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호

 


統一號 / Tong-Il Express
1. 개요
2. 역사
3. 과거 운행 계통
4. 종류
4.1. 객차형
4.2. 동차형
5. 특이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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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을 운행했던 통일호 | 2003년장항선 남포역에서 촬영

1. 개요



통일호 현역 최후기 영상(2003년 10월 31일 촬영)[1]
운행하던 시절에는 새마을호, 무궁화호와 마찬가지로 Express를 뒤에 붙였었다. KTX로 인해 새마을호, 무궁화호도 Express가 빠졌지만. 통일호는 마지막까지 Express를 단 채로 다녔으므로 사선을 긋지 않았다
대한민국 철도청(現 한국철도공사)에서 운행했던 열차의 한 등급.
현재 광주선에서 운행하고 있는 통근열차의 전신이기도 하며 첫 글자가 으로 같아서[2] 시각표상의 약칭을 따라 그냥 통근열차를 통일호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2006년도까지 통일호 행선판을 땜질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3]

2. 역사


통일호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급행열차이자 객차(여객열차)에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개통 당시에는 경부선 구간에서 완행·보통급행·급행 등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으나, 1984년에 열차명 개정으로 통일호라는 명칭으로 전 구간에 운행을 시작했다.
1899년(광무 3) 경인선을 시작으로 한국에 철도가 개통된 이래 열차 이름은 여러 번에 걸쳐 변화를 거듭하였다. 1906년부터 융희호(隆熙號)로 불리다가 1936년 일본에서 시속 60㎞의 특급열차인 히카리호가 도입되어 부산-만주 구간을 운행하였다. 이어 일제에 의해 경성-부산만을 왕복하는 초특급 아카츠키[4]가 분리된 뒤, 8·15해방 후 조선해방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1955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후 1963년 더 빠르고 경량화된 특급객차 115량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60년 시속 95㎞의 무궁화호,[5] 1969년 전기냉방이 갖추어진 관광호(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 특급열차의 명성을 잃기 시작하였고, 1977년에는 새마을과 통일호 사이 상위등급으로 우등(무궁화호)이 등장하면서 위상은 더 낮아졌다. 결국 1984년 열차등급 개정 때 "특급"에서 "급행"으로 낮추어졌다.
초기에는 비둘기호와 같이 창문 개폐식에 선풍기만 달려있는 비냉방 객차였으나 70년대 이전에 제조된 구형객차[6]를 제외한 객차를 80년대 중반에 일괄 에어컨을 달아 냉방개조로 바뀌게 되어 한결 쾌적해졌다. 무궁화호에 비해 낮은 운임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차역(사실 조금 더 많았다.)으로 서민을 대표하는 급행열차였다.
