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6세

 




<color=#2D2F34> '''Felipe VI'''
<colcolor=#2D2F34><colbgcolor=#FAF4C0> '''이름'''
펠리페 후안 파블로 알폰소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이 데 그레시아
(Felipe Juan Pablo Alfonso de Todos los Santos de Borbón y de Grecia)
'''출생'''
1968년 1월 30일 (56세)
스페인국 마드리드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로레토 병원
'''신장'''
'''197cm'''
'''재위'''
<color=#2D2F34>스페인의 왕
2014년 6월 19일 ~ 현재
'''배우자'''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2004년 결혼)
'''자녀'''
레오노르, 소피아
'''친척'''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세고비아 이 마르티네스-보르디우[1]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
'''어머니'''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2]
'''형제'''
엘레나, 크리스티나
'''서명'''
[image]
1. 개요
2. 재위
3. 작위
4. 사생활
5. 가족관계
5.1. 조상
5.2. 배우자
5.3. 자녀
6. 기타
7. 둘러보기


1. 개요


현재 스페인의 20대 국왕.
본명은 '''펠리페 후안 파블로 알폰소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이 그레시아'''(Felipe Juan Pablo Alfonso de Todos los Santos de Borbón y Grecia)이다. 첫번째 이름인 펠리페는 스페인 보르본 왕조 시조인 펠리페 5세에서, 두번째 이름인 후안은 친할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에서, 세번째 이름인 파블로는 외할아버지인 그리스인의 왕 파블로스 1세(Παύλος Α΄ της Ελλάδας)에서, 알폰소는 증조부 알폰소 13세에서 따왔고, 마지막으로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de Todos los Santos)는 스페인어로 '모든 성인'이라는 뜻이다. 성씨인 보르본 이 그레시아(Borbón y Grecia)는 부계, 모계 성씨를 적은 건데, 쉽게 말해서 ~~And로 된 성씨를 생각하면 쉽다.
공식 칭호는 스페인의 왕(Rey de España), 카스티야·레온·아라곤·양 시칠리아·예루살렘·나바르·그라나다·톨레도·발렌시아·갈리시아·마요르카·세비야·사르데냐·코르도바·코르시카·무르시아·하엔·알가르브·알헤시라스·지브롤터·카나리아 제도·동인도 및 서인도 제도 그리고 대양의 섬들과 대지의 왕(Rey de Castilla, de León, de Aragón, de las Dos Sicilias, de Jerusalén, de Navarra, de Granada, de Toledo, de Valencia, de Galicia, de Mallorca, de Sevilla, de Cerdeña, de Córdoba, de Córcega, de Murcia, de Jaén, de los Algarves, de Algeciras, de Gibraltar, de las Islas Canarias, de las Indias Orientales y Occidentales, y de las Islas y Tierra Firme del Mar Océano), 오스트리아의 대공(Archiduque de Austria), 부르군트와 브라반트·밀라노·아테네 및 네오파트라의 공작(Duque de Borgoña y de Brabante, de Milán, de Atenas y de Neopatria), 오리스타노의 후작(Marqués de Oristano), 합스부르크·플랑드르·티롤·바르셀로나·루시용·세르다냐 및 고샤노의 백작(Conde de Habsburgo, de Flandes, del Tirol, de Barcelona, del Rosellón, de la Cerdaña y del Gocíano), 비스케이와 몰리나의 영주(Señor de Vizcaya y de Molina)이다.[3]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에서 3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국어스페인어 외에 카탈루냐어[4], 프랑스어, 영어에 능숙하며[5]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리스어도 좀 할 줄 안다.[6]

2. 재위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건강 악화 및 사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 책임을 지고 2014년 6월 18일 퇴위하여, 6월 19일 0시를 기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제 위기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별라운드 탈락 등[7] 국가적 악재 때문에, 화려한 축하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대관식 등 전통적인 가톨릭 예식도 배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왕위 승계와 왕정 유지에 반대하는 공화파 시위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인 솔 관문 광장을 비롯한 스페인 전국에서 터졌고,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되면서 어쨌든 결과만 보면 즉위 첫날부터 반대파 정치범에 탄압을 가한 국왕이 되어 버렸다.[8]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외국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년~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9]
2017년 들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자체독립 투표를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불거지자 국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스페인 펠리페 6세 "카탈루냐 분리독립 시도 용인 못 해" # 스페인 왕실의 입장은 "스페인 헌법에 위반되기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용인될 수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자치권 몰수'라는 강경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커지자 가족들과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였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에 겹쳐 8월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각종 비리 문제로 국외 망명을 떠나면서 분노한 국민들의 왕정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펠리페 6세에게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펠리페 6세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연금도 취소했다.

