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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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80년대엔 가요 경연대회 출신 가수들이 맹활약을 했는데 양수경도 그쪽 출신답게 빼어난 가창력이 돋보였고, 여기에 청순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미녀 가수로도 유명했다.
전영록, 박강성, 김범룡 등 많은 남자 싱어송라이터들에게서 받은 곡이 꽤 되는데,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받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강성의 경우는 데뷔 예정곡이었다고...
2. 활동
2.1. 전성기
공식적인 데뷔는 1984년으로 '내 님은 예쁜 새'#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음반#을 고3 나이에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활동은 하지 못했다. 이후 1986년 KBS가 주최한 '신인무대'로 활동 기반을 마련한 뒤# 1988년 실질적인 1집을 발매하며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1988년을 데뷔년도로 생각하고 있다.#
1988년 1집《떠나는 마음》이 대박을 치며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가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대표 히트곡으로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그대는', '외면',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이별의 끝은 어디 있나요'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가요톱텐 5주 이상 1위 등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1991년부터는 해외에 진출하여 일본 NHK 아시아 5대 스타상, ABU(아태 방송연맹)가요제 인기 가수상 등 해외에서도 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질 정도로 선전했다. 예컨대 1991년 4월 소련의 가요행사인《백야 록 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30분간 공연을 했으며,# 1994년 6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94 백야축제》에서〈혼자만의 슬픔〉을 불러 대상을 차지했다. 백야축제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한국인이었다.#
2.2. 은퇴
1998년 1월 데뷔 때부터 함께한 자신의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인 7살 연상 예당컴퍼니의 변대윤(본명 : 변두섭) 회장과 결혼하였다.[6] 기획사의 사모님으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결혼 5년 만에 얻은 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가끔씩 조용히 취미삼아 음반 활동을 하는 듯 보인다.
2001년에 자신이 직접 기획 제작한 동요 음반을 발매했고, 2004년에는 드라마 OST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7] 덕분에 그녀의 컴백설이 잠시 돌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 앨범이 남편 회사에서 제작되는 인연으로 녹음 작업에만 참여했을 뿐,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아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로서의 커리어로만 본다면 그냥 왕년에 꽤 잘 나가던 8090세대 여가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놀라운 인맥들을 자랑한다. 1994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 선동열과 함께 투 앤 원(Two&One)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음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태 구단 측에서 연봉을 줄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앨범 만들면 보너스 내주기 딱 좋다며 단장이 아이디어를 낸 결과물인데 막상 앨범자체는 100장도 안팔릴정도로 쪽박차서 재고만 쌓였고 팬들에게 기념품으로 증정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이종범과 친분이 생겼고, 선동열과도 아는사이는 되었다고는 하지만.
2.3. 복귀
남편의 발인을 치르고 나서 변 대표의 동생과 함께 예당의 경영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절친으로 알려졌던 가수 이선희도 남편이 자살하였는데 친구인 양수경의 남편도 자살하여 서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
가수 활동을 중단한지 20년[8] 만인 2016년 7월 부로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로 출연하여 지상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2부작으로 특별 편성할 정도로 대단했는데, 5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가씨들이나 소화할 법한 포니테일과 이브닝 드레스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동안과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아무래도 20년 만의 무대여서인지 1부 시작하면서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부르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한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서 감정이 북받쳐 잠시 울컥한 모습을 보여줬다. 첫 번째로 경연에 오른 알리의 경우 남편이 경영하던 소속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던 연예인이라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는지, 무대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감격스러워 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KBS1 콘서트 7080에서 그녀의 단독 컴백쇼를 이례적인 1시간 풀타임 형식으로 편성하여 방영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7년 2월 21일 불타는 청춘에 새친구로 출연했다. 이제까지 이혼 경력이 있거나 미혼인 기존 출연진과는 달리 사별 후 출연한 첫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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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의 단독 콘서트 포스터. 저때가 52세였다.