전성기인 1980년~1990년대 초반까지는 무궁화호보다 인기가 좋았으나, 서울~대전구간을 제외하고 적자로 유명했으며,[7] 도로교통의 발달과 차량의 노후화로 인해 1993년부터 이용객수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애초에 통일호를 타던 승객들은 싸서 타고 없으면 그나마 싼 거라는 생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량 노후화와 큰 관련은 없다. 이는 낮시간대에 운행하는 통일호 열차를 무궁화/새마을호로 승격한 것이 진짜 원인이다. 열차가 줄었는데 이용객수가 유지되는 것이 이상하다.
어쨌든 차량이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철도청에서 칼을 대기 시작했다. 1994년 시간표 개정 후 장거리 급행 통일호는 눈에 띄게 감편하였는데 메인 간선인 경부선이나 호남선, 전라선 등은 이때 통일호를 편도 기준 하루 2편성 정도만 남기는 등 대량 감축하고 무궁화호로 승격시켰다. 이때부터 장거리 구간의 주도권은 무궁화호에 넘겨주게 된다.
1997년 이후에는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를 정선선을 제외한 나머지 노선에서 퇴출시킴에 따라 급행열차인 통일호가 비둘기호를 대체해야 했다. 따라서 중단거리 비둘기호는 통일호로 승격되었으며 1998년 2월 시간표 개정에서 이 작업이 마무리되나 싶었으나 당시 시기가 외환위기였고 워낙 항의가 빗발친 탓에 철도청은 1달만에 다시 일부를 환원하였고 그 해 12월까지 유지되었다.[8] 일부는 장거리 통일호 폐지에 따라 남게 된 객차형이 투입되었고 나머지는 1996년부터 도입된 CDC 디젤동차가 투입되었다.
이후 1999년 6월 1일 시간표 개정을 거치면서 경부선을 비롯한 간선에서 장거리 통일호가 완전히 퇴출되면서 통일호는 비둘기호가 담당하던 중단거리 열차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비둘기호는 정선선에서만 운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11월 1일 시간표 개정을 맞아 비둘기호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정선선에도 투입되었다.[9] 다만 명절 임시열차나, 수학여행 학단수송용 전세열차일 때는 잠깐 부활하여 급행 등급으로 다녔으나 명절 임시 통일호 열차는 2002년 추석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그리고 2001년 7월 15일까진 경부선과 호남선에 1왕복씩 주말에 급행통일호가 다니기도 하였고 특대총괄제어중련이나 봉고기관차로 불리는 7000호대가 경부선 통일호를 견인하였다. 통일호가 주요간선의 급행열차로 다니던 시절엔 특실,침대차,별실을 달고 다녔으며 경부선,호남선,전라선 통일호는 무궁화호 스넥카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더 이전인 1980년대만 해도 통일호 식당차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 때문에 전산통일호(좌석지정)와 특정통일호(자유석)으로 분리되어 운행됐다. 전산통일호는 경춘선,[10] 장항선, 충북선에서 운행됐다. 그 외의 지역은 특정운임구간으로 간주해(비둘기호의 승격으로 봄) 단거리인 경우에 한해 전산통일호보다 저렴한 운임에 각역정차하는 특정통일호가 다녔다.[11] 사실 당시는 전산통일호의 최저운임거리가 100km여서 단거리도 그 거리에 의한 운임을 받았다. 제천역봉양역 구간의 경우 충북선의 전산통일호와 중앙선의 특정통일호가 공존하는 유일한 구간이었다.