3. 작위


  • 스페인의 인판테 펠리페 전하 Su Alteza Real el Infante Felipe de España (1968년 1월 30일 ~ 1977년 1월 22일)
  • 아스투리아스 공 전하 Su Alteza Real el Príncipe de Asturias (1977년 1월 22일 ~ 2014년 6월 19일)
  • 국왕 폐하 Su Majestad el Rey de España (2014년 6월 19일 ~ 현재)


4. 사생활


펠리페는 진작부터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성 중 한 사람이었다. '''197cm의 큰 키'''[10]에 신뢰감을 풍기는 외모, 스포츠로 다져진 몸매, 거기에 더해지는 ‘스페인의 왕세자’란 타이틀은 그를 20살 무렵부터 인기남에 꼽히게 했다.
그렇다보니 연애 과정도 늘상 화제였다. 그는 그간 스페인 귀족 출신의 이사벨 사르토리우스(Isabel Sartorius), 미국 조지타운대 유학 시절 만난 여대생 지젤 하워드(Giselle Howard), 노르웨이의 속옷 모델 에바 새넘(Eva Sannum) 등과 차례로 교제했다. 하지만 국적과 귀천을 가리는 왕실과 보수층의 벽에 막혀 새넘과의 결실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11][12] 현재 아내인 4살 연하의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와는 1년 남짓한 연애 끝에 2004년 5월 22일결혼했다.
레티시아는 원래 스페인 국영방송에서 앵커를 했던 언론인으로, 펠리페와 결혼하기 전에 나이 많은 고등학교 철학 교사와 결혼했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첫 남편과 '''10대 때부터 사귀며 동거'''했던 게 드러나 더 논란이었다. 이혼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 시절에 미국인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다고 하고, 낙태마약 복용 같은 좋지 못한 과거가 있다는 주장이 그녀의 친척에 의해 제기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토록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다 보니, 왕실 쪽에서 언론들 입막음을 단단히 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레티시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실 별로 없다. 더군다나 가톨릭 국가에서 이혼에다가 난잡한 사생활 같은 게 기사화되면 그렇잖아도 왕실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더 문제가 될 것이 뻔하므로, 입막음을 아주 단단히 했다. 그래서인지 암암리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들도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고, 떡밥만 던지는 정도여서 안 밝혀진 것이 많다.
스페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패셔니스타[13]로 유명하지만, 화려한 과거와 잦은 성형수술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얼굴에 지나친 다이어트 등으로 한때 스페인 내에서의 지지율은 상당히 낮았다. 그래도 언론인 출신인지라 박식한 지식에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과 기자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주도하는 매력이 있다. 또 세자비 시절부터 열심히 적극적으로 공무를 수행했던 점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점은 왕비가 되고 나서도 그대로라 현재는 지지율이 점점 나아지는 중.[14]
2004년에 레티시아가 펠리페와 결혼할 때에는 "이 결혼이 이혼을 금하는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당연히 제기되었다. 다행히(?)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이 가톨릭교회법에 따른 혼인성사 내지는 관면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결혼에서 이혼했더라도 가톨릭교회가 금하는 이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왕세자와 결혼이 가능했다. 왜 레티시아와의 결혼을 왕실에서 그렇게 밀었냐면, 이유는 이러하다. 펠리페가 전 여친인 에바 새넘을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열렬히 사랑했으며 새넘 역시 스페인어를 배우는 등 적극적이었지만, '''속옷 모델'''이었던 새넘을 어머니 소피아 왕비가 극렬하게 반대한 끝에 결국 억지로 헤어져 혼기가 찼는데도 미혼인 어정쩡한 상태였기 때문이다.[15] 그리고 이때 레티시아와의 관계가 거론되자, 그나마 언론인 출신인 레티시아가 낫다고 생각한 왕실에서 이참에 과년한 펠리페를 빨리 결혼시키려고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였다.
2003년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약혼 발표 때 결혼 이후의 생활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레티시아가 "국영방송 일을 갑자기 그만두지는 않겠다."고 설명하려던 중에 펠리페가 끼어들려고 하자, 그녀가 단호하게 "내가 이야기를 끝내게 기다려요."라고 했고, 이 장면이 방송을 타며 큰 화제가 되었다. 평민 출신의 여성이 왕세자를 다그치는 모습은 보수적인 장년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구설수를 낳았지만, 아내를 위해 차분히 자리를 비켜주는 세자의 모습은 오히려 여성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이끌어 냈다.
[image]
[image]
[image]
레오노르 왕세녀
소피아 왕녀
펠리페와 레티시아는 슬하에 두 을 두고 있다. 장녀는 2005년 10월에 태어난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이며 차녀는 2007년 4월에 태어난 '소피아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이다. 현재 스페인 왕실은 남자 우선 왕위승계법을 두고 있지만,[16] 현재 펠리페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후안 카를로스 1세 재위 시절부터 장녀인 레오노르가 차차기 왕위계승권자였다. 그리고 펠리페가 2014년 6월 19일 펠리페 6세로 즉위함에 따라 레오노르는 아스투리아스 여공 칭호를 받으며 왕세녀가 됐다. 따라서 펠리페 6세가 재위 중에 사망하거나 생전 양위를 하게 된다면 스페인에 다시금 여왕이 나오게 된다.
레티시아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부모인 후안 카를로스 1세 부부에게 구박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다. 원래 이혼녀였던 레티시아를 탐탁찮게 여겼거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레티시아가 딸만 낳은 것으로 비난했다. 최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펠리페 부부가 아들을 얻기 위해 셋째를 가지려 노력했으나 두 딸들을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한 바 있는 레티시아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해[17] 결국 포기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장녀인 레오노르가 태어나던 2005년 10월에도 스페인 국민들은 공주의 탄생 소식에 기뻐하기보다, 왕실에 들어가는 세금이 또 늘어난다는 이유로 우려와 반발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로열 베이비들과 견주어 볼 때 레오노르가 가장 예쁘다는 평을 일반적으로 받았는데도[18] 상당히 험악한 반응이 쏟아진 걸 보면 스페인 왕실 지지도는 전부터 바닥을 치고 있었던 듯.[19] 이런 상황에서 왕세자 부부가 계획하여 셋째를 가진다 해도 아들일 거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또 아이를 낳는 것은 이미 활성화된 왕실 폐지론을 더 격화시키는 무리한 짓일 수밖에 없다. 또 오래 전부터 레오노르가 왕위 계승권자로 사실상 내정된 상황에서 늦게 아들을 낳으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 뻔하다. 어쨌든 2007년 4월에 소피아를 얻은 이후 펠리페 부부는 두 딸들로 만족하고 잘 살아왔던 것으로 종합해볼 때, 본인들도 자식을 더 출산하겠다는 욕심이나 의지는 없어보인다.

