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바 미나

 

'''오오바 미나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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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48 Team KⅡ'''
'''오오바 미나''' (大場(おおば 美奈(みな)
[image]
'''출생일'''
1992년 4월 3일 (32세)
'''출신지'''
가나가와현[image] 요코하마시 [image]
'''신체'''
150cm
'''혈액형'''
A형
'''별명'''
'''미나룽''', 대장미나[1]
'''소속 그룹'''
SKE48 팀 KII
'''그룹 경력'''
'''AKB48 9기생'''
AKB48 팀 4 (2010~2012)
AKB48 팀 B (2012~2014)
SKE48 팀 KⅡ (2013~)
'''소속사'''
재팬뮤직 엔터테인먼트
'''SNS'''


[image]
오오바 미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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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캐치프레이즈
3. 캐릭터 및 성격
4. 대인관계
5. 활동
5.1. 데뷔 일화
5.2. AKB48: 팀4의 캡틴
5.3. SKE48: 제2장
5.4. 총평
6. 여담
7. 선발 참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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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8그룹 최연장자 5위'''[2][3]
원래는 AKB48 9기생 출신이고 AKB48팀 B 멤버였다. 2013년 대조각에서 SKE48를 겸임했었다가 2014년 2월 대조각 축제에서 야마우치 스즈란과 함께 SKE48으로 '''완전 이적'''되었다. SKE48 팀 Kll 이적과 동시에 부리더가 되었다.
후루카와 아이리 졸업 공연에서 그다음 리더를 오오바 미나를 지명했다. 그뒤로 SKE48 팀 KⅡ리더로 활동 하고 있다.[4]
소속사는 재팬뮤직 엔터테인먼트이며 장래의 꿈은 콩트도 가능한 여배우가 되는 것이다.

2. 캐치프레이즈


'''私と恋して みなるん~'''

저랑 사랑해요. 미나룽~


3. 캐릭터 및 성격


캐치프레이즈에서 어필하는 것 처럼 연구생때와 팀 4에서는 독설과 츳코미역할을 맡고 있었다. 시마다 하루카이치카와 미오리에게 마구 츳코미를 날려 웃음을 주는 것이 관례. 이런 독설 캐릭터지만, 선배에게 독설을 날린 후에는 무서워서 마이크를 부들부들 떨정도로 사실은 소심하다. 자숙 후 극장공연에선 츳코미가 확실히 죽었다. 회복하기 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청순파 아이돌로 큰 눈이 특징이다. 키가 작은편으로, 팀A 멤버 다카하시 미나미, 같은 팀 이치카와 미오리 등과 함께 단신랭킹 상위권에 속한다..[5] 이에 대해 AKB48의 레귤러 방송인 니혼TV의 AKBINGO!에서 "악수회때 힐을 신지 않아 팬을 올려다보게 되므로서 포로로 만드려는 것이다"라는 멤버의 고발도 있었다. 눈을 치켜뜨는 것도 커보이려고 의도적 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은 키에 비해 슴가충실하다.[6]
성격은 승부욕과 오기가 강한 성격이다.
의외로, AKB48 오디션에서 4번이나[7] '''낙방'''하고 '''5번째 도전'''에서 9기 연구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리요시 공화국에 출연해 목 길이를 쟀는데 2cm였다...
성년식을 치루고 난 뒤 무대에서 신 성년들이 올해 포부를 밝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순서를 기다리다가 타카미나가 목이 보이지 않는 것을 신경쓰자 올해 포부를 "목을 늘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image]
그리고, 2015년 3월 26일 타니 마리카와 함께 출연한 아침방송에서...
[image]
목 길이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먹보, 통통이 캐릭터로도 유명한데 수영복 화보를 많이 찍게 되면서 옆구리의 살이 많은 것 때문에 목욕탕에서 봉으로 잘록함(くびれ)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8]

4. 대인관계


이치카와 미오리와는 박명수유재석의 관계이다.
같은 가나가와현 출신인 나가오 마리야와는 같이 귀가하는 관계이다.
오시멘은 '''니토 모에노.'''
니시노 나나세의 열렬한 덕후로, 모바메 메일 주소에도 '나나세마루'가 들어간다. 트위터나 구플에 투샷도 종종 올라오며 꾸준한 덕질 중.
SKE48로 이적 후에는 마츠무라 카오리 , 사이토 마키코 등의 연령이 비슷한 멤버들과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저녁에 밥도 먹고 같이 자전거도 탈 정도로 가깝다고 한다.
타카야나기 아카네, 우메다 하루카와도 사이가 좋다.

