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군

 



'''조선 성종의 왕자'''
'''양원군
楊原君'''

'''군호'''
양원군(楊原君)
'''시호'''
정혜(貞惠)
'''본관'''
전주(全州)
'''이름'''
희(憘)
''''''
흔보(欣甫)
'''부왕'''
조선 성종
'''생모'''
숙의 홍씨(淑儀 洪氏)
'''부인'''
문천군부인 풍양 조씨(豊壤 趙氏)
양근군부인 문화 류씨(文化 柳氏)
'''자녀'''
4남 8녀
'''묘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생몰
기간
'''
'''음력'''
1491년 미상 ~ 1524년 5월 14일
'''양력'''
1492년 미상 ~ 1524년 6월 15일
1. 개요
2. 사건사고
3. 가족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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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의 16남이자 서14남으로 막내아들이다. 어머니는 숙의 홍씨[1]이다. 친남매로는 누나 혜숙옹주, 정순옹주와 형 완원군, 회산군, 견성군, 익양군, 경명군, 운천군, 그리고 여동생 정숙옹주가 있으며 전주이씨 양원군파의 파시조이다.

2. 사건사고


  • 중종실록》에 따르면, 1535년(중종 30년)에 종묘 근처의 본가에 들렀다가 궁궐로 돌아가려던 나인 한 명을 강제로 범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으로 삼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헌부사간원에서는 엄하게 죄를 물을 것을 요청했으나 중종은 큰 벌을 주지 않고 파직만 시켰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첩을 돌려주었다.#

3. 가족과 후손


충의위 조경의 딸 문천군부인 풍양 조씨와 혼인했으나 1517년 사별했고 이후 양근근부인 문화 류씨와 재혼하였다. 조씨 부인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었고, 류씨 부인 사이에서 1남을 두었다.
그리고 측실을 3명 두었으며 첫 측실(이름 미상)에게서 1남 3녀를, 학정이란 이름의 소실에게서 1남을, 그리고 세 번째 측실에게서 1남 5녀를 두었다.
유일한 적자이자 장남은 함녕군 이수선(咸寧君 李壽璿)이고 차남은 연성부정 이옥정(蓮城副正 李玉精)이다. 삼남은 화령군 이옥명(花寧君 李玉命)이고 4남은 강양수 이옥호(江陽守 李玉糊)이다. 함녕군은 1녀를 두었으나 아들이 없어 양원군의 형 경명군의 손자 영천군 이정(靈川君 李侹)을 입양했다. 연성부정은 1남 1녀를 두었고 화령군은 3남 4녀를 낳았으며 강양수는 1남 2녀를 두었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양원군파를 이루고 있다.
[1] 서삼촌이 실존인물 홍길동#s-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