5. 가족관계



5.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펠리페 6세
(Felipe VI)
후안 카를로스 1세
(Juan Carlos I)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왕자
(Infante Juan, Count of Barcelona)
알폰소 13세
(Alfonso XIII)
바텐부르크의 공녀
빅토리아 유제니
(Princess Victoria Eugenie of Battenburg)[20]
부르봉-양 시칠리아 왕국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공주
(Princess María de las Mercedes of Bourbon-Two Sicilies)
부르봉-양 시칠리아 왕국의 카를로스 왕자
(Prince Carlos of Bourbon-Two Sicilies)
오를레앙의 루이제 공주
(Princess Louise of Orléans)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Princess Sophia of Greece and Denmark)
파블로스 1세
(Paul)
콘스탄티노스 1세
(Constantine I)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
(Princess Sophia of Prussia)[21]
하노버의 공녀 프리데리케
(Princess Frederica of Hanover)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Ernest Augustus, Duke of Brunswick)[22]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
(Princess Victoria Louise of Prussia)[23]

5.2. 배우자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Letizia Ortiz Rocasolano). 펠리페 6세의 아내이자 현재 스페인의 왕비. 언론인 출신.
왕세자 신분이었던 펠리페 6세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결혼했다가 이혼한 적이 있어서 "이혼을 금하는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지만, "이전 결혼이 가톨릭교회법에 따른 결혼(혼인성사)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혼했더라도 가톨릭교회가 금하는 이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펠리페와 결혼하게 되었다. 해외에서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하지만, 정작 스페인에서의 지지율은 상당히 낮다.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한 지나치게 마른 모습 및 잦은 성형수술로 인해 예전에 비하면 얼굴이 많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으로도 말이 많다.
2018년 4월, 부활절 미사를 끝내고 성당을 나가다가 성직자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어머니이자 전 왕비인 소피아와 노골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올랐다.[24]

