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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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표기 : 愼鏞頊
일본식 이름: 眞原勝平
1901년 10월 15일 ~ 1961년 7월 16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조종사, 기업인, 정치인. 본관은 거창(居昌)[1] , 호는 청하당(淸夏堂).
한국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대한항공의 전신)를 창립하여 운영하였다.
2. 생애
1901년, 전라북도 흥덕군 이서면 사천리(現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2]#에서 아버지 신정범(愼正範)과 어머니 함풍 이씨 이송범(李松範)의 딸[3]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오쿠리비행학교를 나와 1등조종사 면허를 받았다. 이후 동아항공전문학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여 미국 헬리콥터 조종사 면허도 취득하였다.
귀국 후 조선비행학교를 창립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모집, 비행술을 가르쳤다.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직후에는 일본군 비행기 수백대를 헐값으로 구입하여 고철로 처리, 막대한 이익을 남겼으며, 이 해에 대한국민항공사(KNA, 현 대한항공) 사장이 되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같은해 3월 특별검찰부 검찰관에 의하여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의 친일 행위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백관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1952년경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대한국민항공사 여객기 1대가 납북되는 창랑호 납북 사건으로 재정적인 손실을 입은 뒤 계속 사업에 실패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홍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상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 부정축재 등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그 해 8월 12일 출소하였고, 공민권이 상실되었다. 이후 사업을 위해 끌어다 쓴 약 십억환 이상의 채무에 시달리면서 임직원들의 급여까지 밀리게 되자 8월 25일 저녁 KNA 임원에게 중요한 회사 서류와 금고 열쇠 등을 맡긴 뒤 행적을 감추었고, 며칠 후인 28일 여의도공항 부근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가 사업 실패를 비관하여 한강에 투신자살 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3. 이야깃거리
- 생전 그는 KNA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항공기 조종도 했는데, 운항 도중 조종사나 승무원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기내에선 기장님이라고 불러!" 라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천성이 파일럿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