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스 제도

 



'''코코스 (킬링) 제도
Territory of Cocos (Keeling) Islands'''

[image]
'''깃발'''
'''상징'''
표어
Maju Pulu Kita
(코코스 말레이어: 우리의 섬을 향해)
'''위치'''

'''수도'''
웨스트 아일랜드(West Island)
'''면적'''
14㎢
'''인문환경'''
국가
호주 [image]
공용어
영어, 코코스 말레이어
인구
544명
인구밀도
43명/㎢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의 해외영토
국왕
엘리자베스 2세 호주 국왕
총독
데이비드 헐리(David Hurley) 호주 총독
행정관(Administrator)
나타샤 그릭스(Natasha Griggs)
총리(Shire President)
세리 와티 이쿠(Seri Wati Iku)
하원의원
'''노동당''']] 워런 스노우든(Warren Snowdon)
'''도메인'''
.cc
'''시간대'''
UTC+6:30(코코스 제도 시간대)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기타

[image]

1. 개요


Cocos (Keeling) Islands

인도양 동부에 있는 호주령 섬. 중심지는 서 코코스섬. 킬링(Keeling) 제도라고도 불리며, 두 가지 이름을 병기한 Cocos (Keeling) Islands가 정부에서 쓰는 공식 표기이다. 면적은 14㎢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면적과 거의 동일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서남방으로 떨어진 섬이며 산호초로 이루어진 환초섬이다. 주민은 600여 명으로, 유럽인 주민 100여 명은 서섬(西島 West Island)에, 말레이인 주민 500여 명은 홈 섬(Home Island)에 산다. 기타 자바인중국인도 산다. 말레이어영어가 사용되며,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주로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주민 다수가 이슬람교도여서 홈 섬(Home Island)에 3개의 모스크가 서섬(西島 West Island)에 1개의 모스크가 있다.
지리적으로 서섬, 남섬(南島), 홈 섬, 디렉션 섬, 호스버그 섬, 노스클링 섬 등 여러 섬들이 있다. 국방은 호주가 담당하나 국민경찰이 자체적 치안을 담당한다. 영국 국왕이 겸임하는 호주 국왕이 형식적인 원수이다.
주로 코코넛을 재배한다.

2. 역사


무인도였던 이 섬은 1609년 영국의 W. 킬링(keeling)이 처음 발견하여 '킬링'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 뒤 버려져 있었다.
1814년, 스코틀랜드의 상인 존 클루니스-로스(John Clunies-Ross)는 인도로 가는 도중 이 섬에 상륙하여 유니언 잭을 꽂고, 장차 이 섬에 가족들과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난다.
그런데 향료무역업자 알렉산더 헤어(Alexander Hare)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1825년, 그는 선장을 고용하여[1] 자신과 여성 40명을 싣고 코코스 제도로 가게 했다. 헤어는 '''이 무인도하렘을 건설하려던 것이었다.''' 여성은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국인, 인도인, 심지어 흑인도 있었다고.
2년 뒤에 클루니스-로스가 아내와 아이들, 장모를 데리고 섬에 와 보니 이미 헤어는 자기의 하렘을 건설한 뒤였다. 클루니스-로스와 헤어는 섬을 둘러싸고 서로 반목하게 되고, 클루니스-로스를 따라온 8명의 선원은 "이렇게 된 바에야 '''섬과 여자들을 빼앗아 버리자!'''"고 결의했다. 불리해진 헤어는 여자들을 데리고 프리즌 섬에 틀어박혔지만, 프리즌 섬은 썰물 때면 다른 섬과 연결되기 때문에 하렘의 여인들은 클루니스-로스 일당의 보호를 바래 도망치거나, 클루니스-로스의 부하들이 빼앗아가거나 했다. 하렘의 여성들을 모두 빼앗긴 헤어는 1831년 섬을 떠나 자바 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로 5대에 걸쳐 클루니스-로스 가문이 이 섬의 영주 노릇을 한다.
1857년 해협식민지의 일부로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독일 제국의 방호순양함 SMS 엠덴이 인도양 통상파괴 작전을 실시하며 영국의 해운을 마비시키던 도중, 이곳에 들러 중계소를 파괴하려다가 호주군순양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항공기지가 되기도 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싱가포르 식민지의 일부가 되었다가 1955년에는 호주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전의 코코스 제도는 클루니스-로스 가문[2]의 영지로, 말레이인 '농노'들은 영주의 허락 없이는 섬을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1973년 이 섬을 방문한 UN 시찰단은 호주 정부에 1인 지배하의 이 섬을 매수하도록 권고했고, 결국 1978년, 5대째 영주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John Cecil Clunies-Ross, 1928년생)는 625만 호주 달러에 섬을 사실상 강제로 매각해야만 했다. 1986년에 그는 파산하여 이 섬을 떠났다. 현재 6대는 존 조지 클루니스-로스로 1957년생이며 더이상 코코스 제도에 대한 소유권은 없고 제도(諸島) 서쪽 섬에서 조개 양식을 하며 아내와 두 아들과 먹고 산다. 출처 백인이 다수인 서쪽 섬 주민 일부는 제도(諸島)에 대한 호주 정부의 무관심에 실망하여 클루니스-로스 가문 통치를 바란다고는 하지만 제도 주민 다수 여론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諸島) 주민 다수 말레이계 주민은 1978년 클로니스-로스 가문 통치 종식을 환영했고 지금도 클로니스-로스 가문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다고 한다. -
더 자세한 클루니스-로스 가문의 일대기는 여기에서 볼수 있다. 들어가서 역대 가문의 수장을 확인해보면 3대가 외형상으로 혼혈 느낌이 나고 말레이인의 피가 더 섞인 4대는 오히려 혼혈 느낌이 적고 5대부터는 다시 외형상으로 백인과 별반 다른게 없는걸 확인할수 있다.
1836년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현재도 통용되는 '''산호초섬의 변화 과정'''(거초→환초)에 대한 이론을 만들었다.

3. 정치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정치적으로 코코스 섬은 해외 영토가 가지고 있을 법한 수준의 자치권은 없다. 연방정부의 총독이 지정한 행정관(administrator)이 섬을 대표하며, 행정적으로 호주의 6개 주와 기타 준주에 속하지는 않으나 1958년 이래 이 지역에는 연방법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법이 적용된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는 연방정부와의 협의에 따라 크리스마스 섬에 여러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비용은 연방정부에서 대준다.
아울러 Shire라 하는 7명의 현지 단원제 의회가 있으며,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정을 담당하기는 하나 그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이 의회는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작은 의회이다.
호주 국적을 가진 코코스 제도 주민은 연방선거에서도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갖는데 국회의원 선거구를 노던 준주와 공유한다.

4. 기타


이 지역의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이 외우기 쉬운 .cc라서 .to(통가 도메인)와 더불어 인터넷(특히 월드 와이드 웹) 보급 초창기에 애용된 도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CC 자체가 어떤 의미를 연상시키기 어려워서인지 요새는 이 도메인을 쓰는 웹사이트를 보기가 드물어진 감이 있다.

[1] 그 선장이 우연히도 클루니스-로스의 동생이었다.[2] 클루니스-로스 가문은 2, 3대가 말레이인과 결혼하면서 3대는 1/2, 4대는 3/4이 말레이 혈통이 되었다. 그러나 4대인 존 시드니 클루니스-로스가 영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5대부터는 다시 영국 혈통이 강해지게 된다. 5, 6대도 영국 여성과 결혼. 예전 호주 달러 50달러의 뒷면에 있던 호주의 과학자 이언 클루니스-로스는 초대 영주 존 클루니스-로스의 종손(조카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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