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 바렛

 



<colbgcolor=black><colcolor=#fff> ''' Syd Barrett '''
'''시드 바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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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로저 키스 배럿
(Roger Keith Barrett)
'''출생'''
1946년 1월 6일
'''사망'''
2006년 7월 7일
'''장르'''
사이키델릭 록, 사이키델릭 포크
'''활동년도'''
1963년 ~ 1972년
'''관련 아티스트'''
핑크 플로이드, 스타즈
'''주요 악기'''
Danelectro Shorthorn, Fender Esquire,
Stratocaster, Telecaster
1. 소개
2. 삶
2.1. 초기 생애
2.2. 핑크 플로이드
2.3. 솔로 활동
2.4. 이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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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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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시절.(1967년)[1]
솔로 활동을 하던 시절.(1970년대 초반)[2]
Wish You Were Here 앨범 레코딩 도중 애비 로드 스튜디오를 방문한 시드.(1975년)[3]
본명은 로저 키스 바렛 (Roger Keith Barrett)으로, 1946년생이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였으며 보컬기타를 담당하였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의 밴드 스타일을 확립한 인물이었으나 마약 중독으로 인해 탈퇴하게 되었다.

2. 삶



2.1. 초기 생애


바랫은 1946년 케임브리지에 살고있는 병리학 학자 맥스 바렛에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10대 초반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이던 시드는 당시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밴조등을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케임브리지셔 고등학교 학생때 로저 워터스데이비드 길모어를 만나 같이 연주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1964년 캠버 웰 칼리지 미술 학과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하고, 당시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현재 웨스트 민스터)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던, 릭 라이트닉 메이슨을 만나 핑크 플로이드의 전신인 The Tea Set에 합류 했다.

2.2. 핑크 플로이드


작곡부터 편곡까지 사실상 초기의 핑크 플로이드는 그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밴드였으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발표하고 나서 2집의 몇 곡을 녹음한 뒤 하차했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 중독이 원인임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차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마지막으로 그가 참여한 곡은 A Saucerful of Secrets의 Jugband Blues이며, Vegetable Man이나 Scream Thy Last Scream 같은 곡은 미발표된 채로 남았었다.
데뷔 앨범의 Matilda Mother, The Gnome 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 사이키델릭 록 장르에 동화적, 혹은 몽환적 느낌을 부여한 선지자적 뮤지션으로서 고평가받는다. 그리고 See Emily Play는 지포 라이터를 기타에 갖다대고 슬라이드 기타를 한 곡으로 돌고래 소리가 나는듯한 소리가 특징이다. 이 슬라이드 기타는 실제로 존재하는 주법으로 슬라이드 바를 이용하거나 지포 라이터를 이용하여 기묘한 소리를 낸다.
그가 밴드를 떠난 뒤에도 3집 More까지는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사실 시드 바렛이 가입하기 전까지의 핑크 플로이드는(그 전에는 Sigma6 등 다른 이름을 사용했지만) 평범한 블루스 위주의 밴드였으므로, 사이키델릭 취향의 음악으로 틀어놓은 게 시드 바렛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영향은 3집보다도 훨씬 후까지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사이키델릭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1972년 7집 Obscured by Clouds까지 계속된다.
또한 핑크 플로이드는 앨범 Wish You Were Here에 '''S'''hine on '''Y'''ou crazy '''D'''iamond라는 대곡을 수록하며 시드를 추억하였다. 여담으로 이 앨범의 녹음 당시에 시드가 녹음실로 찾아왔는데, 살찌고 대머리에 눈썹이 모두 깎여있는 등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어서 멤버들이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가 시드임을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년 후 헤롯 백화점에저 로저 워터스가 우연히 시드 바렛을 보았으나, 시드는 로저를 보자마자 밖으로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그 어느 멤버도 시드 바렛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편 데이비드 길모어는 원래 시드 바렛이 약물 때문에 정상적인 밴드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그의 기타 연주를 대신하기 위해 있던 보조 멤버, 즉 세션맨이나 다름없었지만, 시드 바렛이 하차하고 나자 완전히 밴드의 메인 기타리스트로 등극하면서 로저 워터스와 함께 핑크 플로이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시드 바렛이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한 명확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바빠지는 밴드 일정과 더불어 밴드의 모든 것을 주도했던만큼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고, 그것이 곧 정신병으로 이어짐에 따라 결국 탈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마약의 해악성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신병적 증세를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는 마약에 계속해서 의존하게 됐는데, 그것이 오히려 정신병을 악화시키는 결과만을 불러온 것.
주변인들의 증언등을 종합할 때 시드는 전형적인 조현병 증세를 보였다.[4]