물론 이 당시에도 리즈시절이 있었는데 그 게 경의선이였다. 동차형은 임진강까지 들어갔지만, 객차형 통일호는 2000년대까지 특정통일호로 다니며 서울-문산까지 1500원을 받았었다. 오죽 수요가 많았으면, 15분 배차에 10량짜리 장대형으로 다녔을 정도. 이렇게 해도 출퇴근시간에 미어터지는 바람에 아침 6시 첫차 통일호나 저녁 6시 통일호부터는 각 역에다 역무원이 푸시맨 역할까지 해서 사람을 집어넣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 사람들의 주 목적지는 바로 일산역 이후의 구간이므로..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의 좌석 쟁탈전은 경춘선뿐만 아니라, 다른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도 있었고, 특히 제천역 착발 EEC 열차에서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통학생은 책상 같은 식탁이 있는 식당차, 보통 승객은 추가금 없이 특실을 이용하기 위해 이 두 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개표 즉시 전속력 질주(?)가 일상이었다. 2001년 1월 1일부로 철도청이 통일호의 전산발매 폐지를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경춘선은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었고 결국 1달만에 경춘선 통일호는 정차역만 놓고보면 완행이었으나 전산발매가 부활하고 말았고 결국 그 해 6월에는 똑같이 객차형 통일호만 투입되던 장항선(서울 - 온양온천/천안 - 장항), 충북선(조치원 - 제천) 통일호 역시 전산발매를 시행했고 폐지 당시까지 이어진다.[12]
통일호 열차 중 일부는 2004년까지 에드몬슨 승차권을 사용했는데, 에드몬슨 승차권이 사용된 마지막 열차가 바로 통일호이며 통일호 폐지 이후 에드몬슨 승차권은 완전히 종적을 감춰 지금은 철도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통일호 '추억속으로\'
그렇게 운행하다가 2004년 3월 31일 통일호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고, 2004년 4월 1일 KTX가 등장하자 CDC 디젤동차들만 통근열차로 명칭이 변경되어 운행하게 되면서 통일호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호 객차들은 현업에서 열외된 후로는 대전철도차량정비단으로 다수가 옮겨졌지만, 일부는 광운대역이나 국수역에 유치되어 있다가 폐차직전까지 차장차 또는 군 인력수송으로 사용되었다. 극소수는 보선차로 개조되어서 운영되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2006년까지 차적에 남아있었던 1981년 도입분 일부는 2005년 9월, 호남선 무궁화호의 8200호대 전기기관차 투입을 앞두고 시운전에 투입된 이력이 있다.
냉방객차로 변경 이후 초창기에는 아이보리색 바탕에 녹색의 도색을 사용했다. 그리고 1994년에 대대적으로 도색을 개정할 때 노란색 + 남색의 도색으로 변경되었으나 통일호의 완행열차화가 시작되어 노란색 + 녹색으로 바뀌어서 폐지 때까지 사용했다. 2003년 1월에 철도청이 신 CI를 발표하면서 통일호는 노란색 + 파란색의 조합[13]이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밝은 녹색으로 변경되었다. 결국 이 도색은 통일호 등급 폐지에 따라 객차형에는 이뤄지지 못하고 자석도색 패턴으로[14] 변경되어 통근열차로 변경된 CDC 동차에만 적용되었다.
이후 CDC 동차들의 운행 실태는 통근열차(한국의 열차등급) 문서를 참조.

