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리페 참사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77년 3월 27일
'''유형'''
활주로상 충돌, 조종사 및 관제 시스템 과실
'''발생 위치'''
로스 로데오 공항(현 테네리페노르테 공항)
<color=#373a3c> '''탑승인원'''
KL4805: 승객 234명, 승무원 14명
PA1736: 승객 380명, 승무원 16명
<color=#373a3c> '''사망자'''
KL4805: '''승객 234명, 승무원 14명 전원 사망'''
PA1736: 승객 326명, 승무원 9명
<color=#373a3c> '''생존자'''
PA1736: 승객 54명, 승무원 7명[1][2]
'''기종'''
KL4805: 보잉 747-206B
PA1736: 보잉 747-121
'''항공사'''
KLM 네덜란드 항공, 팬 아메리칸 항공
'''기체 등록번호'''
KL4805: PH-BUF
PA1736: N736PA
'''출발지'''
KL4805: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PA1736: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경유지'''
KL4805: 로스 로데오 공항
PA1736: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로스 로데오 공항
'''도착지'''
그란 카나리아 공항(라스 팔마스 공항)
1. 개요
2. 사고기
2.1. KLM 4805편
2.2. 팬암 1736편
3. 사고 진행
3.1. 출발
3.1.1. KLM 4805편
3.1.2. 팬암 1736편
3.2. 라스 팔마스 공항 테러 위협
3.3. 로스 로데오 공항의 열악한 상황
3.4. KLM기의 주유
3.5. 활주로 택싱
3.6. 이륙, 그리고 충돌
3.7. 피해를 키운 구조작업
4. 원인
5. 유사 사고[3]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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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Tenerife airport disaster
네덜란드어: Vliegtuigramp van Tenerife
스페인어: Accidente de Tenerife / Accidente de Los Ro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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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 6분 56초경 KLM 소속의 암스테르담그란카나리아 섬747-206B 4805편과 팬 아메리칸 항공 소속의 로스앤젤레스그란 카나리아 섬747-121 1736편이 스페인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에 있는 로스 로데오 공항(현 테네리페노르테 공항)의 활주로에서 충돌하여 탑승객 614명(KLM 234명, 팬암 380명)과 승무원 30명(KLM 14명, 팬암 16명) 중 총 58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당한 '''항공 사고 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이다.'''
KLM 4805편의 탑승객 중 여성 1인이 살아남았는데, 사고기에서 로스 로데오 공항 이륙 전에 내린 승객이다. 그녀는 KLM 4805편의 원래 목적지인 라스 팔마스 공항을 경유하여 암스테르담에 가려고 했으나, 비행기가 겸사겸사 로스 로데오에 도착했으니 로스 로데오에 있는 남자친구 집에 머물다가 다음 날 원래 목적지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부상도 경상도 아니고, 충돌과 관계없이 중도 하기하여 그냥 살았다. 탑승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 생존자로 보지는 않는다.
단일 사고에서 가장 많은 항공기 탑승객이 사망한 사고이다. 항공기 탑승객 사망 순위 1위. 참고로 단일 항공기 사고로 최악의 인명 사고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4]이며, 항공기가 유발한 최악의 인명 피해는 9.11 테러에서 발생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사상 최악의 참사항공 사고 수사대[5], KBS joy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도 방영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국내 유수 언론에서도 1977년 해외 10대 뉴스로 꼽히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1977년 당시에는 요즘처럼 신문이 두껍지 않고 겨우 8면(두 장)만 나오며 또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외국 소식을 1면은 물론 신문 속에도 많은 기사를 할애할 정도로 그 비중이 엄청났으니, 대한민국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최근에 발생한 해외 항공 사고들 중에 비유하자면 9.11 테러 수준의 충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테네리페 섬은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보다 좀 더 크고 인구 약 90만 명으로 스페인에서 상주 인구가 상당히 많은 섬이며, 연간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 있는 휴양지이다. 섬 중앙에는 높이 약 3,718m의 큰 활화산이 있는데 스페인과 대서양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2. 사고기



2.1. KLM 480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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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보잉에서 1971년에 제작한 747-206B. 등록번호 PH-BUF. 애칭은 Rijn(Rhine). 157번째 보잉 747이자 25번째 보잉 747-200 기종. KLM 내에서는 6번째 보잉 747 기체였으며, 1971년 9월 14일 첫 비행을 하였고, 10월 19일 인도되었다.

2.2. 팬암 1736편



1970년 1월 보잉 747운항 첫 날 JFK히스로에서 촬영된 N736PA의 영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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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한달 전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보잉에서 1969년에 제작한 보잉 747-121 기종이다. 테일 넘버/등록번호 N736PA. 1969년 12월 24일 첫 비행을 하였고, 1970년 1월 20일에 인도되었다. 11번째 보잉 747로, '''최초 상용운항 시작 기체이다.'''[7][8] 이 사고만 아니었으면 항공 박물관에 분명히 귀한 몸으로 모셔졌을 터인데... 별칭은 Clipper Victor. Victor는 승리라는 뜻이다.

3. 사고 진행



3.1. 출발



3.1.1. KLM 4805편


KLM 4805편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과 그란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 팔마스 국제공항 간의 정기운항편으로 평소 DC-8이 투입되었으나 부활절 휴가기간을 맞이하여 747이 투입되었다. 사고 4시간 전, 암스테르담에서 14명의 승무원과 234명의 휴양객(어린이 69명 외 다수의 청년 포함)을 싣고 이륙하여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 팔마스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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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M 4805편의 기장은 야콥 펠트하위전 판 잔턴[9](Jacob Veldhuyzen van Zanten, 1927. 2. 5. ~ 1977. 3. 27.)이었다. 판 잔턴은 비행경력 12,000시간의 베테랑 기장으로 위 이미지처럼 KLM의 광고에 등장할 정도[10]로 회사로부터 신망받던 스타 파일럿이었다. 어느 정도 신망이었냐면, 사고 발생 후 KLM에서 사내 조사단이 제일 먼저 연락을 시도한 게 사고로 사망한 기장 판 잔턴이었다. 또한 KLM의 첫 보잉 747이 인도될 때 기장이기도 했다. 비행 시간이 95시간 밖에 안 되는 쪽은 오히려 부기장이었다.

