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루가만 상공 니어미스 사고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2001년 1월 31일
'''유형'''
관제 실수
'''발생 위치'''
스루가만 상공
<color=#373a3c> '''탑승인원'''
JL907 승객:411명, 승무원:16명
JL958 승객:237명, 승무원:13명
<color=#373a3c> '''생존자'''
'''두 기체 탑승자, 승무원 총합 677명 전원 생존'''
'''기종'''
보잉 747-446D, DC-10-40
'''항공사'''
일본항공
'''기체 등록번호'''
JA8904, JA8546
'''JAL907'''
'''출발지'''
하네다 공항
'''도착지'''
나하 공항
'''JAL958'''
'''출발지'''
김해국제공항
'''도착지'''
나리타 국제공항[1]
[image]
2001년 11월 30일 후쿠오카에서 찍힌 JA8904 (사고 당시 907편)[2]
[image]
2000년 8월 7일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찍힌 JA8546 (사고 당시 958편)[3]
1. 개요
1.1. 여객기 두 대
2. 사고 진행
3. 니어미스[4]
4. 사고 결과

日本航空機駿河湾上空ニアミス事故
일본 항공기 스루가만 상공 니어미스 사고
2001 Japan Airlines mid-air incident

1. 개요



2001년 1월 31일, 일본 스루가 상공에서 일본항공 소속 여객기 2대가 관제실수로 공중충돌할 '''뻔'''했던 사고.

1.1. 여객기 두 대


한 대는 하네다를 출발하여 나하로 가는 일본항공 907편(기종 : 보잉 747-446D / 기체 등록번호 : JA8904), 승객 411명, 승무원 16명 도합 427명 탑승.
다른 한 대는 부산을 출발하여 나리타로 가는 일본항공 958편(기종 : DC-10-40 / 기체 등록번호 : JA8546), 승객 237명, 승무원 13명 도합 250명 탑승.[5]
운항 계획상 두 여객기는 최소 2,000피트(약 610 m) 고도차로 통과할 예정이였다.

2. 사고 진행


일본항공 907편(이하 JAL907편)은 이륙 20분 후, TCAS로부터 일본항공 958편(이하 JAL958편)을 컨택한다.
JAL907편은 39,000피트 상공으로 상승 중, JAL958편은 37,000피트 상공에서 순항 중이었으며, 두 여객기가 각기 다른 방위에서 서로에게 접근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도쿄 항공관제소가 이를 감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황에는 이러한 사고가 날 일이 없는데, 초보 관제사가 실수를 저지르면서 문제가 생긴다. JAL958편에게 '''하강'''을 지시하고 잠시 뒤, JAL907편에게 '''똑같이 하강 지시'''를 내려버린다. 이때가 현지시각으로 오후 3시 54분경. 참고로 TCAS상에서는 한쪽에 상승 지시가 내려졌는데, 관제사의 지시를 우선하여 하강하였다.
레이더 스코프 상에서 두 여객기의 휘점이 급속도로 가까워짐을 발견하고 신참 관제사는 당황하여 JAL958편에게 우선회를 지시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무전은 JAL958편에 전달되지 못했다. 또한 애초에 이 상황은 우선회로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 우선회가 아니라 상하로 회피 기동을 지시했었어야 했다. 같은 관제소 내 고참 프로바이저 관제사가 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급히 JAL907편에게 상승을 지시하려 했지만 조급한 나머지 콜사인을 'JAL9'''5'''7'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실패했다. 참고로 당시 공역에 JAL957편이란 항공편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는 JAL957 항공편이 사고 항공편의 왕편이기 때문. 지금도 나리타 ~ 부산 노선으로 운항중이다.

3. 니어미스[6]


[image]
두 여객기가 서로를 육안으로 발견했을 때, 서로 간의 거리는 겨우 100m도 채 안되는 상황이었다. JAL907편의 비행기 기장 와타나베 마코토에 따르면 거의 '''35피트(약 11m)''' 차이로 비껴갔다고 한다. JAL907편의 승객이었던 알렉스 터너(Alex Turner)는 회피 기동은 2초간 지속되었다고 회상했다.
달리 손 쓸 틈도 없이 두 여객기는 서로를 가로질렀고, 기적적으로 충돌은 면하지만 양측 여객기는 무시무시한 돌풍에 휘말렸다. 여객기가 고고도로 순항할 때 속도는 900 km/h가 넘는다. 게다가 보잉 747DC-10 자체가 큰데다 초근접으로 가로질렀으니 당연한 일. 자세한 내용은 베르누이의 정리 항목 참조.
한 유튜버가 시뮬레이터를 통해 재연한 영상을 보면 두 여객기가 얼마나 가깝게 비행 했는지 알 수 있다. 밑으로 지나갔던 JAL907편, 즉 보잉 747기의 수직꼬리날개가 대략 8m쯤 되니까 '''3m만 가까웠어도 JAL907편의 수직꼬리날개가 JAL958편의 동체를 잘라버렸을 것이다.'''