5. 활동



5.1. 데뷔 일화


2007년 5월 'AKB48 제4기 오디션'에 응시하지만 '''불합격'''한다. 처음 오디션을 보게 된 계기는 마에다 아츠코때문. 자신과 1살차이 밖에 안나고 AKB48인 마에다가 TV프로그램과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고, 아이돌이지만 AKB에 들어가면 여러가지 진로를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응시하게 되었다. 2차심사까지 통과하고 '''최종심사'''에서 불합격. 여기서 영혼의 숙적(?) 니토 모에노와 함께 떨어졌다고 한다.
2007년 10월 'AKB48 제5기 오디션'에 응시하지만 '''불합격'''한다. 여기서 무척 충격먹었는데 바로 같이 4기 오디션에 떨어졌던 니토 모에노는 합격을 해버렸는데, 자기는 불합격이 되어버린 것. 이번에도 '''최종심사'''에서 불합격이 되어버렸다.
2008년 12월 'AKB48 제7기 오디션'에 응시하지만 역시 '''불합격'''. 이번에도 '''최종심사에서 불합격(...)''' 이때쯤 되니깐 오기가 발동해서 연예인이곤 뭐곤 AKB48에 무조건 들어가고 싶어졌다고 한다.
2009년 9월 'AKB48 제9기 오디션'에 응시하여 합격. 이번에도 떨어졌으면, 진짜 포기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근성만큼은 니토성님 못지 않은 근성의 미나룽.