3.1.2. 팬암 1736편


팬암 1736[11]편(PA1736편)은 비정기 차터기로 팬암 산하의 여행사[12]에서 카나리아 제도 간을 운항하는 크루즈선을 테마로 한 여행상품을 위한 대여된 보잉 747기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승무원 18명과 승객 382명(승객의 대부분은 은퇴한 노인이었다.)을 태우고 이륙하여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라스 팔마스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승객 대부분은 크루즈선 오디세이 호에 탑승하려는 목적으로 본 항공기에 탑승했다.
빅터 그룹스 기장은 비행경력 21,000시간의 베테랑 기장으로 KLM기의 판 잔턴 기장보다도 훨씬 오랜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팬암 1736편의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는 부상을 입긴 했지만 모두 사고에서 생존하여 10~30여 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13]

3.2. 라스 팔마스 공항 테러 위협


사고 당일 오후 1시경, 카나리아 제도 분리독립파 조직 MPAIAC에게서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15분 후 라스 팔마스 공항 어딘가에 설치된 폭탄이 터질 것이다'. 예고대로 오후 1시 15분경, 공항 근처에 있던 꽃 가게의 화분에 숨겨진 폭탄이 폭발했으나,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라스 팔마스 공항은 임시 폐쇄되었다.
그렇게 라스 팔마스 공항이 임시로 폐쇄되자 이 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들에게는 임시로 근처에 있던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의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회항하여 착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고의 주인공이 된 KLM기와 팬암 기도 지시에 따라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착륙하게 된다. 이때 팬암기는 중간 기착지인 뉴욕에서 재급유를 한 덕분에 2시간 가량 비행 가능한 연료가 있었기 때문에 관제탑에 선회 대기를 희망했지만 묵살당했다.

3.3. 로스 로데오 공항의 열악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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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로데오 공항은 말 그대로 시골 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공항이었기에 공항 규모도 작고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14] 활주로는 단 하나에, 레이더도 없는 이 열악한 공항은 애초부터 국제선에 취항하는 대형 여객기가 이착륙할 일도 없는 공항이었다.
이런 한적한 작은 공항에 갑자기 테러 위협으로 회항하는 각종 비행기들이 몰리며 가득 차게 되었고, 워낙 작은 공항이었는지라 L-1011 1대와 보잉 747 '''3대'''외에 미확인된 광동체 1기[15]를 포함하여 비롯한 온갖 비행기들이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주기장은 물론 유도로에까지 비행기를 채우고도 모자라 활주로를 유도로로 이용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여수공항이나 잘쳐줘봐야 청주국제공항정도의[16] 공항에 광동체기를 5대나 꾸역꾸역 잡아놓은것이다'''.
게다가 하필 이 날이 주말인 탓에 로스 로데오 공항의 관제사는 단 2명밖에 없었다. 즉 이 두 사람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비행기들의 접근, 착륙, 유도, 이륙까지 몽땅 떠맡게 됐다는 것.
당시 로스 로데오 공항에 임시로 착륙한 비행기들이 주기하고 있던 상황은 아래와 같다. 사고기 중 KLM 기가 팬암 기의 앞쪽에 주기하고 있었다. 즉, KLM 기가 앞에서 팬암 기의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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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에 KLM기 승객으로부터 찍힌 사진으로, 사고 조사관들이 공개한 주기 장소와 사진이 정확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촬영자는 KLM기의 오른쪽 날개 아래에 있었으며, KLM기에는 스페인 령인 테네리페답게 이베리아 항공의 탑승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팬암 기 또한 이베리아 항공의 탑승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KLM기 왼편에 주기되어 있던 이동 중인 스위스 SATA 항공의 DC-8기(HB-IDB), 그리고 11시 방향에 주기되었던 덴마크 STERLING 항공의 B727이 이동 중에 있다. 네덜란드 포럼에서 촬영 순서대로 배열해 둔 듯 하다. 그 뒤쪽으로 주기장에는 Aviaco DC-8, Spantax CV-990, Hapag B727이 주기되어 있다.
사고 직후 조사관들이 사고 지점에서 터미널 쪽을 찍은 사진들에서는 터미널 쪽 주기장에 사베나 항공의 B747과 영국항공L-1011이 주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공항이 당시 국제 노선은 담당하지 않았던 점, 국제선을 담당하던 그랜드 카네리 공항으로 가야 되는 항공기가 모두 테네리페로 왔던 점과 활주로가 사고 직후 폐쇄된 걸 고려하면 사고기들이 공항에 주기할 때쯤 같이 주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3.4. KLM기의 주유