5.3. 자녀


자녀
이름
출생
<rowcolor=#2D2F34> 1녀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
(Leonor, Princesa de Asturias)
2005년 10월 31일 (18세)
<rowcolor=#2D2F34> 2녀
소피아 공주
(Sofía, Infanta de España)
2007년 4월 29일 (16세)

6. 기타


역대 여느 왕보다 수더분하고 진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아이들이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아내와 어머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딸과 스스럼 없이 시간을 많이 보내며, 동물원을 함께 가거나 학교에 직접 데려다 주고 그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 딸들이 지나치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도,[25] 사생활이 없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풍성한 턱수염이 특징으로, 대관식 무렵에 잠시 깎았으나 다시 기르고 있다. 수염이 없을 때 한정으로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와 붕어빵이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닮아가고 있다. 스페인 왕실이 소피아 왕대비의 유전자가 강한지라 엘레나, 크리스티나, 펠리페 뿐만 아니라 손주들의 대부분이 소피아 왕대비 붕어빵이다.
키 크고 훤칠한 체격의 미중년으로 유명하며 소싯적에도 미청년으로 유명해 높은 인기를 누렸었다. 유럽의 남자 왕족 대부분은 장신인데, 그중에서도 펠리페는 독보적이다. 프로필상 키는 무려 '''197cm'''로 실제로 보면 거의 2m에 가깝다.[26] 단 키에 비해 비율은 평범한 편. 어깨가 별로 안 넓어서 대두가 아닌데도 은근히 얼굴이 커 보이며(…) 다리도 그렇게 긴 편은 아니라서 전신 사진을 보면 길쭉해보인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되게 크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펠리페뿐만 아니라 왕실 가족 전체가 장신이다.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도 연령을 고려하면 굉장히 큰 편이며,[27] 큰누나 엘레나 공주(178cm로 추정)와 작은누나 크리스티나 공주(179cm로 추정)도 매우 장신이다. 덤으로 크리스티나 공주의 남편 이나키는 197cm, 엘레나 공주의 전 남편 하이메는 196cm이다.
레티시아 왕비도 스페인 성인 여성치고 꽤 큰 편인 170cm 이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장신들 사이에 있다보니 은근히 단신 기믹이 있다(…) 특히 부부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보면 레티시아가 체격이 작은 걸 감안해도 진짜 아담해 보여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레티시아의 키가 160cm~163cm 정도밖에 안 되는 줄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의 육촌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프랑스식으로는 루이 알퐁스 드 부르봉)은 명목상의 프랑스 국왕 루이 20세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인 후안 카를로스 1세와는 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이며 명예 회장이기도 하다. 도시 내 더비 경기가 극성으로 유명한 마드리드에서는 마드리드 더비 하는 날 시내에서는 레콜레토스 대로라는 같은 큰 도로에 있는 시벨레스 동상[28]과 넵튠 동상[29] 사이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경계로 빈 맥주병들이 서로 날아 다닐 사이 시외에 있는 사르수엘라 궁전[30]속에도 전선이 그인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리고 국왕이 된 직후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인 세아트에 찾아가서, 자신이 세자 시절에 타던 이비자를 리스토어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만 리스토어가 되자 리스토어가 된 본인의 차량을 가져가지 않고, 세아트 사의 자동차 전시품으로 맡겼다.#
한국을 2번 방문하였다. 첫 번째는 왕세자 신분이던 1988 서울올림픽 당시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의 요트 경기를 참관이었고, 2번째가 2019년 공식 방문이다. 이번 방한에서 레티시아 왕비와 함께 10월 24일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았다.#1 #2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요트 선수로 참가한 경력이 있다.
2020년 3월 27일에 그와 10촌간인 마리아 테레사 부르봉 파르마 공주가 코로나 19로 사망했다. 카를리스타 계열 왕위 주장자인 카를로스 우고의 여동생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카를로스 우고가 카를리스타 운동을 급진 좌파 운동으로 전환할때 힘을 보탰다고 한다. 한국 언론에서는 사촌이라고 지칭했지만 이는 4th cousin의 오역이다.