3. 과거 운행 계통


모든 계통의 정보는 폐지 직전 기준으로 적을 것.
열차번호
운행노선
기점역
종점역
운행횟수(왕복)
비고 및 폐지일
1141~1146
충북선
조치원역
제천역

2004년 4월 1일
1401~1447
경원선
의정부역
신탄리역

2004년 4월 1일
1221~1222
중앙선, 동해남부선
청량리역
부전역
1회
2004년 4월 1일
1223~1224
중앙선
청량리역
제천역


1531~1536
경의선, 교외선
서울역
의정부역
3회
2004년 4월 1일
능곡역, 일영역 경유

부전선, 가야선
경부선, 경전선
부전역
광주역


1245~1246
태백선, 영동선
제천역
영주역

철암역 경유

동해남부선
부전역
월내역


1243~1244
영동선
동해역
강릉역


1113
경부선
김천역
경산역



경의선
서울역
문산역

2004년 4월 1일
1553
경부선, 경전선, 호남선
부산진역
목포역



경부선, 경전선
부산역
진주역


1555~1556
경부선, 경전선
부산진역
광주역



부전선, 가야선
경부선, 경전선
부전역
순천역



경전선
순천역
광주역



군산선
익산역
군산역


1101~1102
경부선, 장항선
서울역
온양온천역


1133~1136
장항선
천안역
장항역

1131~1132
장항선
서울역
장항역



경원선
의정부역
동안역


1305~1306
경부선, 동해남부선
동대구역
부산역
1회


동해남부선
부전역
기장역


1331~1336
경부선, 동해남부선
부산역
포항역


1107~1108
경부선
천안역
김천역


1211~1212
전라선
익산역
여수역



동해남부선, 중앙선, 대구선
동대구역
경주역


1227~1228
동해남부선, 중앙선
울산역
영주역
1회

1203~1204
대전선, 호남선, 경전선
대전역
광주역


1601~1606
경부선
서울역
대전역



경춘선
성북역
춘천역


1501~1520
경춘선
청량리역
춘천역


1225~1226
중앙선
청량리역
원주역



중앙선, 태백선, 영동선
청량리역
강릉역


1241~1242
영동선
영주역
강릉역


1201~1202
경전선, 호남선
광주역
목포역


1374
동해남부선, 부전선
가야선, 경부선
구포역
해운대역


1585
전라선, 군산선
임실역
군산역


1577
경전선, 진해선
마산역
진해역


1358
경부선, 동해남부선
부산역
해운대역


1121~1122
경부선
동대구역
부산진역



동해남부선
부전역
해운대역



정선선
증산역
정선역



4. 종류


통일호는 객차형과 동차형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4.1. 객차형


  • 원조통일호: 1963년[15]부터 1981년까지 도입되었으며, 가와사키중공업, 일본차량제조, 제국차량(이 세 회사는 초기 일본 직수입 도입분을 제작. 이후 비둘기호로 격하된다), 대우중공업, 조선공사, 현대정공에서 제작을 맡았다.[16] 본래는 에어컨이 없었으나 조선공사에서 에어컨을 장착하는 개조를 진행했다.
  • 무궁화호 격하객차: 대만 탕엥 제조분이었으며 1980년에 제작된 차량이었다. 일부는 무궁화[17]로 남아서 폐차시까지 굴렀지만 일부는 이렇게 통일호로 격하되었다.
  • 통일호 특실: 1999년 6월 시간표 개정을 끝으로 퇴출. 통일호였음에도 무려 특실이 있었는데 과거 직각 새마을호와(!) 동일한 좌석수인 56석을 지니고 있었다. 시트피치는 새마을호와 거의 같은 수준이였고. 당연히 입석이 불가능했기에 통일호치고는 쾌적한 환경을 자랑했다. 다만 시트 자체는 워낙 오래된 차량인지라 옛날 사람들 체형에 맞춰 설계된 편이여서 좁은 편이었다. 초기 도입 당시엔 직각새마을과 같은 좌석을 썼고. 80년대 중반 냉방개조 이후엔 구특전 무궁화호(당시 새마을호) 일반실과 같은 좌석으로 교체되어 퇴역시까지 운행되다 전량 폐차되었다.
여담으로 90년대 중반까지 운행하던 75년산 후기형 특실은 14열 좌석임에도 창문이 14개로 맞춰진 게 아니라 일반실과 같은 18개여서 면벽좌석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알려진 게 없으나 당시 일반실로 도입될 예정이였던 녀석을 모종의 이유에서 급하게 특실로 바꾸었다는 추측이 있다. 당시엔 60년대 도입 14부창 특실이 멀쩡히 운행하던 시절이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의문.
  • 통일호 침대차: 1966~1975년 도입. 1998년 2월 시간표 개정을 끝으로 퇴출. 심야시간대 열차에 한해 운행했다. 당시 운행하던 무궁화호의 침대 객차와 유사한 형상이었으나 복도측은 벽 없이 커튼으로만 칸을 구분하는 형태였기에 그리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침대 하단의 할증료와 운임을 더하면 새마을호 일반실의 운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일부는 무궁화호 침대차 부족현상 때문에 무궁화호로 운행하다가[18] 1999년 3월을 끝으로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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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형 통일호[19]

4.2. 동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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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격상형 통일호: 니가타(인천공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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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격하형 통일호: 대우중공업(EEC: 우등형 전기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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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형 통일호: 대우중공업(CDC: 도시통근형 디젤동차, 현 통근열차)[20]