5.2. AKB48: 팀4의 캡틴


2009년 9월 'AKB48 제9기 오디션'에 응시하여 합격.
2010년 B5th 극장의 여신 공연에서는 카시와기 유키의 언더 포지션을 담당한다.
9기생 대부분이 이미 연구생 시절부터 AKB48의 웬만한 정규 멤버보다 인기가 많았지만, 그룹 내 공석이 생기지 않았기에 요코야마 유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정식 멤버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9기는 지속적으로 오디션이 개최되어 멤버들이 들어옴에도, 졸업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하는 정체현상으로 가장 피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2010년 12월에 9기의 정식멤버 승격 발표가 났지만, 소속팀은 미정으로 계속 연구생 취급을 당하는 안습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도 AKB의 전성기가 다가온 시점에서 오오바는 시간이 갈수록 악수회 성적도 오르고 팬들도 많아졌다. 운영은 이런 오오바의 성장을 지켜보며 이미 결심을 내리고 있었다.
2011년 4월 2일, NHK라디오 '카케다세!'에서 나카마타 시오리와 함께 MC를 담당하게 되었다.
2011년 6월 6일 새로운 팀인 팀4의 결성 및 캡틴으로 임명되었다. 10월 10월 '나의 태양' 공연부터 임기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2011년 6월 9일 제3회 총선거에서는 35위를 차지, 언더걸즈에 들어간다.
2011년 7월 후지TV의 골든타임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남 파라다이스 2011에 자신에게 아이돌의 꿈을 심어준 마에다 아츠코와 팀 4멤버들과 함께 출연한다.
2011년 7월 23일 '세이부돔 콘서트'에서 팀 4의 캡틴으로 임명되었다. 당연히 리더쉽있는 시마다 하루카가 캡틴으로 임명 될줄 알았지만, 캡틴은 오오바 미나였다. 이유는 간단한데 시마다는 그렇게 밀어줘도 인기가 너무 없었고, 오오바의 경우 완매멤버 수준이 되면서 차기 에이스급이 될 수있는 포텐셜을 보여주었다. 타카하시 미나미, 카시와기 유키의 캡틴 선정등을 봐도 운영은 인기있는 캡틴을 원했었다.
그리고 운영진은 AKB4823th Single 언더걸즈의 센터로 오오바를 내정해두었다. 이것과 여태껏 오오바의 내력을 보면, 운영진이 오오바에게 얼마나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오바는 앞으로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으나...'''
2011년 8월 16일 AKB48에 들어오기 전인 09년(17세)까지 사용한 본인의 블로그가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음주와 남성 편력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가입 이전이긴 하지만 AKB48 운영진, 아키모토 야스시를 비판하는 내용에, "니토 모에노는 연줄도 없는데 푸쉬받는 게 대단하다"라는 발언[9]도 포함되어 있어 처분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맡고 있던 드라마, 라디오는 모두 강제 하차하게 되었다. 그리고 캡틴직은 시마다 하루카가 대행으로 맡게 되었다.
스캔들이 들킨 후 오오바는 도쿄에 있는 자취방에서 나가질 않고 말 그대로 은둔했다. 매니저가 가도 문을 안 열어주고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려 했지만 충격을 받아서 끼니도 거르고 하루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룹에 남거나, 떠나야 했지만 남으면 자신의 업보가 만든 결과를 마주하는 게 너무 두렵고, 떠나면 당장의 가정환경이 어려워져 그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때에 시마다 하루카는 매일 같이 오오바의 집에 찾아가 설득을 했다. 시마다는 무리를 해서라도 뜨거운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오오바는 이미 멘탈이 부숴져서 멤버와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마다가 계속 찾아가서 삼고초려 끝에 AKB 복귀를 결정하게 된다. 후일 오오바는 시마다의 졸업 공연에서 "시마다가 없었다면 난 아이돌을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사이 함께 블로그가 유출되어 연인이 있다는 게 발각된 모리 안나는 앓고 있던 지병으로 사퇴하였으나, 사실상 해고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오오바는 근신 신청을 하여 수리되었고, 논란은 어찌저찌 수그러져갔다. 하지만 캡틴이 없어진 팀4는 시작과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스캔들로 불운한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복귀는 4개월 정도 뒤인 2012년 1월 말에 했다. 비슷한 시기에 '''부친상'''까지 당해서 실질적인 컴백은 2월 즈음이 되었고, 때문에 컴백 한 뒤에는 비난은 잠잠해졌다. 캡틴직도 복귀 하였다. 9기생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고 캡틴을 향한 강한 열정을 내보인 시마다 하루카는, 오오바 미나가 복귀하면서 캡틴 대행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부터 팀4 내부의 불화 조짐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마다 하루카는 이 당시에 대해 "그때는 내 존재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라고 회상하기도.
2012년 3월 25일 '업무연락. 부탁한다, 카타야마 부장! in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의 3일째 공연에서 재팬뮤직 엔터테인먼트로 이적이 발표된다.
2012년 4월 니혼TV의 드라마 '사립바카레아고교'에 팀 4멤버들과 함께 출연하였다.
2012년 6월 6일 제4회 총선거에서 '''57위'''를 차지한다. 사실 많은 AKB팬들은 오오바는 권외일거라고 예상했지만 상당히 선방을 했다.
2012년 8월 24일 도쿄돔 콘서트 1일차에서 신 내각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팀 4가 해산'''되면서 11월 1일부터 '''팀 B로 이적'''하게 되었다. 막장이 된 팀4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운영이 극단적 조치를 한 것. 그 때의 팀4 멤버들은 정신적으로 너무나 어렸었다.
이후 구 팀4 멤버들은 예능에 오오바와 같이 출연하면 이걸 가지고 드립을 치는 패턴이 생겼다. '''캡틴과의 추억이 없어요!'''라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캡틴이 사라졌어요!'''라거나... 오오바는 '''누구라도 실수는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여 사건이 있었음에도 인기가 상승 중이며, 'AKB48 28th Single 극장판 악수회'에서도 시마자키 하루카, 야마우치 스즈란과 함께 3차에 매진되는 등 대단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29th, 30th에서도 4차에 완매하는 등 악수회에서의 인기가 매우 좋다. 오오바가 일으킨 스캔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 인기가 돌아온 건 기적에 가까운데, 역시 귀여우면 다 되는 건지도 모른다.(…)[10]
2013년 3월 27일 AKBINGO!의 '말다툼왕 결정전'에서 시마다 하루카에게 '사기 셀카로 팬을 속이지 말아라", "너는 어차피 총선거에서 권외니까"라고 말했는데 아무리 예능이지만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구글플러스에 사과문을 올렸다.[11]
2013년 4월 28일 'AKB48 그룹 정기총회 ~흑백을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에서 키타리에가 겸임해제되는 동시에 뜬금없이 '''SKE48의 팀KⅡ 겸임'''을 맡게 된 것이 발표되었다!! 키타리에처럼 본점 멤버니 선발자리 하나는 줄 것이고 그러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꼴이 되어 미움받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와 딱히 선발도 아니고 어정쩡한 위치인 지금 이대로 있으면 계속 정체상황에 지나지 않으니 SKE로 가서 새로운 활동무대를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반반 정도 들리는 상황이다. 이후로는 생각보다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3년 6월 8일 제5회 총선거에서는 48위로 넥스트걸즈 말석 차지.
2013년 9월 18일 제 4회 가위바위보 대회에서는 AKB48 콩트 '뭘 또 그렇게까지...'에서 본인이 입었던 대머리 박사 복장으로 출전. 파죽의 4연승을 달리며 준결승까지 진출하지만 카미에다 에미카에게 패배하며 4위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염원의 첫 싱글 선발 달성.
그러나 2013년 시점에서 AKB48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넥걸에서 멈추면서 결국 자신의 염원이던 AKB 선발의 길은 닫히게된다. 코지마 마코, 오오와다 나나같은 차세대 재능도 들어왔기에 나이나 포지션으로 봐도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5.3. SKE48: 제2장


