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마이어

 

'''에곤 마이어(Egon Mayer : 1917년 8월 19일~1944년 3월 2일)'''

1. 약력
2. 전반기
3. 전투기 조종사로
4. 프랑스 침공과 해협 전투
5. 비행단장이 되다
6. 전사와 훈장 추서


1. 약력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 소속으로 353회 출격하며 적기 102대를 격추시킨 에이스 파일럿.
에곤 마이어의 격추수는 100대 수준이지만 그 모두를 강력한 전투기와 잘 훈련된 파일럿들을 상대하는 서부전선에서 거두었기 때문에 그의 전과는 동부전선으로 따지면 200기 이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의 전공에는 4발 폭격기 26대와 스핏파이어 51대, P-47 썬더볼트 같은 고성능 전투기도 12대나 포함되어 있다. 에곤 마이어가 더욱 주목할만한 이유는 순전히 서유럽의 서부전선에서만 100대 이상을 떨군 첫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2. 전반기


독일 제국 시대가 곧 막을 내리는 1917년에 남부 독일의 아름다운 보덴 호수를 끼고 있는 관광지 콘스탄츠(Konstanz)에서 목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이어가 소년이 되자 또래의 아이들처럼 비행을 동경하게 되었고, 이에 차편으로도 족히 3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벨렌베르크(Bellenberg)에 있는 활공 클럽을 다니면서 글라이더 조종 교육을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잠깐의 활공을 즐기기 위해 비행장까지 가는 길은 오늘날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카페리가 운항되고 있어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3. 전투기 조종사로


김나지움을 마치고 졸업증서를 딴 에곤 마이어는 1937년 11월 1일에 글라이더 조종 경력을 밑천 삼아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고 공군에 자원 입대했다. 베를린 인근의 가토우(Gatow)에 있는 제2전투비행학교(Luftkriegsschule 2)에서 전투기 조종 훈련을 마친 에곤 마이어는 1939년 8월 1일자로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되었다. 그가 임관을 한 후 딱 한달 후인 9월 1일에 독일폴란드를 침공해 거대한 전쟁에 불을 당겼다.

4. 프랑스 침공과 해협 전투


제2전투항공단 리히트호펜(JG 2)에 배치된 그는 프랑스 침공전에 참전해 MS.406 전투기를 첫 제물로 삼으면서 차근차근 격추수를 올려나갔다. 에곤 마이어 소위가 멘토로 삼은 전투기 파일럿은 자신이 엄호를 맡고 있던 당대 최고의 에이스인 헬무트 뷔크 소령이었다. 마이어는 뷔크를 따라다니며 그의 정확한 사격술과 용맹무쌍한 감투정신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훗날 그가 중폭격기 킬러로 명성을 떨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해협 전투 기간 중에 에곤 마이어는 스핏파이어 3기를 잡아먹는 댓가로 자신도 피격되었으나 프랑스 해안의 모래사장에 불시착해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1940년이 저물 때까지 그는 공격 기회를 거의 얻기 힘든 윙맨이었음에도 4기 격추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우상처럼 여기던 헬무크 뷔크는 마이어가 부재 중인 출격에서 스핏파이어를 모는 RAF의 더블 에이스 존 던다스에게 격추되어 전사해버렸다. 히틀러바다사자 작전을 무기한 연기하고 부대에 여유가 생기자 에곤 마이어는 베르노이헨(Werneuchen)의 비행학교에서 실전을 겪은 선배 파일럿으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5. 비행단장이 되다


1941년 6월 10일, 에곤 마이어 중위는 JG 2 제7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2개월 뒤 21번째 적기를 격추한 그가 8월 1일에 에리히 라이에(Erich Leie : 1916~1945 / 76대 격추)와 루돌프 프란츠(Rudolf Pflanz : 1914~1942 / 52대 격추)와 함께 셋이서 기사철십자장을 받는 광경은 보도반에 의해 촬영되어 독일 주간뉴스(Die Deutsche Wochenschau)를 통해 제3제국 방방곡곡에 상영되었다. 이후 적기 16기를 더 격추시키고 1942년 7월에 독일 황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생일이었던 8월 19일에는 스핏파이어 2대를 한꺼번에 격추시켰는데, 이것으로 50대째 격추를 달성했다. 같은 해 11월에 대위로 진급한 마이어는 JG 2 제3비행단장 보직이 주어져 1개 그루페를 이끌게 된다.
특히나 중폭격기 격추의 달인으로 평가받던 그는 사방팔방에 고슴도치처럼 기관총으로 무장되어 사각이 없는 B-17의 철벽같은 방어화망을 뚫고 요격하기 위한 방법으로 초중기형의 B-17이 정면 방어가 허술한 점에 착안해 마치 중세 기사들의 마상 창시합을 연상시키는 헤드 온 공격(Head On Attack)을 고안해 베테랑 파일럿들에게 전파시킨 장본인이기도 했고, 이를 증명하듯 43년 9월 6일의 요격에서는 19분 동안 3대의 B-17을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6. 전사와 훈장 추서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항공단 사령관인발터 외자우가 전사하자 7월 1일부로 JG 2의 사령관이 되었다. 1943년 12월 31일에는 90번째 적기를 격추했고 1944년 2월 5일에는 서부전선 최초의 100대 엑스페아텐 에이스가 되었다. 에곤 마이어는 1944년 3월 2일에 미 육군항공대폭격기 편대를 공격하다가 자신보다 1500m 위에 있던 P-47 썬더볼트 호위기들에 피격되어 추락했는데,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사했다. 이 전쟁 영웅에게는 사망 당일 곡엽검 기사철십자장이 주어질 예정이었으나 사후 추서되었다. 숱한 생사의 길을 헤치고 살아남았던 에곤 마이어를 격추시킨 조종사는 제358전투비행대의 지휘관이었던 월터 그레셤(Walter Vernon Gresham jr : 1921~2014 / 13대 격추)이었고, 놀랍게도 이것은 그의 첫 격추였다.
항상 목에 긴 흰색 머플러을 두르고 다녀 영-미군 파일럿들에게 '''흰 머플러의 파일럿'''이라 불릴 정도로 서부전선에서 위명을 떨친 마이어는 353회의 전투 출격을 통해 대 프랑스전에서 첫 격추를 달성한 이래 102기의 적기를 떨구었으며, 그중 4발 중폭격기는 25기에 달해 같은 부대 출신의 수퍼 에이스 요제프 부름헬러(Josef Wurmheller : 102기 중 18기의 중폭), JG 53의 헤르베르트 롤바게와 함께 대표적인 4발 중폭격기 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