5. 특이사항


  • 1996년에 경의선 비둘기호를 폐지하고 시범적으로 통일호로 승격해 운행했다.(당시 서울 - 문산 간 요금 1,200원) 이때 군산(또는 익산) - 전주 비둘기호도 통일호로 승격 후 CDC를 투입했다. 당시 대전 - 군산 비둘기호와 익산 - 광주 비둘기호는 장항선 통일호 승격 때문에 장항선으로 들어가지 않고 운행노선을 합쳐서 대전 - 광주 비둘기호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경춘선 또한 비둘기호도 통일호로 승격됐는데 이쪽은 통일호가 이미 급행으로 있었으면서 무궁화호도 속달열차 개념으로 있었다. 이때 통일호로 운행하던 게 무궁화호로 승격된것도 있고 통일호로 그대로 남았던 것도 있다. 지방로컬선의 통근형 통일호는 KTX가 나온 이후에는 당장 살아남았지만 모두 2007년말을 끝으로 유가상승 및 수요부족을 이유로 무궁화호로 승격되었다. 수도권쪽은 그나마 오래 버티긴 했으나 2006년 12월, 2009년 7월에 경원, 경의선 전철이 개통되었고 이후 각각 수요부족과 선로 이설을 이유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 광주선 단거리열차가 다시 생기면서 단거리 계통으로 다니고 있다.
  • 1980년대에는 비둘기호였던 니카타 동차를 통일호로 승격해서 경남권(태화강(구 울산)-부산, 대구-마산)에서 운행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무궁화호로 승격되면서 NDC가 투입됐다.[21] 그리고 2010년 NDC가 폐차된 이후론 CDC를 개량한 RDC가 다니고 있다.
  • 단일 편성으로 최단거리 통일호 운행 구간은 1위 광주 - 송정리(現 광주송정)(14km)[22] 2위는 민둥산 - 정선(22.6km), 3위는 군산 - 익산(24.7km) 순이다.
  • 근성열차청량리부전 구간이 있었다.[23] 하행 약 11시간, 상행 약 12시간, 운행거리 약 500킬로미터. 운행구간 자체도 근성이거니와 교행 때문에 중간에 20분씩이나 근성으로 정차하기도 했다. 심지어 원래는 비둘기호였다.
  • 1998년 2월 2일까지 객차형 복합열차로 운행하기도 했다. 청량리 - 구절리/철암행 야간열차로 운행했는데, 이 열차는 증산역에서 병결을 실시했다. 호차 구분을 위해 일반적인 편성과 달리 객차 사이에 발전차를 끼워넣었다고[24]. 특이한 운행편성 때문에 한국에 관심있는 일본 철덕들의 눈길을 끌던 편성이기도 하다. "아니 무슨 제3섹터급 노선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편성이 들어가?"라는 반응이었다는 얘기가...
  • 열차 외 내부의 구조가 구조다보니, 퇴역 이후에도 KBS 2TV아침 드라마(TV소설) 같이 1970년대 이전을 주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제작에도 절찬리에 이용되고 있다.
  • 영화 판도라부산역 승강장 씬에서 무궁화호 도색을 한 통일호 객차가 잠시 등장한다.[25] 아무래도 소품용으로 무궁화호 객차가 부족해서 이걸로 땜질한 듯.
  • 아무래도 객차가 저가에 노후되다보니 위생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출발지인 서울역 같은 곳에서 탑승하면 매우 더러운 걸레로 청소를 했는지 차안에 걸레 지린내가 진동했다. 화장실 청소한 걸레로 그대로 객실을 민 게 아닌가 싶은 강렬한 찌린내는 당시 통일호를 이용한 사람들이 함께 떠올릴 대표적인(?) 냄새. 사실 걸레 상태도 문제인데 애초에 화장실 자체가 비산식이라 답이 없었다. 겨울철에는 화장실 근처에 노란 오줌 고드름이 얼어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이건 객차형 이야기고 1990년대 후반에 도입된 동차형은 무난했다.
  • 객차 창문이 열리게 만들어졌으나 나중에는 그 창문 바깥쪽에 유리를 덧대어 봉하여 막아버렸다. 즉 창을 위로 올려 열어도 바깥쪽에 유리가 있어서 여나마나. 에어컨 냉방장치가 도입되고 창문 밖으로 신체를 내밀어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창문을 막아버린 듯 하다.