2014년 2월 24일 대조각 축제에서 팀B 겸임이 해제되는 동시에, '''팀KⅡ로의 이적 및 부리더'''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오오바 본인도 겸임이긴 했어도 설마 이적까지 할거란 생각은 못해서 엄청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2014년 6월 7일 제6회 선발총선거에서 8계단 떨어진 54위. (총선거에서 처참한 결과를 남긴 동기들에 비하면 다행인 성적.) 소감으로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긴장했지만,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안심해서 웃는 얼굴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며, AKB의 매력을 SKE에 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순위에 만족스러운 소감을 선보였다.
2014년 10월까지 SKE이적은 상당히 성공적인 상태다. 겸임당시부터 오오바 본인이 SKE에 녹아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결과 SKE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카에 팬들도 오오바를 명예(?)SKE 3기로 받아들였다. [12]. 총선거는 떨어졌지만 높은 악수회와 굿즈 판매량, 예능에서의 좋은 활약 덕분에 SKE48의 선발멤버로서도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적전에는 가위바위보 싱글이 유일한 선발 경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중견치고는 상당한 대박.
2015년 3월 30일 SKE 팀K2 극장공연(후루카와 아이리 졸업공연)에서 KⅡ의 리더로 지목되었다. 다시 해체 안 시키도록 열심히 하겠다고.그리고 새로운 팀 KⅡ의 부리더는 우치야마 미코토가 되었다. 졸공 직후 '츄리가 이토록 크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앞으로는 츄리에게 의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이후 극장 mc에서 캡틴 된거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SKE48은 '리더'라고...'하는 생각을 한다고 언급했다. 그럴 때 마다 이제 사카에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모양. 거기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리더라고 불러주리라 믿어!"라고 덧붙여 큰 호응을 받았다. 사카에 팬들에게는 역시 우리 3기(!)라며 좋은 평가를 받는 중.
2015년 6월 6일 열린 제7회 선발총선거에서는 24,708표를 득표하여 27위에 랭크되었다. 속보에서 권외를 기록하며 다소 초조해 하였지만 27위라는 개인최고기록을 경신하면서 SKE48이적이 성공적이었다는 평이다. 소감발표때 "귀여워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큰 웃음을 주었다.
2016년 제8회 선발총선거 속보에선 5,656표로 54위를 차지하였다. 잘 모르는 팬들은 속보순위가 낮아서 불안하다고 했지만, 오오바 미나 오시들은 작년 권외보다 훨씬 희망적이라는 반응.
6월 18일에 열린, 제8회 선발총선거에서 32,118표로 22위를 차지. 본인이 목표한 16위에는 아쉽게 못들어갔지만, 작년보다 7,410표를 늘리면서 본인 최고순위를 갱신하였다. 그러나 5월 아메바tv에서 올해가 마지막 총선거라고 했기 때문에, 내년 총선거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거가 끝난 직후 SHOWROOM에서 "총선거가 마지막이라고 했지, 졸업한다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하여 졸업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켰다.
2016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 AKB48 선발 총선거에서, 8회 선발총선거보다 22계단 떨어진 44위를 차지하였다.
2017년 마지막 총선거였다던 작년 발언과는 달리 제9회 선발총선거에 선발을 목표로 입후보 하며 속보 73위, 작년대비 3661표 줄어든 최종 26위를 기록하였다. 목표달성은커녕 오히려 낮아진 순위에 남은 총선거 진행내내 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2018년 6월 16일 10회 총선거에서 '''8위'''로 발표되었다. 요코야마 유이에겐 <하이텐션> 이후로 동기생 간의 재회이며, 그 다음 싱글에서도 요코야마는 동기생 타케우치 미유랑 함께 선발되었다.
2019년 11월 29일에 개최된 9기생 1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하였다.