4. 사고 결과


JAL907편에서는 중상자 9명, 경상자 91명(승객 81명, 승무원 10명) 도합 1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급히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으로 회항하였다. 착륙한 시각은 오후 4시 45분.
니어미스 직후 항공기는 돌풍에 휘말려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객기 내부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하지만 JAL958편의 경우 부상자가 전무한데 반해 JAL907편은 부상자가 100명이나 발생하였는데, 이는 JAL907편의 경우 사고 시점에 음료를 서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료 서빙 중 많은 승객들이 좌석 안전벨트를 풀었고, 복도에는 서빙 카트와 승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상자가 늘어난 것이다. 급강하로 인해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서빙카트는 아예 비행기 객실 천장을 뚫고 올라가버렸다.
만약 두 여객기가 서로 공중충돌을 했다면 600명 이상의 희생자[7]가 나왔을 것이며 이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항공사고였던 테네리페 참사를 상회하는 수치다. 이미 일본항공은 단일 항공기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항공사고였던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전일본공수에 그 파이를 빼앗기던 상황이었기에, '''이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일본항공 파산이 몇 년은 빨라지는건 물론이고 아예 팬암같이 회사 자체가 소멸하여 지금은 없어진 항공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8] 게다가 특성상 사회 재난인데다 출발지가 부산이고, 외항사 특성상 부산시민들이 많이 탔을 가능성이 높았기에[9] 한국에서도 부산광역시 전체와 경상남도 일부 기초자치단체 지역이 특별재해지역 (특별재난지역의 구 명칭)으로 지정되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10]
하지만 1년 5개월 후, 독일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이번엔 정말로 공중충돌 사고가 일어난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충돌을 면치 못해서 희생자 71명이 발생한다.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위버링겐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JTSB[11]일본 정부가 TCAS 규정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ICAO가 관제과실일 뿐이라며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모든 책임을 일본 정부에게 떠넘겼다. 결국 TCAS의 운영규정을 바꾸지 않았고 그 결과가 1년 5개월 뒤 일어난 사고이다. 만약 ICAO에서 일본 정부와 JTSB의 문제 제기를 들었더라면 해당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고는 MBC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18년 8월 26일 방영)에서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사고를 일으킨 관제사들은 이후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공무원법에 의해 실직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이후 '항공사의 편명을 착각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냈다'는 이유로 징역과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당시에 관제를 담당했던 수습 관제사 뿐만 아니라 프로바이저 관제사 또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프로바이저 관제사쪽이 약간 더 형량이 높았다. 그러나 수습 관제사의 실수에 대해서는, 사고 과정에서 수습 관제사가 10대 이상의 비행기를 동시에 관제하는 과다한 업무를 할당받은 것이 확인되면서 일본 언론에서 이 판결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TCAS의 상승 지시를 무시하고 하강 회피기동을 한 기장에 대해서도 과실이 있는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당시에는 아직 위버링겐 상공 공중충돌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기도 했으며, TCAS와 관제사의 지시가 서로 다를 경우 어느쪽을 우선해야하는지에 대한 규정이나 교육이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관제사의 잘못된 지시를 따른 것은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상술했듯 이런 상황이었기에 일본 정부에서 이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의견제시를 한 것. 결국 위버링겐 사고 전에는 사고원인을 알아챈 일본 정부만 TCAS규정을 수정했었다.

[1] 사고 당시의 명칭은 신도쿄 국제공항.[2] 사고 후, 2010년까지 일본항공에서 운영하다 스크랩[3] 사고 후, 화물기로 개조되어 아에로플로트와 DETA 항공에서 운영하다 2016년 해체[4] 비행 중인 항공기가 공중충돌 또는 공중접촉의 위험이 있을 정도로 접근, 충돌할 뻔한 상태. 준사고(incident)로 분류된다.[5] 출발지가 부산이라 한국인이 많이 있었다.[6] 비행 중인 항공기가 공중충돌 또는 공중접촉의 위험이 있을 정도로 접근, 충돌할 뻔한 상태. 준사고(incident)로 분류된다.[7] 411+16+237+13='''677명'''[8] 아무리 일본 정부가 나서서 파산과 도산을 막는다 해도 그 시점에는 이미 고객들의 신뢰가 떨어질 만큼 떨어지게 되며, 이는 자연히 이용률 급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파산이나 도산을 방지한다 한들 수요가 폭락하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당시 일본항공과 막 합병한다고 했던 일본항공시스템이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반대로 일본항공쪽을 합병했을수도 있었다. 위버링겐 사고를 당한 바쉬키르 항공도 과실이 전혀 없었음에도 이미지가 나빠져 결국 파산했다.[9] 부울경은 인천국제공항과 거리상 멀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공항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큰데다 (칼피아 문제까지 있다), 연결 항공편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 내에서 외항사의 비중이 매우 높은 곳이다.[10] 대구 지하철 참사세월호 참사 때 각각 대구광역시와 경기도 안산시(피해자가 많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사고 발생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만약 공중충돌 사고로 이어졌다면 적어도 부산광역시는 피해자가 많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김해시, 창원시, 마산시진해구도 피해자 규모에 따라 선포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었다.[11] Japan Transport Safety Board, 運輸安全委員会(운유안전위원회). 일본 국토교통성 소속 기관으로, 항공/철도/선박 전반의 사고 원인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를 내리는 등의 역할을 하는 독립 행정기관이다. 참고로 JTSB는 2008년에 기존의 '航空・鉄道事故調査委員会'(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 영문 약칭 ARAIC.)를 해양 부문과 합쳐서 생긴 기관이라, 엄밀히 말하자면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낸 기관은 ARAIC다. ARAIC의 정식 영문 명칭은 Aircraft and Railway Accidents Investigation Com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