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1. 생애
가톨릭 성직자이자 성인으로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병약했고 학교도 12살 때까지만 다녔다고 한다. 이후에는 목수 일을 배우는 등 노동자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유럽에 유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고향에서 오랫동안 사목했고, 알콜 중독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일반적인 사제로서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로, 그가 1977년 대주교가 되었을 때는 군사정권 측에서 환영했을 정도로 사회정의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사제이며 친구로 농민운동을 하던 그란데 신부가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반 독재운동에 가담하게 된다.[2] 이후 1979년 쿠데타로 들어선 엘살바도르의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빈곤층을 돕고 인권침해를 고발했다. 그러다 1980년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에서 미사 성찬기도 중 4명의 무장괴한들의 저격을 받아 암살당했다.피격 직후 사진(노약자 클릭 주의) 당시 독재정부가 그의 죽음에 개입하였고, 사후 30년이 지난 2009년에야 이 사실이 정부에 의해 인정되었다.
사실 로메로 주교가 처음부터 진보 성향인 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전통주의자였고,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에 그리스도인으로 인권을 옹호했을 뿐, 해방신학과는 거리가 있던 보수적인 주교였다. 일례로, 로메로 주교는 정통 신학 사제회로서 해방신학의 오류를 교리적으로 반박하는 임무를 맡은 오푸스 데이의 성 십자가 사제회에 참석하고 영적 도움을 받았다. 그가 순교한 날 아침에도 오푸스 데이 협력 사제 모임에 참가한 후 미사 집전 중에 피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교 후에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다. 그 결과 이젠 그가 해방신학의 아이콘처럼 된 것은 아이러니.
이런 이유로 진작에 시복시성이 되어야 했지만,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이를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는데 악용할 것을 우려한 교황청에서 이를 늦춘 것이다. 인권 탄압에 저항하는 것은 가톨릭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당연한 일이다. 장례식장에 신자들 25만 명이 운집했는데 폭탄 테러와 총격전이 벌어져 40명이 죽은 것 역시 비극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신부는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엘살바도르 천주교회의 사상 첫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는 1992년 엘살바도르의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는 과정에 기여했으며, 추기경이 된 201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 시복
20세기의 순교자 중의 한 사람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성공회)에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때 '하느님의 종'[3] 으로 인정되었으나 그가 종교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죽었다는 점을 이유를 내세운 교황청 내의 반대 의견 때문에 절차가 지지부진했는데,[4]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지 6주만에 시성 절차가 재개되었다. 기사 그리고 2015년 2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선포함에 따라 시복시성에 가속도가 붙었다.[5] 마침내 동년 5월 23일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살바도르 델 문도 광장에서 거행된 이번 시복 미사는 교황을 대리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집전했으며, 3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해 복자품에 오른 로메로 대주교를 기념했다. 축일은 3월 24일.
정식 시성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아메리카 대륙 일부에서는 그를 아메리카 대륙과 엘살바도르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그에게 헌정된 교회와 교구, 이콘도 있다. 가톨릭 사제였지만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포함한 기독교의 타 계열 분파에서도 존경받으며 그가 암살당했을 때는 전세계에서 추도객들이 찾아왔다.
3. 시성
2018년 3월 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 바오로 6세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전구로 인한 기적을 인정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
2018년 10월 1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교황 바오로 6세 등 동료 성인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4. 미디어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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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만들어진 영화 <로메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로메로 역은 영화배우 라울 줄리아가 맡았다.[6] 실제 인물과 닮은 모습과 함께 배우의 열연까지 더해진 덕분에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참상'을 호소력 깊게 알리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 그 외 엘살바도르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에서도 그의 암살을 엘살바도르 내전의 발발 계기가 된 주요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1]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다.[2] 그란데 신부는 2020년 2월 바티칸에서 시복이 결정되었다.[3] 성인에 이르는 단계 중 하나. 그 위로는 가경자, 복자, 성인 순으로 이어진다.[4]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라칭거 추기경 시절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써 해방신학을 적극적으로 반박한 적이 있다. 이러다 보니 해방신학과 얽힌 문제가 진척될 리가 없었던 것.[5] 순교자가 아닌 사람이 시복되려면 기적의 사례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순교자가 시복될 때는 기적 심사가 면제되기 때문이다.[6] 국내에는 괴기시트콤 아담스 패밀리 영화의 가장 역으로 제일 잘 알려진 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