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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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핑크 플로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 그리고 메인 송라이터이다.
2. 삶
2.1. 초기 생애
1943년 9월 6일 영국 서리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 헨리 워터스(G. H. Waters)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공병으로 근무하던 중 1916년 9월 14일 프랑스에서 전사하였고[2] 그의 아버지인 에릭 플레처 워터스(Eric Fletcher Waters)는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2차대전 초반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해 런던에서 구급차를 운전하였다. 이때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3] , 독소전이 일어난 후인 1942년 영국 육군에 입대해 장교로 복무하다가, 1944년 안치오 전투에서 전사했다. 워터스의 할아버지가 전사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2살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전사했을 때 그는 5개월이었다. [4]
아버지가 전사한 이후 워터스는 케임브리지에서 자랐다. 그는 소년 핵군축 캠페인의 회장을 지냈고, 이곳에서 시드 바렛과 데이비드 길모어를 만났다. 그때 워터스는 스포츠 게임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 외의 학교 교육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현재 웨스트 민스터)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릭 라이트와 닉 메이슨을 만났다.
2.2. 핑크 플로이드 시절
자세한 사항은 핑크 플로이드 항목 참조.
2.3. 솔로 활동
1970년 핑크 플로이드에서 Atom Heart Mother를 공동 작곡한 아방가르드 작곡가 론 기신과 함께 인체 다큐멘터리 The Body의 사운드트랙(Music from The Body)에 참여했다.
핑크 플로이드에서 The Final Cut을 발매한 다음 해인 1984년 The Wall 세션때 구상해 놨던 컨셉트 앨범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평론가들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고, 영국 차트 13위, 미국 빌보드 차트 31위를 기록했다. 발매 직후 1985년까지 첫 솔로 투어를 열었는데, 이 투어에는 음반에 참여한 에릭 클랩튼이 참여했지만(1984년 투어에서만), 적자를 기록했다.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한 이후 1986년 자신의 세션맨으로 구성한 블리딩 하트 밴드를 결성하고, 반전 애니메이션 바람이 불 때에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1987년 두번째 정규 음반이자, 컨셉트 음반 Radio K.A.O.S.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평론가들에게 엇갈린 평가을 받았고, 영국 차트 25위, 미국 빌보드 50위까지 진입했다. 이때도 1년간 투어를 돌았는데 당시 핑크 플로이드의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와 맞불을 놓게 되었다.[5]
이후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으로 베를린에서 The Wall 콘서트를 열었다. 이 공연에선 시네이드 오코너, 독일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온스, 신디 로퍼, 밴 모리슨, 더 밴드등 여러 게스트 뮤지션들이 출연했고, 약 30만명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이후 이 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 The Wall - Live in Berlin을 발매했다.
그후 1992년 텔레비전 미디어를 비판하는 컨셉트 앨범 Amused to Death을 발매 했다. 원래는 Radio K.A.O.S. 파트 2로 계획하고, 1989년부터 작업에 들어갔지만, 중간에 워터스가 프랑스 혁명사를 다룬 오페라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음반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한것이다. 이 음반은 영국 차트 8위, 미국 빌보드 차트 21위를 기록했고, 평론가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는 워터스의 솔로 음반중 가장 좋은 기록이다. 이후 워터스는 이전과 달리 투어를 열지 않았고, 오페라 제작에 집중하면서 한동안 조용히 지냈었다.
그러다가 1999년 In The Flesh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투어를 돌기 시작했고, 이때 실황은 1년뒤 In the Flesh - Live로 발매되었다. 이후 2002년 같은 타이틀로 월드 투어를 열었고, 이때 그동안 핑크 플로이드나 워터스가 한번도 공연해본적이 없는 '''한국''', 인도, 남아공, 태국, 아랍에미리트, 레바논등에서도 공연했었다. 이후 컴필레이션 앨범 Flickering Flame을 발매 했고,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영감을 얻은 디지털 싱글 To Kill the Child/Leaving Beirut를 발매했다.
2005년, 워터스가 이전부터 준비했던 프랑스 혁명사를 담은 오페라 싸 이라(Ça Ira)가 로마에서 공식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평론가들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오페라 음원이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2006년 6월부터 2007년까지 The Dark Side of the Moon Live 투어를 열었고, 투어 중간에 몇몇 공연에선 닉 메이슨이 등장해 드럼을 연주했다.