테러 위협으로 어쩔 수 없이 로스 로데오 공항에 머무르게 된 KLM기와 팬암기는 서로 다른 대기 조치를 취했다. 팬암기보다 먼저 착륙하여 주기한 KLM기는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공항 터미널에서 쉬게 해주었지만, 뒤늦게 도착하여 주기한 팬암 기는 공항 터미널의 수용인원 초과 문제로 관제탑으로부터 승객들을 기내에서 머물게 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기내의 출입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고 탑승계단도 연결해 놓아 원하는 승객들은 기체 주변 주기장에서 스트레칭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했지만 팬암기의 승객들 중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뉴욕을 거쳐 이곳 테네리페까지 13시간 넘게 비행을 했던 경우도 있어 대부분 상당히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장거리 비행의 끝자락에서 이런 예기치 않은 도착 지연이 발생하다 보니 허기를 달래고자 간식을 원하는 승객들이 많았는데, 기내에 탑재된 기내식은 모두 동이 난 상태고 인원 문제로 공항 터미널엔 가지도 못한 채 기내에 갇혀 있다보니 팬암기 승객들의 스트레스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라스 팔마스 공항의 폐쇄가 해제되었고, 테네리페 공항에 주기하던 여객기들은 라스 팔마스 공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팬암기는 승객들이 기내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즉시 이륙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던 KLM기 때문에 이륙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KLM기가 라스 팔마스 공항은 물론 심지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까지 갈 수 있는 항공유 5만 5000L를 급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치자면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주유소에서 뒷차는 주유를 다 끝냈으니 얼른 출발해야 하는데, 뒷차는 생각하지 않고 앞의 대형 리무진이 만땅을 부른 셈이다.
이 터무니없는 만땅 급유로 KLM 4805편은 이륙 중량이 무거워 활주 길이가 길어졌고, 그 결과 팬암기와 충돌 후 대폭발을 일으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판 잔턴 기장의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부조종사 및 항공기관사는 여기 로스 로데오보다는 기존 계획대로 라스 팔마스에서 급유하는 게 가격도 덜 비싸고 현재 남은 연료로도 라스 팔마스까지 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서 굳이 여기서 급유할 필요는 없다고 설득했으나, 판 잔턴 기장은 어차피 여기서 시간을 보내니까 괜찮고, 거기 가면 또 다른 비행기들도 많이 와서 급유를 받는데 시간도 걸리고 그 공항이 언제 또 갑자기 폐쇄될지 모른다는 이유를 대며 '''내가 이 기장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결정한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는 부조종사 및 항공기관사가 참사의 결정타를 가한 기장의 독단적인 행동에 마땅히 제지를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만약 이때 KLM기 혼자만 주기하고 있었다면 이때 급유한 것은 괜찮은 판단일 수도 있었다. 당시 항공편 지연에 대한 판 잔턴 기장의 심리적 압박이 상당히 심한 상황이었고 나중에 다시 급유하려면 운항 지연의 수준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으니, 이왕 공항에 주기한 상황에서 급유까지 하여 시간을 아껴보자는 생각 자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문제는 라스 팔마스 공항을 KLM기 혼자 전세 내고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
다른 비행기에 민폐를 주면서까지 독한 성격으로 기름 다 채울 때까지 닥치고 기다리라고 버틴건 분명 판 잔턴 기장의 에티켓 문제라 할 수 있다. 덩치 큰 KLM기가 급유를 받는답시고 계속 그 자리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을 막고 있자 뒤에 있었던 팬암기 역시 덩치 큰 보잉 747인 까닭에 KLM기의 날개에 걸려 12피트(약 3.66미터) 차이로 지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팬암기의 빅터 그룹스 기장은 KLM기의 판 잔턴에게 대략 몇 분 정도 걸릴 것인가를 무전으로 물어보았으나 판 잔턴 기장은 35분이라고만 말하고 바로 연결을 끊었다. 팬암기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자신들 뒤에 있었던 덩치 작은 10대의 비행기들이 먼저 빠져나가 이륙하는 장면을 보며 먼저 이륙한 비행기처럼 분노가 하늘로 뻗쳤다.
설상가상으로 KLM기의 급유가 완료된 후에도 두 여객기의 이륙은 계속 지연되었는데, 승객 중 어린이 2명이 타지 않아 승무원과 지상 요원들이 이들을 공항에서 찾는다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륙이 또 다시 지체되어 이들이 어딨는지 찾기 어려우면 경우에 따라서 수십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승객들이 테네리페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했기에 이때부터 판 잔턴 기장은 극도로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숙박 외에도 네덜란드의 빡센 초과근무 규정에 저촉될까 하는 문제[17]도 신경쓰였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연착 원인에 상관없이 연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기장에게 지워지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더구나 기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급유한답시고 이륙을 고의적으로 30분 이상 지체했기 때문에 추후 회사로부터 개인 과실을 강도 높게 추궁받을 각오도 해야 했던 상황이다.
때문에 생존자들의 회고 및 사고 조사 보고서를 기반으로 해당 참사를 재연한 프로그램인 'Crash Of The Century'에서는 판 잔턴 기장이 승객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인터폰으로 보고하던 스튜어디스에게 '''"지금 이륙하지 못하면 승객들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 거란 말이야. 승객들하고 공항에 갇히고 싶은 거 아니면 터미널로 가서 걔네들 끌고 오라고! 당장!"'''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독설을 퍼붓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결국 KLM기 스튜어디스와 테네리페 공항 지상요원들이 아이들을 찾아 서둘러 KLM기에 탑승시키게 되고, 항공기는 곧바로 택싱에 들어간다. 그 지상요원은 당시 택싱 직전 스튜어디스가 문을 닫기 전에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할 때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면서 자신이 아이들을 못 찾았다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 그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그 아이들의 죽음에 스튜어디스가 찾았던 것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지만, '''그들을 죽인 건 그 지상 요원이 아니라 이후 말도 안되는 무단 행동을 감행한 KLM의 기장 판 잔턴 그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우게 만든 KLM의 어이없는 사내규정 이었다.'''

3.5. 활주로 택싱


느긋하게 급유를 완료한 KLM기는 드디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택싱을 시작했다. 팬암기도 곧 KLM기의 뒤를 이어 활주로를 따라 택싱을 시작했다.
그런데 출발을 할 즈음에 바다에서 온 해무, 산에서 내려온 구름,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 때문에 급격한 기상변화가 일어난다. KLM기가 택싱을 마쳤을 때쯤에 시야는 벌써 300m 이하로 내려가 있었다. 규정상 이륙 시 최저 시야는 700m로 이 이하로 내려가면 이륙을 단념해야 한다.
KLM기의 판 잔턴 기장은 택싱 내내 지상 택싱 스피드를 왜 이렇게 느리게 잡았냐는 둥,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이건 완전 악몽이라며 빨리 떠나고 싶다고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택싱 체크리스트를 시작하려는 메우스 부기장과 슈뢰더 항공기관사가 판 잔턴을 진정시켜려 애쓰기도 했다. 결국 관제탑은 KLM기에게 활주로로 끝까지 가서 180도 유턴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한편 KLM기가 C2 유도로를 지날 때쯤 관제탑은 뒤이어 활주로를 택싱하고 있던 팬암기에게 전방에 있는 C3 유도로에서 빠진 다음 평행유도로에서 대기하다가 그 사이에 KLM 기가 이륙하고 다시 활주로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팬암기는 안개 탓에 유도로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택싱 속도를 줄이게 된다.
사고 당시 팬암기는 C3 유도로를 지나쳐서 C4 유도로로 진입하려고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팬암기가 고의로 C3 유도로를 지나쳐서 C4 유도로로 가려고 했다는 설도 있고, 팬암기가 3을 4로 잘못 알아들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팬암기가 C3 유도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려서 C4 유도로로 가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팬암 기가 고의로 C3을 지나쳤다는 설에 따르면 C3 유도로로 빠져나기 위해서는 '''148도 턴'''을 해야 했는데, 보잉 747 정도 되는 대형기가 택싱하면서 148도 턴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 그 때문에 팬암기는 C3 유도로로 빠지라는 지시를 관제탑의 실수로 단정하고 C3 유도로를 지나 C4 유도로를 열심히 찾은 것이다. 사고 후 Air Line Pilots Association International(ALPA)은 모형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 Practical impossibility, 즉 실제로는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ALPA의 보고서 19~20페이지 참조
한편 팬암기가 고의로 C3을 지나친 것이 아니라 안개가 너무 짙어서 C3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C4로 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팬암기가 관제탑에서 말하는 3을 4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하단 원인 부분 참조.