5.4. 총평


AKB48 시절에는 부족한 리더쉽 때문에, 애매한 캐릭터로 이도저도 안된 오오바였지만, SKE48로 이적하면서 물만난 고기처럼 활약하기 시작한다. 초기 SKE팬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굉장히 힘들었지만, 이후 SKE팬들이 그녀를 인정하면서 진정한 멤버로써 거듭난다.
[image]
이후 AKB48 SHOW!의 콩트 코너인 '망상소녀 오오바'[13]에서 나온 '''귀여워서 죄송합니다(可愛くてすみません)'''는 AKB팬들 내에선 최고의 네타중 하나가 되었다. 구글 검색창에서可愛くてすみ까지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귀여워서 죄송합니다 오오바''', '''귀여워서 죄송합니다 오오바 미나''', '''오오바 미나 귀여워서 죄송합니다'''가 바로 나올 정도.
참 아쉬운것은 AKB의 차세대로써 이러한 성적을 보여줬다면 그녀는 일찌감치 선발급 멤버로 기회를 잡았을터인데.. 하필 SKE이적후 터져서 애매한 위치가 되었다. SKE는 오오바 처럼 나이많은 멤버를 프론트로 내세울 이유가 없고, 오오바의 성적이 좋아졌다고 한들 이제 AKB멤버가 아니라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짙었다.
그래서 선발 총선거에서 16위 안쪽으로 들어가야만했지만, 그 꿈은 항상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2016년이 가장 근접했고, 2017년에라도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미션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오오바는 "AKB선발로 들어가고 싶다" , "이건 나의 꿈이라서 포기할 생각이 없다"며 계속해서 어필을했다. 그리고 SKE활동을 최대한 열심히했다.
그결과 2018년 6월의 선거에서 무려 8위라는 엄청난 랭크업으로 첫 선발의 영예를 끌어 안았다. 무려 9번의 도전끝에 얻어낸 성과이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준 오오바와 그녀의 팬들의 뜨거움이 느껴진 선거였다.

6. 여담


  • 역대급 망기획으로 평가받는 대조각에서 유일한 승리자라고 봐야한다.
  • 2017년 우노 츠네히로와의 대담에서 "제가 SKE로 이적된게, SKE가 좋아요 라고 계속 말했던게 원인 같아요. 사실 전 겸임 해제되기 싫어서 그렇게 얘기한건데 어른들이 이적하고 싶어한다고 착각한것 같아요. 그래서 대조각에서 겸임을 제안받고 2일 동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SKE를 선택했고 그건 틀리지 않았어요"
  • NMB48 1기생의 초인기 멤버였던 야마다 나나와 출생일, 혈액형이 똑같다...

7. 선발 참여곡


'''SKE48'''
'''NO'''
'''커버'''
'''싱글명 / 발매일'''
'''12'''
'''美しい稲妻'''
'''2013. 7. 17'''
'''13'''
'''賛成カワイイ!'''
'''2013. 11. 20'''
'''14'''
'''未来とは?'''
'''2014. 3. 19'''
'''15'''
'''不器用太陽'''
'''2014. 7. 30'''
'''16'''
'''12月のカンガルー'''
'''2014. 12. 10'''
'''17'''
'''コケティッシュ渋滞中'''
'''2015. 3. 31'''
'''18'''
'''前のめり'''
'''2015. 8. 12'''
'''19'''
'''チキンLINE'''
'''2016. 3. 30'''
'''20'''
'''金の愛、銀の愛'''
'''2016. 8. 17'''
'''21'''
'''意外にマンゴー'''
'''2017. 7. 19'''
'''22'''
'''無意識の色'''
'''2018. 1. 10'''
'''23'''
'''いきなりパンチライン'''
'''2018. 7. 4'''
'''24'''
'''Stand by you'''
'''2018. 12. 12'''
'''25'''
'''FRUSTRATION'''
'''2019. 7. 24'''
'''26'''
'''ソーユートコあるよね?'''
'''2020. 1. 15'''
'''27'''
'''恋落ちフラグ'''
'''2021. 2. 3'''
'''AKB48'''
'''NO'''
'''커버'''
'''싱글명 / 발매일'''
'''34'''
'''鈴懸の木の道で'''
'''2013. 12. 11'''
'''36'''
'''ラブラドール・レトリバー'''
'''2014. 5. 21'''
'''53'''
'''センチメンタルトレイン'''
'''2018. 9. 19'''