2.3. 솔로 활동


핑크 플로이드는 이후 완전히 시드 바렛의 그늘에서 벗어나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 등의 걸작 앨범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밴드를 떠난 시드 바렛의 솔로 앨범 <The Madcap Laughs>(1970) 와 <Barrett>(1970)[5]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상업적으로도 완전히 실패했다. 1집은 악기 사용과 시드의 보컬을 통틀어 굉장히 거칠고 날이 선 사운드를 들려주지만[6] 2집은 1집에 비해 많이 얌전하고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평은 1집이 조금 더 좋다.
시드 바렛은 두 장의 앨범을 끝으로 음악활동을 접게 된다. 하지만 이 앨범들은 후일 재발굴되어 네오 사이키델릭과 애시드 포크의 시금석으로 평가받는다.[7] 음침하면서도 중독적인 멜로디와 바렛 특유의 동화적 광기가 담긴 가사가 인상적인 앨범들이며, 대표곡으로는 'Octopus', 'Here I Go', 'Baby Lemonade'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Opel>(1988)은 시드 바렛의 미발표곡과 아웃테이크 등을 모아놓은 앨범이다.

2.4.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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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시드 바렛
핑크 플로이드의 상업적 성공이나 내분과는 별개로 음악 활동을 그만둔 본인은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자택에서 그림을 그리며[8] 자발적인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췌장암으로 2006년 자택에서 향년 60세로 사망하였다. 평소 당뇨를 앓고 있었으며 대변인에 따르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자식은 없다고 한다. 여러 여자와 염문이 있었고 심지어 한 여자와는 결혼할 뻔했으나 결국엔 무산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3. 기타


  • 떠난 시드 바렛에 대한 남은 멤버들, 특히 로저 워터스의 우정은 극진하였다. 상술한 Wish You Were Here 앨범 자체가 사실상 시드에 대한 추모(정확히 말하자면 추억)적 성격을 띨 정도다.[9] 심지어 1986년 로저 워터스가 다른 멤버들과 법정 공방을 벌일 때 '핑크 플로이드'라는 밴드는 시드 바렛의 정신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자기 아버지의 영혼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 물론 이 철없는 억지의 끝은 패소였고 밴드의 이름은 길모어와 메이슨에게 넘어갔다.
  • 핑크 플로이드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가명(Syd)을 쓴다. 본명을 썼다면 로저 워터스와 이름이 같아지기 때문인 듯.
  • 데이비드 길모어는 '시드의 이야기는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너무나 미화되어 있다' 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상술했듯 로저 워터스의 '시드 바렛 정신' 등의 이야기를 볼 때 시드가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 혹은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의 심한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본인 또한 인터뷰에서 '내 머릿속은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11]
  • 1978년만 해도 돈이 다 떨어져 캠브리지로 돌아갈 정도였지만, 그래도 길모어가 제대로 로열티를 정산해줘서 경제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유산으로 1천 7백만 파운드 정도를 남매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 본 항목의 제목의 표기가 한국에서 잘 알려진 터라 '바렛'이라 표기되었지만,[12] 영미권 사람들은 대개 베어릿이라 발음하는 듯. 물론 바-릿(바렛)이라 발음한 예도 많다.

[1] 상당한 미남이었다.[2] 눈빛이 흐려지고 머리가 산발이 되는 등 마약에 찌든 모습이다.[3] 믿기지 않겠지만, 왼쪽의 사진에서 이 모습까지 되는데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4] 여담으로 시드의 정신병이 존 레논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비틀즈보다 크게 될거라는 핑크 플로이드 프로듀서 (Rubber Soul 레코딩 엔지니어였다.)의 입털기에 존 레논이 빡쳤고, 밴드와 만났을때 평소 존 레논을 존경했던 시드와 멤버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로큰롤 초보들이 무슨 사이키델릭 타령이냐, 너넨 그냥 우리가 깔아놓은 초석을 밟는 애송이다" 라는 식으로 폭언을 퍼부었고 , 이것이 엄청난 충격과 실의가 되어 정신병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5] 여담으로 이 앨범의 마지막 곡 Effervescing Elephant 는 그가 살면서 최초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6] 녹음 자체는 꽤 오래했으나 밥상 뒤엎기를 자주 시전한데다 그마저도 꽤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로저 워터스와 데이빗 길모어가 참여하면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고. 자세히 들어보면 보컬 음정이 안 맞거나 시드가 가사 종이를 넘길 때 생긴 잡음이 섞여있는걸 확인할 수 있다.[7] 1집은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에 수록되기도 했다.[8]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고 한다.[9] 앨범 타이틀 곡에는 시드의 솔로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사를 따와 붙이기도 했다.[10] 실제로 시드가 떠난 후 핑크 플로이드에서 로저가 독재 체제로 제작한 전설적인 명반 The Wall의 주인공 핑크는 시드 바렛에게서 모티브를 따 온듯한 묘사가 많다.[11] 솔로 활동 시절에도 인기 밴드 리더였던만큼 많은 팬들이 모인 곳에서 라이브를 한 적이 있었는데, 혼자 멍하게 코드 한 개만을 계속 연주하며 노래는 전혀 부르지도 않는 상태가 지속되는 등(심지어 마약을 하고 무대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개판이었다고.[12] '배릿'이라 표기한 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