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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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6대
윤승식

7대
최세창


8대
정만길







출생
<colcolor=#000000>1934년 4월 17일 (89세)
경상북도 대구부 명치정2정목[1]
본관
경주 최씨
직업
前 군인, 정치인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7년 ~ 1989년
재임기간
제9대 제3야전군사령관
1985년 12월 ~ 1987년 12월
제22대 합동참모의장
1987년 12월 30일 ~ 1989년 4월 14일
제29대 국방부 장관
1991년 12월 20일 ~ 1993년 2월 26일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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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관료, 내란사범. 본관은 경주(慶州)[2], 호는 유광(維光).
하나회의 일원으로 12.12 군사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였으며 신군부 정권에서 합동참모의장,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직속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벌이고 이 공로로 승승장구하여 국방부 장관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훗날 그는 반란군으로서 사법 처리됐고 패륜적 정치 군인으로 시민을 학살한 국적으로 추락하였다.

2. 생애


1934년 경상북도 대구부 명치정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독립운동가 출신[3]인 아버지 최윤동과 어머니 김창성의 5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광복경북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8년 아버지 최윤동이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상경하여 서울 경동고등학교[4]에 전학해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제13기로 입학하여 군에 임관하였다. 생도 시절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임관 후에는 철저한 명령 복종과 임무 수행 자세로 높이 평가받아 진압 작전 등 특수 작전에 동원되고는 했다. 1950년대 말 전두환, 장기오, 차지철 등과 함께 미국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준장)에 임명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도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되었다.[5]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특전여단박희도와 더불어 휘하 병력인 제3공수특전여단을 동원하여 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면서 신군부의 일원이 된다. 최세창은 전두환으로부터 직속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6] 정병주 장군에게 쿠데타 가담을 설득하였으나 정병주의 거부로 실패하자 휘하 장교 박종규 중령에게 체포를 지시한다.[7] 육군본부국방부를 점령한 박희도, 최전방 9사단 병력을 중앙청 앞으로 출동시킨 노태우와 더불어 불법적인 병력 동원으로 무력 행사를 한 반란 가담자로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 직속 상관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점에서 가장 악질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하는 등 신군부 정권 탄생을 위한 유혈 진압에도 일조했다.[8] 12.12 군사반란에서 공을 세운 것과 더불어 전두환의 직계 하나회 멤버[9]로서 제5공화국에서 육군사관학교 13기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했다. 20사단장[10], 수도방위사령관,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대장 1차 보직 중 최고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진급해 육군참모총장 영전을 눈 앞에 두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정권 이임을 앞두고 충복인 하나회 12기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함으로써 최세창은 어쩔 수 없이 합동참모의장[11]으로 가게 되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전두환의 직계 군맥이었기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하다가 예편 후 2년 반이 지나 노태우에게 다시 등용되어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가담,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되었다.

3. 여담


  • 2017년 8월 24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이 내려진 부대의 책임자로 밝혀졌다. 관련 뉴스 링크
  • 2019년 12월 12일에는 '12.12 군사반란 40주년'이었는데 자신의 절친인 전두환 전 대통령, 정호용 전 육군대장 등과 같이 호화만찬을 즐기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4. 대중매체에서


  • 1996년작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김영일[12]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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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의 최세창

[1]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2] 관가정공파 22세손 필(必) 명(命) 만(萬) 창(昌) 항렬.[3] 의열단, 신간회,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했다.[4] 당시 경동중학교.[5] 훗날 5.18 민주화운동 때에도 진압군의 지휘관 중 1명이었다.[6]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한테 정병주 체포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도 나오기는 했다.[7] 여담으로 코리아게이트(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에서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만류하는데도 반란에 가담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8] 시위대에 대한 발포 지시의 책임자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9] 최세창의 하나회 가입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만년에 가입한 멤버로 초기 하나회 멤버는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10] 수도권 인근의 충정 부대이기 때문에 군사 정권에서 20사단장은 요직 중 하나였다.[11] 당시만 해도 합동참모의장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선두주자였던 최세창이 합동참모의장으로 가게 됨으로써 13기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12]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깡패 두목 제트기 역, 여자의 남자에서 청와대 경호원 역으로 나왔던 인물이다. 1996년 '석정'이라는 법명으로 불교계에 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