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길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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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 그리고 메인 송라이터. 롤링 스톤지 선정 최고의 기타리스트 톱 100에서 14위를 차지했다.
2. 삶
2.1. 초기 생애
데이비드 길모어는 1946년 3월 6일,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더글라스 길모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동물학의 부교수 역할을 맡고 있었고, 어머니 실비아는 당시 선생님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후에 BBC의 영상 에디터로 일하게 된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출생 후 케임브리지셔 주의 트럼핑턴에 거주했지만, 몇 번의 이주 후 1956년에 그랜체스터로 이주하게 된다.[1]
길모어는 1954년에 자신의 첫 음반인 빌 헤일리의 싱글 〈Rock Around the Clock〉을 구매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의는 다음 해에 구매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에벌리 브라더스의 〈Bye Bye Love〉를 듣고 기타에 대한 흥미를 키우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부모는 그의 흥미인 음악을 하도록 장려했으며,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데이비드 길모어는 이웃에게 기타를 하나 빌려 피트 시거의 레코드와 교본을 이용해 기타 연주를 연습했다.[2] 한편, 데이비드 길모어는 11살부터 캠브릿지의 힐즈 로드에 위치한 'The Perse School'에 다녔는데, 그곳에 다니는 동안 'Cambridgeshire High School for Boys'를 다니고 있던 시드 바렛과 로저 워터스를 만나게 된다.
1962년, 데이비드 길모어는 'Cambridge Technical College'에서 현대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비록 교과과정은 끝내지 못했지만 이수했던 언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시드 바렛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둘은 같이 기타를 연습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2. Jokers Wild 시절
1962년 말에는 길모어는 자신의 첫 밴드인 'The Ramblers'에 참여하게 되며, 1964년에는 블루스 록 밴드 'Jokers Wild'에 참여했다. 밴드의 활동은 약 1년 간 활발히 진행되었다. 1965년 8월, 데이비드 길모어는 프랑스 서부 지역을 시드 바렛을 포함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비틀즈의 노래를 길거리에서 연주했는데, 여행을 하는 기간 동안 체포당하는 등의 수난이 있었다.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와 시드 바렛은 파리에 방문해 도시 외곽에서 일주일 간 캠프를 했다고 한다.[3]
1965년 말, 'Jokers Wild'는 싱글의 일부를 런던의 리젠트 소울즈 스튜디오에서 녹음했고, 싱글 당 50장의 카피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1966년 1월에 출시된 'Sam and Dave'의 싱글 〈You Don't Know Like I Know〉가 대히트를 치게 되었고, 싱글은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밴드는 점점 하향세를 겪게 되었으며, 몇번의 멤버 교체 후 밴드는 사실상 해체된다. 밴드가 해체된 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런던으로 떠나게 되고, Jokers Wild의 전 멤버인 릭 윌스와 데이비드 아틀람과 함께 'Flowers'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결성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인 1966년 말에 데이비드 아틀람은 밴드를 떠나게 된다.
데이비드 아틀람이 떠난 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남아있는 밴드 멤버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데이비드 길모어는 세션 멤버로서 브리지트 바르도가 출현하는 영화 'Two Weeks in September'의 OST의 보컬을 맡았으며, 밴드는 프랑스의 빌보켓 클럽에 정규 멤버로 발탁되며 정착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로는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의 생활만이 가능했으며, 후에 데이비드 길모어는 영양부족으로 병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빈곤한 생활을 지속하다 결국 1967년 초에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1967년 5월, 런던에서 시드 바렛과 만났는데, 시드 바렛이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4] 같은 해 6월에는 케임브리지에서 Jokers Wild라는 이름 하에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었고, 해체한다. [5]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는 핑크 플로이드에 대체 기타리스트로서 참여하게 되는 1968년까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길모어는 건강이 나빴다고 알려져있는데, 해체 전후로 회복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칼레로 향하고 있었는데, 차에 기름을 넣을 돈이 없었죠. 우린 건축 부지에서 디젤을 몰래 훔쳐선 낡은 밴에 넣었습니다. (...) 그리고 도버 해협 부근에서 차가 다시 멎어버렸고, 우리는 카페리가 있는 곳까지 차를 밀어야 했습니다. 그 때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데이비드 길모어
2.3. 핑크 플로이드
1967년 말, 데이비드 길모어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으로부터 멤버 제의가 들어왔다. 이에 수락한 데이비드 길모어는 1967년 12월에 핑크 플로이드의 다섯 번째 멤버가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핑크 플로이드 항목 참조.
