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류씨
1. 개요
진주 류씨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갖는 한국의 성씨다. 두 계통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류(移柳)는 문화 류씨 시조 대승공 류차달의 10세손 류인비를 시조로 하고, 토류(土柳)는 고려 중기에 금자광록대부 중서령 좌우위상장군(金紫光祿大夫 中書令 左右衛上將軍)에 이르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에 봉해진 류정을 시조로 한다.최충헌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인구대비 조선시대 문과급제율이 높은 문중 2위로 뽑혔다. #. 다만 이류가 80명 정도이고, 토류가 50명 정도이다.
두음법칙으로 인하여 류씨와 유씨로 개인마다 다르게 쓰고 있는데 따라서 인구확인을 하려면 통계청자료를 참고해야 한다. 본관도 진양을 쓰는 사람이 있고 진주를 쓰는 사람이 있다보니 서류상으로는 완전 다른 집안이 되는 사례가 있다. 진양류씨(토류)는 2,380명, 진주류씨(이류+토류)는 16,964명, 진양유씨(토류)는 4,628명, 진주유씨(이류+토류)는 68,901명이다, 따라서 진주(진양)류씨(유씨)의 정확한 인구는 9만명을 넘는다. 6만명으로 알고있는 자료와 달리 실제 인구는 9만명으로 적지 않다. 토류와 이류가 통계상으로 구분되지 않기때문에 어느쪽 인구가 더 많은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과급제율에서 타 문중이 인구수와 급제자수가 상당히 비례함으로 이류가 조금 더 많다는 추측뿐이 가능하다.
2. 이류계 진주 류씨
2.1. 소개
#
이봉 진주 류씨는 문화 류씨 가정보에서 류차달의 8세손인 류언침이 나라에 공로가 있어 진주의 땅을 봉작받고 막내 손자인 류인비가 문화에서 진주로 이적하여 진주 류씨가 되었다[1] . 대제학 2명, 청백리 4명, 상신 2명, 공신녹권 8명, 증시 17명, 등단장신 4명, , 병마절도사 30명, 삼도수군통제사 10명, 수군절도사 27명, 목사.부사 86명, 문과급제 80명, 무과급제 380명 을 비롯하여 수많은 육조판서와 삼사의 대간, 지방 목민관 등을 많이 배출하던 가문이다.
2.2. 주요 인물
족보와 한자명 및 생년월일을 대조하여 확인하여 일부 정보는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성은 공식적 표기에 따라 류/유 를 기재합니다.
기재순서 : 세 - 파(이판-북부령-시윤-판사-안간) - 나이
- 류순정 : 조선시대 이조판서 및 영의정. 중종반정 공신.
- 류석성(柳錫成) : 북부령공파 31세손. 서울신학대학교 제 16.17대 총장. 안양대학교 제 9대 총장.
- 유선호(柳宣浩) : 북부령공파 32세손. 前 국회의원.
- 유병재(柳炳宰) : 안간공파 32세손. 방송인.
- 류근환(柳根桓) : 북부령공파 33세손. 제 12대.13대 국회의원.
- 류근일(柳根一) : 북부령공파 33세손. 조선일보 前 주필.
- 류근일(柳根一) : 북부령공파 33세손. 방송인.
- 류근찬(柳根粲) : 북부령공파 33세손. 前 국회의원.
- 유희관(柳熙寬) : 안간공파 34세손. 프로야구 선수.
- 검여(劍如) 류희강(柳熙綱) : 이판공파 35세손. 前 한국서예가협회장 및 前 인천시립도서관장 및 前 인천시립박물관장. 1976년 작고.
- 류희인(柳熙寅) : 시윤공파 35세손. 공군 소장 및 現 문재인정부 행정안전부 재난관리본부장.
- 류세미(柳세미) : 북부령공파 36세손. 치어리더.
- 유순택(柳淳澤) : 이판공파 38세손. 반기문 UN 前 사무총장의 처.
3. 토류계 진주 류씨
3.1. 소개
3.2. 주요 인물
- 류일한(柳一韓) : 진천군파 27세손 馨자 항렬.[2] 유한양행 창업주.
- 류해진(柳海眞) : 계참판공파 26세손 海자 항렬.
- 류승안(柳承安) : 계참판공파 28세손 承자 항렬.
- 류승수(柳承修) : 28세손 承자 항렬.
- 류현상(柳賢相) : 29세손 相자 항렬.
- 유치환 대사성공파 26세손
- 류승원 (柳承源) : 6,8,9대 국회의원 전예비역 준장
4. 이류계는 토류계의 분파인가 문화류씨의 분파인가
토류계의 혜손(7세손)과 이류계의 혜손(12세손)의 후손들을 보면
밑으로 10여대까지 같은 이름이 나오고 그밑으로도 80%이상 동일한 이름이 나온다
그리고 김귀영의 동원선생문집에 실린 류순선의 묘지명으로 볼때 류혜손과 류혜방의 아버지는 류인비로 확인이 되는데, 이류계에서는 류인비를 할아버지로 보고있다. (변개하여 등재) 이봉진주류씨는 류혜손과 류혜방을 류인비의 손자, 류유의 아들로 보는데, 토류계에서는 류혜손과 류혜방을 류인비의 아들로 본다. 토류계의 6세손인 류인비, 이류계의 중시조 류인비가 동일인물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역사적인 자료로는 한계가 있고, 자료를 제시해도 이류계에서 인정하지 않기때문에 현실적인 접점을 찾기 어렵다.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면 토류계의 종손과 이류계의 종손이 만나서 y-dna 검사를 하고 대조를 하면 해결된다. 이렇게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토류와 이류가 한 집안인지는 수백,수천년 논란이 있어왔다. 가장 과학적으로 빨리 확인할 방법이 있는데 확인하지 않는게 더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류계가 그들의 주장대로 문화류씨의 분파인지 아니면 토류계의 일부에서 주장하는대로 토류계의 분파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아무튼 족보상 중복되는 이름이 계속 나오는걸로 볼때 토류계와 이류계가 완전히 상관없는 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역사고증이든 유전자검사든 확인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