이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The Wall Live라는 투어를 열었고, 이 투어는 2012년 상반기에만 140만장 이상의 티켓을 판매하면서 워터스 투어중 가장 큰 수익을 기록했다. 투어중에 2011년 5월 12일 런던 O2 아레나 공연에서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이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2015년에 투어를 담은 콘서트 필름 Roger Waters The Wall이 공개 되었고, 사운드트랙겸 라이브 음반도 발매 되었다.
이후 2017년 이전부터 제작해 왔던 새 솔로음반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을 발매했고, 같은 해 Us + Them 투어를 진행하여 2018년 12월에 종료했다. 이후 새로운 투어 This Is Not a Drill을 2021년부터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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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4월 2일에 In the Flesh 투어 일환으로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했었다.당시 SBS뉴스 [6]
- 좌파, 진보주의, 사회주의적인 정치 성향으로 유명하다. 10대때 부터 영국 노동당 청년조직에서 활동 했으며 핑크 플로이드를 활동했던 시기에도 본인이 산 재규어 E-타입을 자신의 사회주의 규율에 위배된다며, 바로 팔아 치웠고,[7] 마거릿 대처와 메리 화이트하우스[8] 같은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곡들을 썼었다. 이후 토니 블레어때 까지 노동당을 지지했으나,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자 노동당을 “또 다른 보수당”이라고 비판하고 노동당 지지를 철회했고,. [9] 이후 다시 좌경화된 제레미 코빈의 노동당을 지지했다. 또한 제58회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 지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 새로 나온 음반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은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Us+Them 투어에선 Pigs (Three Different Ones)에서 스크린에 트럼프를 등장시켜 풍자 했다.[10]
- 사회주의자 답게 당연히 무신론자다.
- 네번 결혼했다. 첫번째는 도자기 예술가 “주디스 트림”. 1969년 결혼해서 아이는 안가졌고, 1976년 이혼했다. 이후 1977년 영국 귀족이였던, 캐롤린 크리스티와 결혼해 나중에 워터스 투어에서 하몬드오르간을 연주하는 아들 해리 워터스를 가졌다. 그러나 이 둘도 1992년 이혼하고, 이후 1993년에 Priscilla Phillips와 결혼 하지만, 2001년 이혼. 1997년에 낳은 아들(잭 플레처)이 있는데 201cm의 장신이다.[11] 이후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로리 더닝이랑 2004년 약혼하고, 2012년 결혼하지만, 2015년 이혼했다.
- 배우 아담 드라이버가 로저 워터스의 닮은꼴로 유명하다.
[1] 지금은 나이 들어서 183cm[2] 더 월 영화에서 할아버지의 묘에 참배하는 신이 나온다[3] https://youtu.be/zre7V3wNSdk 마이클 무어와의 인터뷰[4] https://youtu.be/zre7V3wNSdk 본인 인터뷰[5] 여담으로 핑크 플로이드가 미국에서 리허설를 진행할때, 워터스는 토론토에서 공연하고 있었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세션맨이자 팬이였던 키보디스트 존 카린, 색소폰 주자 스콧 페이지와, 길모어의 친구이자, 이전에 워터스와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투어를 돌았던 기타리스트 팀 렌웩이 함께 몰래 워터스 공연을 본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워터스는 당연히 핑크 플로이드 맴버들이 자기 공연에 출입하는걸 금지 했었다.[6] 당시 길모어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사실 길모어하고는 아직도 사이가 안 좋다. 닉 메이슨마저 그만 싸우라고 깠을 정도.[7] 여기서 그가 '입진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8] 영국의 보수주의적 도덕 신념을 강조한 사회보수주의 성향의 교육자[9] 노동 계급 출신의 노엘 갤러거는 노동당 지지자이고, 한때 토니 블레어의 열광적 지지자였지만, 그의 우클릭으로 인해 현재는 쌍욕을 섞어서 저주할 정도로 토니 블레어를 매우 싫어한다. 다만 성향 자체로만 봤을때 갤러거보다 워터스가 훨씬 강경좌파적이다.[10] 그외 핑크 플로이드 상징중 하나인 돼지 풍선에다가 대놓고 트럼프를 그려놨다.[11] 로저 워터스 본인도 187cm로, 동년배들 중에선 키가 제일 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