2.4. 솔로 활동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활동은 Animals를 기점으로 시작된, 로저 워터스의 밴드 내 영향력 독점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데이비드 길모어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Animals 이후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1978년에 첫 솔로 앨범 David Gilmour를 출시한다. 솔로 앨범 제작 도중 남은 곡은 로저 워터스에 의해 The Wall에서 활용되는데, Comfortably Numb이 대표적이다. 1984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인 About Face를 출시한다. 앨범은 존 레논의 사망, 현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 간의 갈등과 같은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고 있었다. 두 앨범의 성적은 각각 빌보드 29위, 32위로, 당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의 성적과 데이비드 길모어의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시원찮은 성적이다.
2006년에 출시된 On an Island는 빌보드 6위에 올랐으며, 전체적인 평 또한 호평이었다. 이후 2010년 오브와 함께 Metallic Spheres를 발표 했고, 2015년엔 네 번째 솔로 앨범인 Rattle That Lock을 출시해 빌보드 5위의 성적을 거둔다. 여담으로 (Metallic Spheres를 제외한) 21세기에 발표한 두 앨범은 모두 '더 이상의 핑크 플로이드는 없다.'[6] 라는 발언 후 약 1년 가량의 기간을 가지고 출시되었는데, 이러한 발언이 판매량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3. 기타
- 총 2번 결혼 했다.
- 첫 부인은 "진저 길모어"라는 예술가로 1975년 결혼해서 아이를 4명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1987년 부터 89년까지 열린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 때 벌거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이혼 했다고 한다.
- 두번째 부인은 "폴리 샘손"이라는 작가로 1993년에 The Division Bell 세션 당시 거의 대부분 곡의 가사를 담당했다. 이후 1994년 앨범 발표 이후 결혼해서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샘손에게서도 총 4명의 아이를 가지면서 자식 부자가 되었다.
- 사회주의자다. 또한 길모어는 영국 노동당 지지자이며, 최근에 있었던 제57회 영국 총선에서 제레미 코빈을 지지했다.
- 2019년 6월 120여개의 기타 컬렉션을 자선 경매에 내놓았다. 특히 1970년에 구매한 이래 The Dark Side of the Moon, The Wall 등 수많은 전설적인 음반을 만들어낼 때 분신처럼 함께 한 전설의 명기인 검은색 69년식 스트라토캐스터(일명 블랙 스트랫)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에 전세계의 기타 매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7] 결국 블랙 스트랫은 무려 3,950,000달러에 낙찰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기타가 되었다. 총 모금액은 약 21,500,000달러라고 하며 이 금액은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 재산은 약 1억 8천만 달러이다.
[1] 앨범 《Ummagumma》 의 수록곡 〈Grantchester Meadows〉제목이 바로 이곳에서 영향을 받았다..[2] 여담으로, 이때 빌렸던 기타는 영영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3] 이 기간 동안 데이비드 길모어는 다양한 장소들에서 일했는데, 패션 디자이너 오시 클락의 운전자 겸 보조원으로 일한 경력도 존재한다.[4] 이때 시드 바렛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드 바렛이 데이비드 길모어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5] 윌리 윌슨과 릭키 윌스는 다른 밴드 세션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나머지 멤버는 음악을 그만두고 그래픽 디자이너와 회계사로 전직했다고 한다.[6] 전자는 2005년 Live 8 공연 후, 후자는 2014년에 출시된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 The Endless River 출시 후에 언급했다.[7] 참고로 이 스트랫은 그냥 동네 샵에서 산 평범한 스트랫이라고 한다. 그것도 원래 메인 기타였던 텔레캐스터가 분실되어서 급히 산 것이라고 한다. 역시 거장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