[1] 이름을 한자로 쓰면 大場이 되기 때문. 캡틴이니 隊長과 중의적 의미도 있다. 大腸과는 상관이 없다.[2] 통틀어 따지자면 카시와기 유키, 스다 아카리, 타카야나기 아카네, 오오야 시즈카 다음이고, 졸업 선언한 전설의 1기생 미네기시 미나미보다도 생일이 8개월 빠르다. 순위로 보면 큰 차이 없어보이지만 위에 언급된 4명은 91년생이고 미나룽은 92년생으로 4명과 격차가 있다. [3] 이에 대해 조금 첨언해보자면 대개 AKB의 1세대와 2세대의 기준을 9기생으로 잡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9기생들은 오히려 1세대에 가까운 나이구성을 보여준다. 당장 앞에서 언급한 1기생의 막내였던 미이짱이 92년생이고 구카미의 마지막 맴버였던 마유유는 빠른 94년생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9기생의 나이 구성은 92년생인 유이항, 시마곰, 미나룽을 필두로 93+빠른 94년생인 코마리코, 마리야기, 파루루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2대 총감독으로 지명받은 92년생 유이항은 1대 총감독인 타카미나와 고작 1살밖에 차이 안나고, 심지어 마유유의 다음 센터 후보였던 파루루는 서로 동갑임에도 2세대로 분류되는 상황이 나오기도. 오히려 나이로만 세대 구분을 해보자면 88년생~93년생까지 포함된 1세대에서 벗어난 기수는 10기부터로 94년생에서 97,98년생까지 포함하는 2세대의 주력 나이대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위의 나이대가 주력맴버였던 10기~15기까지를 2세대로 나누고 2000년대 이후 출생자가 주축이 되는 드래프트 1기생~ 현재까지를 3세대로 분류하는편.[4] 팀 KⅡ리더로 지명되면서 팀 KⅡ부리더 자리를 우치야마 미코토에게 넘겨 주었다.[5] 150cm[6] 여담으로 아리요시 akb공화국에서 코지마 하루나의 슴가가 D컵 다이아몬드라 한다. E컵 = 엑설런트 F컵 판타스틱[7] 2, 4, 5, 7기 오디션[8] AKBINGO! 2013년 4월 2일[9] 여기에서 니토 모에노가 연애 경험이 있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폭로했는데, 후에 니토 모에노는 악수회에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 묻는 팬들 때문에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10] 오오바 미나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멤버가 8기생 중에 있다. 그리고 운영은 그 멤버를 문제삼아서 8기생 전원을 셀렉션 탈락시켰다. 8기생 이후 9기생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 건데, 처리방법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운영이 8기생에게만 지나친 처분을 했다고 분개하는 팬들도 많았다.[11] 시마다 하루카와 오오바 미나의 관계성을 생각해보면... 저 말을 들으면서 시마다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됐을까...[12] AKB48의 9기와 SKE48의 3기가 데뷔동기다. SKE 3기끼리 유닛을 하거나 할 때에는 오오바도 참가하는 경우가 많고, 팬들도 3기 관련 행사 등에 오오바가 불참하면 '미나룽은 어디갔냐'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다.[13] 48그룹의 일상(?) 시리즈로 등장했는데 이후 오오바가 귀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그 역할을 해냈다. 배우인 노마구치 토오루와는 환상의 케미를 만들어내면서 이후 AKB 그룹 행사에 특별출연해 즉석 콩트를 선보이기도.. 콩트에서 스다 아카리가 껄끄럽다고 말하면서 스다를 디스하기까지 했고 총선거에서 8위에 랭크된 이후에는 스다가 2위인게 이상하다면서 팬들마저 이상하게 본다고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