3.6. 이륙, 그리고 충돌


'''"Goddamn, that son-of-a-bitch is coming straight at us!"'''

'''"미친, 저 개새끼[18]

우릴 향해 돌진하고 있어!"'''

팬암기 기장


한편 KLM기는 활주로 끝에 도달하여 180도 유턴(턴백)을 한 후 이륙 허가를 기다렸고, 관제탑은 KLM기에게 이륙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판 잔턴 기장은 아직 이륙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엔진 출력을 올리며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 놀란 메우스 부기장이 판잔턴 기장에게 "잠깐만요, 아직 이륙 허가를 받지 않았는데요?" 라고 물어봤고, 명백한 이륙 절차 위반 사항에 대해 지적한 것이지만 권위적인 판 잔턴 기장도 다소 짜증난다는 듯한 말투로 "나도 알아. 자네가 관제탑에 물어봐." 라고 대답하며 속도를 높였다.
이때 메우스 부기장이 판 잔턴 기장의 행동에 간섭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급유 시에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기장의 강압적인 태도에 한풀 꺾여 있었고, 자신도 기장 못지 않게 시간적으로도 급박했던 데다가 이륙 준비 시에도 기장에게 이륙 허가와 관련해 한 번 제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장이 독단적으로 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급자로서 더 이상 간섭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봐야 한다.
어쨌든 퉁명스런 기장의 말을 들은 메우스 부기장은 당황스러운 상태로 급하게 관제탑에게 리드백[19]으로 이륙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교신 내용을 들은 팬암기의 부조종사는 자신들이 아직 활주로 위에서 이동 중이라고 알렸고, 또 관제탑은 KLM기에게 알았으니 연락할 때까지 이륙을 대기하라고 응답했다.
그런데 이 두 교신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헤테로다인 현상[20]이 발생하여 두 내용이 잡음으로만 들리게 된다. 이때 KLM 조종실에는 관제탑의 응답 중 "OK"만이 들리게 되었다. 당시 관제탑은 "OK... Stand by for take-off, I will call you."[21]라고 했다.
일단 OK '''뒷부분'''의 의미는 명확하다. 하필 관제탑이 OK로 문장을 시작해서 혼동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륙 허가를 내주지도 않았는데 '''상식적으로 우리 지금 이륙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비행기는 없기 때문에''' KLM기의 리드백 다음에 '이륙하고 있다'는 말을 관제탑이 '이륙 위치에 있다' 정도로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관제탑과 KLM기 모두 비표준 용어를 썼기 때문에 이런 커뮤니케이션 문제에서 어느 한 쪽을 탓할 수 없다면서 은근 슬쩍 관제사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혼란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이륙 허가가 나기도 전에 활주로를 내달리던 KLM기에게 있다. 관제사는 단지 이륙 허가도 안 받고 이륙을 시도하는 정신나간 조종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한 것이고, 저 정도로 정신나간 짓을 미리 예상하는 건 관제사의 책임 범위 바깥이다. KLM 판 잔턴 기장의 있어서는 안될 규정 위반의 중대한 잘못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러한 일어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관제사들이 상황을 잘못 이해하게 된 근본 원인이 되었다. 동일한 상황에서 표준 용어로 교신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몇 초 후 관제탑은 KLM기의 이륙 진행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팬암기에게 활주로에서 나갔는지 물어봤고, 팬암기의 부기장은 활주로에서 나가게 되면 보고하겠다고 대답한다.
이 교신 내용으로 KLM기 승무원들은 아직 활주로에 팬암기가 있다는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판 잔턴 기장은 이륙 절차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KLM기의 슈뢰더 항공기관사가 판 잔턴 기장에게 “Is hij er niet af dan?"(직역 : 그가 깨끗하지 않다고 했나요?)[의역1]고 다급하게 묻는다. 그러자 판 잔턴 기장은 "Wat zeg je?(뭐라고?)"라고 되묻는다. 이에 항공기관사는 "Is hij er niet af, die Pan American?"(직역 : 그가 깨끗하지 않다고 했나요, 그 팬암기?)[의역2]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판 잔턴은 “Jawel.(Oh, yes)"[22]라고 강하게 말하고[23] 계속 이륙을 진행했다. 조종실에서 제일 막내였던 항공기관사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이로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날아가 버렸다.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조종실에서 가장 막내였던데다 급유 시에 판 잔턴 기장이 ''''기장인 내 결정에 토 달지 말라''''는 윽박지름도 있었고 이륙 직전의 준비 절차에서 판잔턴 기장의 '와이퍼 켜라(Wipers On)'는 명령을 잘못 듣고, 라이트를 켜는(Lights On) 실수까지 저질러 구박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종합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아 판 잔턴 기장에게 더 이상 간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안개만 끼고 비도 오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보통 라이트를 켜는 게 일반적이지 와이퍼를 켜는 게 예상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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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스 기장은 계속되는 급유로 자신들의 이륙을 막았던 KLM기의 승무원을 대차게 까면서 드디어 소원하던 C4 출구를 발견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앞에서 달려오는 KLM기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C4 출구가 있는 좌측 방향으로 랜딩기어를 급격하게 틀면서 엔진 스로틀을 최대치로 올려 급가속하여 충돌을 피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부기장은 '''"Get out! Get out! Get out!"'''(꺼져! 꺼져! 꺼져!)을 끊임없이 외쳤다.
판 잔턴 기장 역시 팬암기를 발견하고는 경악해서 비행기를 띄우려고 애썼다. 다만 막 이륙결심속도(V1)[24]를 넘긴 KLM기로서는 별로 희망이 없었고, 그렇게 무리하게 이륙하려고 노력한 결과 테일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게 되고 충돌 직전 간신히 뜨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탓에 무려 156kts(290km/h)의 속도로 KLM 기의 동체 밑바닥과 랜딩 기어가 팬암기의 동체를 강타하고, 4번 엔진은 팬암기의 어퍼데크를 날려버렸다. 충돌 위치가 조종실 뒤쪽이었기 때문에 팬암 기 조종사들은 다행히도 충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순식간에 두 비행기는 불길에 휩싸였고 이후 KLM기는 약 150m를 난 뒤 뒤집혀서 추락 후 추가로 활주로 위를 300m 정도 미끄러진 후 대폭발을 일으켰다. 재급유하여 가득 찬 연료에 불이 붙었고, 이로 인해 KLM기는 전소했고 승무원과 탑승객 포함 248명 전원이 사망했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온전한 시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타버렸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 1. 테러 위협에 의해 라스 팔마스 공항이 폐쇄되자 두 기체는 카나리아 제도의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착륙한다.
  • 2. 2시간 후, 팬암기는 재이륙 준비를 마쳤지만 KLM기의 급유, 승객의 탑승때문에 이륙이 지연되었다. 두 기 모두 이륙 준비를 마치자 KLM기에게는 활주로 끝에서 180도 유턴 후 이륙 명령 대기가, 팬암기에게는 C3유도로로 빠져 KLM기의 이륙을 기다렸다가 다시 활주로로 돌아오라는 지령이 내려진다.
  • 3. 기상 상황이 급격히 안좋아졌고 안그래도 마음이 급했던 KLM기의 판 잔턴 기장은 이륙 대기 명령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이륙준비를 시작했다. KLM기는 점점 활주로를 따라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도중에 메우스 부기장이 관제탑에 이륙을 보고하고 기장에게 물어도 봤지만 기장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속도를 올렸다.
  • 4. 관제탑과 팬암기의 교신을 통해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서 유도로로 진입 중임을 KLM측은 인지했지만 이륙 절차를 멈추지 않는다.
  • 5. 팬암기 그룹스 기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C3이 아닌 C4유도로로 나갈 준비 중이였는데 그 순간 안개속에서 착륙등을 번쩍거리며 접근하고 있는 KLM기를 본다.
  • 6. 팬암기는 급 좌회전를 시도했고 KLM기는 다급하게 이륙을 하려다가 테일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 KLM기는 공중으로 간신히 뜨기는 했지만 이미 속도가 너무 붙어있었고 두 기체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KLM기의 최우측 4번엔진과 펜암기 기체 어퍼테크가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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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암기의 왼쪽 날개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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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암기의 기수 부분 잔해물 부근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3.7. 피해를 키운 구조작업


