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식민지

 




'''싱가포르 식민지
Colony of Singap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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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장'''
[image][2]
'''1946년 ~ 1963년'''
'''성립 이전'''
'''영국령 이후'''
'''해협식민지
싱가포르'''[3]
'''싱가포르''']]}}}
'''언어별 명칭'''
영어: Colony of Singapore
중국어: 新加坡殖民地
말레이시아어: Koloni Singapura
타밀어: சிங்கப்பூர் காலனி
'''위치'''
싱가포르
'''국가'''
God Save the King/Queen
'''수도'''
싱가포르[4]
'''정치체제'''
대영제국의 식민지
'''군주 직위'''
국왕
'''역대 군주'''
조지 6세(1946~1952)
엘리자베스 2세(1952~1963)

'''주요 총독'''
찰스 김슨(1946~1952)
윌리엄 구드(1957~1959)

'''주요 총리'''
데이비드 마셸(1955~1956)
림유헉(1956~1959)
리콴유(1959~1963)
'''언어'''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문자'''
라틴 문자, 한자
'''종교'''
기독교, 중국 토속 종교, 유교, 불교
'''민족'''
영국인, 중국인, 타밀인, 말레이시아인
'''통화'''
싱가포르 달러
1. 개요
2. 역사
3. 의의
4. 역대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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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싱가포르(British Singapore)는 1946년부터 1963년까지 17년 동안 존속했던 영국의 식민지이다. 1963년 4월 1일에 영국령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 중 일부가 됨으로서 해체되었다.

2. 역사


영국령 싱가포르가 존속된 기간은 17년 남짓이지만 사실상 영국의 지배를 받은건 100년 이상으로, 분리되어 별개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부터 이른바 해협식민지의 일부였다.
역사를 보자면, 1819년 대영제국의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즈(Sir Thomas Stamford Raffles)가 싱가포르 지역에 도착한다.[5] 래플지는 본래 자신이 주둔하던 해협 식민지 지역인 말라카네덜란드에게 빼앗기고(...) 말라카를 대체할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다니다가 온 신세로, 싱가포르의 지리적 가치상 무역항으로 성장하면 큰 도시가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싱가포르에 와보니 자신보다 몇십년은 먼저 정착해서 생활한 원주민들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침입자라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1819년 2월 6일, 당시 사라왁 왕령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의 총수, 통문 압둘 라만과 살람 후세인에게 영국 무역항이 싱가포르에 '합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계약 체결을 맺는데 성공하며,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로 유니언 잭 국기가 올라가게 된다.
이후 피낭, 말라카와 합쳐져 영국령 식민지인 해협식민지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 일본이 잠깐 지배했다가 1945년 물러갔다. 일본이 물러가자 영국이 싱가포르를 재점령했으며, 1946년 이후부터는 해협식민지로부터 분리되어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다 1960년대 초반 싱가포르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말레이시아 협정을 통해 말라야 연방에 합병되어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면서, 싱가포르 식민지 역시 자연스럽게 해체가 되어버린다. 다만 합병 직후부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인종 문제로 옥신각신하면서 결국 몇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툰쿠 압둘 라만 말레이시아 총리로부터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강제로' 축출되는 굴욕을 당하게 되고, 자의반타의반 싱가포르 역시 '분리 독립 선언'을 하며 오늘날의 자치 독립국이 된다. 대신 1966년 영연방에 가입하였다.

3. 의의


  • 싱가포르를 다양한 국가들이 자유롭게 무역을 체결할 수 있는 무역도시로 번성시켜준 시기로 평가받으며, 덕분인지 많은 싱가포르인들은 식민지배를 겪었음에도 래플즈나 해협식민지 시절 포함 이 시기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있진 않다. 오히려 래플즈는 싱가포르 제1의 건국의 아버지 비슷한 취급도 받는다. 이건 싱가포르 자체가 이민국가 비슷하게 시작한 모양새라 딱히 정체성이 형성될만한 시기가 없었기 때문도 있고, 영국 문물을 포함한 다양한 서구 문물들이 유입되면서 경제적으로 발전한 시기인 점 때문도 있다.[6]
  • 현재 싱가포르 정부가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킨 시초로 여겨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영어 교육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싱가포르는 식민지령 시기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식민지령을 거친 이후에도 영어를 제외한 중국어, 말레이어 그리고 타밀어 등을 모국어로 삼는 사람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 제도 등은 당연히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칭 "화교들이 세우고 화교들이 가르치고 화교들만이 배우는 학교"인 난양대학(Nanyang University, 南洋大學)이 설립되기도 했다.[7] 허나 영어 대신 중국어말레이어, 타밀어 등을 기본 베이스로 사용하게 되면 도시국가 특성상 번영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한 리콴유가 결국 영어 교육을 전면 의무화시키면서[8], 물론 이중언어 정책에 대한 부작용은 지금도 싱가포르에서 종종 나오고 있고 서구권 영어가 아닌 싱글리시가 섞인 영어긴 하지만, 그래도 영어로 의사소통은 그럭저럭 가능한 지금의 싱가포르가 되었다.

4. 역대 총리


  • 1대: 데이비드 마셸(1955 ~ 1956)[9]
  • 2대: 림유헉(1956 ~ 1959)
  • 3대: 리콴유(1959 ~ 1963)[10]
[1] 해당 국기는 영국령 홍콩처럼 대영제국에서 피지배국인 싱가포르를 위해 전용으로 만들어준 국기가 아니라 싱가포르를 당시 점령한 동인도 회사의 국기이다. 싱가포르에서 리콴유와 동시에 칭송받는 인물인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 경이 잠시 일했던 그룹이기도 하다.[2] 코코스 제도크리스마스 섬도 싱가포르 식민지의 일부였으나 각각 1955년과 1958년에 호주로 양도된다.[3] 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잠시 일본 제국식민지가 되었으나, 매우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생략한다.[4] 비슷한 동네인 홍콩처럼 수도로 지정할만한 마땅한 지역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수도 역할을 해왔다. 이는 영국령이 끝났을때도 그대로 이어져왔다.[5] 정확히는 1819년 1월 28일 오후 4시쯤에 도착하였다. 출처.[6] 이러한 점들은 영국령 시절을 똑같이 겪은 옆동네 홍콩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인들 역시 영국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으로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7] 다만 후술된 교육 정책 개편에 따라 1988년 폐교되었다. 이후엔 싱가포르 톱 대학인 싱가포르 국립대학(NUS)과 공과 계열에서 어느정도 알아준다는 난양 공과대학(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이 사실상 난양대학의 후신(後身) 역할을 하고 있다.[8] 여러 인종이 모여있는 특성상 통일된 하나의 언어가 없고, 각 언어에 대한 정체성이나 자부심도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무역도시의 특성상 이전부터 쓰던 국제어인 영어가 필요하다는 점까지 더해져 상대적으로 큰 반발없이 시행되었다.[9] 싱가포르 식민지의 첫번째 총리.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타밀계 총리이며, 임기 기간은 타 총리들에 비해 짧았으나 당시 식민지령의 싱가포르가 번성하는데 나름의 기틀을 다져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10] 상기되어있듯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강제 독립당한 이후, 다시 총리가 되어 장기집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