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진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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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제10대 천황이자 야요이 시대의 첫번째 천황.
스진 덴노의 시대에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백성들이 사망했다. 스진은 이를 신이 내린 징벌이 아닐까 생각하고 두려워하여 아마테라스와 야마토노오쿠니타마(倭大國魂神)[8] 의 신위를 황궁 바깥으로 옮겨 모시라고 명령했다. 두 신위를 바깥으로 옮긴 다음해 11월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國主神)에게 제사를 올리자 전염병은 말끔히 사라졌다.
고사기에 따르면 168세, 일본서기에 따르면 120세에 붕어했다.
2. 초대 천황설
스진 덴노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포괄적인 역사가 소개되었다. 특히 별칭 가운데 '''하츠쿠니(肇國, 初國)'''는 아무리 봐도 태조를 지칭하는 호칭이고, 고사기에서는 아주 대놓고 "천하를 통일하고 '''처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왕'''"이라고 기술하므로 진무 덴노가 곧 스진 덴노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진무 덴노는 하다못해 123대 다이쇼 덴노의 아들인 다카히토 친왕조차 '신화지 역사가 아니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가공의 조상을 만들어 가문의 연대를 끌어올리는 것은 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성이 거의 확실시되는 스진 덴노로부터 만들어 낸 가공의 존재라는 것이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해지는 사실과 결사팔대에 연결되는 계보 기사 등에는 의문도 있지만, 1세기에 걸쳐 실재한 왕이라고 파악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고사기는 스진 덴노의 사망연도를 간지를 이용해서 무인년이라고 기록했고, 이 기록을 신용하면 92년에 사망하였다고 추측하는 설도 있다.
결사팔대를 사실이라고 보는 자들은 일본서기의 기술에 의거해, 진무 덴노가 기나이에서 즉위한 후에는 기나이 주변의 좁은 영역밖에 나오지 않지만, 스진 덴노의 대가 되고 처음으로 일본 지역의 광범위한 사건의 기록이 나오므로, 1대 진무 덴노로부터 9대 카이카 덴노까지는 기나이의 지방 정권이었고, 10대 스진 덴노의 즉위 이후, 일본 열도에서 강력한 정권이 되었다는 설을 내세우고 있다. 또, 결사팔대의 '''가쓰라기 왕조(葛城王朝)'''에서 스진 덴노에서 시작하는 '''미와 왕조(三輪王朝)'''로 교체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설도 스진 덴노를 실존인물로 본다는 점은 공통이다.'''
의외로 가야와 연관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가 (기년 조정을 감안해서) 실제 정권을 형성한 시기로 추정되는 1세기는 거리상 가장 가까운 가야에서 이주한 도래인이 일본에서 가장 힘이 강했던 시절이었는데, 일단 천손강림이라는 신화는 대부분 북방에서 내려온 지배층을 은유하는 표현이라는 점과 미마키 천황御眞木天皇(고사기)/御間城天皇(일본서기)이라는 이명은 가야의 고대 일본어인 미마나仼那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남부 이주민으로 문명을 형성하고, 고분 시대에도 도래인이 여전히 대거 이주하던 당대 일본에서 도래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도래인이든 토착민이든 스진 덴노의 정권이 가야 도래인과 토착민의 연합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3. 계보
- 제1비 토오츠아유메마구와시히메(遠津年魚眼眼妙媛)
- 제2비 미마키히메(御間城姬): 황후
- 제3비 오와리노오오아마히메(尾張大海媛)
- 6남 오오이리키노 미코토(大入杵命)
- 7남 야사카이리비코노 미코토(八坂入彦命)
- 5녀 누나키이리비메노 미코토(渟名城入媛命)
- 6녀 토오치니이리비메노 미코토(十市瓊入媛命)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휘(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 고사기(古事記)[4] 고사기(古事記)[5] 일본서기[6] 고사기(古事記)[7] 히타치국풍토기(常陸国風土記)[8]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신으로 타카마가하라계와 이즈모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의문의 신이다. 학계에서는 기기신화 성립 전의 신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다만, 일본 신화 내에서 삼귀자 중 한명이자 주신인 아마테라스와 같이 모셔졌다라는 점에서는 대지신으로 추정이 되고, 신으로써의 격 또한 '''아마테라스와 맞먹거나 동등한 수준일 것으로 보여진다.'''[9] 고사기에는 4녀 이카히메노 미코토(伊賀比賣命)라는 여자라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