사고 직후 추락하여 248명 탑승자 전원이 즉사한 KLM기와는 달리 팬암기에는 사고 직후 승객들의 대다수가 아직 생존해 있는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KLM기의 오른쪽 윙의 4번 엔진이 팬암 기의 2층을 강타하면서 2층이 박살이 났고[25], 동시에 화재가 발생했다. 부기장이 엔진 전원을 끊고 연료 공급을 막았지만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특히, 충돌과 급격한 화염으로 인해 엔진 제어 연결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부기장이 엔진을 껐음에도 불구하고 엔진이 멈추지 않고 최대 출력으로 회전했고, 과열되면서 엔진이 분해되어 터빈 날개 등 엔진 부속품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커지게 된다.[26]
열악한 시설의 공항은 구조 인력과 장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구조대원들은 모두 사고 발생 직후 이미 전원이 사망한 KLM기로 달려가 화재 진압과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그들은 가득 채운 연료로 인해 대폭발을 일으킨 KLM기의 화재를 심혈을 기울여 진압했고, 아울러 생존자가 전혀 없음도 확인했다. 그러나 소방관 및 구조대원들은 450m 밖에서 당시 수많은 탑승객들이 생존해 있던 팬암기는 완전히 방치해 두고 말았다. 소방대원들은 안개 때문에 팬암기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결국 팬암기는 구조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충돌이 일어난 지 수십 분 후 연료가 폭발하면서 마침내 팬암기도 완파되고 말았다.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 일부 승무원, 탑승객들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9명의 승무원과 326명의 탑승객은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27][28]
팬암기는 탑승자 396명 가운데 335명이 사망하고, 모두 583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항공 대참사가 터져버렸다.

