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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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명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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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436-9에 위치한 옛 경춘선의 역. 2010년 경춘선 복선전철화에 맞추어 청량리 - 망우 구간이 중앙선 옆으로 이설되면서 폐역하였다.
공덕역이나 마포구에 있는 신공덕동, 공덕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1939년 경춘선이 개통될 당시에 속해있던 행정구역이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였기 때문에 역 이름도 공덕역이 되어야 맞겠으나, 경성부 공덕정(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 용산선 공덕리역이 있었기 때문에 역명 혼동을 피하기 위해 신공덕역으로 역명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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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덕역 터. 네이버 지도 출처 현재는 개발로 인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 부지에는 경춘선 숲길 공원이 조성되어있고 역사가 있던 자리에는 노원공릉공공행복주택이 들어섰다.
2. 상세
경춘선 부설시에 경성제국대학으로의 접근성을 위해 묵동역으로 개통했고, 44년에 신공덕역으로 이름이 변경된다.
옛날 철도요람집을 보면 신공덕역은 본래 역사가 있는 舊 철도청(코레일)의 경춘선의 역이'''었'''다. 이후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역사는 철거되고(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승강장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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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신공덕역 역사(驛舍)
1990년대 후반까지 비둘기호가 정차했지만 퇴역 후에는 통근용(전역정차) 통일호 열차만 정차했다가, 2004년부터 여객 취급이 완전히 중단되었고, 2010년 12월 21일, 성북역-갈매역 구간이 경춘선 선로 이설로 폐지됨에 따라, 신공덕역도 화랑대역과 함께 공식적으로 폐역되었다.
현재 이 역이 존재하던 지역은 공원 조성 사업계획에 따라 공사할 예정이었으나 행복주택사업 부지로 지정되며 주민과 마찰이 벌어지는 중이다. 결국 공원과 행복주택 둘 다 조성하기로 결정되었고, 일부 구간이 2016년 11월에 경춘선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신공덕역 승강장도 철거되었다.
꽤나 오랜 기간 방치된 간이역이기 때문에, 바로 앞에 아파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풀이 상당히 무성하게 자라있다. 한때는 주민들에 의해 텃밭으로 쓰였다.
이 역에서 도보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있다. 하지만 신공덕역에 서는 열차들은 상술한 바와 같이 통근전철도 아니었던 데다가 여객 이용 중단 및 역사 철거 크리를 당했기 때문에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통학수단으로서 '''전혀''' 기능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경춘선 청량리-퇴계원 구간이 선로 이설 없이 복선전철화되었다면 통학수요를 위해 부활시켰을 가능성이 있지만 청량리-성북(현 광운대역) 구간 선로용량 포화와 평면교차 해결을 우선하여 망우 쪽으로 선로를 이설했기 때문에[1] 결국 서울과기대 버프는 선로가 이설되는 순간까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애당초 신공덕역 자체가 대학교 통학을 위해 만든 역이다. 서울과기대 캠퍼스는 원래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캠퍼스[2] 로 조성되었으며 1930년대 당시에는 서울(경성) 중심에서 매우 떨어진 곳에 있는 캠퍼스[3] 이고 변변한 대중교통도 없었던 시대라서 시내에서의 접근성을 위해 경춘선 역을 만들어준, 아니 경춘선 자체를 경성제대 이공학부 앞을 지나도록 노선을 만들어준 것이다. 구 경춘선 노선[4] 이 직선으로 내달리지 않고 성북역에서 북상하여 ∩자 모양의 굴곡을 지나서 신공덕역을 거쳐 화랑대 방향으로 가는 노선으로 휘어진 이유가 바로 경성제대 이공학부 캠퍼스를 지나도록 했던 것이다.[5][6] 물론 1960년대 이후 주변이 개발되고 버스노선 등 다양한 대체 대중교통수단이 생겨나자 그 중요성은 감소해갔다.
한국철도교통문화협회 손길신입니다.
신공덕역과 관련된 역사 기록이 부족하다보니 추즉성 오류가 많아, 남아있는 근거 자료를 중심으로 수정합니다.
1. 묵동역은 1939년 7월20일 성동~춘천간 경춘선 개통당시 개통된 역이며, 후에 추가 개설된 신공덕역과는 1.4km 거리의 별개의 역입니다. 1941년 9월의 시각표에 의하면, 성동 07:30분 출발 열차는 신공덕 07:47분, 묵동 07:50분, 종착역 퇴계원 08:02분 도착했지요. 경춘선 개설 시 없었던 신공덕역은 묵동역과 관계없이 추가 설치된 역이며, 묵동역은 1944년 3.31일까지 신공덕역과 공존하다가 폐지된 역 입니다.
2. 경성제국대학 이학부를 지나도록 경춘선 노선을 설치하였다하나, 경춘선이 1936년 착공하여 1939년 7월20일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1939년 4월22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경성제국대학 이학부는 1939년 7월 착공 예정, 1940년 1월15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명년(1941년) 봄 일부 교사 준공 예정, 1941년 5월 2일자 매일신보에 의하면 1941년 5월 2일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발족되었다 했는데 경춘선을 이 학교를 지나도록 노선을 설치하였다는 논리는 전혀 타당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를 위하여 경춘선 노선 중 가장 인근지역에 신공덕역을 추가 설치한 것이 맞다는 판단입니다.
3. 승강장
[1] 서울과기대 측에서도 공릉역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비록 신공덕역보다는 좀 멀지만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았다. 수도권 전철과 환승되고 배차간격도 7호선이라 양호하기 때문.[2]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캠퍼스로 이관되었으며 1980년 서울공대가 관악으로 이전할 때까지 사용했다.[3] 당시 기준 종암동 고려대학교, 서울사대부고(이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부근부터 공릉동 사이는 완전한 농촌마을이었다.[4] 개통 당시의 경춘선. 성동역에서 정릉천을 따라 북상했다가 현재의 월곡역 부근에서 화랑로 인근을 지나서 성북역으로 진행한다.[5] 경성제대 이공학부가 없었다면 지금의 서울 지하철 6호선과 마찬가지로 석관동에서 바로 중랑천을 건너 태릉, 화랑대 쪽으로 진행했을 것이다. 실제로 경춘선을 처음 설계할 당시에는 청량리를 거쳐 중앙선 옆을 따라가다가 중화, 상봉 일대에서 퇴계원으로 향하는 지금의 경춘선 복선전철과 비슷한 선형으로 건설하려 했었다. 그러나 중랑천 일대의 높낮이 등으로 철교 설계에 어려움, 봉화산을 깎아서 지나가야 하는 문제, 위에서 언급된 경성제대 이공학부 연계 등이 작용하면서 결국에는 성북역을 거쳐 ∩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노선이 됐다. 봉화산을 깎아서 지나가는 문제는 훗날 지금의 경춘선이 구릉터널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방식으로 그대로 재현됐다.[6] 경춘선 복선공사 때 구 노선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노선을 놓은 이유 또한 신공덕역 드리프트에 의한 낭비도 한몫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