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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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範植
1923년[1] 8월 19일 ~ 1992년 9월 11일[2]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고령(高靈)[3] .
2. 생애
1923년 충청북도 청주군 낭성면(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신백우와 어머니 진주 류씨 류원태(柳遠台)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4]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법대학 정치학과(현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여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16 군사정변 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응암동[5] 에 거주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주공화당에서 대변인, 선전부장, 충청북도지구당 위원장, 중앙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69년 4월부터 1971년 6월까지 문화공보부 장관을 지냈다.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신문 사장을 지냈고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겸임하였다. 서울신문 사장 시절이던 1972년 말 박정희 대통령의 골프 파트너로 골프를 같이 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윤필용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신문회관 이사장을 잠깐 지내다 1976년 유신정우회 제2기 국회의원으로 임명되었고, 1978년 말 유신정우회 제3기 국회의원으로도 연임하였다. 유신정우회에서 홍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1987년 전임 이사장인 김원기 전 경제부총리의 뒤를 이어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이 되었다.
이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거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