4. 원인


  • KLM기의 판 잔턴 기장은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륙을 감행했다. 또 깜짝 놀란 메우스 부기장이 이륙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지만 이륙 행위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이것이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특히 팬암기가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건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자욱한 안개로 서로의 위치나 활주로의 상태를 시야로 확인할 수 없는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KLM기는 더더욱 관제탑의 엄격한 이륙 허가를 받아서 이륙을 했어야 하는데도, 이륙 허가도 받지 않고 이륙을 시도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국과 스페인 측 조사관들에 비해 네덜란드 측 조사관들은 그 문제(관제탑과 조종사 사이의 오해)에 중점을 두었으나, 결국 KLM 항공은 소속 조종사들이 그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희생자 가족 및 친지들에게 금전적인 배상을 했다."[29]라고 서술되어 있다. 즉 KLM과 네덜란드 측 조사관들은 사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사고의 궁극적인 책임이 KLM에게 있다는 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KLM 판 잔턴 기장은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는 정황을 인지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관제탑과 팬암기에서 보낸 첫 번째 교신은 KLM기에서 정확하게 듣지 못했지만, 그 다음 관제탑에서 보낸 "Ah, papa alpha one seven three six, report the runway clear."라는 교신과 팬암기에서 "OK, will report when we're clear."라고 한 교신은 KLM기에서도 수신했는데 이를 통해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KLM기의 항공기관사는 아직 팬암기가 활주로에 있는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으나 판 잔턴 기장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다.[30]
KLM 판 잔턴 기장은 내내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성을 상실한 채 조급하게 이륙을 하려고 했다. 이륙 허가를 위한 관제탑과의 교신을 하기도 전에 스로틀을 올리질 않나...이륙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브레이크를 풀고 활주로로 나아가질 않나...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규정 위반에 해당할 행동을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이륙할 활주로에 다른 항공기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했다는 것. 그리고 부기장이나 항공기관사는 이런 기장의 미친 짓 혹은 또라이 같은 짓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을 전혀 제지하지 못했다.
관제탑에 다시 한 번 활주로 상황과 이륙 허가 확인 요청을 했다면 확인받는 데 채 1~2분도 안 걸렸을 것인데, 그 1~2분 더 지체되는 게 싫어서 막무가내로 이륙하다가 무려 600여 명의 목숨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회사 광고에 등장시킬 정도인 베테랑 스타 조종사가 몇 가지 사소한 이유로 짜증이 나서 안개가 자욱해서 활주로 상황이 보이지도 않고 거기에 다른 비행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륙 허가도 안 받고 이륙을 시작하는 미친 짓 혹은 또라이 짓을 했다? 그리고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기장의 미친 짓 혹은 또라이 짓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이것이 한편으로는 KLM 항공이 '관제탑이 잘못 교신한 것 아니냐?', '팬암기가 지시받은 C3가 아닌 C4로 갔으니 문제인 거 아니냐?' 등등 다른 문제에 집착하면서 자회사 조종사들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확증편향, 손실기피 등 인간의 태생적인 불완전함은 아무리 많은 경험과 뛰어난 유능함으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KLM 항공뿐만 아니라 모든 항공사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기장의 독단으로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는 기존의 경직된 조종실 문화를 개선했다.
아래는 부차적인 원인들이다. 이러한 부차적인 원인들의 상당수는 주로 KLM측이 자신들의 책임과 이에 따른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집요하게 설파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래 부수적 사건들은 대부분 사고에 직접 기여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판 잔턴 기장의 중대한 규정 위반 사실은 언급도 되지 않은 채, 팬암기는 왜 C3이 아닌 C4로 들어갔나, 전파 간섭(Half Duplex)이 발생했다, 하필이면 왜 연료를 가득 채웠나 등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부수적 원인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국내외의 테네리페 참사 관련 문서 중 적지 않은 문서가 이런 부수적인 문제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 부수적인 원인들만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참사의 근본 원인인 판 잔턴 기장의 규정 위반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이 이렇게 다루어지고 있는데는 이 사건을 다룬 해외 유명 다큐멘터리들의 책임도 있다. 이런 다큐멘터리들부터가 사고의 직접 원인은 되도록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에게 흥미 거리가 될 수 있는, 그리고 거대 항공사인 KLM의 치부를 되도록 크게 건드리지 않는 여러 부수적인 이유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팬암사가 이미 망했기 때문에 아무리 팬암사에 대해 트집을 잡고 매도해도 팬암사가 소송을 제기할 위험은 없다.
  • 불안정한 교신 상황에서 앞에 짧게 들린 'OK'를 듣고 판잔턴 기장이 이륙 허가를 받았다고 확신했다는, 잘못된 추측이 있다. 그 OK는 판 잔턴 기장이 이미 이륙을 시작하여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 나온 것이며, 이 OK가 이륙 허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판 잔턴 기장이 이륙을 시작했을 때 메우스 부기장이 이륙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판 잔턴 기장은 본인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여러 영문 문서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 KLM에서는 기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했다. 당시 KLM기의 메우스 부기장과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받지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장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판 잔턴 기장이 슈뢰더 항공기관사의 질문을 묵살했고, 이 부분에 의심을 가졌더라면 바로 비행기를 정지시켰을 것이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판 잔턴 기장은 KLM 홍보책자의 모델로 나올 정도의 베테랑이었지만 비행 경력의 대부분은 DC-8 기종이었으며, 보잉 747의 비행 경력은 불과 1,500시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시뮬레이터에서 비행한 시간이라 실제 비행 시간은 겨우 95시간. 판 잔턴 기장이 무리하게 테일 스트라이크까지 일으키면서도 이륙을 급하게 한 이유는 물론 정지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저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평소에 몰았던 DC-8이나 다른 비행기였다면 그 판단은 나쁘진 않았고 충분히 이륙이 가능했을 것이나 그의 항공기는 무거운 보잉 747에다가 연료까지 가득 채운 상태였다. 만일 사고 기종이 DC-8이었거나 혹은 만땅 급유만 안 했어도 팬암 기 위로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사실 만땅 급유를 하지 않았더라면 급히 이륙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 테러 협박 전화에 대한 라스 팔마스 공항의 대처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대피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항공기를 조그마한 공항에 모조리 착륙하도록 강요한 것은 매우 무식한 대처였다. 특히 사고기였던 팬암 기의 경우 그란 카나리안 섬에 착륙을 위해 접근하려다 회항 지시를 받았을 때 2시간 정도 더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를 확인한 팬암 기의 그룹스 기장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섬 주변을 선회하는 게 좋겠다고 라스 팔마스 공항의 관제사에게 제안했지만, 고지식한 관제사가 무조건 로스 로데오 공항에 착륙하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팬암기는 울며 겨자먹기로 착륙을 하였는데, 라스 팔마스 공항은 테러 발생 후 겨우 1시간만에 다시 공항 문을 열었다.
  • 판 잔턴 기장은 수 년 동안 수석교관으로 일하면서 실제 비행에서 제외되었고 시뮬레이터에서 새로운 파일럿 육성에 집중하던 상태였다. 이 시뮬레이션 경험이 실제 기체 운용의 감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현장감을 떨어트려 관제탑과의 연계 중요도를 잊게 했다는 추정이 있다.
  • KLM기는 이륙 직전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이 무게로 인해 이륙이 더더욱 늦어졌고 충돌 시 연료로 인한 대폭발이 일어나 대부분의 KLM기 사망자가 불에 타 죽었다. 사건 당시 한 치 앞도 분간을 못 하는 짙은 안개 속이었음에도 충돌 지점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위치했던 관제탑에서도 대규모 폭발 화염을 볼 수 있었다는 데서 폭발 규모가 가히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개가 없었다면 최소한 2~3km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KLM기에 탑승했던 248명(승무원 14명, 승객 234명)은 비행기에서 하기한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망.
  • KLM기와 관제탑은 서로 비표준 용어로 교신했다. 물론 판잔턴 기장이 허가 없이 이륙을 감행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관제사들이 상황을 잘못 인지하게 된 것이며, 비표준 용어 교신은 사고의 근본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표준 용어로 교신하였다 하더라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후 비록 뜻이 통하더라도 반드시 서로 표준 용어로 교신을 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 팬암기의 승무원들은 분명히 관제탑에 재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C4 유도로로 진행하였다. 비록 C3 자체가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출구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관제탑에 통보하여 이를 명확히 했어야 했다. 관제탑이 실수했다면 관제탑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KLM의 잘못을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는 결코 되지 못한다. C3으로 나가건 C4로 나가건 팬암기는 활주로상에 택싱 중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렸고 이러한 사실은 관제탑, KLM기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 사건 경위를 읽어보면 각 비행기의 승무원들이 관제탑에 확인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짐작해서 결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관제사들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승무원들이 관제탑과의 통신에 피로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 언급된 유도로 문제도 이런 의사소통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테네리페 지역은 스페인 점령지로써 스페인어가 표준어이다. 그렇다보니 관제탑은 스페인 엑센트가 강하였고, 그래서 "first"와 "third"를 헷갈리게 하였다. 팬암과 관제탑과의 택싱을 위한 첫 교신에서는 관제탑이 "Third to the left okay(3번째에서 왼쪽, okay)"라고 말하자, 항공기관사가 "Third he said(세 번째라고 하는데요)"라고 말하고, 기장은 "I think he said first(난 첫 번째라고 들리는데)"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팬암 기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진다. 세 번째 유도로, 즉 C3 유도로는 보잉 747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기장이 "I 'll ask him again(제가 다시 물어보죠)" 이라고 말한 뒤 관제탑에 "Would you confirm that~(중간 생략) ~to turn left at the third intersection(3번째가 맞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이라고 third(세 번째)를 강조하여 물어봤고, 이에 관제탑은 "The third one sir, one, two, three. Third. Third one."(세 번째가 확실하다고요. 하나, 둘, 셋, 세 번째. 세 번째 꺼라고요)라고 대답했는데, 이를 들은 팬암 기의 승무원들은 "One, two, four"(하나, 둘, 넷)이라고 관제사가 말하는 'third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가 four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 관제사들의 대형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로스 로데오 공항은 소규모 비행기들만 이용하는 공항이다보니 보잉 747 같은 대형기를 관제해 본 경험이 없었다. 이것이 문제의 C3로 유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관제사들은 사고 당일에 있었던 축구 경기를 라디오로 듣고 있었을 정도로 관제 업무 집중도도 떨어진 상태였다. 관제 무선교신과 동일하게 청각만으로 모든 정보를 집중하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놨으니 실질적인 관제 업무 방해도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 안개 때문에 관제탑이나 양쪽 비행기 모두 서로의 위치는커녕 자신의 위치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지상 레이더도 없던 탓에 관제탑은 서로의 교신에 모든 것을 의존했다. 하필 사고 당일은 유도등까지 나가 있었다. 양쪽 비행기 모두 켤 것을 요청했으나 작동되지 않았다.
  • 당연히 한적한 시골 공항이었던 로스 로데오 공항의 시설은 이런 대규모 사건에 대처하기엔 기반 시설이 좋지 못했다. 화재 진압은 고사하고 인명 구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사망자가 더욱 증가했다.
  • 소방대와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잔해는 KLM기였고, 단 10m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안개로 소방대와 구조대는 팬암기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악재로 인해 그나마 생존자가 있었던 팬암 기의 구조는 매우 많이 늦어졌다.
  • 관제탑의 관제 방법이 달라졌다. 이 사고 이후로 관제탑은 항공기를 진짜로 이륙시킬 때만 "이륙(take off)"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조종사가 또 전파 간섭을 받았는데 이륙이라는 말만 듣고 이륙하는 걸 막기 위함이다.