[1] 후술하겠지만 통일호의 종운 및 폐지일은 KTX 개통 하루 전인 2004년 3월 31일이다. 2003년의 오타로 추정된다.[2] 단, 한자는 다르다. 통일호의 통은 統, 통근열차의 통은 通.[3] 안내방송도 통일호 시절 그대로 나왔다. 경의선 통근열차의 경우 운행이 종료된 2009년 6월까지 '통일호' 로 방송이 나왔다.[4] 중간 정차역은 대전역, 대구역뿐이었다. 원조 서대동부인 셈.[5] 현재의 무궁화호와는 다른 등급으로 2년 뒤 재건호가 운행되어 폐지되고 이 명칭은 한참 후에 등장할 우등열차가 사용하게 된다.[6] 초기 일본에서 수입해온 객차들이었는데 나중에 비둘기호로 격하되었다.[7] 이는 당시의 비둘기호나 이후에 통일호가 감소되고 증가한 무궁화호도 서울~대전구간을 제외하면 수익이 나는 구간이 매우 적었다.[8] 2월에는 비둘기호 중에서 경부,경전,호남,동해,중앙선 일부편수가 통일호로 승격, 12월에는 전라선 익산 - 여수, 호남선 익산 - 목포, 경전선 순천~마산, 충북선 조치원~제천, 장항선 천안~장항, 중앙선 경주~영주 등 특정통일호가 모두 승격되었다.[9] 정선선 통일호는 2001년부터 홍보열차로 개조되어 운영되었다.[10] 경춘선은 원래 특정통일호였으나 노선 특성상 대학생 MT시즌만 되면 승하차 시에 좌석 쟁탈전으로 인한 계단 낙상사고가 빈번했고 좌석시비로 민원이 발생해 철도청에서도 골머리를 앓다가 전산통일호로 바꿔버렸다. 그 후신격인 ITX-청춘을 굳이 고상홈&전철홈 대응으로 만들고, 보통 서울에서 어느 정도 이상 떨어진 곳은 여객열차만 다니게 하는 반면에 경춘선의 경우 광역전철을 종점인 춘천까지 밀어버린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카더라도 있다. 사실 ITX-청춘 정차역 대다수가 저상홈이 완비되어 있거나 설비 가능한 부지가 있어 옥수역, 왕십리역 정도를 제외하고는 굳이 열차를 새로 설계할 이유가 없기 때문.[11] 100km 이상의 장거리는 전산통일호의 입석운임을 그대로 적용[12] 서울 - 문산/임진강 구간은 객차형과 동차형이 혼용되었으나 전산발매가 아니었다.[13] 무궁화호 도색과 동일패턴.[14] 한국철도공사 광역전철 전동차에 사용된 도색패턴. 두가지 색상이 사용되며 한 색상은 노선별 색상을, 다른 색상은 공통적으로 군청색이 적용된다.[15] 1961년에 도입된 니가타 동차에 이어서 국내에서 두 번째로 경량 세미 모노코크 차체를 사용한 철도차량이었다.[16] 세 회사 모두 나중에 철도 차량 부문만 현대로템으로 통합[17] 객실 형상이 직각이라서 직각무궁화 라는 은어가 당시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쓰이곤 했다.[18] 요금은 무궁화 일반실 + 통일호 침대로 징수.[19] 한창 운행했을때는 시트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였다. 철도박물관에 있는 통일호 객차는 극초기 시절 모습인 셈.[20] 이 차는 2020년 현재까지도 전산상으로 통일호 동차라고 나온다. 통일호가 전산으로나마는 살아있는 셈[21] 이때 대구-부산간 주력이 되었고 심지어 1편은 김천까지 운행했으나 김천행은 봉고견인+특실편성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그 편성은 김천에서 하루 주박하고 부산찍었다가 다시 서울까지 운행한 다음 수색에서 주박 다시 다음 날 부산까지 찍고 김천까지 운행하는 식으로 로테이션이 돌아갔다.[22] 최단거리 무궁화호 역시 KTX 연계차원에서 신설된 광주 - 광주송정 구간이다.[23] 현재는 동일한 구간으로 #1601~#1604 열차가 뒤를 잇고 있다. 소요시간은 6~7시간대로 감소한 편.[24] 당연히 발전차의 소음이 상당했기에 발전차와 붙은 칸은 영 좋지 못한 환경을 가졌다.[25] 객차 창문 형태를 통해 쉽게 판독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