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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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이다. 호는 양산(陽山)이다.
1934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경북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3기 과정을 졸업하였다.하나회·3선 의원 출신의 제 5공화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정치인이다. 77년 대령으로 예편해 포철이사로 재직중 81년 경북고 3년 선배인 노태우대통령의 권유로 11대에 출마,당선된 이후 내리 3선 하였다.
2. 일생
2.1. 정계입문전
이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육군사관학교 동기 최세창, 정동호, 이우재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으며, 예편 이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에서 간부로 근무하였다.
2.2. 정계활동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주시-영풍군-봉화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홍사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민주정의당 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홍사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경제과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봉화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제5공화국 청산을 위해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이 정호용의 제13대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요하자 이에 반발하였다가 그만 두었다.
1989년 이종찬 전 민정당 사무총장과 정호용 지지파의 오한구 의원은 국군수도병원으로 정호용 의원을 문병 갔다가 우연히 만나 『당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의기투합해 29일 10인 의원모임을 조직.
오 의원은 자신이 정 의원 파로 분류된 것을 의식해 이 의원에게 모임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당초 50명 이상의 재경의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가 박 대표가 밤중에 사의를 표명, 10명 선으로 축소하였다.
모임에서 오한구 의원은 『발설자가 당직을 내놓는 바람에 김이 샌 것 같다』고 말했으나 이종찬 의원은 『발언내용도 문제지만 차제에 정국전반에 관해 민주적 절차를 논의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의총을 소집하는 방안을 제시.
참석자중 가장 원로인 윤길중 고문은 『긴 안목으로 보아 정계구도를 정리하는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될 사안이지만 당을 이끈다는 사람이 책임 없이 기분에 따라 얘기해서는 곤란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완곡하게 박 대표를 비난.
[출처: 중앙일보] "당 더 이상 방치 못한다" 10인 모임 조직 이종찬·오한구 의원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3. 주요정계활동
1. 지방자치법중개정법률안(대안)(내무위원장 오한구 제출)(1990년)
2. 지방의회의원선거법개정법률안(대안)(내무위원장 오한구 제출)(1990년)
3. 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법안(대안)(내무위원장 오한구 제출)(1990년)
4.우리나라 의 農地制度 와 農地改革法 (정기간 행물실 524호 )
5.우루과이 라운드 協商과 우리 農業의 發展方向 (정기간행물실524호)
2.4. 선거이력
2.5. 정계활동이후
서희건설은 당시 3선 국회의원 오한구 전(前) 의원을 상임고문으로 뒀다. 경북 봉화 출신으로 대구 경북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오 전 의원은 군(軍) 시절 하나회(신군부, 新軍部)에 가입한 바 있는 인사다.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부 내 사조직이다.
신생 건설사에 불과한 서희건설이 어떻게 하나회·3선 의원 출신 거물급을 고문으로 영입할 수 있었을까. 이는 오 전 의원이 육군 대령 예편 이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POSCO)에서 간부로 활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봉관 현(現) 서희건설 회장은 포항종합제철 공채 2기 출신으로 운송통관 담당 차장을 지냈다. 당시 이 회장의 직속 상관으로 있었던 오 전 의원은 특히 이 회장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살뜰하게 챙겨줬다는 후문이다.
서희건설의 초창기 사업은 포스코 계열 공사사업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서희건설이 만들어 졌다.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
3. 여담
단신에 항상 웃는 얼굴로 대인관계가 원만한 호인형 이며 지난 연말 정호용씨의 의원직 사퇴문제가 제기됐을 때는 서명운동을 주도해 「의리있는 사람」으로 평가됐다. 국회경과위원장ㆍ민정당정책위부의장을 역임.
83년 이래 계속 대한산악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등산 애호가로 금실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출처: 중앙일보] 정호용씨 지지서명 주도/오한구 내무위원장(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