5. 유사 사고[31]


이로부터 22년 후,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거의 동일한 사고가 또 일어날 뻔했다. 대한항공 036편 니어미스 사고 참조. 또 정확히 40주기가 되는 2017년에 에어 캐나다 A320이 활주로를 착각하는 바람에[32]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최악의 참사 기록을 또 경신할 뻔 했다. 자세한 내용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니어미스 사고 문서 참조.
2014년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에서 아르헨티나 항공 A340유테이르 항공 보잉 767이 착륙하려던 활주로에 허가없이 들어왔다. 다행히 유테이르기가 복행해서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33] 영상
2017년에 청주국제공항에서 중국남방항공기가 착륙 중이던 대한항공기의 앞쪽을 허가 없이 지나갔다. 다행히 충돌하지는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대한항공기가 활주 중이던 싱가포르항공기의 앞쪽을 허가 없이 지나갔다. 때문에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던 싱가포르기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바퀴가 튕겨 나갔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싱가포르기가 19시간 지연되었다.

6. 기타


원인에 대해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에 카나리아 제도 분리독립파 조직 MPAIAC의 테러 행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켜 사고까지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사고는 여기서 분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우연한 기회로 서로 겹치고 엉키면서 발생했다.
MPAIAC는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지만 "사고는 공항 관제사와 조종사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거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카나리아 제도에 오지 말라고 누차 경고했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물론 국제적으로는 씨알도 안먹혔기 때문에 2년후에 결국 MPAIAC는 사실상 활동을 접어버렸다.

