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야마 츠토무

 

1. 소개
2. 대표작
2.1. 감독작
2.2. 참여작


1. 소개


芝山努
일본애니메이터. 연출가. 애니메이션 감독. 1941년 3월 9일 생. (83세)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하여 오오츠카 야스오에게 애니메이팅을 배웠으며 당시 동갑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양대 천재 루키로 불렸다고 한다. [1] 이후로는 코바야시 오사무 (나이가 많은 쪽)과 친해져 그의 권유로 신에이 동화에 들어갔으며 후에 코바야시 오사무가 창업한 아세아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세아당으로 옮긴 뒤로도 신에이 동화 작품에 꾸준히 참여하였다.
일본 국민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며 무민, 루팡 3세 [2], 감바의 모험, 천재 바카본,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명랑 개구리 뽕키치, 도라에몽, 마루코는 아홉살, 닌타마 란타로, 쾌걸 조로리 등 대중에 폭 넓게 사랑받는 국민 애니를 다수 남겼다. 등신대가 작고 움직임과 표정이 풍부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감독하였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0년 가까이 1번도 쉬지 않고 1작품은 감독을 한 것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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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를 매우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지시 사항이 매우 정확하고 꼼꼼하며 손이 빨라서 레이아웃 작화를 원화 레벨로 거의 다 그려버리기도 했다. 레이아웃은 콘티보다 더 힘든 작업인데 그걸 TV 애니메이션에서 연속으로 20화 넘게 하기도 했고 (감바의 모험), 도라에몽 구 극장판의 경우 레이아웃 수준의 콘티를 혼자 다 그려버리기도 했을 정도로 레이아웃 분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양대 거두로 불린다. [3] 시바야마 츠토무가 그린대로 따라 그리기만 해도 애니메이션이 될 정도였으며 오히려 신에이 동화의 애니메이터의 능력이 시바야마 츠토무를 따라가지 못해 콘티보다 열화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현장 총괄 리더십이 뛰어나 콘티를 그리지 않아도 스태프를 잘 통솔하며 작품의 질을 높게 유지하였다.
연출할 때 BGM을 잘 안 쓰는 특징이 있다. 성우 연기도 베테랑 성우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거의 터치를 안 했다. 음향 쪽에는 무관심했던 편.
직계 제자로는 닌타마 란타로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후지모리 마사야 [4]가 있다. 혼고 미츠루, 하라 케이이치가 매우 존경하는 감독으로 뽑으며 그의 콘티를 입수하여 철저히 연구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모치즈키 토모미, 유아사 마사아키도 그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연출가이다. 작화 제자로는 카네코 시즈에가 있다.
친한 감독으로는 스기이 기사부로가 있다. 도라에몽의 작가 후지코 F. 후지오도 전적으로 신뢰하여 친하게 지낸 감독이었으며 마루코는 아홉살의 작가 사쿠라 모모코도 여러 번 만났으며 마루코는 아홉살 작가 후기 만화에 시바야마 츠토무가 나오기도 했다.
2013년 나이 및 건강 문제로 은퇴하였다.
참고 자료 : #

2. 대표작



2.1. 감독작



2.2. 참여작



[1] 동갑인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조금 더 먼저 입사해서 선배라고 한다.[2] 본 시리즈 제작에는 루팡 VS 복제인간 말고는 크게 참여하지 않았으나 실질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 원안자이다. 오오츠카 야스오등 몇 명이 디자인을 제출해봤으나 원작자 몽키 펀치는 시바야마 츠토무 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다고. 1기 시리즈는 미네 후지코 외의 캐릭터는 시바야마 츠토무 디자인을 오오츠카 야스오가 고쳐서 사용했다.[3]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바야마 츠토무도 못 따라가는 괴물로 52화짜리 애니메이션의 전편 레이아웃을 그리는 전무후무한 짓을 한 적이 있다.[4] 연출도 하며 시바야마 츠토무의 연출에 가장 가까운 연출가이다.[5] 극장판이 반응이 좋아서 극장판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TV판도 감독하였다. 그러나 극장판에 더 주력했다고 한다.[6] 이 에피소드는 원래 1기와 같이 제작되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방영이 미루어져 열투편의 7, 8, 9화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