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케의 Q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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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연재 잡지
5. 수상
6. 주요 설정
7. 애니메이션화
8. 기타


1. 개요


원제는 オバケのQ太郎(오바케의 Q타로)로, 후지코 후지오로 콤비를 이루던 시절 공동으로 작업한 일본만화. 위 이미지는 초판 표지 사진.
후지코 후지오의 초창기 대표작 중 하나로 약칭인 "오바Q"로도 불린다. 일본에서 오바Q 붐이란 사회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전까지 진지한 성향의 만화들을 주로 그리던 후지코 후지오가 '개그 만화가'로 인정받게 되는 만화이기도 했다. 어찌보면 '''도라에몽의 전초작.'''
속편인 '신 요괴 Q타로'와 후일담적인 "극화 · 오바 Q "(후지코 F. 후지오 작품)도 있다.

2. 상세


소년 선데이의 편집부에 출입했던 한 어린이가 전달한 만화를 편집자가 감상하고 후지코 후지오에게 유령이 나오는 만화를 연재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괴담과 요괴를 좋아한 후지모토 히로시(이하 F)가 제안을 승락하였다.
아비코 모토오(이하 A)는 당시 F와 만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제로에 오다큐 선을 이용해 통근하던 중 오다큐 → 오바Q → 요괴 Q타로라는 타이틀을 결정했다고 스튜디오 버러 이야기'(F가 작화를 맡음) TBS 테레비에서 2008년 4월 12일 방송한 프로그램 '브로드 캐스터'에서 밝혔다. 하지만 F와 A의 공동 자서전 '둘이서 소년 만화만 그려 오다'에서는 먼저 "요괴 ○ 타로"라는 제목을 결정해서 ○ 부분에 넣을 말을 찾으려고 할때 소설가 아베 코보의 책을 통해 Q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 주인공이 애교있는 캐릭터라 생각하게 되면서 Q타로로 정했다고 나와있다. 1화인 '닌자 놀이'의 스토리는 스튜디오 제로 사무실 근처에서 닌자 놀이를 하고 있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1964년 소년 선데이에서 주간으로 첫 연재를 했다가 반응이 미지근해서 9회로 연재를 마무리지었다. 허나 연재 재개를 요구하는 편지들이 이어지면서 3달 뒤 연재를 재개했다. 극초기엔 F가 Q타로, A가 쇼타, 아카츠카 후지오가 배경, 이시노모리 쇼타로츠노다 지로가 다른 캐릭터들을 그렸는데,[1] 연재를 재개한 이후부터는 F가 스토리를 모두 맡고 다른 멤버들은 작화를 협력하였다.
1971년 소학관 학습 잡지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오시로가 등장하는 '신 요괴 Q타로[2]'의 연재를 시작했고, 1972년, 빅 코믹에서 15년 후 Q타로와 어른이 된 쇼타의 모습을 그린 "극화 오바Q"가 연재되기도 했었다.
1977년 코로코로 코믹이 창간되자 다른 후지코 후지오 만화들과 함께 요괴 Q타로가 실리기도 했다. 1979년어시스턴트인 시노다 히데오가 작화를 맡은 번외편 '도라 · Q · 퍼맨'이 연재되었으며, 이듬해 도라에몽에서 애니메이션화되었다. 1985년 2차 애니화 당시 새 연재 의뢰가 작가에게 전달되었지만 작가인 후지오는 더 이상 오바Q 같은 (유형의) 개그 만화를 그리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3. 연재 잡지


  • 주간 소년 선데이 : 1964년 6호 - 14호, 1964년 24호 - 1966년 51호
  • 별책 소년 선데이 : 1964년 가을호 12월호 1965년 1월호
  • 소년 선데이 증간 : 1965년 정월호 - 1967년 정월호
  • 요이코 : 1965년 1월호 - 1967년 6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4월호
  • 소학관 학습 잡지
    • 소학교 1학년 : 1965년 1월호 - 1967년 2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3월호
    • 소학교 2학년 : 1965년 1월호 - 1967년 2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2월호
    • 소학교 3학년 : 1965년 1월호 - 1966년 10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2월호
    • 소학교 4학년 : 1965년 1월호 - 1966년 11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3월호
    • 소학교 5학년 : 1965년 1월호 - 1966년 10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3월호
    • 소학교 6학년 : 1965년 1월호 - 1966년 10월호 1971년 4월호 - 1973년 3월호, 6월호
  • 소학관 만화 : 1965년 여름호 - 1966년 봄호
  • 마드모아 젤 : 1965년 12 월호 - 1966년 10월호
  • 여학생의 친구 : 1966년 1월호 - 12월호(번외편)
  • 보이즈 라이프 : 1966년 3월호
  • 빅 코믹 : 1969년 3월호, 1973년 2월 25일호
  • 소학관 북 : 1966년 7월호 (창간호) - 1967년 2월호
  • 월간 소년 점프 : 1976년 5월호

4. 등장인물


오바케의 Q타로/등장인물

5. 수상




6. 주요 설정


  • 오바케(オバケ): 본작의 등장하는 종족, Q타로 세계관의 오바케는 유령이나 괴물 같은 상상에서나 나오는 것들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이다.요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물건으로 변신할수 있으며 날아다닐수 있다.
  • 오바케의 나라(オバケの国): Q타로와 O지로를 비롯한 다수의 오바케들의 고향. 본래 요괴들은 인간하고 같이 살았으나 인간의 이기적인 행태에 질린 요괴들이 지상을 떠나 구름위에 세운 곳이다.요괴 나라의 생활 양식은 인간계와 별 차이가 없다.