[1] 팬암기 기장과 부기장, 항공기관사도 살아남았다.[2] KLM기도 한 명 생존했지만 그냥 비행기에서 하기했기 때문에 정식 생존자로 보지는 않는다. 어디로 갔는지는 후술했다.[3]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택싱하는 항공기의 충돌 또는 니어미스 사고[4] 항공기 탑승객 사망 순위 2위 (520명). 이 사고도 747이 연루된 사고이다.[5] 단 항공 사고 수사대 편은 한국에선 방영되지 않았으며, 현지 시즌 3-14에서 세기의 충돌 "Crash of the Century"으로 방영되었다.[6] 테일넘버가 수정된 N735PA로 되어 있다.[7] 첫 취항은 원래 N735PA(L/N 10)이 하려했으나 고질적인 JT9D-3A의 파이핑 및 터빈 블레이드 케이싱 문제로 보딩 후 램프에서 유턴한다. 덕분에 N736PA가 Clipper Young American로 이름을 바꿔 3시간 후 출항한다. 쿠바에서 747 최초로 하이재킹당한 후 원래 이름으로 다시 바꾼다.[8] 앞의 프로토타입 10기 중 1기(N7470, 최초의 보잉 747이다.)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팬암과 TWA로 팔려갔다.[9] 외래어 표기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판잔턴'이 된다.[10] 기내 잡지에도 실렸었다.[11] 팬암은 차터기로 편명 운영시 운항할 기체의 테일넘버 3자리 앞에 숫자를 붙여 노선명을 명명했다.[12] 팬암은 세계적으로 넓게 퍼져있는 자사의 트레블 에이젼시와 노선망을 이용하여 1950년대 말부터 여행상품을 기획했으며 특히 1970년대 중반 보잉 747의 과도한 도입으로 인한 적자, 잉여 좌석과 잉여 기재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상품 판매에 더 몰입했다.[13] 아래 사진을 보면 KLM기의 노즈기어가 팬암기의 어퍼데크 중간 부분을 강타하였고 어퍼덱에 탑승한 28명은 즉사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조종실에는 충격이 비껴갔다. 여담이지만 KLM기의 엔진이 강타한 일반석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온 반면, 통상적으로는 더 위험하다는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에서 생존자가 많이 나왔다.[14] 사진의 활주로는 해당 사고 이후 연장된 모습이다.[15] B747, L-1011, DC-10 중 1대[16] 당연히 이 둘은 크기만 비슷할뿐, 관제능력은 로스 로데오 공항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17] 'Crash Of The Century'에서는 사무장 급의 스튜어디스가 기장과 기내에서 인터폰으로 통화하며 다른 스튜어디스들이 초과근무에 대해 궁금해한다며 기장에게 언제 비행기가 뜨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기장은 어떻게든 잘 구슬려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나도 지금 시간 아껴볼려고 애쓴다고 대답하는 게 전부, 사무장은 인터폰 통화 후 짜증내며 욕을 한다.[18] 저 당시에는 다가오고 있었던 KLM 747기를 향해서 말한 것이었다. 물론 안 그래도 KLM기만 아니었어도 일찍이 라스 팔마스공항에 도착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셈. 저 말로 당시 상황을 추측해보면 KLM 747기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임을 알아낼 수 있다.[19] Read Back, 관제탑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복창하는 절차다.[20] 복수의 교신이 같은 주파수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며 발생하는 전파 간섭(Half Duplex의 특성)으로 전파 신호가 잡음으로 변환되어 실제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현상이다.[21] 알았으니 대기해라, 다시 연락주겠다.[의역1] :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의역2] :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 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냐고요?[22] 슈뢰더 항공기관사의 두 번째 대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상 최악의 참사 등에 따르면 "Pan Am is not clear."라고 나온다. 그러나 "Is hij er niet af, die Pan American?"(Is he not clear, that Pan American?)이 공식 기록으로 되어있는데, 이 대화에 따르면 기장의 답변 "Jawel.(Oh, yes)''은 "아니, (활주로에)없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 의문문을 부정하기 위해 Yes를 사용하는 경우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뒤에 부연하는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재로써는 사망한 기장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아마 "niet"(not)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못 들었던 것으로 사료된다.[23] 보고서 상에는 emphatic이라고 '강한 말투'라고 적혀 있다.[24] 항공기가 오버런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보다 이륙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가 더 크지 않는 이상 반드시 이륙을 진행해야 하는 속도. 하지만 아직 이륙을 하기에는 부족한 속도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륙을 하려면 VR(전환 속도, 승강타를 이용해 기수를 들어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는 속도)까지는 도달해야 한다.[25] 어퍼덱에는 28명이 탑승해 있었으며 충돌과 즉시 사망하였다.[26] 맨 윗사진의 부서진 1번엔진이 그 폭주하다 분해된 엔진이다. 기내 탈출을 돕던 흑인 스튜어디스가 저 멀리 폭주하고있는 엔진에서 분해되어 날아온 터보 팬 부품에 목이 베여 사망하는 모습을 탈출했던 생존자가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27] http://www.fomento.gob.es/MFOM/LANG_CASTELLANO/ORGANOS_COLEGIADOS/CIAIAC/PUBLICACIONES/HISTORICOS/A-102-103-1977/los_rodeos_1_2.htm [28] 폭발과 화재의 고열로 인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동체의 외피뿐만 아니라 1차 구조까지도 파괴되거나 녹아버렸으며 이후 현장에 도착한 사고 조사관의 증언에 의하면 현장에서 탑승객들의 시체가 불에 타서 이상한 냄새까지 났다고 한다.[29] Dutch investigators placed a greater emphasis on this than their American and Spanish counterparts, but ultimately KLM admitted their crew was responsible for the accident, and the airline financially compensated the victims' relatives.[30] 사고 당시 KLM의 경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운행 스케줄을 어길 경우 조종사에게 벌금과 불이익을 주었다. 그 불이익에는 면장 박탈도 있다. 이로 인해 KLM기의 판잔턴 기장은 매우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 관제 문제, 날씨 문제, 정비 문제, 심지어 테러리스트에게 기체를 장악당했더라도 벌금은 기장이 내야만 했다! 그리고 아무리 근무 규정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많은 항공사의 정책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승무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심한 규정은 결국 무리한 이착륙을 시도하게 만들어 이 사건을 일어나게 만들었고, 결국 사고 후 대대적으로 개선된다.[31]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택싱하는 항공기의 충돌 또는 니어미스 사고[32] 유도로를 28번 활주로로 착각하고 말았다.[33] 특히 아르헨티나항공 기체는 스카이팀 특별도장기였기 때문에 충돌했다면 스카이팀의 이미지도 하락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