7. 둘러보기



[1] 펠리페 6세의 6촌이자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조의 왕위 요구자로 카페 왕조 전체의 당주이다.[2]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 공의 5촌 조카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딸 빅토리아 공주의 증손녀이기도 하다.[3]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달고 있었던 것들이다. 스페인 왕들의 칭호는 과거 보유했던 칭호들을 현실과 상관 없이 그대로 보유하기 때문이다.[4] 스페인 카탈루냐, 발렌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지방들의 공용어이며 아라곤 지방 일부에서도 쓰인다. 사실상 스페인의 제 2언어.[5] 펠리페 6세가 고등학교 시절 유학한 캐나다프랑스어영어가 공용어이다. 미국 생활까지 했으니 영어는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도 통역없이 했다.#[6]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그리스 공주 출신이다.[7] 참고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1970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의 4개 대회를 예선탈락으로 나가지 못한 것 외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탈락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조별라운드 탈락은 국가적인 충격이었던 셈.[8] 사실 치안 문제를 비롯한 스페인의 국가 행정 대부분은 법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지, 왕의 책임은 아니긴 하다. 스페인은 엄연히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정'''이지, 절대왕정이 아니기 때문. 그러나 군대, 경찰, 사법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스페인 보수 우익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종 혼맥과 인맥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심점에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다. 따라서 왕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간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이지만, 국정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해 관계로 움직이는 나라 스페인에서 그 사적 이해 집단의 중심에 바로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는 것이다.[9] 스페인뉴질랜드터키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10] 스페인 성인 남성들의 평균 신장이 '''175cm'''다. 이 정도 키면 상위 0.1%에 든다.[11] 예나 지금이나 왕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짙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지금은 국민들과 친근함을 주는 행동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대세여도 왕실의 위엄과 체통이 지켜져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르웨이의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같은 케이스는 차라리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게 더 흔하다고 할 정도로 매우 드물며''', 심지어 그렇게 개방적인 노르웨이인들도 저렇게 개차반으로 살았던 여자가 나라를 대표하는 왕세자비라며 상당히 쪽팔려 한다. 실제로 호콘 왕세자가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메테마리트와 결혼하자 노르웨이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망가졌다. 그나마 세월이 약이라고, 메레마리트 본인도 결혼 후에 두 번 정도 사고친 것 외에는 그럭저럭 조용히 잘 지내고 있어서 예전만큼은 이미지가 나쁘진 않다. 그리고 펠레페가 결혼한 지 10년 후, '''북쪽 동네의 왕자가 최초로 누드 모델 출신과 결혼했다'''(…) 언론에서 열심히 과거 세탁을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못지 않게 과거 이력이 난잡한 걸로 유명하며, 당연하지만 개방적인 스웨덴인들도 이 사실에 부끄러워한다...[12] 결과적으로 새넘이 펠리페와 결혼하는 데 실패한 이유는 호콘 왕세자하고 메테마리트와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입은 드레스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고 로열 웨딩에서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어서 당시에도 욕을 엄청 먹었고, 지금도 최악의 로열 웨딩 하객 패션으로 꼽힐 정도.[13] 레티시아 왕비는 현재 유럽의 왕비&왕세자비 중에서 패션 센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세자비 시절에 TPO를 무시한 패션을 선보일 때가 종종 있어서 비판이 있었다. 현재 이러한 경향은 없어졌다.[14] 무엇보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온갖 사고들과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의 횡령 범죄 등의 문제가 오히려 펠리페-레티시아 부부의 지지도를 올려주는 데 꽤 큰 공헌을 했다(…) 레티시아는 이후 시어머니 소피아 왕대비와 고부갈등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다시 이미지가 나빠졌지만...[15] 일본에서도 쇼와 덴노(히로히토)의 아내 고준 황후(나가코)가 생전에 큰며느리 미치코 황후(아키히토 덴노의 아내)를 혹독하게 시집살이 시킨 것이 유명하다. 미치코 황후는 대기업 재벌가의 딸이었지만,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끝내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만 봐도 왕실에서의 혼인, 특히 왕위 계승권자의 혼인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의 각주에서도 설명한 것이지만, 국가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과 왕가의 혈통과 체통 때문에라도 적당하지 않은 여성을 왕실의 며느리로 들일 수는 없다.