오히려 이나바뉴 기사는 나를 우롱하느냐고 분노하면서 루우젤의 왕을 베어버렸다.[5] 하얀 로냐프강 세계에서 철을 의미.[6] 하얀 로냐프강 세계에서 장검을 의미.[7] 루우젤 어로 '마로켄의 분노'라는 뜻.[8] 나이트 헤안과 나이트 마로켄은 먼 옛날 독립국 시절의 루우젤 기사들이다. 이나바뉴가 루우젤을 침공하자 헤안과 마로켄은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우주방어를 펼쳐 이나바뉴가 침공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고 간다. 마지막 전투에서 마로켄은 '내가 죽더라도 벤도루우젤 성에서 나와서는 안된다.'고 헤안에게 당부했다. 그럼에도 헤안은 친구 마로켄을 구하기 위해 결국 벤도루우젤 성에서 뛰어나왔지만, 결국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고 오히려 성의 방어선까지 뚫리면서 루우젤이 함락된다. 나이트 헤안은 전투 끝에 전사하였고 나이트 마로켄은 이나바뉴에 거역한 죄로 조리돌림을 당한 후 벤도루우젤 광장에서 거열형으로 생을 마감한다.[9] 엑세레온이 이나바뉴의 기사가 되기 위해 루우젤을 버리겠다는 말을 하자 고별사로 한 말.[10] 참고로 세라프 파스크란이 남겼다는 명언.[11] 루우젤 수비대 시절부터 엘리미언의 직속 부관이었으며, 엘리미언의 사후 네프슈네 나이트의 바스엘드가 된다.[12] 엘리미언은 죽기 직전 '퓨론사즈를 함락시키기 전까지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13] 원래 루우젤은 국왕을 제외하고 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대 유럽이나 여타 판타지에 등장하는 '누구누구의 아들 누구'식의 성명 사용방식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