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양군

 



'''조선 성종의 왕자'''
'''익양군
益陽君'''

'''군호'''
익양군(益陽君)[1]
'''시호'''
순평(順平)
'''본관'''
전주(全州)
'''이름'''
회(懷)
''''''
순지(順之)
'''부왕'''
조선 성종
'''생모'''
숙의 홍씨(淑儀 洪氏)
'''부인'''
순천군부인 연일 정씨(迎日 鄭氏)
'''자녀'''
6남 4녀
'''묘소'''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
'''생몰
기간
'''
'''음력'''
1488년 7월 1일 ~ 1552년 1월 21일
'''양력'''
1488년 8월 7일 ~ 1552년 2월 15일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가족과 후손

[clearfix]

1. 개요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의 9남이자 서7남으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2]이다. 친남매로는 누나 혜숙옹주, 정순옹주와 형 완원군, 회산군, 견성군 및 남동생 경명군, 운천군, 양원군, 그리고 여동생 정숙옹주가 있다. 전주 이씨 익양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


1496년(연산군 2년)에 익양군으로 봉해졌다. 갑자사화 당시 연산군의 광기가 극에 달하면서 이복동생들에게까지 해를 가하자 익양군은 두문불출하면서 일부러 바보 연기를 하여 연산군의 의심을 피했다.
1506년(중종 1년) 중종반정 후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이후 문소전과 연은전, 종부시의 제조 및 종친부의 유사당상 등을 지냈다.

3. 사후


1552년(명종 7년) 2월 15일에[3] 사망했다.# 향년 63세.[4]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에 있으며 1984년 10월 25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1987년 8월 17일 파주군청에서 묘소를 재정비한 뒤 비각을 세웠다.

4. 가족과 후손


순천군부인 연일 정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고 측실 화순 최씨 사이에서 2남을 두었다. 장녀는 이의환(李義環), 차녀는 이계환(李桂環), 삼녀는 이필환(李畢環)이다.
적장남은 용천군 이수한(龍川君 李壽鷴), 적차남은 광천군 이수기(廣川君 壽麒), 적3남은 황양군 이수린(荒壤君 李壽麟), 적4남은 장천군 이수효(長川君 李壽‘鹿+孝’)이다. 그리고 서장남은 단천군 이수곤(丹川君 李壽鵾), 서차남은 화천부정 이수붕(花川副正 李壽鵬)이다. 이 중 광천군은 아들이 없던 작은아버지 전성군양자로 출계했다.
용천군은 6남을 낳았고 황양군과 장천군이 각각 1남을 두었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익양군파를 이루고 있다.
인조청나라에 인질로 가서 도르곤과 혼인한 의순공주가 그의 현손이다.
[1] 군호는 경상북도 영양의 별호였던 ‘익양(益陽)’에서 유래했다.[2] 서삼촌이 실존인물 홍길동#s-2이다.[3] 음력 1월 21일.[4] 세는나이 6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