2017년 9월, 27년만의 단독 콘서트를 열면서 컴백을 선언했다. 2018년 9월 16, 23일에 복면가왕 85차 경연에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과일바구니라는 가명으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3. 여담
-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백야축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 양수경은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혼자만의 슬픔'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 때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과 친분을 쌓았고,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 때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거기에 2007년 남편이 경영하는 예당컴퍼니에서 러시아 유전 사업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는데, 성공의 계기가 바로 양수경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직접 부탁하여 물밑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4월 진행하던 유전 사업에서 경제성이 있는 대규모 석유 매장량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식의 상한가로 대박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9]
- 2009년 여동생인 양미경이 자살하였는데,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으로 나오는 등 많은 드라마에 출연한 동명이인 탤런트 양미경이 자살한 것으로 기사 오보가 나버린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 1993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으나, 우승 보너스를 못 주는 상황에 이르자 음반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때 그녀는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Two&One'이라는 이름으로 앨범 녹음을 했다. 하지만 100장도 못 팔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음반 판매가 시원찮았고 김응용 감독이 선동열과 이종범이 부상당할 때마다 코치에게 둘에게 나이트 자리를 알아오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당시 양수경은 선동열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시도, 선동열이 매운 김밥을 먹게 만들기도 했다.
- 불타는 청춘에 고정 출연 중이지만 2018년 12월 4일 방송분에서 친동생의 죽음과 남편의 갑작스런 사별로 인해 10년째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했다.(‘불타는 청춘’ 양수경, 친동생+남편 사망 “스스로 목숨 끊어..잔인”)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은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며 이후 그 유가족이 다시 자살할 확률은 일반인보다 비교가 안되게 높다.(유가족 아픔 나누며 치유해야)
- 가수로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으나, 긴 공백기와 남편의 사업실패로 인해 생활고를 겪었음을 밝혔다. 사망한 남편의 채무를 일부 떠안았기 때문에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0원이었던 적도 있었고 연예계 복귀도 녹록치 않았다고. 불타는 청춘으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현재는 김치사업을 하고싶다는 꿈이 생겼음을 밝혔다.
- 정말 의외의 팬이 있는데, 다름 아닌 전설적인 스레시 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전성기를 함께 한 레전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 마티 프리드먼은 메가데스 탈퇴 후 일본에 거주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익숙한데, 그 당시 일본 가요계에 진출한 양수경의 노래를 접한 듯하다.
4. 앨범
4.1. 정규 앨범
- 1집 《바라 볼 수 없는 그대》(1988년)
- 2집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1989년)
-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년)
- 4집 《Asian Dream》(1991년)
- 5집 《한 번 더 생각해 봐요》(1992년)
- 6집 《잊어야 할 때》(1993년)
- 7집 《혼자만의 슬픔》(1994년)
- 8집 《Blue Wedding》(1996년)
- 9집 《후애》(後愛) (1999년)
4.2. 미니 앨범
- 《양수경 미니앨범》 (2016년)
4.3. 베스트 앨범
- 《양수경 골든》
- 《양수경 Best》
- 《양수경 카페음악 1, 2, 3》
4.4. 참여 앨범
[1] 1967년생이라 알려졌으나, 1986년 신인무대에서 1965년생이라고 했다.[2] #[3] 아버지 직업 특성상 성장기는 경기도 연천, 서울시 노원구 일대에서 보내기도 하였다.[4] 1998~2013년, 당시 러시아 유전 사업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그 동안 잠시 중단했던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을 다시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2013년 6월 4일에 갑작스럽게 자살하였다.[5] 2003년생[6] 당시 두 사람의 결혼은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7] 당시 그녀는 탤런트 채시라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주제곡 ‘후애’를 불렀고, 이 곡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8] 사실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8집 앨범이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20년만의 컴백이라 보는게 맞다. 이유는 원래 9집을 내고 활동하려 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앨범 발매가 전격 취소되었고 양수경은 지인들에게만 홍보용으로 찍은 앨범을 몇 장 선물했다고 하며, 앨범 활동 역시 백지화시켰다. 후에 여러 OST에 9집의 수록곡 일부를 삽입해 다시 부르기도 하였다. 음원은 어찌어찌해서 전곡을 공개하게 되었다.[9] 당시에 1달 사이 평가 수익률 300%가 올라, 34억원의 차액을 벌어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