[16]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에게는 큰딸인 엘레나 공주와 작은딸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있었지만, 남자 왕족 우선의 왕위 승계법상 왕위 계승자 지위는 아들이자 막내인 펠리페 6세에게 넘어갔다.[17] 그도 그럴 것이, 또래의 다른 유럽 왕비들 혹은 세자비들에 비하면 레티시아가 지나치게 말랐다. 특히 풍채 좋은 네덜란드막시마 왕비노르웨이의 메테-마리트 세자비와 같이 있을 때 마른 체형이 특히 더 두드러지곤 했다. 역시 꽤 마른 편인 덴마크의 메리 세자비나 실물을 보면 걸어다니는 뼈다귀라는 평을 듣는 영국캐서린 왕세손비도 레티시아 옆에 서면 상대적으로 근육이 돋보이는 건강한 몸매로 보이는 효과가 일어난다(…) 아무리 사진이나 영상이 실물 보다 부어보이는 건 맞지만, 레티시아는 사진과 영상에서도 팔뚝과 종아리가 너무 가늘다 못해 거의 뼈밖에 없는 수준이라, 민소매 드레스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건강 이상설이 종종 제기되어 왔지만, 일각에서는 "레티시아가 과도하게 마른 몸매에 집착해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한 결과"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18] 2020년 시점에서도 역변 없이 성장하고 있는데다가, 전체적인 인상이 고전적인 공주님에 가깝다. 영어권에서 레오노르 공주를 Disney Princess라 표현할 정도.[19] 사실 왕실 지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스페인은 원래 왕국이었다가 1931년 정재계, 군관민,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가 합심하여 '''왕실을 몰아내서''' 공화국이 된 나라다. 그 후에 일어난 왕실 복고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자의적으로 내린 결단일 뿐, 국민들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 때까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받은 존경과 경의는 국왕 개인이 과도기의 지도자로서 자기 능력으로 직접 얻어낸 것이지, 왕실의 역사적 전통에 기반하여 자연스레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후안 카를로스 개인에게 스페인 사람들이 바친 충성심을 스페인 내부에서는 Juancarlismo(후안카를리스모)라고 부르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왕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 취급한다. 다만 펠리페 6세가 스페인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이대로 스페인의 입헌군주제가 100년 넘게 계속 안정적으로 이어진다면 몇 세대 후에는 스페인 왕실에 대한 스페인 국민들의 존경심 또한 왕실의 역사적 전통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될지도 모른다.[20]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다.[21] 프리드리히 3세의 3녀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다.[22] 게오르크 5세와 크리스티안 9세의 손자이다.[23] 빌헬름 2세의 고명딸이다.[24] 시어머니 소피아가 두 손녀(레티시아의 딸들)를 끌어당겨 안으며 언론 카메라 앞에서 사진 포즈를 잡는데, 레티시아가 마치 사진 촬영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그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더니 소피아가 첫째 손녀 레오노르의 머리에 키스를 하자, 레티시아는 더러운 게 닿았다는 식으로 시어머니의 손을 치우며 시어머니의 입술이 닿은 딸의 머리를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당황한 펠리페 6세가 부인 레티시아의 팔을 잡으며 말리는 와중에도, 레티시아와 소피아는 서로 레오노르의 머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 같은 모습으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다툼을 했다. 결국 어린 레오노르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어머니의 손과 할머니의 손을 전부 뿌리쳐버린 노골적인 고부갈등을 찍은 동영상이 언론과 인터넷에 퍼진 것.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꽤 오래전부터 고부갈등이 있었다는데,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갈등을 드러낸 레티시아에 대해서 스페인 국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25] 실제로 펠리페는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그는 가지 못했는데, 생일을 맞은 친구의 부모가 왕실에 어떻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 그때의 경험 이후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꺼린다고. 그래서 유럽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학교로 유학을 떠난 것도, 펠리페가 왕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심을 키우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26] 실제로 192cm의 키의 어떤 남성이 마드리드의 한 극장에서 펠리페를 포함한 스페인 왕실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192cm인 자기보다 펠리페가 5~6cm는 더 커보인다고.# 그리고 맨발 키 197cm이면 구두를 신으면 '''진짜 2m가 된다.'''[27]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나 후안 카를로스는 185~188cm, 소피아 대비는 못해도 최소 173~176cm로 추정되고 있다(사진을 보면 소피아가 레티시아보다 약간 더 크다.)[28]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29] 아틀레티코의 상징[30] 현 스페인 왕실의 일상 거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