7. 애니메이션화


1965년에는 도쿄 무비가 애니화하여 TBS 테레비의 '후지야의 시간'[3] 시간대에 흑백으로 방영되었으며 30%를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여 20%까지 떨어진 <철완 아톰>을 추월했다.[4] 1967년 3월에 애니메이션이 종영될 때까지 요괴 Q타로는 같은 연도에 방영된 울트라 Q, 울트라맨과 함께 TBS의 인기 프로 중 하나로 자리매김[5]했다.
주제가인 '요괴 Q타로'는 이듬해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동요 부문으로 수상했다. 상품화에 대해 TBS는 처음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고, 스폰서들도 다를바 없어서 쇼가쿠칸이 직접 상품화를 맡았다. 그 결과 쇼가쿠칸은 1967~2013년까지 있던 사옥이 '오바Q 빌딩'이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막대한 수입을 거두었다.[6] 애니메이션 제작은 A프로덕션(현 신에이 동화)가 맡았으며 감독은 나가하마 다다오였고, 각본은 츠지 마사키와 와카야바시 이치로, 마츠오카 세이지, 도쿄무비 기획부 등 다수, 작화감독은 쿠스베 다이키치로&시바야마 츠토무, 음악은 츠츠이 히로시 등이 맡았다. 1965년 12월 25일 개봉된 <토에이 만화 극장>을 통해 단편 극장판 '태풍을 몰고 온다의 이야기' 및 '인술수행의 이야기' 2작이 첨부된 바 있다.
1971년 9월 1일부터 도쿄 무비가 <신 요괴 Q타로>란 제목으로 컬러 애니화하여 니혼 테레비를 통해 1972년 12월 27일까지 방영했는데, 도쿄 애니메이션 필름(현 아니메필름)과 도요현상소(현 IMAGICA Lab.) 등지도 제작에 참여했으며 연출은 나가하마 다다오 감독이 맡았으며 작화감독은 카바시마 요시오, 촬영감독은 미사와 카츠지, 미술감독은 코바야시 시치로, 음악은 야마모토 나오즈미가 각각 맡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유일하게 극장판이 안 나왔고, 1984년에 미야기TV 및 TV미야기에서 재방영된 것을 끝으로 차후 재방송이나 VHS/DVD 등 2차 매체 발매가 안 되고 있다.
1985년 4월 1일부터 신에이 동화가 <후지코 후지오 극장 요괴 Q타로>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하여 1987년 3월 29일까지 매주 월~토 오후 6시 45분마다 2년간 방영했고, 종영 후 예능 프로그램 <파오파오 채널>을 통해 목요일마다 방영했다. 총감독은 사사가와 히로시, 감독은 하라다 마스지, 감수는 스즈키 신이치, 총작화감독은 토미나가 사다요시&모리시타 케이스케, 음악은 키쿠치 슌스케 등이 맡았다. 1985년에는 3D 안경 필수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된 바 있으며 1996년에는 쇼가쿠칸에서 본편이 VHS로 나온 바 있다.

8. 기타


한때 많은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 이후로 단행본 발매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이후 초판본이 가격이 오른 적이 있으며 2009년 7월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을 간행을 기점으로 출간이 재개되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안도 켄지가 저서에 기록한 대표적인 주장들이 있으며(저작권, 유족 의향, 인종차별 표현) 가장 유력한 주장은 'F와 A 사이에서 일어난 권리 문제'나 '그 주위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로 출판이 보류되었단 주장이다. 2007년 안도는 '봉인된 작품의 수수께끼 2'를 '봉인된 작품의 어둠'으로 문고에 게재하면서 소학관의 전 간부들에게 추가 취재를 진행했는데, 이에 따르면 A 측은 이전부터 재출간을 허가했으나 F의 부인이 'F와 A가 공동으로 저작권을 가진 작품을 내고 싶지 않다.'고 요청했기 때문에 재출간이 거부됐다고 한다.
한국에 에스퍼 마미, 21에몽처럼 방영되지 않은 후지코 후지오 작품에 속한다.
같은 작가의 만화 도라에몽에 자주 등장했었다. 주로 노진구가 실망하는 '재미없는 만화'로. 애니메이션 구판 시리즈에선 종종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라에몽 신판 애니메이션에서는 Q타로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후지코 F. 후지오 만화의 다른 캐릭터 (퍼맨,에스퍼 마미, 친푸이 등)로 교체된다. 이건 후지코 A. 후지오랑 같이한 작품이라 판권이 꼬인 모양.
[1] 이 때문에 60년대 초판에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했었다.[2] 잡지 게재 시의 제목은 '요괴 Q타로'.[3] 말 그대로 스폰서가 '페코쨩'으로 유명한 제과업체 후지야였다.[4] <밀림의 왕 레오>도 시청률이 20%였다.[5] 당시 타 방송국 관계자들은 TBS의 일요일 밤 7시대를 "공포의 QQ 타임"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6] 이 빌딩이 해체를 앞둔 때에 만화가들이 낙서를 한 이벤트에선 본래 Q타로를 그린 F 대신 A가 Q타로의 일러스트를 그리고 사인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