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창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관료, 내란사범. 본관은 경주(慶州)[2] , 호는 유광(維光).
하나회의 일원으로 12.12 군사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였으며 신군부 정권에서 합동참모의장,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직속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벌이고 이 공로로 승승장구하여 국방부 장관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훗날 그는 반란군으로서 사법 처리됐고 패륜적 정치 군인으로 시민을 학살한 국적으로 추락하였다.
2. 생애
1934년 경상북도 대구부 명치정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에서 독립운동가 출신[3] 인 아버지 최윤동과 어머니 김창성의 5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광복 후 경북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8년 아버지 최윤동이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상경하여 서울 경동고등학교[4] 에 전학해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제13기로 입학하여 군에 임관하였다. 생도 시절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임관 후에는 철저한 명령 복종과 임무 수행 자세로 높이 평가받아 진압 작전 등 특수 작전에 동원되고는 했다. 1950년대 말 전두환, 장기오, 차지철 등과 함께 미국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준장)에 임명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도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되었다.[5]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와 더불어 휘하 병력인 제3공수특전여단을 동원하여 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면서 신군부의 일원이 된다. 최세창은 전두환으로부터 직속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6] 정병주 장군에게 쿠데타 가담을 설득하였으나 정병주의 거부로 실패하자 휘하 장교 박종규 중령에게 체포를 지시한다.[7]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한 박희도, 최전방 9사단 병력을 중앙청 앞으로 출동시킨 노태우와 더불어 불법적인 병력 동원으로 무력 행사를 한 반란 가담자로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 직속 상관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점에서 가장 악질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하는 등 신군부 정권 탄생을 위한 유혈 진압에도 일조했다.[8] 12.12 군사반란에서 공을 세운 것과 더불어 전두환의 직계 하나회 멤버[9] 로서 제5공화국에서 육군사관학교 13기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했다. 20사단장[10] , 수도방위사령관,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대장 1차 보직 중 최고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진급해 육군참모총장 영전을 눈 앞에 두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정권 이임을 앞두고 충복인 하나회 12기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함으로써 최세창은 어쩔 수 없이 합동참모의장[11] 으로 가게 되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전두환의 직계 군맥이었기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하다가 예편 후 2년 반이 지나 노태우에게 다시 등용되어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가담,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되었다.
3. 여담
- 대한태권도협회의 15~16대 회장직을 맡았다.
- 2017년 8월 24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이 내려진 부대의 책임자로 밝혀졌다. 관련 뉴스 링크
4. 대중매체에서
[1] 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2가[2] 관가정공파 22세손 필(必) 명(命) 만(萬) '''창(昌)''' 항렬.[3] 의열단, 신간회,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했다.[4] 당시 경동중학교.[5] 훗날 5.18 민주화운동 때에도 진압군의 지휘관 중 1명이었다.[6]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한테 정병주 체포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도 나오기는 했다.[7] 여담으로 코리아게이트(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에서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만류하는데도 반란에 가담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8] 시위대에 대한 발포 지시의 책임자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9] 최세창의 하나회 가입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만년에 가입한 멤버로 초기 하나회 멤버는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10] 수도권 인근의 충정 부대이기 때문에 군사 정권에서 20사단장은 요직 중 하나였다.[11] 당시만 해도 합동참모의장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선두주자였던 최세창이 합동참모의장으로 가게 됨으로써 13기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12]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깡패 두목 제트기 역, 여자의 남자에서 청와대 경호원 역으로 나왔던 인물이다. 1996년 '석정'이라는 법명으로 불교계에 귀의.